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강좌 서언(序言)
보학(譜學)은 대개가 구전심수(口傳心授)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며 족보(族譜)는 고증을 중시하는 기록문으로서 잘못 전수하면 그 가치관을 왜곡되게 합니다. 광산김씨의 상대사(上代史)는 1153,충정공(金義元)의 묘지명과 1307,황대전고(金珥)공의 광산현제영시서(光山縣題詠詩序) 등을 토대로 천년사가 일관되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남대학교 이수건(李樹建 1935~2006) 교수가 그의 논문에서 “광산김씨 상계는 광양김씨 상계에 부회하였다” 고 하는 설에 대처하기 위하여 광산김씨 대종회에 “광산김씨 상계사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그 추진과정에서 김인(金仁) 위원이 2002, 4, 1. “광산김씨 상계사의 고찰” 이라는 논문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광산김씨 7世 휘 양감(良鑑)의 장남은 의영(義英)이라고 주장 함으로써 환부역조(換父易祖)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림대학교 김용선(金龍善) 교수의 저서 고려묘지명집성 제2판(1997) “이정(李頲) 묘지명”에서 일시 오판된 의영(義英)을 인용하였기 때문이었으나 김용선 교수는 오판을 인지하고 제4판 (2006)에서는 아래 표와 같이 義英을 義▨ 으로 다시 수정하여 발행하였습니다. 즉 義▨는 義文의“文”자가 마모되었음을 역대의 보서(譜書)가 고증합니다.
판 수 | 발행년월일 | 발 행 처 | 이정(李頲) 묘지명 해당 구절 | 정, 오 |
원문 | 1077. | 양숙화(梁肅華) | 金良鑑之嫡男 雜織署丞 義文 김양감지적남 잡직서승 의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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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 제3판 | 1993, 1997, 2001. | 한림대학교출판부 김용선 교수 | 金良鑑之嫡男 雜織署丞 義英 김양감지적남 잡직서승 의영 | 오판 |
논문 | 2002, 4, 1 | 김인(金仁) 제출 | 光山金氏 上系史의 考察 (義英) 광산김씨 상계사의 고찰 (의영) | 오류 |
제4판 ~ 제5판 | 2006, 2012. | 한림대학교출판부 김용선 교수 | 金良鑑之嫡男 雜織署丞 義▨ 김양감지적남 잡직서승 의▨ | 정정 |
평장대보 | 2016, 11, . | 광산김씨 대종중 도유사 김선술 | 7世 文安公 諱 良鑑之 長男 (義英) 7세 문안공 휘 양감지 장남 (의영) | 換父易祖 환부역조 |
김인(金仁) 위원이 이 같은 논문을 제출한 당시는 김용선 교수가 오판된 義英을 義▨으로 정정하기 이전이었으므로 광산김씨 7世 휘 양감(良鑑)의 장남을 義英(의영)으로 실착(失錯)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광산김씨 대종중 평장대보 수보(修譜) 위원회는 김인(金仁) 위원의 “광산김씨 상계사의 고찰”에서 7世 문안공 휘 양감(良鑑)의 장남을 義英(의영)이라고 실착했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2016, 평장대보의 상대(上代)를 송두리째 옮겨 붙여 환부역조 함으로써 예문종가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습니다.
이를 두고 족보는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 천박하고 무책임한 변명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정교과서도 오류로 인해 폐기하고 다시 쓴 예를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이처럼 평장대보가 터무니없이 환부역조(換父易祖) 되었음을 규탄하는 원성이 극열한 가운데 마침내는 평장대보의 소각사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2016,평장대보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장차 연계되는 파보(派譜), 가승보, 비문(碑文), 항렬, 작명 등이 종파(宗派)간 서로 다를 것이고, 당장 기존의 대종회 전자족보와 대종중의 근간 전자족보가 서로 계보(系譜)와 세수(世數)와 항렬이 다르다면 이 어찌 일가(一家)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숭조돈목(崇祖敦睦)을 위한 책임 있는 결단이 시급함을 통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