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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3-19
덤으로 받은 축복 / 김덕복 목사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태어나서 시골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때는 일년에 몇 번씩 새우젓장사와 인삼 장사가 우리 마을을 거쳐가곤 했습니다. 대청 마루나 평상에 물건을 내려 놓으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쌀이나 물건들을 가져와서 바꾸어 가는 모습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것이 새우젓갈 장사가 등짐으로 지고 왔던 새우젓갈 통입니다. 그냥 보면 잘 모르는데 새우젓갈 통을 내려놓으 면은 하나는 새우가 아주 또렷또렷하게 형체가 보이는 알젓을 담은 알젓 통이 있고 그 옆에는 녹이 쓸고 허름한 그런 양철통에 덤으로 주는 새우젓갈과 국물이 담긴 덤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일정한 양의 새우젓을 사면 그 새우젓 장사는 덤통에 담긴 새우젓을 국자로 떠서 조금씩 주는 그런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또 양의 인삼을 사면 인삼의 잔뿌리들을 덤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아마 시골에서 살았던 분들은 그런 기억이 있을 줄 생각됩니다. 소위 말해서 덤통에 담긴 젓갈 국물을 얼마나 잘 적절하게 분배해 주고 덤으로 잘 주느냐에 따라서 새우젓 장사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 문화적인 풍속속에 덤이라는 개념, (덤=공짜)라는 이런 것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외국의 상공인들이 한국에 와서 이 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답니다.“내가 파는 이 상품이 질이 좋고 가격이 싸면은 경쟁력이 있고 성공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험이 있는 사람은“상품의 질도 좀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도 이 덤 개념을 잘 이해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덤이라는 이 개념을 이숭녕박사 감수 민중서관 국어사전을 제가 한번 찾아보니까 이렇게 정의를 해놓았습니다. 덤은‘물건을 살 때 더 얹어주는 물건’그리고 괄호를 해놓고 영어로premium이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premium이라는 개념과 우리한국의 덤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하여튼 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기록을 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시골 아주머니들 가운데 이 덤으로 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물건은 안 사고 기웃기웃 거리면서 손으로 찍어 먹기도 하고 또 얻어 먹고는 집에 가서 물을 열심히 마시는 아주머니들, 평소에 이 덤으로 주는 것 그냥 받아 챙기다가 나중에 정권이 바뀐 뒤에 쇠고랑 차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은 하나의 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사람이 젊어서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쓴 간증집을 보면은“덤으로 사는 인생”이런 제목이 붙는 그런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만히 보면은 여기에 세 사람의 등장 인물이 나옵니다. 한사람은 갈렙이라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옷니엘이라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악사라는 갈렙의 딸 여자입니다.
이 세 사람이 받았던 축복을 우리가 가만히 보면은 이들의 축복은 전부다 덤으로 받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모든 축복은“구원의 축복+α”그러니까 구원의 축복에 덤으로 붙여진 축복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한 것도, 내가 물질적으로 안락하게 사는 것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축복들은 구원의 축복에 덤으로 붙여진 축복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갈렙이 덤으로 받은 축복
여러분 갈렙을 봅시다. 갈렙을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갈렙은 본래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조상 때는 분명히 이방 족속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 어떤 계기로 이 갈렙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 되었고 유다 지파에 대표가 되어졌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무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리스도의 무리 안으로 부르시고 여러분들과 저를 서로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그 자리에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갈렙이 받았던 축복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유대인이 되었고, 유대 지파가 아닌 사람이 유대 지파가 되었고, 그리고 그 유대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던 것을 압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약속의 상징을 축복으로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강적이었던 아낙 자손들을 그 헤브론 산지에서 다 좇아내는 그런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갈렙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없었는데 좋은 사위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유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았던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면은“갈렙이 말하기를 기럇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이 기럇세벨을 정복하는 사람에게 갈렙을 자기 딸을 주겠다고 소위 말해서 요즘으로 치면은 자기 딸을 경품으로 내걸고 있는 겁니다. 