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광의 선생님 강권으로 이일기 선생님께서 발행인으로 계시는 <문학 예술>에 등단은 했는데 내 스스로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 나를 도광의 선생님께서 정혜옥 초대 회장님께 보냈어요. 안가려는 것을 억지로 보냈어요. 원고뭉치를 들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명동 마당너른 집으로 선생님을 찾아 갔지요. 초대회장님 첫 말씀이 "왜? 문학을 하려고 하느냐? "였어요. 제답이 날것 그대로 "도광의 선생님 강요 때문"이라고 했지요. 내 원고를 잠시 훓터 보시더니 "문학성이 없다. " 그게 전부였어요. 거기서 끝났으면 나는 수필계에 발을 딛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생을 독서를 취미로 살아온 내가 쓴 글이 문학성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오기가 생겼지요. 오기가 생긴 나는 "이게 문학성 있는 글인가요?" "저게 문학성 있는 글인가요?" 하고 묻는 의미에서 매주 한두편씩 거의 1백편을 써서 초대회장님께 우편으로 보냈지요. 선생님은 이메일 이런것 안하시는 분입니다. 거의 한 1년을 씨름 했어요. 어느날 다시 부르셔서 찾아 뵛지요. 가야산에 붉은 찔레가 핀다고 그걸 찾으로 가자고 해서 진짜 괭이를 차에 싣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갔지요. 그날 나는 문학성이 뭔지 터지게 됩니다. 붉은 짤레를 찾게 된 것이지요.
<문학예술>에 등단한게 도광의 선생님 후광으로 등단한 것 같아서 새로 등단해야 겠다고 하였더니 소개해준 곳이 서울 <에세이 21> 이정림 선생님입니다. 여류문사이시지만 대단한 강골이고 말씀도 괄괄하게 하시는 여장부입니다. 수필 사랑 정신는 당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분입니다. 첫 수필집이 나오던 날 이정림 선생님을 찾아 뵙고 둘이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나는 그래도 작은 사업을 하는 처지지만 책 한번 내는데 거의 5백만원이나 드는 것을 알고 밥먹으면서 선생님께 무심코 던진 말이 "가정주부들은 무슨 돈이 있어 수필책을 내느냐?"고 했더니 즉문즉설로 "서방 잘 만나서 그렇다"고 하셨지요. 그날 그자리에서 나는 정제되지 않는 그렇게 솔직한 답을 주시는 선생님의 매력에 그대로 푹 빠져 버렸지요. 그렇다고 제가 <에세이 21 행사>에 찾아 다니지도 않았지만 한번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어요. 진정성 있는 수준 높을 글을 쓰라는 요구만 합니다. 존경하는 분으로 제 기억에 아로세겨 진 몇 안되는 분 중 한분입니다.
협회 회원님들 보세요.
선생님은 나보다도 본래 글을 더 잘쓰는 분이면서도,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책을 발행하고 저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는데, 그냥 내 글에만 빠져서 일주일에 글 한편도 안쓰는 내가 무슨 수로 저런 경지에 오르겠는지요? 회원님들끼리 모여서 세셋세하며 즐겁게 놀다 집에 가는 일에 익숙해져 버리면 자기 글이 성장하겠는지요?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은 솔선 수범해서 카페에 수필공부용의 글을 많이 올려 놓습니다. 제가 엄청나게 에세이 21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선생님은 글 그만 좀 올리라는 말씀 절대로 아니하셨습니다. 아예 제 글방을 하나 만들어 주셨지요. 내가 쓴 글은 전부 거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카페를 찾는 다른 작가님이 서로서로 글방의 글을 감상하며 자기 글쓰는 일에 도움을 얻어가지요. 작가에게는 글쓰는 일이 생명인데 글을 쓰지 마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대구수필가협회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글 도배한다고 하셨지요? 네분만 더 나오시면 제 글은 내릴 것이니 작가답게 당당하고 솔직하게 도전하세요. 아래 글은 선생님께서 <에세이 21>카페에 올려 둔 글을 협회 선생님들 공부용으로 올립니다. 이정림 선생님은 글쓰는 요령을 자기 노하우로만 써먹고자 은폐하는 그런 소인배가 아니지요. 천하 만민 앞에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작가 아닙니다.
| 수필의 성격 李 正 林 "글은 곧 사람이다"(뷔퐁, 프랑스의 박물학자, 계몽사상가)라는 말이 있다. 또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쓴 글은 똑같다"(루이제 린저, 독일의 소설가)라는 말도 있다. 이 인용문들은 모두 작가와 글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음을 뜻한다. 글 속에 담긴 주제와 그것을 표현해 내는 문장, 그것은 곧 작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이요 인격과 품위의 구현물(具現物)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특히 허구의 문학이 아닌 만큼, 어느 장르보다 작가의 개성이 글 속에 그대로 투영되게 마련이다. 개성의 다양함은 작품의 성격을 다양하게 하고, 그 다양성은 수필 형식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수필의 성격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경수필(輕隨筆)과 중수필(重隨筆)로 나눌 수 있다. 경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중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배제한 객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그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 경수필(輕隨筆) ①서정 수필 작가의 개인적 신변에서 정서를 추출해 내는 수필로서, 문장은 부드럽고 표현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표현이란 분식(粉飾)에 치중하는 미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신선한 의식 속에서 찾아낸 독창적인 표현을 말한다. 서정 수필에서는 시적(詩的)인 상징과 비유도 차용하나 지나치면 산문에서 멀어진다. 시적인 수사(修辭)는 수필을 문예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어디까지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주제는 서정 속에 용해되어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주제가 없는 서정은 미문이나 감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서정의 과잉은 유치한 미감으로서 경계해야 하고, 서정 수필일수록 문장은 담백해야 한다. <예문①> 찰 밥 尹五榮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새벽에 문을 나선다. 오늘 친구들과 소풍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점심 준비로 찰밥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소학교 때 원족을 가게 되면 여러 아이들은 과자, 과실, 사이다 등 여러가지 먹을 것을 견대에 뿌듯하게 넣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모여들었지만, 나는 항상 그렇지가 못했다. 견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찰밥을 책보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따라가야 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숯불을 피워 가며 찰밥을 지어 싸 주시고 과자나 사과 하나 못 사주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다른 여축은 못해도, 내 원족 때를 생각하고 고사 쌀에서 찹쌀을 떠 두시는 것은 잊지 아니하셨다. 나는 이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아는 까닭에, 과자나 사과 같은 것은 아예 넘겨다보지도 아니했고, 오직 어머니의 정성어린 찰밥이 소중했었다. 이것을 메고 문을 나설 때 장래에 대한 자부와 남다른 야망에 부풀어, 새벽 하늘을 우러러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말하자면 이 어머니의 애정의 선물이 어린 나에게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소풍 혹은 등산을 하려면 으레 찰밥을 마련하는 것이 한 전례가 되고 습성이 된 셈이다. 오늘도 친구들과 야유를 약속한 까닭에 예와 같이 이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나선 것이다. 밥을 들고 퇴를 내려서며 문득 부엌문 쪽을 둘러봤다.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다가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슬픈 일이다. 손에 밥은 들려 있건만 그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손수 숯불을 불어가며 찰밥을 싸주고 기대하며 기르시던 그 아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으셨던가? 그는 매일매일 그래도 당신 아들만이 무엇인가 남다른 출세를 하리라고 믿고 그의 구차한 여생을 한 줄기 희망으로 살아왔건만 그의 아들은 좀체로 출세하지 않았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고만 있지 아니했던가. 어머니는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그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먼 길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웃음을 보이려 했다. "나는 너의 성공하는 것을 못 보고 가지만 너는 이담에 꼭 크게 성공해야 한다." 그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모른다.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끝끝내 아들의 성공을 믿으려던 그. 그 아들도 그때는 막연하게나마 감격에 어린 눈으로 대답했었다. 사실 그는 야망에 차 있던 청년이기도 했다. 환상에 사로잡히어 멍하니 섰던 나는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본다. 아침 여섯 시 반, 일곱 시 사십 분까지 불광동 종점으로 모이기로 된 약속이다. 여명의 하늘은 훤히 밝아 오고 서글서글한 바람이 옷깃으로 기어든다. 나는 문을 나서며 먼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백수(白首) 오십에 성취한 바 없이 열한 살 때 메고 가던 그 밥을 손에 들고 소년 시대의 기분으로 문을 나서는 사나이. 어머니! 야망에 찼던 어머니의 아들은 이제 찰밥을 안고 흰 터럭을 바람에 날리며, 손등으로 굵은 눈물을 닦습니다. <예문②> 눈 오는 날, 참새들은 어디로 갔나? 李正林 오후 네 시부터 하늘이 수묵색(水墨色)을 띠더니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기처럼 작은 눈송이가 바람에 불려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함박눈이 되 어 무겁게 쏟아져 내린다. 입춘이 지난 지도 여러 날이 된 오늘, 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이백(李白)의 시구를 떠올리게 하며, 이렇게 그 등장을 서설 (瑞雪)로써 알리고 있는 것일까. 눈 오는 날, 진공(眞空)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잎사귀 하나 걸치지 않은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나무에는 순식간에 가지마다 솜 같은 눈이 소복이 얹혀 있다. 큰 가 지는 많이, 작은 가지는 적게. 저마다 가지는 수용의 한계를 아름답게 지키고 있다. 사람도 자기 그릇만큼 욕심의 한계를 지킬 수 있다면, 나무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책상을 창가로 옮긴 이후부터 내게는 즐거움이 많아졌다. 