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서지역: 평안도, 평양, 황해도, 해주, 개성>
패서지역(평안도, 황해도)은 고구려의 옛땅으로서, 예로부터 우리민족 중 가장 강맹한 민족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들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 고려였으니 우리민족왕조들 중 가장 역동적이고 강한 왕조들이었다. 패서지역 사람들이 세운 나라들이 부강했던 이유는 이들이 실용적인 상인정신과 씩씩한 상무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패서지역 사람들은 우리민족 중 가장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고려왕조는 우리민족 최초로 화폐를 유통시킨 왕조였다. 중세시대때 수도에서 화폐가 통하던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송나라(중국), 동로마제국, 그리고 고려뿐이었다.
위의 구리동전은 일반적인 거래에 쓰이는 화폐였고, 고액거래(집거래 등)를 위해 '은병화' 라는 고액권 화폐또한 발행하였다 (아래사진 참조).
<고려의 고액권 화폐 '은병화'>
은병화는 은으로 만들어졌지만, 값비싼 은이 절반만 섞여 있고 저렴한 구리를 절반 섞었다고 한다. 하지만 은병화 1개의 가치는 엄청나게 높았다. 소은병 1개의 가치가 삼베 50필 (약 150만원)이었다고 한다. 결국 고려왕조는 고액권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엄청난 주조차익을 얻었고 그만큼 국가재정이 튼튼해진 것이다.
고려의 개성상인들은 고려전기(11세기경)부터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 개성부기)이라는 독창적인 복식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서양의 복식부기보다 200년이 앞선것이었고 오늘날 복식부기원리와 거의 같다고 한다.
<개성상인 회계장부>
개성상인들은 수입과 지출을 하나의 장부에 기록하는 복식부기 방식의 회폐장부를 사용함으로써 전체영업 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체계적인 회계방법이 개발될 정도로 고려에 상업이 크게 발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성향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어, 고구려(고려)의 중심지였던 서북지역(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은 유교적 신분질서가 약했고, 지주제가 발달하지 않아, 실용적인 상인정신(기업가 정신)이 강했다.
이때문에 서북지역은 양반이 별로 없었고, 개성상인, 평양상인, 의주상인 등 상인들이 중심세력이었다.
이때문에 우리민족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고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으려면 고려왕조가 멸망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실용적인 상인정신과 씩씩한 상무정신을 가졌던 서북출신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여 경제가 튼튼해지고 양질의 군사력을 유지하여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만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일제시대와 광복직후만 해도 평양은 한반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산업이 발달하여, 기업가의 중심지였다. 심지어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청교도)가 번성하였다.
이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농업지역인 남한에 더 많았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농업에 주로 집중했던 남한에서는 양반과 지주의 가혹한 수탈, 유교사상으로 인한 신분적 차별, 횡포로 인해 농민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이 잘 먹혔던 것이다. 동양의 공산주의는 결국 "지주제를 청산하고 토지를 균등분배하여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이루자" 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었고 농민들의 지지로 세력을 확대했다.
이때문에 초기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층을 보면 김일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한출신이었다.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충남 예산), 연안파 김두봉(부산), 부수상 홍명희(충북 괴산), 국가기획위원장 정준택(인천 부평), 국가검열상(국방상) 김원봉(경남 밀양), 농림상 박문규(경북 경산), 교육상 백남운(전북 고창), 사법상 리승엽(인천 부평), 문화선전상 허정숙(서울), 보건상 이병남(충남 천안), 무임소장 이극로(경남 의령). 이들이 북한의 공산주의시스템을 설계한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도 한때 남조선로동당(공산당)의 핵심인물(군사총책) 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거스를만한 강력한 외세의 개입때문에 남북한의 운명은 뒤바뀌게 된다.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강제로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강제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말았다.
<북한에 들어온 공산주의세력: 김일성과 소련군>
뼛속까지 자본주의적이었던 북한사람들을 강제로 공산화시켰으니 그 부작용은 엄청났다.
당연히 저항이 심했고, 그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북한정권은 잔인한 숙청과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괴랄한 북한정권이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