이건 갈렙같지 않은 태도인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그리고 아낙 자손의 세 우두머리를 다 처치한 그런 용맹스러운 사람이었는데 지금“기럇세벨을 쳐서 무찌른 자에게는 내 딸을 주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요즘 이 시대에 아버지가 무엇무엇 하는 자에게 우리 딸을 주겠다 이렇게 하면은 아마 그 아버지는 온 집안 식구들로부터 정신나간 아버지로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대 사회에 그러니까 가부장 적인 그런 문화의 사회속에서 부권의 절대적인 권한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자식들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까지도 스스럼없이 주고받았던 그 시대 상황에 일어났던 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를 하시고 오늘 본문을 보셔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갈렙은 자기 딸 악사를“기럇세벨을 정복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은 사울 임금이“골리앗을 쳐부수는 자에게 자기 딸 미갈을 주겠다.”고 해서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수고 난 뒤에 미갈을 자기 아내로 얻은 것을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았을 때 그 당시 사회는 흔히들 있는 일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가만히 보면 갈렙의 지혜가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갈렙의 지혜가 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을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갈렙은 헤브론에 있는 그들이 적 아낙 자손들과 기럇세벨에 있는 적군들을 쳐부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그 기럇세벨을 정복하지 않고 기럇세벨을 정복할 자를 얻기 위해서 자기 딸을 경품으로 내 겁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이 옷니엘이라는 용맹있는 청년이 나서서 이 기럇세벨을 쳐부수고 정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 속에는 이 믿음의 갈렙이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은 자기는 아들이 아닌 딸에게 자기 기업지를 물려주었는데 정신이 똑바로 박힌 그리고 믿음이 충만하고 용감한 사나이를 뽑아서 자기 딸을 그에게 주겠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지혜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었던 이 갈렙은 그냥 이스라엘의 아무 청년에게나 뭐 인물이 잘나고 집안이 좋은 그런 청년에게 자기 딸을 그냥 주고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쳐서 빼앗겠다는 그런 개척자 적인 정신을 가지고 용감 무쌍한 사나이를 골라서 자기 딸을 주기위해서 그런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딸만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면은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하시고 여러분들도 이렇게 지혜로운 아버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갈렙은 아들이 없었지만은 아들같은 좋은 사윗감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갈렙에게 덤으로 주어진 또 다른 축복이 바로 옷니엘이라는 다른 집 아들들보다도 더 좋은 또 자기의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할 이스라엘 정복 2세대에 가장 뛰어난 인물을 자기 사위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지난번 조용수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농담으로“하나 딸 열 아들 안 부럽다.”뭐 이런 표현을 했는데 여러분 딸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긍지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아내에게 아들을 못 낳는다 해서“당신은 딸딸이 어머니다.”하면서 구박하지 말고 하나 딸이라도 잘 키우면은 내가 낳아 기른 아들보다도 더 좋은 사위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이 갈렙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2. 옷니엘이 덤으로 받은 축복
두 번째 우리가 여기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옷니엘이라는 젊은 용사입니다.
16절에 보면은“갈렙이 말하기를 기럇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그런데 17절에 보면은 성경에 뭐 이런 구절이 다 있나 하면서 오해를 할 부분이 있는데“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그렇다면은 오늘 이 17절 구절 그대로를 해석을 하면 자기 동생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 신학자들 사이에 이 17절에 대한 해석을 여기에 나온 문자적으로 해석을 했을때는 분명히 갈렙의 아우면서 그나스의 아들 이러니까 서로 다른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그런 형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기가 쉬운 데 영어 성경 living bible이라든지 우리 한국에서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은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수정이 되어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영어 성경 living bible에는 바로 오늘 이 구절을“갈렙의 조카 옷니엘”이라고 번역을 하고있고 또 우리 한국 공동번역 성경에는“그의 아버지 그나스는 갈렙과 동기간이었다.”는 번역을 추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오늘 이 기록을 우리가 제대로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사기 3장 9절을 한번 읽어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사기 3장 9절을 보시면은“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오늘 우리가 읽었던 17절의 혼란이 이 사사기 3장 9절을 통해서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보면은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성경 구절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오해를 하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의 다른 열쇠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그런 성경해석의 원리를 우리가 알아야 될 줄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촌오빠와 사촌 여동생이 지금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으로써는 이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한국의 사회 문화적인 전통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동성동본불혼의 원칙을 우리 한국 민법에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 있어서는 이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동족간의 결혼을 아주 장려했고 같은 지파간의 결혼을 아주 귀하게 여겼습니다. 