창 밖에는 우듬지가 위층까지 닿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그 나무가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면, 나무는 말없이 사계(四季)의 변화를 내게 보여 준다. 봄에 수수알같이 작은 잎눈이 조금씩 커 가며 끝이 갈라진 앙증스러운 은행잎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이들도 저렇게 크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성장은 눈으로 감지할 수 없을 만큼 그 속도가 빠르게 보인다. 잎맥이 투명하게 내비치는 어린 잎들, 초봄의 그 연녹색만큼 곱고 깨끗해 보이는 빛깔이 또 있을까. 여름의 나무는 내 창을 진녹색 커튼으로 완전히 뒤덮어 버린다. 그 틈으로는 한 줄기 햇살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고, 늘 와 지저귀는 참새들은 소리만 들릴 뿐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심히 또 창 밖을 내다보면, 은행나무는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런 모습에 혼자 감탄하다가, 노란 은행나무를 신라 금관에 비유한 문 우(文友)를 떠올려 본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멀리 있는 그에게 엽서라도 한 장 띄워 볼까. "신라 금관과도 같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하고 써 보낸다면, 그는 아마 수줍어 미소만 지을 것이다. 바람에 잎들이 떨잠처럼 흔들린다. 머지 않아 그 잎들은 깨끗이 다 져 버릴 것이다. 겨울의 창에는 선(線)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목(裸木)의 빈 가지를 무연히 바라 보고 있으면, 모든 관계에서 놓여 난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무 것도 없으나 아름다운 사람, 꾸미지 않았어도 멋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이 어쩌면 겨울 나무와 같지 않을까. 북향 방에서 책상을 옮겨오기 전에는, 내 집은 단지 햇빛이 잘 드는 남향집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빈 가지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놀랍게도 빨간 석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늘 한번 한가히 쳐다볼 사이 도 없는 내게 석양은 그렇게 몰래 눈맞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저녁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모습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 청명한 날은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도, 흐린 날은 조금도 눈이 부시지 않다. 사람도 너무 크고 훌륭하면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해는 져도 노을은 오래 남아 있다는 것도 나는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어떤 때는 철쭉꽃 빛으로, 어떤 때는 치자색으로. 사람의 노년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늙는다는 것이 두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지금은 창 밖에 눈이 내린다. 책상에 앉아 눈을 바라보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간다. 크고 작은 나무들은 그저 조용히 눈을 맞으며 마당에 서 있다. 그 순명(順命)의 자세가 그렇게 성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날마다 가지에 앉아 지저귀던 참새들은 이 눈 오는 날, 모두 어디로 갔을까? 참새들이 저희들의 보금자리를 찾아갔듯이, 우리 이웃들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외등에 불이 켜졌다. 외등의 붉은 빛이 눈 덮인 나무들을 따뜻한 기운으로 비춘다. 외등만 보면 그 불빛 아래 누군가 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내 오래된 착각 중의 하나다. 착각은 갈망의 다른 표현일까.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벤치가 오늘 따라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자동차들은 눈을 두툼하게 뒤집어쓰고 있고, 마당에는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곧 누군가의 발자국이 눈 위에 찍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길이 되리라. 길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 아닌가. 내 인생의 창에도 오래지 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아름다운 연녹색도, 찬란한 황금빛도 칠해 보지 못한 무채색의 인생이지만, 순백의 눈같이 깨끗하게 여일(如一)하는 노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석양이 지고도 오래도록 남아 있는 노을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그리움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②철학 수필 서정 수필이 주정(主情) 수필이라면 철학 수필은 주지(主知) 수필이다. 감정보다는 지성이 주가 되는 수필이고, 정서의 아름다움에 탐닉하기보다 주제의 철학성을 더 중시하는 수필이다. 서정 수필이 정서의 아름다움에 비중을 두는 섬세한 글이라면, 철학 수필은 사유(思惟)의 깊이에 더 비중을 두는 무게 있는 글이다. 사유는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철학은 문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철학을 문예화했을 때, 비로소 철학 수필은 생겨나는 것이다. 주제는 지나치게 강조하려기보다 생각의 여운을 던져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여운은 때로 명료한 결론보다 사유의 파장이 길기 때문이다.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좋은 수법이다. <예문①> 이끼의 연륜(年輪) 趙演鉉 뒷마당에 끼여 있는 이끼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절을 구경한 일이 있다. 그 절은 이끼로 인해서 중요한 관광 대상이 되어 있었다. 5·60평 되는 뒷마당이 비단을 깔아 놓은 것과 같은 아름다운 이끼로 덮여 있는 모습은 참 황홀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이끼를 좋아하게 되었다. 화분이나 수반에 이끼를 깔아 놓으면 그 속의 화초(花草)가 훨씬 더 생생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이끼 그 자체가 독특한 미감(美感)을 자아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인위적(人爲的)으로 옮겨다 붙인 이끼의 생명은 길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물을 주고, 그늘에 놓아두어도 이끼가 자랐던 산 속의 환경과는 달라 그런지 곧 시들고 만다. 이끼가 자라는 데에는 적당한 습기와 그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습기와 그늘을 아무리 조성(造成)한다 해도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일정한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리 이끼가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도 이끼는 별안간에 생겨나지 않는다.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가장 중요한 여건이 된다. 이끼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이끼의 연륜(年輪)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그 이끼를 만들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 이끼는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무리 작은 이끼라도 그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실로 많은 연륜이 걸린다. 그리고 그 많은 연륜은 조용하고 남 모르는 인내 시간이다. 이 세상의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이끼가 생성되는 것과 같은 남 모르는 조용한 인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느 방면에서이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업적 속에는 누구에게나 그와 같은 이끼의 연륜과 같은 인내 세월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예문②> 숨어 있는 나무 李正林 이따금 나는 몇 해 전에 오대산(五臺山) 정상에서 본 아름드리 나무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산악회원을 따라 오랜만에 나선 산행에서 우연하게 그 나무들을 보았을 때, 그 웅장한 모습에 그만 압도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을 오르면서 줄곧 크고 작은 나무들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나무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정봉(頂峰)을 지척에 둔 정상에서 숨을 토해 내느라 허리를 펴는 순간, 그 나무들은 나를 맞이하듯 내 앞에 우뚝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 뜻밖의 거목들 앞에 잠시 놀란 가슴으로 서 있었다. 그만큼 그 깊은 곳에 그런 거목이 숨어 있는 듯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 같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서서히 어떤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내 마음에 물결처럼 번져 갔다. 대체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이 나무들은 이렇듯 첩첩산중에 뿌리를 박고 있었을까. 나무들이 서 있는 장소가 이런 깊은 산중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거목이 되기까지 베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나무가 만일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그런 길목에 터전을 잡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밑동이 굵어질 때까지 베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나는 경외로운 마음으로 그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기(瑞氣)같이 서려 있는 그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나 자신이 아주 작고 보잘 것없는 존재처럼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마치 속세를 떠나 자신을 은둔 시킨 어떤 철인(哲人)의 모습같이도 여겨졌다.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생각지 않은 거목을 만나고 온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나무의 모습을 내 가슴속에, 내 머리 속에 남몰래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 서는 벅찬 사유(思惟)의 한 명제가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온양에서 수필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 일정을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 우리는 조선왕조 초기에 명재상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의 고택을 찾았다. 