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주요명소
야누스-. 울산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를 닮았다. 공업도시가 갖고 있는 산업현장 특유의 활기찬 느낌은 좋았지만, 일상처럼 뒤덮고 있는 건조하고 메케한 공기는 도시의 많은 부분을 짓누르고 있었다. 여기에 대형 화물차들의 질주, 잠시 한눈을 팔면 이방인을 미로로 안내하는 불친절한 이정표. 그렇지만 공단지역을 벗어나면 달랐다. 특유의 비릿한 내음을 되찾은 바다는 맑은 해조음으로 마음을 달래주었고, 높은 산은 다정스런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였으며, 깨끗한 하천은 시민들을 포근히 감싸안아 주고 있었다.
울산이 야누스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 까닭은 아마도 간절곶 일출을 보기 위해 어둠을 가르고 달려갈 때 울산공단 한가운데를 지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손은 평소 내비게이션을 그다지 신봉하는 편은 아니다. 아직도 10만분의 1 축척의 도로지도와 겸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 울산에선 지도보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훨씬 많이 받았다. 아니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어쩌면 처음 접하는 넓디넓은 공단지역을 들쑤시고 다니다 미아가 되었을 것이다.
▲ 장생포항 풍경. 포경선과 어선이 드나들던 풍광은 사라지고 주변엔 공장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 우리나라에서 일출이 가장 빠르다는 울산 간절곶 앞바다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등대와 어우러진 일출이 예쁘다.
간절곶은 두 개의 예쁜 등대와 갯바위 외엔 그다지 특징 있는 일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새천년 우리나라 첫 해돋이 해안으로 유명해졌다. 2000년 1월1일의 일출시각은 오전 7시31분17초. 이는 당시 포항의 호미곶보다 1분, 강릉의 정동진보다는 5분 앞선 시간이라 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간절곶 일출은 주가가 높은 편이다.
간절곶엔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큼직한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이름 하여 ‘소망 우체통’. 높이 5m, 가로 2.4m, 세로 2m, 무게는 무려 7톤이나 된다. 우체통 뒤쪽엔 관광객들을 위해 무료 우편엽서를 비치해놓고 있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세워놓은 게 아니라 남울산우체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진짜 우체통이다. 평일엔 매일 1회(13:00) 우편물을 거둬간다고 친절한 문구도 적혀 있다.
둘레의 조각상들도 뭔가 간절하게 구하는 자세다. 그러고 보니 간절곶 해맞이공원의 주제는 ‘소망’이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한 소망. ‘간절(懇切)’이란 한자어를 차용해 소망을 더욱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그렇지만, 원래 간절곶의 뜻은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이곳이 뾰족하고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튀어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간절곶 일출을 감상하며 새해 새 희망을 간절히 기원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울산을 둘러볼 차례. 간절곶이 울산의 남단에 있으므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울산은 한반도 남동쪽 동해안에 자리 잡은 공업도시다. 울산 서부엔 문복산·가지산·능동산·신불산 등 낙동정맥의 일부인 이른바 ‘영남 알프스’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남부엔 정족산·문수산·천성산, 북부엔 천마산·치술령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이 지나간다. 물줄기는 영남알프스에서 시작한 태화강이 울산 시내를 지나 동해로 흘러들고, 천성산에서 시작한 회야강은 울산 남부를 적시고 동해로 흘러든다. 태화강과 회야강 하구는 항구가 들어서기 좋고, 공업용으로 쓸 수 있는 물도 풍부해 울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공업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울산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울산에게 붙이는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라는 수식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라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부터 시작해 세계 최대의 중공업체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석유화학단지의 공장들…. 수직으로 솟은 높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이방인을 압도한다. 그리하여 일단 울산 여행에서는 바닷가, 특히 항구가 주는 평소의 어촌 이미지는 잠시 거두는 게 좋다. 울산이 초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생포 왜성에 올랐다가 공단지역을 지나 외황강을 건넌다. 외항강 하류 개운포 주변은 바로 처용설화의 무대다. 처용은 신라 헌강왕 때의 설화에 등장하는 사람인데, 신라 백성들은 동해 용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처용의 얼굴을 그려 귀신을 물리쳤다고 한다.
처용가와 처용설화는 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유산이다. 또 처용가에서 유래된 처용희(處容戱)는 신라·고려·조선시대에 궁중과 민간에서 널리 행해져온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지금의 울산 개운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개운포 앞바다에 떠있는 바위섬을 처용암이라 부른다. 매년 10월마다 태화강 둔치와 시내에서 열리는 처용문화제는 처용설화를 주제로 해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예술을 조화시킨 울산의 대표 축제로 꼽힌다. 개운포에 제단을 마련하고 처용을 모시는 의식을 시작으로 처용무, 처용가면 페스티벌, 처용과 헌강왕 행렬 등 다양한 행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예전 울산의 대표축제는 1962년 처음 시작된 ‘울산공업축제’였다. 이는 당시 새롭게 공업도시로 지정된 울산이 공업도시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다 1991년 이 축제를 폐지하고, 울산 남구문화원에서 지내던 처용제의(處容祭儀)를 처용문화제로 바꾸면서 울산시를 대표하는 축제로 삼았다. 그렇지만 처용문화제가 울산의 대표축제 자격이 있는가에 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 처용이 처음 나타났다고 전하는 개운포. 주민들은 포구 앞바다에 떠있는 이 바위섬을 처용암이라 부른다. / 장생포고래박물관 옆에 있는 포경선. 장생포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어 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그 논란을 들여다보면, 우선 처용가 자체가 외설적이라는 것이다. ‘서울 밝은 달밤에 /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따라서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울산 대표축제로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그럴 듯하다.
또 처용설화의 정신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관용’과 ‘화합’이 아니라 ‘불륜’과 ‘야합’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부인과 역신의 간통을 목격하고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처용의 태도에서 부인의 상대가 왕이나 권력자였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 대왕암공원 바닷가 쪽에 세워져 있는 울기 등대.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용은 자신의 부인을 이용하여 권력과 야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처용정신이 관용이라는 학설은 이제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불어 모 종교단체에서는 처용문화제를 전통문화행사로 보지 않고 종교행사로 해석하고 있다.
어쨌든 처용문화제는 현재 울산 대표축제로 인정을 받고 있으나 앞으로는 어찌 될지 그 운명은 짐작할 수 없다. 그렇지만 종교 문제나 처용에 대한 해석 여부를 떠나 처용가나 처용무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운포 처용암을 벗어나 장생포로 방향을 잡는다. 역시 양쪽으론 공단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장생포 고래박물관 가는 길은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울산은 ‘고래의 고을’이다. 특히 장생포는 예로부터 고래잡이의 중심 항구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항구였다. 어림잡아 한 해에 1천여 마리의 고래가 잡혔으며, 당시 장생포항 주변엔 고래고기 전문식당이 어림잡아 40집이 넘게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가 1986년 고래를 잡는 포경업을 금지하면서 장생포 경제는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 장생포 해양공원엔 거창한 고래박물관이 있고, 건물 왼쪽엔 위압적인 포경선 한 척을 올려놓았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귀신고래가 나타나는 ‘귀신고래 회유 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임을 알리는 표석과 귀신고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원래 이 천연기념물 명칭은 ‘극경 회유 해면’이었다. 그런데 이 극경(克鯨)이라는 단어가 귀신고래를 뜻하는 일본식 조어인데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하여 논쟁 끝에 최근 귀신고래로 낙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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