자기들의 순수한 혈통을 이어가기 위해서 다른 지파나 다른 족속들과의 결혼보다 동족과의 결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성경 해석상의 문제가 되는 부분이지만은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서 자기 아내 사래를 데리고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 왕이 흑심을 품고 사래를 요구했을때 이 아브라함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서 이 사래가 자기의 여동생이라고 바로에게 자기 아내를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사이에“아브라함 같은 위대한 신앙인도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비겁하게 거짓말을 했다.”이렇게 말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은 또 다른 학자들은“아브라함에 있어서 사래는 혈족 관계를 따져 봤을 때 아내인 동시에 자기의 여동생 그러니까 이종사촌이나 고종사촌이 된다는 것”을 증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유대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같은 혈족간에 친족간의 결혼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만나는 이 악사를 아내로 얻었던 옷니엘이라는 사람은 기럇세벨을 정복했던 용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용맹스러움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 갈렙의 딸을 자기 아내로 얻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의 인물이 있다고 하면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식이 수십 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식 농사를 잘 못지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자식문제 때문에 상당히 영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 이 갈렙은 자식이 적지 않았습니까? 이 딸 악사를 통해서 옷니엘이라는 새로운 아들, 사위를 얻는 장면입니다.
딸을 주었지만은 그는 딸을 주고 새로운 아들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옷니엘에게 있어서 악사라는 이 갈렙의 딸은 최대의 인생의 선물이었고, 또 옷니엘이라는 그나스의 아들인 이 용맹한 청년은 믿음의 사람 갈렙에게 인생 최대의 축복이 되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배우자 나의 사랑하는 아내,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축복의 대상임을 확신하고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아내는 여러분과 하루 이틀 살다가 헤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한 평생 서로 도우며 서로 격려하며 서로 세워주며 살아가야 될 대상임을 알아야 됩니다.
옷니엘에게 있어서 악사라는 한 처녀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이 옷니엘은 자기 아내 악사를 통해서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인생이 더욱 더 값지고 의미있는 그런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악사에게 옷니엘이라는 젊은 사나이는 그 인생의 가장 큰 하나의 축복이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서로“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의 대상이요.”
이렇게 우리가 고백하며 살아야 됩니다.
“저 원수같은 사람을 만나가지고 내가 한평생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산다.”이런 생각을 우리가 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아내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축복의 대상으로, 자기 남편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나의 축복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사람이 되고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그리고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대상이라고 인식하지 못합니까?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인간적인 이기심이 남아 있을때는“내가 옛날에 더 좋은데 갈 수 있었는데..”하는 그 생각 그 천박한 생각이 나의 사랑하는 아내를 나의 사랑하 는 남편을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놓는 그런 실수를 우리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옷니엘은 악사를 통해서, 악사는 옷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덤으로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옷니엘은 아내를 통해서 윗샘과 아랫샘 그리고 밭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샘물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이 샘물을 사이에 놓고 전쟁이 벌어집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어떤 고지를 놓고 전쟁이 벌어졌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샘물은 가장 큰 유산이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유산 가운데 유산 목록 1호에 바로 이 샘물이 들어갔습니다.
이 옷니엘의 아내가 되었던 악사는 시집가면서 아버지에게 밭을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은 “복을 주옵소서”하는 성경구절을 보게 됩니다.