맹사성은 온양 사람으로, 자는 성지(誠之)요 호는 고불(古佛)이라 하는데,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면서《태종실록》을 편찬한 분이기도 하지만 청렴 결백하기로 더욱 유명한 분이었다. 마침 문화부장관이 충남 사람이라, 맹사성의 고택을 고증을 살려 복원한 역사(役事)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여 우리는 일부러 그 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21대 후손이 된다는 맹씨 댁 종손의 안내를 받아 옛집이 있는 윗마당으로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 마당 한쪽에 거목이 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가을이라 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데다가 마침 지는 해가 붉은 노을로 온통 나무를 뒤덮고 있으니, 그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에 저마다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나무들은 세종 때 맹사성이 손수 심은 것이라고 하니, 수령은 족히 630년이 넘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키가 큰 나무는 높이가 35미터에 둘 레가 10미터나 된다고 하니, 그 웅장함이 능히 도목(道木)으로 지정되고도 남을 위세였다. 그 댁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책을 읽었다는 청백리의 사랑방이나 구경하겠지 싶었는데, 생각지 않게 그렇듯 크고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또 한번 내게 사유할 수 있는 감동의 여운을 안겨 준 셈이었다. 오대산 정상에서 본 그 아름드리 나무들이나, 맹씨행단(孟氏杏檀)에서 본 그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내게 그토록 감탄과 감동을 안겨 주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 까. 그것은 그 나무들이 사람의 시선을 많이 모으는 한길에 있지 않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 고고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면, 아니 위대하다기보다는 그 인물됨이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고절(高絶)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매달리게 된 것이다. 어느 곳 어느 시대에 처한 사람이든지 간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현시욕(自己顯示慾)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남보다 더 돋보이고 싶고,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더 추앙받고 싶은 욕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것에 속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마다 욕심의 꼬리를 붙들고 이렇듯 바삐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깊은 산중에 숨어 있는 나무처럼, 이 욕심이 난무하는 시대에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라고 왜 세속적인 욕심이 없겠고, 그라고 왜 남보다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다만 그에게는 그 욕심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있었고, 속기(俗氣)를 버림으로써 명징(明澄)을 얻는 지혜를 터득했음이 다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고고함을 고독으로 안고 사는 삶의 경지가 실은 얼마나 충만한 삶인가를 일찍이 깨달았던 명철함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 만큼, 그 사람들이 영위해 가는 삶의 형태는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삶이, 어떤 인간상이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생활철학과 상관되는 일일 것이다. 숨어 있는 나무, 그 나무의 의연한 모습이 이따금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욕심을 앞세우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내가 낙오자처럼 뒤섞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숨어 있는 나무같이 고독을 고고함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내 속물 근성의 잠재의식 때문일까. ③서사 수필 서사 수필(敍事 隨筆)이란 사실(사건)에 충실한 글로서, 일종의 콩트 같은 성격을 지닌다. 서정 수필과 철학 수필이 자기의 느낌과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면, 서사 수필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이 형식은 지문으로 풀어 나가는 수필과는 달리 소설처럼 대화체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사건에 실감을 주기도 한다. 또 그 사건을 의미화하고 일반화시키기보다 사건 그 자체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는 예가 많다. 서사 수필과 성격이 반대인 글이라 한다면 관념적인 수필이 될 것이다. 관념적인 수필에는 구체적인 예시, 즉 이야기가 없으며, 일인칭인 작가가 서정이나 철학으로만 풀어 나가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문①> 구 두 桂鎔默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라야 한동안 신게 되구, 무엇이 어쩌구 하여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맛에 역했다. 더욱이 그것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에 그 음향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락또그락. 이건 흡사 사람이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어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 창경원 곁 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느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20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락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주인공을 물색하고 나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는 걸 나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만 그대로 걷고 있었더니 얼마쯤 가다가 이 여자는 또 한번 힐끗 돌아다본다. 그리고 자기와 나와 거리가 불과 지척 사이임을 알고는 빨라지는 걸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뛰다 싶은 걸음으로 치맛귀가 웅어하게 내닫는다. 나의 그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는 분명 자기를 위협하느라고 일부러 그렇게 따악 딱 땅바닥을 박아 내어 걷는 줄로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여자더러 내 구두 소리는 그건 자연이요, 고의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서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좀더 걸음을 빨리 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써 공포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더니, 그럴 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여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한참 석양 노을이 내려 비치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 3보만 더 내어 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그 2, 3보라는 것도 그리 용이하게 따라지지 않았다. 한참 내 발부리에도 풍진(風塵)이 일었는데, 거기서 이 여자는 뚫어진 옆 골목으로 살짝 빠져 들어선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숨이 나간다. 이 여자도 한숨이 나갔을 것이다. 기웃해 보니 기다랗게 내뚫린 골목으로 이 여자는 휭하니 내닫는다. 이 골목 안이 저의 집인지, 혹은 나를 피하느라고 빠져 들어갔는지 그것은 알 바 없으나 나로선 이 여자가 나를 불량배로 영원히 알고 있을 것임이 서글픈 일이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우대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여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 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1949) <예문②> 아름다운 동화(童話) 李正林 차가 흑석동 고개를 넘어갈 때, 시선을 끄는 한 풍경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고 낯설게 비쳐졌으나, 차츰 내 입가에는 웃음이 번져 나왔다. 그것은 두 사람의 젊은 순경이 웃으면서 상대방의 어깨를 치고 받는 풍경이었다. 그 모습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갑자기 어떤 평화스러운 기운이 내 몸을 아늑하게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찰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 그것은 얼마나 평화스러운 사회인가. 흑석동 고개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그 날 학생 시위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처럼 한가해진 두 순경이 동심(童心)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일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툭 치자, 맞은 사람은 얼른 공격의 주먹을 휘두른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겅중겅중 뛰면서 서로 맞고 때리고 아이들처럼 엉켰다 떨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것도 파출소 앞에서. 그리고 대로변에서. 예쁜 그림이 있으면 가위로 오려 잘 보관해 두듯이, 나는 그 모습을 기억의 갈피 속에 소중하게 접어두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추억 수배〉라는 제목이 붙은 TV 베스트 극장이었다. 이야기는, 수배중인 운동권 학생을 잡으러 간 두 형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속을 걸어 산간 오지 마을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은 금방 자신들의 신분을 노출시켜,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자연 속에 동화되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썰매를 타는가 하면, 호기심 많은 산골 아이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이 많은 형사와 젊은 형사는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눈싸움을 벌이며 신나게 눈밭에서 뒹군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의 학생은 자기 집으로 찾아들었다가 형사들이 잠복 근무를 하고 있음을 알고 그냥 발길을 돌려 산 속으로 도망을 친다. 