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 위에 찬란하게 빛나
10세기부터 동유럽의 무역항으로 성장해 항구가 없는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부 유럽의 수출입 항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천 년 전부터 무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자 12세기 이후 독일 상인들이 대거 이주해 한자동맹에 가입한 뒤 명실공히 동부 유럽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18세기에는 프로이센 왕국에 복속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바르샤바조약에 의해 폴란드로 편입되었다.
그단스크가 럭비공처럼 독일과 폴란드를 왔다 갔다 하던 중 히틀러가 그단스크를 다시 독일에 병합하기 위해 도시를 침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독일과 구소련의 처절한 전투로 인해 도시의 60%가 파괴되었다. 지금은 시가지 전체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폴란드 북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발돋움해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2차 세계대전의 발발지점인 그단스크와 수정처럼 맑은 발트 해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전쟁의 상흔이나 은빛 찬란한 발트 해안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단스크는 폴란드의 천 년 고도답게 문화, 경제,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간직한 도시다. 중세시대 무역항으로 축적한 많은 부로 인해 거리에는 예술의 미학이 넘쳐흐른다. 그단스크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화려한 예술의 극치인 중세풍의 건축들이 이방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 편의 서정시가 흐르는 구시가지는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도시 서쪽에 위치한 중앙역에서 구시가지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구시가지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마 비진나를 거쳐 ‘황금의 문’이라고 불리는 즈워타 브라마를 통과하면 한 폭의 그림 같은 구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구시가지의 중심거리인 두와가 거리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중세시대의 건축과 두우기 광장은 감탄사가 절로 날만큼 환상적인 분위기로 여행자들의 눈을 압도한다. 특히 두우기 광장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이나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 플러스 광장과 비견될 만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힐 정도로 그 모습이 아름답다. 황금의 문에서 두우기 광장까지 1km 정도의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건축물과 넵튠 분수, 박물관, 교회 등이 들어서 있다.
좌) 두우기 광장 중심에 서 있는 넵튠 분수와 조각상. 그단스크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넵튠은
해상 교통으로 번영을 누려온 이 도시의 상징이다.
우) 한자 동맹의 전성기인 19세기까지 발트 海(해)로 이어졌던 모트와바 운하. 지금은 유람선만 다니고, 주변에는 그단스크의 특산물인 호박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좌)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단스크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다. 르네상스, 바로크 등 시대를 달리하며 지어진 울긋불긋한 건물들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우) 이곳은 과거에 폴란드 상업의 중심지였고, 16-17세기에는 유럽의 메트로폴리스였다. 그로 인해 도시는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움이 곳곳에 스며있어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낭만이 묻어난다.
환상적인 405개의 계단, 성 마리아 교회 종탑
그단스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마찬가지로 구시가지 중심의 90%인 6,000여 채가 폭격으로 파괴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들이 힘을 모아 중세시대의 그단스크로 완벽하게 재현했다. 옛 그림과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된 그단스크의 중세 건축물들은 야외 건축박물관을 연상시킬 만큼 황홀함 그 자체다.
파스텔보다 더 화려하고 중세의 기품이 한껏 품은 그단스크 구시가지를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먼저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성 마리아 교회의 종탑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발아래로 동화와 같은 아기자기한 구시가지의 전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성 마리아 교회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회 중에서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데 134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502년에 완성되었다. 이곳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천문 시계와 2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별모양의 천장,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78m의 첨탑이 인상적이다. 그 중에서도 구시가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첨탑 전망대는 그단스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의 하나다.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405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50개 단위의 계단마다 계단의 숫자가 적혀 있어 계단을 오르는 재미가 있다. 목적의식 때문일까? 계단에 숫자를 표기해 놓으니 이상한 괴력이 생겨 교회의 전망대까지 단숨에 오르게 된다. 전망대에 오르면 땀을 흘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밑에서 볼 때의 구시가지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 1633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분수와 중세풍의 건축물들은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우상) 봄가을이면 발트 해에서 불어오는 안개로 인해 도시는 온통 하얗게 변한다. 발트 해 한 켠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한 편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우하) 짙은 안개와 네온사인으로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단스크의 밤 풍경.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성 마리아 교회 전망대를 구경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두우기 광장 주변을 둘러본다. 두와가 거리에는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길게 동화에 등장할 것 같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건물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건물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증축과 개축을 통해 새롭게 지어진 것들이다. 물론 가끔씩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도 눈에 뛴다.
과거 그단스크의 건물을 지을 때는 도로를 얼마나 차지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책정되었다. 따라서 그단스크 구시가지 건물들은 하나 같이 정면은 좁고, 측면에서 보면 길쭉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 이 건물들은 지금의 아파트처럼 일반 시민들이 사는 주거지였는데, 중앙에 문 하나를 두고, 5층 높이로 일괄된 모습이다. 프랑스가 건축물을 지을 때 옆 건물과 높이나 외관을 중시하듯 이곳 또한 높이가 같고 외부 디자인도 아주 독특하면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건물의 폭이 좁아 생각보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고,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계단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천장은 우리와 달리 높지만 방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빨래를 창문 밖에서 말리는 모습이 아주 이색적이다.
좌) 마치 일그러진 건물이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내부는 겉모습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구조다.
우) 지붕이 집 벽보다 커 다락문이 많은 건물이 아주 인상적이다.
영국군과 소련군의 엄청난 폭격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실되지 않은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제법 남아 있어, 이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는 투어가 있을 정도로 그단스크는 마치 야외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시가지를 여행하다 보면 이곳의 건축물을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들과 독일 관광객들이 자주 눈에 뛴다. 처음 이 도시를 찾은 여행자들은 어떤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고 어떤 것이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때 건물 위에는 그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가를 알려주는 건축연도가 새겨져 있다. 1632, 1754 등의 숫자가 바로 그 당시에 건물이 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이 집들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시 당국에서 문화재로 선정해 보존에 힘쓰고 있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기품을 자랑하는 그단스크 건축물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도시
시가지 주변에서는 가끔씩 포탄과 총탄으로 파손된 건물을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둔 건물도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해 부서진 건축물은 전쟁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독일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건축물은 두 번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상징이자 역사의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폴란드의 어린 학생들만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고, 전쟁의 피의자인 독일 관광객들도 이곳을 찾아 용서를 빌고 폴란드인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갖고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한다.
이처럼 그단스크는 과거의 어두운 면과 미래를 향한 밝고 희망찬 모습이 교차하는 도시다.
광장 중심에는 오랜 세월 시민들과 함께 해온 그단스크의 수호신인 넵튠 분수가 있다. 1633년에 완성된 이 분수는 로마의 분수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단스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상징물이다. 또한 분수 주위에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복원되어 새로운 도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식 건물이라고 해서 중세풍의 건축물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곳 시민들의 건축 정서는 높고 세련되고 말끔하게 단장된 초고층 건물보다는 중세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풍스런 건물을 애호하는 것 같다. 물론 실내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최첨단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외관은 중세시대의 그단스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곳 사람들은 높은 스카이라인이나 마천루 대신 인간의 따스한 감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물을 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에도 느리게 가는 그단스크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