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 여의도 개발로 사라져 간 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지금은 사라진 밤섬
이 섬은 모래밭인 여의도와 달리 단단한 암반으로 된 섬이었다.
1960년대 말, 여의도 개발을 위해 엄청난 양의 돌과 자갈이 필요했던 서울시는 밤섬을 폭파하고 거기서 나온 돌 재료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오랜 세월 이어진 밤섬과 밤섬 마을이 사라졌다.
밤섬은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다.
높지 않을 때는 대개 여의도와붙어 있었지만, 물이 높아 있을 때는 여의도와 따로 분리되곤 했던 밤섬. 그래서 여의도와 이 섬을 한섬으로 보기도 했고, 독립된 섬으로 하기도 했다.
이 섬이 고양군에 속했을 때는 여의도와 함께 여율리(汝栗里)라고 불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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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철새들이 찾아드는 도심 속 습지이지만, 이곳은 원래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이 섬에는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그 중에는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배 목수들이 많았다.
이 밤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 과정에서 폭파되어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도 부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새로 개발한 여의도에 아파트와 여러 건물이 화려하게 들어서는 동안 밤섬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밤섬은 그리 크지 않은 이름이지만, 몇 개의 마을 이 있었다.
배를 저어 나간 마을 너믄둥개, 아낙들이 빨래하던 돌방구지, 부군당이 있던 당잿말 등.
그러나 이 마을들은 1968년 여의도 개발과 함께 섬이 사라지면서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키워 주었던 부군당만큼은 버릴 수 없다고 하여 차전동 마을에 다시 건물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오곤 했었다. 이른바 '밤섬 도당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