학생이 왔다가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형사들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직업의식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눈이 쌓인 산 속을 한 마리의 토끼를 쫓는 아이들처럼 날쌔게 달려간다. 그러나 결국 형사들은 그 학생을 놓치고 마는데, 이 드라마는 여기에서 참으로 엉뚱한 결말을 내린다. 그 학생이 그토록 발이 빠른 것은, 어린 시절에 이 산야를 마음껏 뛰어다녀 다릿심이 센 까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자 오락기 앞에 앉아 혼자 즐기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나약한 면을 걱정하는 것에서 드라마는 끝이 난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났을 때, 나는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눈싸움을 하다가 수배중인 학생을 놓쳤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직무 유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만무하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허구요, 드라마 속의 한 소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왜 그런 테마로 소설을 썼을까. 나는 왜 흑석등 고개에서 본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 속에 소중하게 담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평화에 대한 갈망, 그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최루탄을 쏘아 대며 치안 유지에 애를 쓰는 경찰에게서보다 장난을 치고 있는 그런 모습에서 더욱 평화스러움이 느껴졌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역설일까. 악착같이 쫓아가 수배 학생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정보 형사의 날랜 손길에서보다 가상이긴 하나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더욱 평화스러움이 느껴졌다고 하면, 내 생각이 억지스러운 것일까. 시내를 오갈 때면 나는 으레 신촌에 있는 어느 대학 앞을 지나곤 한다. 그런데 데모가 한창인 때면, 학교 담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진다. 일종의 소강 상태라고나 할까. 잠시 치열한 격전이 중단되면서 학생과 전경은 각기 휴식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다. 담 안에서는 언제 데모가 있었더냐는 듯이 한가롭고 여유 있는 자세로 학생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 그리고 담 밖에서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전경들이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거나, 아니면 차 속에서 마치 야간 열차를 탄 손님들처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광경은 조금 전까지의 치열했던 대립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너무도 정적(靜的)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있어 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은 가끔 전경들이 그 담 안으로 들어가 학생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모습까지 볼 수가 있다. 평화는 항상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 장난치는 경찰에게서, 눈 뭉치를 던지며 어린 시절의 향수에 잠시 젖어 보는 형사의 모습에서, 또 함께 공을 차는 학생과 전경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에서 나는 그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싸움도 있고 평화도 있다. 그런데 그 평화가 때로는 파격적인 상황 속에서 더욱 강하게 실감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다. 당연한 생각이 뒤엎어지면 그것은 파격이 된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선입관이 무너져 버릴 때, 그리고 그것이 뜻밖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사람들은 거기에서 파격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좀더 이런 파격적인 아름다움에서 빚어지는 평화가 많았으면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시민들 속에 섞여 앉아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전직 대통령,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 되어 어린애들과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전직 고관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평화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영국 경찰은 뛰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뜀으로서 깨질 우려가 있는 그 평화로운 분위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팔불출이라고 흉이라도 잡힐까봐 조심스럽게 딸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관할 파출소장의 수줍어하는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파격의 아름다움 그리고 동화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1992) ④사회 수필 사회 수필이란 글 속에 시사성(時事性)을 담는 수필을 말한다. 그러나 그 시사성은 어디까지나 문예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문예성이 약하면 글은 사회비평적인 컬럼이 되고 만다. 컬럼은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지만, 사회 수필은 그 문제를 상징적으로 접근한다. 주제 역시 상징적인 수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게 되면 논설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 수필은 분명하고도 예리한 사회의식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공감성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리함도 문예적으로 감싸야 한다. 부드러움 속의 날카로움, 촌철살인적인 상징성, 그것은 매우 큰 힘과 울림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 수필의 저력인 것이다. <예문①> 조와(弔蛙) 金敎臣 작년 늦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聖殿)이다. 이 반석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潭)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山中)에 대변사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客)에 접근하는 친구 와(蛙) 군(君)들, 때로는 5, 6마리, 때로는 7, 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 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여!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 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潭)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浮遊)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酷寒)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 (凍死)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이 글은 1942년 종교지인 《聖書朝鮮》 권두언에 실렸던 수필인데, 이 글로 인해 잡지는 폐간되고 필자는 옥고를 치르게 됨. 이른바 《聖書朝鮮》 필화 사건이 된 이 글에는 매우 함축적인 주제가 숨겨져 있는데,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심해도 우리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보여주고 있음. 따라서 사회 수필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글이 발표된 사회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함.) <예문②> 문 안에 있는 자와 문 밖에 있는 자 李正林 그들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와 같다. 키도 나이도, 그리고 뺨에 볼그레한 물이 오른 홍조(紅潮)까지도. 여자애들처럼 갸름하고 곱살한 그 얼굴마저 너무도 비슷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문이 바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 안에 있는 아이는 가끔 왜 자신이 자기와 너무도 닮은 문 밖의 아이와 날마다 힘을 겨루어야 하는지 모를 적이 많다. 맞서야 할 대상은 분명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뒤엉켜 피투성이가 될 때에도 안의 아이는 결코 밖의 아이를 미워할 수 없는 애정을 확인하곤 한다. 때로 자기의 돌팔매에 밖의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얼른 그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해 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은 오늘 두 사람이 처한 위치가 다른 탓에 있다. 안의 아이는 얼굴을 싸안고 돌아서는 밖의 아이의 늘어진 어깨를 눈으로 좇으며 마음속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러면서 밖의 아이가 아파하는 만큼 안의 아이도 함께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왜 이다지도 청명한가. 하늘이 맑은 만큼 그 처연(凄然)함이 외로움이 되는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문 안의 아이는 문득 아침에 대문에서 배웅을 하던 어머니의 근심 어린 얼굴을 떠올린다. 그저 묵묵히 아들을 보내던 어머니의 잔잔한 눈길을 생각하면서도, 날마다 가슴에서 일렁거리는 불길을 잠재우지 못하는 오늘의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 엄청난 매듭을 왜 꼭 자기 손으로 풀어야 하는가. 이 땅의 동량(棟梁) 같은 어른들이, 용하다고 하는 의사와 무당들이, 침으로든 주사로든 푸닥거리로든 그 어떤 방법으로든 살풀이를 해주었더라면, 그는 지금 하늘만큼이나 맑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 안의 아이는 스스로 고통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 힘이 부치고, 그의 속살은 여리기만 하다. 그는 아직도 어머니의 적삼 속에서 풍겨 나오는 모정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쓰다듬어 주시는 손길에 순한 아이처럼 잠이 들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날마다 분노를 배우고 항거를 익힌다. 그리고 그가 겪는 고통을 그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에 소름 돋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문 밖의 아이는 언제나 문 안의 아이가 걱정이 된다. 안의 아이는 자기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돌멩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나 되는 듯이 곧잘 내휘두르지만, 밖의 아이는 그보다 더 큰 것을 갖고 있기에 늘 안의 아이를 염려한다. 