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길을 보여주기도 하고, 삶을 이어주는 뿌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지나간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하고, 역사의 아픔에 분개하고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현재 우리 삶의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고, 후손들에게도 올바른 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순간들이 참 많았다. 아시아 대륙 끝에 붙어있는 작은 반도라는 위치상 여러 차례 외세 침입을 받아왔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하지만 나라의 주권을 통째로 빼앗겼던 일본 식민지 시대만큼 참담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방, 경제, 문화를 모두 점령하고, 그들이 세운 친일파들이 꼭두각시 역할을 하며 민중들을 또 다시 수탈했던 가혹한 역사. 그래서 일본 식민지 잔해가 남아있는 곳을 여행할 때면 늘 마음이 무겁다. 무거운 마음으로 군산 여행길에 오른다.
군산은 항구를 중심으로 일본 식민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근대화 거리라고 부르며 지금은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어떤 이들은 가슴아픈 역사이니 아예 없애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시절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일재 잔재 청산운동이 일어났다. 군산 또한 구 군산시청, 구 군산경찰서 등 건물들이 일제히 파괴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민간소유라 철거되지 못한채 살아남은 것이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아픈 상처는 말끔히 도려내는게 맞다. 하지만 그 시절의 흔적을 봐야 하는 이유는 아픔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그래서 군산 군대화 거리는 우리에게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준다.

근대화 거리에는 일본식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레트로한 분위기도 눈에 띈다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전경
군산에 왜 식민지 흔적이 많을까. 바로 군산의 지리적 장점때문이다.
군산은 서쪽으로는 바다, 동과 남쪽으로는 호남평야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 전체가 흉년이 나도 군산 만큼은 곡식이 넉넉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다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이 나오고, 비옥한 평야에는 곡식이 넘쳐났다. 그러나 이점 때문에 일본의 수탈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은 강압적으로 군산항을 개항했고 우리나라 쌀을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1909년 조선에서 생산된 쌀의 30%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고 1934년에는 전국 총 생산량의 절반에 이르는 200만석 쌀이 실려나갔다. 그리고 일본 공업 제품을 또 이곳으로 들여오며 이중수탈 창구로 활용됐다. 군산 세관을 통해 탈세도 했다.
군산항에 있는 부잔교(뜬다리)는 이를 보여준다. 부잔교는 수면의 높이에 맞춰 다리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다리로,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게 군산의 쌀을 수탈하려고 했는지 알수 있다.
(여기서 일본 식민지로 우리나라 근대화가 빨라졌다는 망발이 없기를! 이런 조치는 우리나라에 근대화 기술을 전수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탈야욕을 채우기 위한 조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일제시절, 군산항을 통해 우리나라 쌀이 대거 수탈됐다. 사진은 부잔교의 모습

근대역사박물관 외관의 모습과 내부에 전시중인 태극기
부잔교 앞에는 근대역사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일제 시대 건물은 아니지만 조선총독부 등 근대건축물에 사용됐던 건축자재를 활용해 2011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리모델링 중이라 일부 공간만 관람을 가능했지만, 일제 시절 군산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서쪽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파란 대문의 옛 군산세관 건물이 있다. 군산항을 통해 드나드는 물품의 관세를 받던 곳이다. 건물 지붕은 뾰족하고 직선적인 느낌의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과 근대 일본 건축양식이 합쳐져있다. 서울역사, 한국은행본관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군산세관 뒷편에는 세관 창고로 쓰였던 오랜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근사한 인문학 카페로 변신했다.
근대화 역사박물관 주변에 카페와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도 함께 볼 수 있다. 일본식 다다미방이 남아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 느낌이 새롭다. 근대건축관은 1922년 세워진 은행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도 소개됐다. 근대 건축관은 외부와 달리 내부는 초현대적이다. 바닥에는 대형 터치스크린이 깔려있고, 벽면에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재생된다. 지점장실은 식민지의 뼈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일본의 악행을 담은 시청각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옛 군산세관. 지금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군산세관 뒷편 창고는 멋진 인문학 카페가 됐다

다다미방을 개조해 만든 카페
은행을 개조해 만든 근대건축관

근대건축관내 전시물

근대화거리는 장미동과 월명동에 걸쳐있다. 장미동이라면 꽃이름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쌀을 보관하는 동네라는 뜻이다. 그래서 식민지시대 정미소 등이 곳곳에 세워졌다.
근대화 거리를 걸으면 2, 3층으로 되어있는 일본식 가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곳은 분위기 있는 카페로, 어떤 곳은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근대화거리는 1899년 일본의 조계지로 설정된 후 은행, 사찰, 세관 등 170여채나 되는 일본식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해방 후 1980년대까지 만해도 군산 상권의 중심지였으나 2000년대 관공서가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텅빈 공간이 됐다. 지금의 근대화거리는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 재생사업의 결과물이다.
동국사는 근대화 거리에서 다소 떨어져있지만, 꼭 가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아담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인상깊다. 몇분만 걸어도 한바퀴를 다 둘러볼 정도로 작은 사찰이지만 곳곳에 일본 특유의 감성이 새겨져있다. 사찰 한켠에 작은 소녀상이 보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동국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