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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산유적(丁茶山遺蹟)은 사적 제107호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던 곳이다. 정약용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다른 한편으로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백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하였다.
- 출판
- 푸르메 펴냄 | 2007.09.10 발간
- 소개
- 21세기의 정신을 호령하는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 다산어록청상은 다산 정약용의 저작 속에서 엄선한 120개의 가르침을 엮은 책이다. 다산이「퇴계집」을 매일 나누어 읽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여『도산사숙... 더보기
청상(淸賞)은 ‘맑게 감상한다’라는 뜻
경세, 수신, 독서, 학문 등 10개의 주제로 분류
警世
열복과 청복
사람이 삶을 연장하여 오래살기를 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세상에 온갖 복락이 있어도 장수하지 않고는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란 것에는 대저 두 종류가 있다
외직에 나가서는 대장군의 깃발을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며 노랫소리와 음악소리를 벌여놓고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논다.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높은 수레를 타고 비단 옷을 입고서
대궐 문으로 들어가 묘당에 앉아 사방을 다시를 계책을 듣는다
이런 것을 일러 열복(熱福)이라 한다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을 씻으며
고송에 기대 휘파람을 분다.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고경(古磬)을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 한 다락을 갖추어둔다.
마당에는 백학 한쌍을 기르고,기이한 꽃과 나무 및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羽客)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朝野)가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런 것을 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가지 가운데서 택하는 것은 다만 그 성품에 따른다.
하지만 하늘이 몹시 아깨 잘 주려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이다.
그래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얻은 자는 몇되지 않는다
-병조참판 오대익 공의71세 행수를 축하는 서 序- ~다산어록 청상 중에서~
똥은 더러운 물건이지만 곡식을 기르는 거름이 된다
뉘우침은 잘못에서 비롯되나,덕성을 기르는 자양분이 된다.
더럽다고 똥을 거부하면 쭉정이만 달린다.
돌아보기 싫다고 허물을 덮으면 덕성을 함양할 수가 없다.
"허물이 잘못이 아니라, 뉘우침이 없는 것이 잘못이다.
사람은 뉘우침을 통해서 향상하는 존재다.
허물을 돌려 장점으로 만들어라.
위기를 바꿔 기회로 만들어라". ~다산어록청상중에서~
학문(學問)
"내가 부족한 것은 낮추어 남을 통해 배우고
남이 부족한 점은 따뜻하게 감싸 안아 일깨워 준다
상대의 기세를 꺾어 누르는 것은 기쁨으로 여기지 않는다
저만 잘난 독선은 학문의 길에서 치명적인 독이다 "
학문의 보람은 든든한 자기 중심을 지녀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체를 세우는 데 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그 높이에 갈맞는 사다리나 계단이 있어야 한다
사다리의 높이가 조금만 부족해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부족하면 더 노력해서 사다리가 닿을 때까지 더 노력하라 ~다산어록 청상 중에서~
학문을 하는 까닭
경전의 뜻에 밝은 뒤에 도의 본체가 드러난다.
도를 얻어야만 마음가짐이 비로소 바르게 된다.
마음가짐이 발라야 덕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런 까닭에 경학에 힘쏟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간혹 선유(先儒)의 학설에 근거하여,
같으면 무리짓고 다르면 공격해서 감히
의논조차 못하게 하는 자가 있다.
이는 모두 서책을 빙자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일뿐,
진심으로 선을 향하는 자가 아니다.
-〈반산 정수칠을 위해 준 말[爲盤山丁修七贈言]〉~다산어록 청상 중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편지를 자세히 보았다.
천하에는 두 개의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진리이냐 아니냐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하면 이익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의 기준이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돌아가지 못하고
강진에 생을 마치느냐는 것도 진실로 큰일이다.
그러나 당장에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것이다.
사람이란 때론 잡은 물고기를 버리고 곰처럼 미련한 방법을 취할 때가 있듯이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하는 일을 가지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꼬리를 치면서 동정해달라고 애걸한다면
만일 나라에 외침이 있을 경우,
임금을 배반하고 짐승 같은 적군에게 투항하지 않는 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
내가 그 꼴을 봐야 되겠느냐 내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내 운명이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나의 운명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천명만 기다리는 것은 진실로 도리가 아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돌아갈 수 없음은 이또한 나의 운명인 것이다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하지 말고 시일을 기다려 보는것이 도리의 십분 가까운 것이다
다시는 이렇다 하는 소리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