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으로 치닫는 코로나 국난(國難)에 대한 정부 대응은 크게 ‘마스크 대란’과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차 탄채 검사)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상징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방역 행태는 국가의 기본 책무란 무엇이며, 재난 상황에 정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마스크 값이 치솟았다. 품귀 현상을 빚으며 돈 주고도 구할 수 없었다. 정부가 뒤늦게 마스크 수출을 제한했다. 우체국 등 공적 판매처를 통한 특별공급에 나섰다. 그러나 경제부총리의 ‘내일부터’ 구매 가능 장담은 지켜지지 않았다. 급기야 전국 초·중·고교에서 비축한 마스크 중 일부를 가져다 공급하고, 개학 이전에 채워주기로 했다.
국민은 1차적 방역수단인 마스크를 공적 판매처 앞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지경에 이른데 절망한다. 마스크 대란은 대한민국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정부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하기만 했지 마스크 생산·유통 과정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중국에 코로나19가 번지며 마스크 수출이 급증하는데도 수수방관했다.
대비되는 ‘마스크 대란’과 ‘드라이브 스루’
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마스크 사재기가 횡행하는데도 매점매석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엄포에 그쳤다. 공적 판매처를 통한 공급이란 긴급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마스크 생산업체 실정 및 배송 가능 여부를 챙기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현장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채 마스크 업체에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공적 판매처에 의무적으로 출고하라고 지시하는데 그쳤다.
그래도 우리가 코로나19 조기 퇴치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감염 여부를 신속하게 가려내는 의료기술과 창의력,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의료진의 희생봉사 정신에 있다. 특히 차에 탄 채 패스트푸드를 주문하듯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검진 받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접수부터 의료진 면담, 체온 측정, 검체 채취까지 1시간 넘게 걸리던 검사가 10분 안에 가능하다. 의심환자를 검사할 때마다 진료실을 소독하지 않아도 돼 시간이 단축됐다. 접촉이 차단돼 의료진과 검사 대상자 모두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 검진할 때마다 의료진이 방호복과 마스크를 바꿀 필요가 없어 장비도 절약할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국내 의료진에서 나왔다. 드라이브 스루가 가능한 것도 유전자 기반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국내 업체들이 발빠르게 움직인 덕분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기 전인 1월 중순,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이 공개되자 곧바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진단시약 개발에 2주일, 다시 일주일 만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24시간 걸리던 감염자 진단이 6시간으로 줄었다. 의료진이 대거 투입되며 하루 최대 1만건 진단이 가능해졌다.
'뭣이 중한지' 알고 계획 세워야
마스크 대란도 진즉 푸는 방법이 있었다. 2월 말 지역 내 전 가구에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배포한 부산 기장군을 보자. 기장군은 코로나19가 발발하자 예비비 55억원을 마스크, 손소독제, 방역장비 구매에 투입했다. 마스크 170만장 구매에만 34억원을 썼다. 1차로 7만여 가구에 마스크 5장, 손소독제 1병씩 나눠줬다. 3차에 걸쳐 마스크 15장씩 배포할 계획이다.
배포 방법도 주민 안전을 고려했다. 군민들이 관청 앞에 줄을 서 받아가는 게 아니다.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비실까지 직접 배달하고, 안내방송을 통해 전달한다. 단독주택 마을에는 통·반장이 나눠준다.
다른 데서 못하는 일을 기장군이 해낸 것은 단체장의 남다른 의지 덕분이었다. 기장군은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감염병 방역단을 만들어 상시 방역을 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을 평상시의 10배 수준으로 강화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이 지역 확진자는 없다.
2016년 개봉된 영화 ‘곡성’에서 정체 모를 병에 걸린 주인공 경찰의 딸은 이성을 잃은 채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쁜 아빠에게 소리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아카데미 4관왕 수상 영화 ‘기생충’에서 백수 가장은 친구의 제안으로 부잣집에 과외선생으로 들어가는 아들에게 기특하다는 듯 말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국가의 1차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이번에는 코로나19다. 언제 또다른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방역 대책은 사스 때나, 메르스 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당리당략과 정권 잡기에 골몰하기보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뭣이 중한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당)은 계획이 다 있구나” 평가를 들어야지 보통 국민이면 다 알만한 일도 몰라라 해선 내쳐지고 만다.
※ 이 글은 2020년 3월 3일 발행된 석간 <내일신문> 23면 오피니언 페이지 '양재찬 칼럼'에 슨 것입니다.
[출처] 부산 기장군보다 못한 세종청사 공무원|작성자 양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