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에게서 헬레니즘가 헤브라이즘의 결합이라는 보기 드문 경우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에 함축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대변하는 화두는 각각 논리와 윤리이다.
이 둘은 그의 삶과 사유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너는 논리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의 죄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러셀의 물음에
비트겐슈타인이 "둘 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이를 시사한다.
종래의 비트겐슈타인 연구는
논리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심이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에 대한 관심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다시 프레게, 러셀의 논리학은 헤겔에 와저 정점에 이르게 되는
거대하고 화려한 형이상학적 관념 체계에 대한 반발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해석되엇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필요한 장식에 반대하는 빈(Wien)의 세기말 사조가
비트겐슈타인에 미친 영향에까지 소급해볼 수 있다,
불필요한 장식물들에 대한 세기말 빈 지성인들의 혐오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이라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타락한 문화에 대한 혐오가 배어 있다.
잡문에 반대하는 크라우스(Karl Kraus)의 운동과 루스(Adolf Loos)의 무장식 건축물은 이러한 문화 비판을 주도했으며,
비트겐슈타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일찍이 크라우스가 인용한 바 있는,
"사람이 아는 모든 것은 ㆍㆍㆍ세 낱말로 말해질 수 있다"라는
퀴른베르거(Ferdinand Kurnberger)의 경구를 책의 첫머리로 삼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누이 그레늘(Gretl)을 위해 설계한 저택은
루스의 건축물처럼 일체의 외부 장식을 배격한 단순 명료한 것이었다.
그레틀은 그 집을 "논리를 구현한 저택"으로
자신과 같은 인간보다는 "신들을 위한 숙소처럼 보였다"라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최소한의 원초적 기호와 공리만으로 이루어진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의 원리』에 경도(傾倒)된 까닭도 이러한 배경하에서 이해된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논리 체계에 필요한원초적 기호와 공리의 수는
후에 비트겐슈타인, 쉐퍼(Henry Sheffer), 베르네이즈(Paul Bernays)등에 의해 더욱 축소되엇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장식은 거추장스러움을 넘어서 허영을 함축하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철학이라는 이성적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이 빠지기 쉬운
지적 허영의 부정직성을 반성하고 자책하는 데 매우 엄격했다.
그의 철학적 작업은 언제나 이러한 혹독한 자기반성과 자책을 동반한 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에 의해서 철학에서 장식을 제거했을 때 드러나는 것은 논리이다
"철학은논리와 형이상학으로 이루어진다. 논리는 그것의 기초이다.".
극도의 절제와 압축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가
논리를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저자 자신이 강조하듯 그 의의가 윤리적인 데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청빈주의는 그의 논리와 윤리의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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