안의 아이들이 닫혀진 문을 향해 달려나올 적마다 밖의 아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가진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것을 안으로 집어던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것에 다치지 않도록 안에서 달아나는 아이와 똑같이 밖의 아이는 마음속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밖의 아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지루한 줄다리기에서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떼밀고 막는 이 이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문 안과 문 밖에 있다는 위치상의 차이만 다를 뿐, 마음은 수시로 그 물리적인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려 주고 싶을 때가 많은 것이다. 문 밖의 아이는 날이 새면 안의 아이를 찾아와 멀찌감치 마주 보고 앉는다. 안의 아이가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밖의 아이도 따라 그렇게 하고, 안의 아이가 양지쪽에 앉아 차분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밖의 아이도 같이 책을 펴 든다. 그러다가 그것이 무료해지면 책 속에 코를 묻고 잠이 든다. 꿈 속에서 그는 어린 아내를 만난다. 그 아내는 저녁마다 남편이 성한 몸으로 돌아오기를 간구한다. 때린 자도 미워할 수 없는 이 아내는 남편의 상처를 눈물로 닦아 내며 역사의 하루하루를 함께 겪는다. 이 아내에게 꽃보다도 보석보다도 값진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남편이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리라. 밖의 아이는 꿈 속에서 안의 아이와 손을 잡는다. 둘은 서로의 손이 똑같이 따습다는 것에 놀 란다. 그리고 그들은 얼싸안으며 함께 울기도 한다. 꿈 속에서만 안아 보는 우정이 서럽고, 그들이 똑같이 젊다는 것이 슬프며,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문이 존재함을 원망스러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포옹을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대신,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함께 역사의 한 조각을 밟고 서 있는 공간을 허락하였다.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날마다 울어야 하는가. 문 안의 아이가 문 밖의 아이를 부르듯이 비명을 지른다. 목은 터져 각혈이 되고, 그것은 드디어 몸에 파란 불꽃을 당긴다. 문 안의 아이는 이제 붉게 타오르는 하나의 꽃이 되었다. 젊기 때문에 그 꽃은 아름다웠고, 젊기 때문에 그 향기는 짙었다. 젊기 때문에 그 꽃은 슬픔이었고, 젊기 때문에 그 꽃은 통곡이었다. 그 꽃 앞에 문 밖의 아이는 무릎 꿇어 우정의 눈물을 바친다.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 속에도 이질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꽃은 영원히 아름다워야 하고, 눈물은 영원히 순수해야 한다. 아, 꽃이여, 눈물이여, 시대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안은 피에타, 그 영원한 모성(母性)이여, 한국의 어머니여. (1985) ⑤해학 수필 해학 수필은 유머와 위트를 모두 수용한다. 그러나 유머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반면에, 위트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지적이요 날카롭다. 이런 유머와 위트를 모두 아우르는 해학 수필은, 그러나 쓰기가 만만치 않다. 그것은 사회 수필이 예리한 사회의식을 밑바탕으로 해야 하듯이, 해학 수필은 격(格)이 받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격을 갖추지 못한 해학 수필은 저급한 익살이요 속문(俗文)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해학 수필에서는 더욱 문장의 품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때로는 해학 수필에서 유머가 페이소스를 동반하고, 위트가 풍자(諷刺)를 동반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해학 수필이 포용하는 다양성일 뿐이다. <예문①> 사깃니 李章圭 어려서 이를 갈 때 어머님은 으레 흔들리는 내 이에 실을 감고 잡아당기셨다. 신통하게도 잘 빠졌던 이, 어머님은 아랫니는 앞마당 지붕 위로, 윗니는 뒷마당 지붕 위로 내던지시면서 내 이가 빨리 그리고 곱게 새로 나길 빌으셨다. 그 간절한 소원도 보람없이 새로 나온 이는 얼마 안 가서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깍두기만 있으면 밥을 먹던 나였지만 어느새 깍두기와는 인연이 멀어지고 말 았다. 그나마 깍두기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는 외국에 갈 때마다 이는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다. 뉴욕에서는 수프로, 모나코에서는 오트밀만으로 삼시 세 끼를 때웠다. 친구인 치과대학장에게 진찰을 받았더니 대뜸 하는 말이 "엉망이군. 학생 실습감으로 십상이다….” 관비(官費) 환자가 된 나는 대여섯 명 학생들에 둘러싸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아야”를 연발하면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리고 있는 나를 그들은 마치 사자에 물려 뜯기는 순교자를 보는 로마 사람들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치료가 끝나 내 입천장에 철판대기가 하나 끼워지자 올챙이 치과 의사들은 좋은 구경이나 했다는 듯 자리를 뜨면서 “선생님 엄살 대단하신데요.” 하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휘파람을 부는 월급쟁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의 우울한 월요일은 입천장에 그 철판대기를 끼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토요일이 즐거운 것은 월급 쟁이의 통성, 내 토요일이 즐거운 것은 그 철판대기를 내팽개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였던가, 낚시터에서 그 철판대기가 역겨워 호주머니 속에 뽑아 넣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놈은 다시는 내 입천장에 달라붙질 않았다. 아마 릴 낚싯대를 연거푸 던지는 동안 어딘가가 좀 찌그러졌던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되었구나’ 싶었다. 이 얼마나 시원한 노릇이냐! 별로 웃을 일도 없는 세상, 웃지만 않으면 될 게 아닌가. 보기 흉하다고 아내는 성화였지만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치과에 가는 것은 질색이다. 더더군다나 학생 실습감이 되는 것은 질색이다. 고주파를 쓰기 때문에 조금도 아프지 않다고 치과 의사는 꼬시지만 고주파고 저주파고 간에 뇌수에다 착암기를 들이대는 그 잔인성, 치과의 치료대가 형틀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가 좋은 것은 오복의 하나라고 했다. 무엇이 오복인지 잘 모르지만 어차피 오복을 누리긴 이미 틀린 몸, 붉은 입술 흰 이(丹脣皓齒)의 미인이 이제 나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두뇌 노동자다. 이런 생각과는 달리 만나는 사람마다 성가시도록 “늙으셨네요” 하는 것이다. 뿐인가, 얼마 전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캐나다 친구가 내 얼굴을 한참 살피더니 “치약이 덜 들어 좋겠군….” 하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어느 날 내 수필집을 사 가지고 사인을 청하러 온 한 예쁜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별안간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 선생님이 그렇게 이 빠진 분인 줄 몰랐어요!” 치과 의사 C박사는 어지간히 무뚝뚝했다. "형편없군. 아스완 댐 공사만큼이나 힘들겠는걸….” 아니나다를까, 난공사였다. 자유자재로 그 고주파라는 걸 구사하면서 C박사는 세 시간의 난공사 끝에 내 이를 원숭이 이빨같이 갈아 놓고 말았다. 코끼리 발만한 그의 손이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내 입술은 터져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예쁜 간호원 아가씨가 꼭 쥐어 주는 그 따뜻한 손길만 없었더라면 아마 틀림없이 기절했을 것이다. 간호원 아가씨의 손길은 실오라기 하나로 내 아픈 이를 뽑아 주 셨던 어머니의 그것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꼬박 사흘을 수프나 오트밀보다 못한 죽물만으로 살았다. 그것이 또 탈이었던지 심한 변비에 걸려 출산에 비길 만한 고역을 치르기도 했고―. 며칠 후 내 입천장에는 한동안 잊었던 그 지긋지긋한 철판대기가 또다시 붙었다. "게리 쿠퍼같이 되었군….” 자못 만족스러운 듯 C박사는 웃었지만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울에 비친 새하얀 사깃니! 게리 쿠퍼는 좋았으나 그것은 마치 짐승의 이빨을 연상케 하는 것 이었다. 이어 C박사는 씹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잘 되질 않았다. "허, 씹는 것도 잊었군." 무슨 핀잔이 또 나올까 두려워 나는 열심히 씹는 연습을 했다. 사흘 후 내 입천장이 그 철판대기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조심스레 깍두기 하나 를 씹어 보았다. 와삭. 또 씹어 보았다. 와사삭. 실로 몇 년만이었던가! 그 소리는 연인의 속삭임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이젠 치약도 듬뿍 들 것이다. 이젠 사인을 받으러 온 아가씨를 실망시키지 않아 도 될 것이고 그리고 또 이젠 그 형틀에 다시는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예문②> 찰스 램에게 李正林 《수필공원》봄호(1991)에서 당신의 글〈기혼자의 행동에 대한 어느 독신자의 불평〉을 아주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혼자 싱겁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정말로 공감이 가는 대목에는 밑줄을 긋기도 했습니다. 램, 내가 당신의 글을 몇 시에 읽었는지 아십니까?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 모든 사람이 잠자리에 든 지극히 조용한 한밤중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우리 독신자들에게는 얼마나 자유로운 시간입니까. 시끄러운 동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건을 사라고 외쳐 대는 행상들도 모두 깊은 잠에 떨어진 그런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아마 나에게 당신의 글을 읽어 보라고 성화를 부리던 P선생도 잠자리에 들어 있을 겁니다. 기혼자들이란 부부의 잠자리도 마음 놓고 떠날 자유조차 없는 불쌍한 존재들이니까요. P선생이 그 허약한 몸으로 딸 넷을 줄줄이 낳은 것을 보면 그 노고가 얼마나 크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지 않습니까. 기혼자들이 아이 낳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출산하기 위해 결혼한 사람들이 아닌 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아이를 만들어 내는 명분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신통한 해답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지구는 곧 터져 버릴 지경으로 인구가 팽창되고 있다는데, 그들이 자손을 퍼뜨리지 않는다 하여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부모가 되는 사람들이야 그 아이들이 모두 훌륭한 자식이 되기를 바라겠지요.