19절을 보시면“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여기에서 복을 주소서 하는 이 말은“아버지 나에게 결혼 지참금을 주십시오.”하는 말로 다르게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아버지에게 그는 지나가는 말로“땅을 줄뿐 아니라 샘물도 주소서.”하면서 붙여서 한 그 말이 아버지로부터 윗샘물과 아랫샘물이 동시에 주어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남편 옷니엘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어졌다는 겁니다. 또한 이 옷니엘은 믿음의 용사입니다. 성경을 보시면은 이 옷니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은 여호수아서가 끝나고 이제 사사기가 시작이 되는데 사사기의 시작은 바로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은 여호수아 아들이라든지 아니면 여호수아와 관련있는 어떤 인물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하는데 갈렙의 사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초대 사사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사기 전반부에 보면은 이 옷니엘이 이제 사사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런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15장에 있는 기록과 사사기 1장에 있는 기록이 중복되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옷니엘에 행적이 거기에 나옵니다. 이 옷니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옷니엘은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옷니엘은 좋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얻을 수 있었고 또한 많은 물질적인 것도 얻고 또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덤으로서의 축복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3. 악사가 덤으로 받은 축복
우리가 마지막 만나는 악사라는 한 여자를 봅시다. 이 악사는 자기 앞날을 예비 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갈렙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밭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윗샘과 아랫샘을 덤으로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좋은 남편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사사의 부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은 신학자들 가운데 오늘 이 본문 악사가 자기 아버지에게 샘을 요구하는 이 장면을 서로 상반되게 해석을 하고 있는것을 보게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Matthew Henry라는 주석학자는“악사의 이러한 태도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이렇게 주석을 하는 반면에 중세시대 종교 개혁자였던 우리 장로교의 시조가 되는 Calvin은 악사의 이러한 태도는“분에 넘치고 뻔뻔스러운 허영심리를 반영하고 있다.”이렇게 서로 대조적으로 두 신학자가 이 본문을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의 해석 어느쪽을 따라도 괜찮지만 저는 저 개인적으로 장로교 목사지만은 영국의 신학자 Matthew Henry의 해석대로 따르고 싶은 인간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갈렙이 가지고 있었던 진취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그 믿음의 자세가 그 딸 악사에게도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단순한 탐욕에서 뻔뻔스럽게 이땅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Calvin이 주석한 대로 딸들 가운데 뻔뻔스럽게 자기 이기심과 탐욕과 허영심 때문에 자기 부모들의 재산을 시집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더 많은 것을 이렇게 가지고 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여기 있는 주부들, 여러분들 결혼할 때 부모님들하고 이런 문제 때문에 다투고 눈물 흘리고 했던 씁쓸한 추억이 있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은 좀 부끄러운 겁니다. 대개 딸들을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부모님이 해주시면 해 주시는대로 가져가겠습니다.”하는 사람이 있고 적극적으로“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딸이 있고“부모님도 어려우신데 나는 젊으니까 그냥 가서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나는 필요 없습니다.”하는 딸들이 아마 있을겁니다. 저는 비엔나에서 목회를 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한 처녀를 보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집을 가기전에 자기 어머니를 여름 방학 때 비엔나로 오시게 해가지고 바이얼린을 갈아치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한국
유학생들이 참 허영심이 많아서 빈 국립음대 교수들이 쓰는 바이얼린보다 더 고급 바이얼린들을 씁니다.
바이얼린 한 대 가격이 오천만원 육천만원하는게 흔하게 있습니다. 그 당시 시중에 다니던 고급 벤츠들보다도 바이얼린 값이 더 비쌌습니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를 딱 모셔와가지고 설득을 해서 자기가 사용하던 바이얼린을 새로운 유명한 바이얼린으로 바꿔치우는 겁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까 이제 좀 있으면 시집 갈텐데 시집 갈때 뭐 얼마 해주고, 뭐 얼마 해주고 그렇게 하려면 절차가 복잡한데 이 바이얼린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6개월 전에 바꿔치기 함으로써 시집갈 때 오천만원 이상을 더 챙겨 간다는 겁니다.
딸들의 속셈이 이렇습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분들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사실 시집을 갈 때 부모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떠날 수 있는 그 딸이 시집가서 축복을 받고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악사가 여기에서 이것을 요구한 것은 Calvin이 주석한 대로 단순히 분에 넘치고 뻔뻔스러운 허영심 때문에 이런 것을 요구했다는 그런 생각을 저 개인적으로는 여러 성경 해석학자들의 해석 가운데 동의하고 싶지 않은, 정말 어쩌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신앙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든 간에 악사는 자기가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밭을 주시옵소서.”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나귀에서 내리는 딸에게“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까?”이렇게 물었을떄 18절을 보시면“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딸은 아주 잽싸게 샘도 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벌써 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말로“샘도 주시옵소서.”하니까 아버지가 기뻐서“여기있다. 윗샘도 가지고 아랫샘도 가져라.”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억지로 훔치듯이 빼앗아 내는 것이 아니고“이것도 아버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그래.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져라.”
