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등록문화유산 ‘증평천주교메리놀병원 시약소’
1956년 12월 첫 진료…소문 퍼져 문전성시, 뱀독 치료 유명
어언 40여 년 전이다. 청주 시내 악기점에서 통기타를 하나 샀다. 대학가요제 열풍에 그룹사운드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때다.
“너의 침묵에 ~~.” 양희은이 1971년 발표한 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노랫말의 도입부다.
이 곡은 통기타를 배우는 초보자들에겐 첫걸음이었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겠다고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첫 소절만 반복해서 기타줄을 튕겼다. 변명이긴 하지만, 신체적 비밀이 하나 있다. 줄을 잡는 왼손 둘째 손가락, 검지 때문이다. 줄을 제대로 잡으려면 손가락 마디가 90도 가까이 굽어져야 하지만, 검지 첫째 마디가 접히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어릴 적이다. 한겨울 맹추위에서도 눈사람 만든다고, 바깥에서 왜 그리 오랫동안 노는 데 정신이 팔렸는지. 꽁꽁 언 손은 으레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동상 걸리기 딱이다. 동상에 심하게 걸린 왼손 검지가 안쪽으로 굽어지지 않은 이유다. 검지로 줄을 잡을 수 없으니 통기타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손가락을 핑계로 통기타를 잡지 않았다.
동상 치료하느라, 또 다른 어딘가 아프다고 해서 갔던 곳이 있다. 1960~70년대, 병원은 고사하고 동네의원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증평수녀의원’이었다. ‘수녀병원’이라고도 했다. 6·25전쟁 직후 메리놀외방전교회가 메리놀수녀회에 충북에서의 의료 선교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메리놀은 ‘마리아의 언덕(Mary's Knoll)’이란 뜻이다.
6·25전쟁 휴전 직후 메리놀수녀회 소속 수녀의사·간호사들이 의료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헌신과 사랑을 실천했던 옛 증평천주교메리놀병원 건물
증평지역에선 가톨릭 신자 손승모씨와 봉원동 증평읍장, 충북도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서응씨가 땅을 매입해 증평성당에 희사했다고 한다. 1956년 증평성당 정문 안쪽에 증평천주교메리놀병원이 지어졌다. 메리놀수녀회 책임 수녀와 원장 수녀, 간호사 수녀 등 수녀 3명이 파견됐고, 정식 개원 전인 1956년 12월부터 진료했다.
증평 수녀의원의 역사
장날(1·6일)에 내과·산부인과·소아과 외래진료만 했음에도 소문이 퍼져 환자가 몰렸다. 더 자주 문을 열었다. 목·일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닷새 동안 환자를 돌봤다. 먼 곳의 신자와 병원까지 올 수 없는 환자를 위해 괴산·진천·음성·미원·청주 등 공소 17곳을 순회 진료하기도 했다.
그땐 왜 그리도 뱀에 물린 사람이 많았는지. 증평메리놀병원은 뱀독 치료로 유명했다. 개원 때부터 3년간 메리놀병원에서 환자를 돌본 요안나(본명 진 맬로니, 한국명 문애현) 수녀가 2021년 12월 증평을 방문했다. 증평군청 별관 증평기록관 특별기획전에 초대를 받았다.
요안나 수녀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극빈국이었던 대한민국과는 선교활동으로 인연이 닿았다. 증평기록관 디지털 주제 아카이브의 메리놀병원 업무활동기록을 보면, 1980년 등 몇몇 해엔 파일 문서가 없다. 수녀회가 워낙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기록할 새도 없었다.
가난하고 외진 곳에 살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우선진료계획도 세웠다. 직원들은 방을 빌릴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개원 초기에 일반 환자까지 치료하자 일부 천주교 신자 사이에 불만이 나왔지만, 중하지 않은 병으로 찾아오는 신자를 설득하거나 순회 진료로 헤쳐 나갔다.
정부의 국민의료보험 시행으로 1990년 문을 닫은 수녀의원(메리놀병원) 건물은 2014년 사라졌다. 1956년 지어진 낡은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신축하면서 병원으로 썼던 성물판매소 건물이 철거됐다. 길 건너편에 시약소(施藥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다.
60년이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속건물 시약소. 메리놀병원 건물은 2014년 성당 건물 신축에 따라 철거되면서 주차장(사진 원안)으로 바뀌었다.
이 시약소(증평 천주교 메리놀병원 시약소)는 지난해 6월 9일 충북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고시됐다. 맞배지붕 단층 건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이 건물은 남루해 보이지만, 그 시대 역사와 사회·문화를 60년 넘게 고스란히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시약소는 치료 대기 장소이면서 예방접종, 약 제조·수납 업무 등이 이뤄졌다.
환자‧가족에게 헌신
‘정부 vs 의사’ 갈등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중환자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한 지도 벌써 4개월을 훌쩍 넘어섰다.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간절함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전체 의사가 동참한 건 아니지만, 주장은 하되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를 규정하고 헌신과 봉사 정신을 강조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혹시나 신분에 귀천이 있다고 해도 목숨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생명은 어느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메리놀병원 수녀 의사와 간호사들은 천주교 신자를 설득해서 일반 환자에게도 의료 손길을 베풀었다. 편애 없는 평등이었다. 이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나이팅게일 선서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헌신과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요즘 의료 사태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척(咫尺)에서 첫걸음을 뗐다.
첫댓글 귀한 자료네요
잘 알고 갑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