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 가는 느낌입니다. 대학에 떨어졌다고 걱정이고, 부모에게 반항한다고 속상해 하다가, 커서는 혼수 걱정에 시집 장가 보내는 일도 작은 일은 아닌가 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자식들에게 버림까지 받게 되는 부모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남들 다 낳는 자식 낳았으면서도, 어떤 기혼여성은 출산이라는 것을 혼자만 해낸 듯이 툭하면 그 일에 자부심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출산해 보지 못한 소수의 불임여성들이나 우리 같은 독신자들을 겨냥한 과시요 자만처럼 보여져서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닙니다. 출산도 해보지 않았으니 인생을 어떻게 알랴 하는 얕은 의도에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 중에서도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 있기는 매한가지이고 보면, 그러한 과시는 기혼여성의 오만한 착각일 뿐입니다. 기혼여성들은 우리 독신여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인사로, 혼자 사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하다가, 나중에는 무슨 별스런 인간이라도 구경 하는 양 우리를 흥미있게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선심이라도 베푸는 듯이 이제라도 결혼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자기 남편 자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독신자를 의식하여 자제하는 듯이 말하다가, 나중에는 그 말에 발동이 걸려 사랑싸움에 방사(房事) 장면까지 거침없이 늘어놓는 것입니다.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 기혼자들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그들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기혼자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저 연민을 금할 수가 없을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행복의 본질이 다를 수도 있는 법인데, 기혼자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의 잣대로밖에는 잴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들의 행복에 비해 우리 독신자들의 행복은 훨씬 다양하고 오묘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남편을 독점하며 살고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는 순진한 기혼여성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남편을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은 확신이 아니라 소망일 뿐입니다. 독 점했다고 생각하는 그 남편들은 끊임없이 다른 여성의 방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독신자들은 정말로 별스럽기는 별스러운지 아무에게도 독점당하지 않는 것에서 해탈(解脫)을 느낍니다. ― 해탈이라는 단어가 너무 컸다면 그냥 웃어 넘겨 주십시오 ― 우리는 한 사람을 독점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만인을 정복하는 것에 더욱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숫자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자유라는 것입니다. 기혼자들은 우 리의 그 자유를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그들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은 가정적인 차원에서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러나 가치라는 것은 울타리 밖에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울타리 밖의 세상은 기혼여성들에게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램,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어느 사이 새벽 세 시가 넘었습니다. 어느 기혼자가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도 이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잠이 와서가 아닙니다. 아 침이면 또 어느 기혼자의 전화가 걸려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독신자들을 성가시게 구는 것은 바로 그 기혼자들입니다. 독신자의 늦잠을 방해하는 기혼자들의 그 무례함이 정녕 시정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처럼 그들의 명단을 공개할 작정입니다. 램, 글 잘 읽었습니다. 또 만납시다. 안녕. 추신 ― 그런데 램, 당신과 내가 결혼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사람의 자유주의자가 함께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당신이나 나나 처음부터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독신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에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에서 우리의 자유 사상은 싹이 튼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신을 들어맞추기에는 우린 너무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 드는군요. 당신은 당신의 자유 속에서 나는 나의 자유 속에서 그냥 이대로 사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제발 기혼자들이 우리 독신자들에게 자기들의 삶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종용하는 일이 없도록 부탁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것은, 후회에서인지 선망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꼭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처럼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은 독신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 기혼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입니다. 기혼자들에게는 또 고달픈 하루가 시작되려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단잠을 청할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독신자들은 그들 기혼자들을 진정으로 동정해 주어야 합니다. 램, 당신과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이 새벽, 우리 따로 따로 행복한 꿈을 꿉시다. 독신자 만세! ⑥기행 수필 한때, 세계 여행가들이 쓴 기행문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행문은 더 이상 특출한 여행가들만이 쓰는 글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기에 기행문을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의 그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다. 즉 세세한 여행 일정, 친절한 길 안내, 안내 책자에 살붙인 것 같은 관광지 소개, 백과사전에 다 있는 지식의 나열…. 기행문의 세 요소는 체험·감상·여정(旅程)이다. 그러나 기행문이 기행 수필이 되려면 여행지에서 자기만이 체험하고 느낀 것을 주제로 끌어내야 한다. 남들은 느끼지 못한 나만의 철학 여행, 기행 수필은 눈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예문①> 모자 鄭惠玉 긴 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이틀 전에 취리히를 떠나 제네바에 도착했다. 뤼쩨른, 몬테럭스 등의 호반 도시며 인터라켄, 스핏스 등의 산간 도시 등은 알프스의 산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 도중 잠시 머물렀던 뤼쩨른에서 카펠 목교(木橋)를 건너가기 전 모자를 한 개 샀다. 자주색 리본과 장미꽃 조화 한 송이가 매달려 있는 화려한 여름 모자이다. 나는 그때 앞으로 몇 주일을 두고 계속할 여행을 위해 사치한 치장을 하고 싶은 욕망이 문득 일어났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거리, 나의 연령을 짐작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녀 처럼 머리 위에 꽃모자를 쓰고 우리의 여행을 아름답게 꾸미리라 했다. 일상에 부딪쳐 오는 생활의 그늘을 잠시 멀리 둔 여행길. 미지의 땅에 대한 기대에 들떠서 산간 열차로 알프스의 산록을 지나올 때도, 건초가 쌓인 산촌의 가스트 하우스에서 쉴 때도 나는 그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소읍(小邑), 거친 돌로 지어진 고풍(古風)한 성당에서 마침 거행 되고 있던 혼례 미사에서도 초대받은 손님처럼 그 모자를 쓰고 회당의 앞자리에서 신부(新婦)보다 더 가슴을 울렁이며 앉아 있었다.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몽블랑 산정에 오르기 위해 샤모니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갔었다. 개찰원이 없는 이곳은 승객이 스스로 목적하는 차를 타야 한다. 역에는 이미 열차가 들어와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모두 몽블랑으로 가는 관광객들이라 믿고 우리도 바삐 차에 올랐다. 각국 말이 뒤섞인 승객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 고 모자를 벗어 선반 위에 얌전히 얹어 두었다. 이윽고 열차가 움직이는 기척에 창 밖을 내다보니 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황급히 짐을 들고 뛰어내렸다. 어떤 사람이 그 열차는 덴마크 의 코펜하겐까지 간다고 말했다. 이미 열차는 평원 위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어진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의 머리 위에 모자가 없음을. 어찌 그리 허둥대었을까. 나의 건망증을 스스로 탓하며 아깝고 억울한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스물여덟 시간의 짧은 인연으로 끝나 버린 아름다웠던 나의 모자. 나의 생애에서 귀하게 얻은 열망의 시간에 그 모자는 하루 낮과 밤 동안 나를 오만하고 호사스런 여왕으로 꾸며 주고 몽상적인 사랑을 일으켜 충일한 기쁨에 젖게 하고 남아 있는 여행길을 더욱 확고한 동경으로 이끌어 주더니 이제 낯선 빈 역두에 나만 짐짝처럼 내려 두고 갔다. 인연의 줄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 누가 나를 기억하여 줄 것인가. 지난날의 모습을. 그날의 모양새는 몇 장의 사진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 모자는 나비의 날개처럼 파닥이며 나의 머리 위에 얹혀있을 것이다. 이제 일몰(日沒)의 시간. 멀리 낮은 땅에서는 낯선 바람이 불어오고,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열차를 기다리며 멍청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꿈을 깨고 난 신데렐라처럼 초라했었다. 