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칼럼과 뉴스를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던 아침, 강민준 형사는 사무실 창가에서 담배 대신 커피를 홀짝이며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너편 과일 노점 처마 밑,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앞발을 쭉 뻗고 있었다. 상자 속의 흰 갈색 고양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저 녀석들은 좋겠네." 그가 중얼거렸다. "정치 뉴스를 안 봐도 되니까."
이수연 수사관이 서류철을 들고 들어온 것은 정오가 막 지났을 때였다. "선배, 이번 사건 좀 이상해요." 그녀가 책상 위에 서류를 펼쳤다. "보건복지부 브리핑실. 오늘 오후 세 시 예정이었던 기초연금 개편안 발표가 갑자기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취소 직전, 담당 공무원 앞으로 익명의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어요."
강민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협박?"
"협박이라기보다는… 경고에 가까워요. '30퍼센트 밑으로 떨어지면 답이 없다'는 문구였습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브리핑실은 텅 비어 있었고, 취소를 지시한 정무직 공무원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대신 남아 있던 것은 정책 초안 뭉치였다. 소득 하위 70퍼센트 노인에게 지급되던 기초연금을 기준중위소득에 연동해 단계적으로 줄이고, 저소득층에는 오만 원을 더 지급한다는 '하후상박' 방안. 나쁘지 않은 설계였다. 그런데 왜 발표 직전에 멈췄을까.
"용의선상에 누가 있죠?" 이수연이 물었다.
강민준은 수첩을 펼쳤다. "일단 정치권 인사들. 유시민은 오전에 이재명 정권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어. 지지율이 곧 3자로 떨어질 거라고 못박으면서. 김어준도 비슷한 시각, 30퍼센트 붕괴론을 흘렸고. 두 사람 다 내각제 개헌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정황이 있어."
"내각제라면… 박근혜나 문재인 쪽도 과거에 관심을 보였던 걸로 압니다."
"그래. 진영은 다르지만 묘하게도 넷 다 대통령제보다 내각제를 선호했지. 권력을 나눠 갖고 상왕 자리를 차지하려는 계산이었을 거야. 하지만 이건 단순한 심증이지 물증은 아니야."
두 사람은 사흘간 탐문을 이어갔다. 다람쥐— 아니, 담당 공무원들을 하나씩 조사했다. 도토리 창고, 아니 연금 재정 담당자는 이렇게 진술했다. "지지율이 30퍼센트대로 무너진 상황에서, 노인 표심을 자극할 발표를 강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요." 국민연금 담당 부서에서는 또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 외국인 가입자, 특히 인접국 국적자에 대한 지급 논란을 다룬 민원 파일이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를 외국인에게 동일 적용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항의가 수백 건 쌓여 있었다.
"선배, 이거 뭔가 이상해요." 이수연이 파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찾은 용의자들 — 유시민, 김어준, 정무직 공무원, 심지어 댓글을 단 민원인들까지. 다들 각자 이유가 있고, 각자 목소리를 냈어요. 그런데 누구도 단독으로 브리핑을 취소시킬 권한은 없었어요."
강민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범인은 한 사람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해봐, 수연아.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정책은 소신 없이 뒤집히고, 권력자들은 책임을 나눠 가질 궁리만 해. 대통령 한 사람이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누구도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그 구조 자체가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이야."
이수연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럼… 우리가 체포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거네요."
"체포는 못 하지. 하지만 밝힐 수는 있어." 강민준이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내각제를 향한 탐욕, 지지율에 휘둘리는 정책,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시스템. 이 모든 게 맞물려서 브리핑을 취소시킨 거야. 필요한 건 범인 체포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지. 책임을 분명히 지는 대통령제, 그리고 상하 양원이 서로 견제하는 구조."
두 사람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다시 그 과일 노점을 지나쳤다. 흰 고양이는 여전히 처마 밑에서 앞발을 뻗고 있었고, 흰 갈색 고양이는 여전히 상자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저 녀석들은 이 사건이랑 아무 상관 없겠죠?" 이수연이 웃으며 물었다.
강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정직한 목격자일지도 몰라. 아무 이해관계 없이 그냥 비를 피하고 있잖아.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도 저렇게 단순해야 하는데 말이야 — 태블릿처럼 명백하게."
사건 파일 마지막 장에, 강민준은 이렇게 적었다. "용의자: 특정할 수 없음. 진범: 구조적 무책임." 그리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이 나라가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면,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그림자를 만드는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