2019. 08. 11 (일)
유현문(惟賢門)
정관헌 서쪽에서 덕홍전 서쪽의 행각까지 예쁜 무늬가 새겨져 있는 꽃담이 있다.
꽃담에는 정관헌으로 드나드는 유현문이 있는데, 유현문(惟賢門)은
'어진이가 출입하는 문'이란 뜻으로, 유현문에는 용무늬와 함께
물고기를 입에 문 학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어당 옆 덕홍전으로 들어가는 문~
유현문(惟賢門)과 정관헌(靜觀軒)
정관헌(靜觀軒)
정관헌(靜觀軒 )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외관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이다.
화려한 모양의 정관헌 '난간'과 '주두'(기둥 위쪽 화병 모양이 있는 곳)
황금색의 난간에는 소나무와 사슴 문양이, 주두에는 박쥐문양이 새겨져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 건축물~
덕홍전(德弘殿) 배면~
덕홍전(德弘殿)은 고종황제의 알현실이었던 창덕궁 인정전을 따라 지었는데, 이미 낙성하여
6일 밤부터 불을 밝혔다고 하면서, 공사비는 6만 여 원이 들었으며, 실내 장식이나
다른 것도 매우 화려한데 큰 벽화는 화백 천초신래자(天草神來子)가 그린 걸작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안청(移安廳), 중배설청(中排設廳), 어재실(御齋室) 등 혼전과 관련된
제례 시설은 모두 철거되었고, 대신에 고종황제를 보필하는 이왕직 청사(李王職廳舍)를 비롯하여
찬시실(贊侍室), 귀빈실 등을 만들었다. 한편 고종황제가 쉽게 덕홍전을 드나들도록 함녕전까지
복도를 놓았다고 한다. 현재 주변의 다른 건물은 모두 없어졌지만 복도의 흔적만은 남아 있다.
함녕전 뒤 굴뚝
함녕전(咸寧殿 ) 배면
보물 제820호. 덕수궁 함녕전은 1897년(광무 1)에 고종이 머물렀던 침전으로 세워졌으며,
1904년(광무 8)에 화재로 불에 타서 그해 다시 지은 건물로, 순종에게 선위를 물려준 고종이
1919년 1월 22일 승하하신 곳이다.
회랑과 복도로 연결된 함녕전
함녕전 동쪽 회랑 출입문, 네 곳 중 유일하게 오픈된 문이다.
동편 회랑 모습
잠겨져 있는 동편 회랑쪽 출입문~
회랑에서 바로 함녕전으로 오르는 계단
함녕전(咸寧殿) 정면~
함녕전(咸寧殿)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침전)이다. 광무 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 불에 타,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서쪽 뒤로 4칸을 덧붙여 평면이 ㄱ자형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인데 위쪽에 여러 가지 조각을 장식해 놓고 있다.
더욱이 지붕 모서리 부분에 조각들(잡상)을 나열한 점은 침전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구성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간결하게 장식한
익공 양식이며 구름과 덩굴문양으로 꾸몄다. 건물의 천장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고, 네면 모든 칸에 벽을 두르지 않고 창을 달아 놓았다.
함녕전 추녀마루 위 잡상(雜像)
잡상이란 약속이나 한 듯이 추녀마루 위에 나란히 줄 서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거나 숙이고 있는 물상들을 말한다.
함녕전(咸寧殿)
광명문(光明門)
일제에 의해 1938년 궁내 남서쪽으로 옮겨져 이전됐던 덕수궁 광명문이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2018년 6월 시작해 연말에 이전 공사를 마친 광명문 준공식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행사를
3·1운동 100주년(2019년)을 맞아 개최했다.
대한문~ 10:07
대한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다리~
서울시청
프라자호텔(Hotel The Plaza) 2층, 세븐스퀘어(라이프스타일 뷔페 레스토랑)~
여행 온 일가족, 대만인 인지 중국인 인지 잘 모르겠다~
Hotel The Plaza
덕수궁 돌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