별리(別離)의 아픔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사물에 대해서도 애착이라든가 소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더 아픈 상처를 받기도 하고, 영원히 나의 것이라고만 믿던 젊음이라든가 명성이라든가 사랑 같은 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우리 곁을 빠져나가 버리는가를 알게 한다. 많은 것들 중에서 선택되어 인연을 맺고 사랑과 미움의 정이 생성(生成)하고 마침내 서로 떠나고, 이러한 만남과 헤어지는 순서는 우리 삶의 도처에 깔려 있어 우리를 환희롭게도 하고 또 슬프게도 한다. 후일 나의 집에서 안주(安住)할 때 오늘의 기억은 바람처럼 잠잠하여질 것이고 우리의 모습도 점점 변하여 갈 것이다. 그러나, 북구(北歐)의 황량한 땅을 향하여 흔들리며 가 버린 모자의 기억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작게 접은 푸른 지도를 들고 기웃거리던 이국의 거리며 강이며 산이며 그리고 얼 굴들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 모자는 지난날의 한 부분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 모자가 나의 깃발이 되고 바람이 되고 또 한 마 리 나의 새가 되어 내가 가 보지 못한 이 세상 구석구석을 홀로 돌고 있을 나의 꿈을 꿀 것이다. <예문②> 뱀사골의 물빛 李正林 유월에 장관을 이룬다는 철쭉이 보고 싶어 이 지리산을 찾아왔다. 그러나 날짜를 잘못 짚었는지 철쭉은 보지 못하고, 지금 나는 인적 없는 뱀사골에 앉아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금은 유월 초순, 나뭇잎이 가장 순한 연둣빛을 띠고 있는 계절. 조금 있으면 연둣빛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더 있으면 그 녹색에 노인의 반점처럼 검은빛이 섞여들 것이다. 아직은 찬물이 섬뜩한가. 쥐가 나는지 발가락이 뻣뻣해 온다. 차고 깨끗한 물, 이런 계곡을 우리만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이게 웬 호사인가. 잔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 속에 두 손을 넣어 한 움큼 물을 뜬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 장난을 하듯 그것을 흘려 보낸다. 분명 그 물빛은 하얀색인데, 왜 내겐 갑자기 핏빛으로 보이는 것일까. 이 골짜기엔 지금 우리밖에 없는데, 내 눈엔 수많은 사람들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등을 돌리고 서 있고, 어떤 사람은 비스듬히 누워 있다. 어떤 사람은 쌀을 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릇을 닦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조용하긴 하나 조금도 평화로워 보이진 않는다. 이 생생한 환영(幻影)은 뱀사골을 끼고 오를 때부터 줄곧 나를 따라왔었다. 아무도 없는 골짜기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이고, 산새들만 한가로이 지저귀는 이 적막 속에서 나는 콩 볶듯 요란한 총소리를 들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피 어린 이 역사의 현장에 앉아, 죽음 같은 정적이 깨질까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무리들 속에 앳된 여인이 보인다. 열여섯 살의 어린 새댁이 열일곱 살의 신랑을 찾아 이 지리산 골짜기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를 만난 지 이십 일 만에 전투에서 죽고, 어린 색시는 마을로 내려갈 수 없어 산에 남는다. 그러고 나서 십삼 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는 왜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그 험한 산 생활을 시작했을까. 그 어린 여인에게도 어떤 이데올로기가 있었던 것일까. 그의 결정이 신념에 의한 행동이었다면, 우리는 그의 삶에 동정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결정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면, 여인의 잃어버린 젊음과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노루처럼 산에서 태어나 산과 더불어 늙어 갔을 한 여인에게 이름이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인에겐 이제 자신이 결코 생각지 못했을 이름 하나가 생겼다.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 한 지아비의 아내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갔을 이 여인의 이름이, 오늘 이 뱀사골에 물안개처럼 낮게 떠돌아다닌다. 지리산 지구 전적 기념관에는 이런 표어가 커다란 글씨로 씌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누가 이런 비극을 안겨 주었는가." 비극은 엄연히 존재했으나, 그 비극을 만든 장본인은 분명치 않은 이 아이러니 속에서 역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로부터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진정 그 해답을 찾았는가. 거적으로 말아 놓은 주검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의 아픔이, 그 앞에 선 우리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정녕 이 비극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그리고 그 무엇이 이 잔혹한 비극을 잉태케 했을까. 1954년 4월 20일자〈지리산 특보〉에는〈임종〉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창백한 손끝에 / 시간을 잡고자 떤다 / 떨리는 손끝에 / 초침을 잡았을 제 / 초침은 손끝에 하늘거리고 / 시간은 드디어 멈추었다 / 짧은 인생을 / 더 살 수는 없을까? (노일영 지음) 죽음의 초침을 사력을 다해 붙들고 있는 한 젊은이의 절망적인 시를 읽으면서, 나는 이 아픔의 산, 수난의 산에서 죽어 갔을 수많은 젊은 목숨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이념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다 간 사람이나, 두 이념의 대립 사이에서 무고하게 죽어간 양민이나 이제는 모두 말이 없다. 죽음은 모두를 공평하게 만드는 것일까. 죽음은 한(恨)까지도 잠재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뱀사골에 앉아 물거품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하얀 물살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에 핏빛이 가신 것처럼, 우리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피 멍울도 언젠가는 풀릴 날이 올 것인가. 유월의 뱀사골은 깊은 정적으로 이 산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2. 중수필(重隨筆) 경수필이 작가의 신변적인 체험에서 소재를 찾는 가벼운 수필이라면, 중수필은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에서 소재를 찾는 무거운 수필이다. 그러므로 경수필은 주관적이고 중수필은 객관적이다. 중수필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철학과 사상만이 있을 뿐이다. 개인의 감정과 문예적 미감을 수용하지 않는 중수필이 소논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심오할수록 문장은 쉽게 쓰는 것이 좋다. 내용이 어려운데 문장까지 어려우면 뜻의 전달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구체성이 배제된 중수필, 그 위치는 문학과 철학의 중간이다. <예문①> 미모(美貌)의 사상(思想) 趙演鉉 이 지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원천이 된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우거진 삼림, 눈부신 각종의 꽃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이해와 애정! 만일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 것인가. 사람의 미모도 그러한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의 하나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충격을 느낀다. 황홀한 즐거움 같기도 하고, 외로운 슬픔 같기도 한 감정의 물결이 인다. 흡사 감동적인 예술을 대했을 때와 같이―이것은 미모도 하나의 예술적인 현상임을 말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창작도 아닌 신의 우연한 은총일 뿐이다. 사람의 육체 중에서 얼굴은 가장 귀중한 부분에 속한다. 그것은 얼굴이 그 사람의 육체 전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정신까지도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관상학은 사람의 얼굴이 그대로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 준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육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남보다 아름답게 타고난 미모의 사람들은, 그만큼 신의 은총을 많이 받은 것이 된다. 미모에는 일정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미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관에 근거된다.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최상의 미모로서 보였을 것이요, 에 드워드 8세에겐 심프슨 부인이 지상의 유일한 미모로서 비췄을 것이다. 아무리 코나 입이 비뚤어져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얼굴이 미모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의 의식과 완전히 떠난 미모의 의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모의 의식과 사랑의 의식은 어쩌면 동일한 감정의 두 개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미인을 선발하는 풍습이 있다. <미스 코리아>니 <미스 아메리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수의 투표에 의해서 미인이 결정된다. 미인의 객관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인을 정말 미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다수의 의사가 미인이라고 결정한 것이니까 미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미인을 미인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런 경우의 미인이란 정말 미인이 아니라 미인의 유형일 뿐이다. 미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미의식을 조절한 미의 개념일 뿐이다. 미는 감동의 대상이지만, 미의 개념은 감동의 대상이 안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스 아메리카나 미스 코리아도 자기의 애인이 주는 몇 만 분지 일의 감동도 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미모란 객관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관적인 실감인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전까지 아름답게 보여지던 얼굴이 별안간에 밉게 보이고 지금까지 밉게 보아 온 얼굴이 어떤 순간부터 별안간에 아름답게 느껴진 여러 가지 경험을 가지 고 있다. 