그래서 Calvin이 해석한 그 해석과는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나에게 주어져 있는 본래의 기업지인 밭이 나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 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축복을 다 받은 존재들입니다.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받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외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덤으로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리가 알아야됩니다.
덤으로 주신 축복도 우리는 많이 받는 것입니다. 그 덤으로 받은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면은 그 덤으로 받은 축복이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샘물은 아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해석자들 가운데 이 해석을 하면서 윗샘 아랫샘을 아이러니하게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냥
지역적으로 위에 있는 샘과 아랫샘 본래는 그렇습니다. 이 성경을 해석 하면서 위에 있는 샘은 영적인 충족을 위해서 주어진 샘이고, 아랫샘은 세상적인 충족을 위해서 주어진 샘이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은혜로운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해석하고 위로를 받으셔도 됩니다. 이 악사가 자기 아버지에게 두 샘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샘과 하나는 육적인 샘을 받아서 축복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육간에 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때로는“하나님 저에게 이런 축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잘먹고 잘 살기 위해서 내가 다른 사람 앞에 거드름 피우고 뽐내기 위해서 원하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실 수만 있다면은 주시는 이 축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그렇게 요구하는 축복이라면은 하나님께서도 덤으로 주시면서도 기쁘셔서 더 우리에게 덤으로 축복을 주시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영적인 축복을 잃어버리는, 덤을 너무나 많이 기대하다가 가장 근본적인 영적인 축복을 상실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 그것 부러워하고 그 세상적인 축복을 추구하다가 영적인 것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아마 들어 보셨을 겁니다.
“유대인의 지혜서”라고 하는 탈무드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어느 아주 부유한 유대인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을 먼 외지에 유학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 노인에게는 별로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마르코라는 한 종이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자기의 전 재산을 우리 집에 종인 마르코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유언장은 법률적으로 효력이 있는거 아닙니까? 그 유언장을 받아든 마르코는 가슴이 터질 듯 기뻤습니다. 자기가 한평생 살면서 자기 소유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자기의 주인이 죽으면서 자기에게 모든 재산을 다 소유로 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 노인은 다시 한 장의 유언장을 써서 마르코에게 줍니다.“이것을 내 아들에게 전해라.”
그리고 이 노인을 죽었습니다.
이 마르코라는 종은 주인의 전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으니까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유학가있는 이 주인의 아들에게 주인의 유언장을 전했습니다. 그 주인의 아들이 유언장을 딱 펼치니까 기가 막히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실망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에게 하나도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 고집불통이고 말 안듣는 종 마르코를 유산으로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위대한 유대 랍비를 찾아가서“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저 나쁜 종 마르코에게 물려준 유산을 내가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좀 얘기 해 주십시오. 너무너무 억울합니다.”이러니까 이 유대 랍비가 그 아들에게“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물었습니다. 그 아들은“우리집 종 마르코를 저에게 종으로 계승해서 준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이 랍비는“이 바보야! 너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마르코에게 다 주었다. 맞지? 그 마르코를 너희 아버지가 너에게 주었으면은 마르코가 받은 모든 유산을 너의 것이 아니냐.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라. 너의 아버지는 자기의 전 유산과 종 마르코까지 너에게 유산으로 다 주었다.
만약에 이 사악한 종 마르코에게 재산의 일부를 주고 너에게 재산을 많이 떼어준다는 그런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면은 마르코는 아마 너를 죽여버리고 너의 아버지의 재산을 다 챙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의 아버지가 재산을 마르코에게 다 준다고 했기 때문에 너를 해치지 않고 유언장이 전달되고 너도 살아 있는 것이다. 마르코도 너의 것이고 마르코의 재산도 바로 너의 것이다. 그래서 너의 아버지는 100완벽
하게 유산을 너에게 물려준 것이다.”라고 랍비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부분 일부분을 떼어주신것이 아니고 전부를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잘것없는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이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완벽하고 가장 큰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많은 축복들이 우리에게 전부다 덤으로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