어떠한 우발적인 사건에서 혹은 어떤 경우의 표정 하나로서, 우리는 그전까지 전혀 몰랐던 아름다움이나 미움을 새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 된 미모의 의식이 그 사람의 용모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본질을 결정한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에 대한 미모의 의식은, 그 외형적 조건만으로서 독립된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외형적 조건 이외의 다른 요소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얼굴이 인간의 생명의 상징이라면 생명의 구체적인 기질인 그 사람의 정신적 인격, 내면적인 조건은 그 사람과의 특수한 교섭이나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미모가 주관적인 실감이라는 본뜻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우리는 전차나 버스 속에서 혹은 노상에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퍽 아름답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미모는 곧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곧 기억에서 사라지는 미모란 정말 미모가 아니다. 미모는 그것이 하나의 감동이요, 충격이기 때문에 오래 잊혀지지 않는 곳에 그 생명과 가치가 있다. 일생에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베아트리체를 단테는 일생동안 잊지 못했다. 그와 같은 작용력이 없으면 미모는 아니다. 이와 같은 작용력은 미모의 내면적 조건이 그 외형적 조건으로 표상됨으로서만 가능해진다. 어떠한 미모도 화장을 잘못하거나 그것을 게을리 하면, 그 아름다움은 거세(去勢) 된다. 화장은 부족의 보충이요 무질서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자연적인 미를 완전한 창작적인 미로 개변시킨다. 잠자는 사람의 얼굴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 방심에서 오는 의지의 불통일 때문이다. 화장에 의해서 미모가 한층 더 확실해질 수 있다는 것은, 미모는 자연적 형상이기보다는 의지적 형상임을 말한다. 아무리 못난 얼굴도 화장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불미한 정신의 소유자라도 의지의 힘으로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미모는 하나의 신의 우연한 은총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창조적인 노력에 의한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특히 미모에 예민한 여성들은 스스로 자기가 미모이기를 원한다.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도취되었던 <희랍> 신화의 나르시스 처럼 자기도 미모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자기가 얼마만큼 미모가 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나르시스인 것을 알려 주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사람을 찾아내느냐 못 찾아내느냐 하는 것만이 자기의 미모를 알게 되는 열쇠가 된다. 자기가 나르시스임을 알려주는 사람을 얻게 된다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완성시킨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옳은 미모는 자기 인생의 스스로의 완성 위에 있는 것인가? <예문>② 고독이라는 것 金秉圭 카뮈는 <요나>라는 단편소설에서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제출하고 있다. 한 사람의 화가가 경제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부러울 것이 없으며, 작품에서도 성공했지만 살아갈 희망을 잃고 끝내 넘어지고 만다. 화가가 남긴 캔버스에 조그만 글자가 쓰여져 있었는데, 그것은 '솔리테르'(고독한)로 읽어야 할지 '솔리데르'(연대의) 라고 읽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프랑스말 '테 t’와 '데 d'의 차이로, 뜻은 반대다). 우리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는 연대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고 고독이 필요한지, 도대체 고독이나 연대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겐 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서로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가 숨기고 있는 무엇을 어떤 기회에 발견하게 되면서 놀라는 수가 있다. 인간이란 각자가 개성을 가진 독자의 존재이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자기'를 깨닫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여느 '자기' 즉, 다른 사람들로부터 밀려 나왔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것은 무엇을 똑똑하게 보았다든가 깊이 생각한 사람에게는 들어맞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란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오고 말았으며, 우리는 지금 가령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이젠 벌써 너무나 많은 일에 연관을 가지면서 살기 시작하고 만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독한 존재이면서 그와 동시에 어떤 형태든 다른 사람과의 연대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은 어떤 존재이다. 오히려 '고독'은 모든 사람들의 일 상성에서 각자의 삶의 바닥에, 말하자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고독이라는 것은 결코 공소한 사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 기의 문제로서 일상생활 안에서 반성해야 할 근원적으로 실존적인 물음의 제출인 것이다. 아마 고독을 여태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인간의 실존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두세 살 난 어린아이도 자기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다든가 무시되었을 때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직접 겪는 고독이란 다른 사람, 더욱이 그에게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의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되지 않고 따라서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 예컨대 적막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랑을 받는다든가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어서는 2차적인 가치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있고 다음에 사랑이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하는 것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알고 있듯이 다른 사람에게 의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이루어져 따라서 이해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받는다든가 소중히 다루어진다는 것은 되레 적막감을 더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고독의 객관적인 형태는 의사의 전달도 교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다듬어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에는 두 개의 층이 있는데 깊은 층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없는 것이며 얕은 층은 사랑받거나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으로 대표되는 정서적 반응의 교환 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의 깊은 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랑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깊은 층이 있고 난 뒤의 2차적인 관심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역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역할이든 그것을 연출하는 것이 기대되어 있는 사람은 연기자로서의 그와 '진실한' 그와의 사이에 다소간 간격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전자는 '내밀의 자아'인 것이다. 이 두 개의 자아는 역할과 자기와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통렬한 전쟁 체험을 겪은 사람일수록 그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귀환 병사라는 역할과 '내밀의 자아'와의 사이의 간격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성서를 읽고 있다는 것은 천진한 소냐에게조차 겨우 털어놓은 자기의 비밀이었다. 그리스도 교 도라는 역할과 현실의 자기와의 사이에는 너무나 깊은 단절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수상록>의 몽테뉴는 고독을 좋아했다. 그가 말한 고독은 '육체와 정신의 평정을 방해하는 정렬에서 도피하여 자기의 기질에 가장 걸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며 좋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몽테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한테서 떨어져 본들 충분한 것이 안된다. 또한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들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비속한 생활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곧 자기 자신을 격리하여 자기 자신을 되돌려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 있다든가 모두 함께 있다든가 하는 것만으로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모자라는 사람이다. 자기가 되며 자기에게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의 결여 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다. 고독의 깊은 층은 우리가 몸을 두고 있는 밖의 세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속의, 또한 자기 속의 세계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1) ● 필자 소개 : 이정림(李正林) 『수필문예』로 등단(1974)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1976)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강사(2002∼2003) 계간『에세이 21』 발행인 겸 편집인 한겨레문화센터 수필 강좌 출강 마포평생학습관 수필 강좌 출강 수필집 『당신은 타인이어라』(1986, 범우사) 『산길이 보이는 창』(1991, 범우사) 『숨어 있는 나무』(2000, 범우사) 수필선집 『하얀 진달래』(1999, 선우미디어) 4인수필집 『시간의 대장장이』(2006, 선우미디어) 평론집 『한국수필평론』(1998, 범우사) 『한국수필평론』개정판(2002, 범우사) 이론서 『인생의 재발견-수필 쓰기』(2007. 랜덤하우스코리아) ▶이메일∥ sanyoungjae@hanmail.net ▶『에세이 21』∥ http://ziyang.com.ne.kr ▶이정림의 수필카페 ∥ http://cafe.daum.net/sanyoungjae52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