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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는 유대인인가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은 오랜 유대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옷부터 자동차, 심지어 집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액세서리로 가득한 이 플라스틱 인형은 어디에나 있으며, 연간 매출이 7억 7,500만 달러가 넘습니다. 바비는 계속해서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2023년 4월에 출시된 다운증후군 인형의 새로운 버전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바비 인형의 역사와 유대인이 이 장난감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비 인형과 유대인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소개합니다.
1. 선구적인 발명가
바비 인형의 발명가 루스 모스코비츠(Ruth Moskowicz)가 1916년에 태어났을 때, 그녀의 가족은 수년간의 격변 끝에 마침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루스의 아버지 제이콥은 러시아 제국 출신이었고, 제정 러시아의 많은 유대인들처럼 징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징집병들보다 훨씬 긴 25년간 복무해야 했습니다.
제이콥은 부대에서 탈출하여 미국행 배에 탔습니다. 뛰어난 철공이었던 제이콥은 이민국 직원들에게 덴버에 정착하여 그의 기술이 새 철도 건설에 도움이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그는 폴란드에서 아내와 일곱 자녀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루스는 덴버에서 열 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루스는 십 대 시절 유대인 댄스 파티에서 남편 엘리엇 핸들러(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또 다른 자녀)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결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당시 발명되고 있던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가구를 만드는 실험을 했습니다. 언제나 냉철한 사업가였던 루스는 엘리엇과 동등한 파트너로 일했습니다.
엘리엇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징집되었을 때, 루스는 엘리엇과 함께 새 회사인 마텔의 후원을 받아 디자인한 플라스틱 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루스와 엘리엇은 평화 시대의 새로운 번영을 누리며 플라스틱 장난감 제조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스와 엘리엇은 전통적인 유대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유대적 정체성은 항상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마텔의 성공이 커지면서 핸들러 부부는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자선가가 되어 유대적 및 세속적 명분 모두에 다양한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교육과 배경이었습니다." 루스는 설명했습니다. "유대인 윤리였죠.“
로빈 거버는 저서 『바비와 루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형과 그녀를 만든 여성의 이야기』 (2009)에서 1967년 이스라엘에서 6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루스가 보인 반응을 묘사합니다. 루스는 로스앤젤레스의 유대인 연합 지원 단체(UJA)에 항상 큰돈을 기부해 왔습니다. 전쟁이 선포되자 그녀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전화가 끊이지 않자, 전화를 받은 사람은 "UJA 사무실로 오셔서 전화 응대 업무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답했습니다.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마텔의 사장 루스는 엄청나게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시내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며칠 만에 그녀는 이스라엘의 전쟁 지원을 원하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고 기부금을 받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마텔로 돌아왔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하는 공공 서비스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기뻤어요."
2. 소녀들의 말을 듣는다
바비의 탄생은 루스 핸들러가 어린 딸 바바라와 친구들이 종이인형으로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느 오후에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대 장난감 회사들은 주로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아기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여자아이들이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목욕시키는 것만을 꿈꾼다고 여겨졌습니다. 좀 더 오래된 인형도 몇 개 판매되었지만, 이 인형들은 대개 거대한 아기 인형처럼 보였고, 화려함보다는 기괴함에 더 가까웠습니다. 유대인 어머니가 되어서야 현실 속 여자아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뭔가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바라와 친구들은 맥콜스 잡지(McCall’s magazine)에서 종이 인형을 오려 섬세한 종이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각자 인형을 들어 올려 어른들의 대화를 흉내 내며 말하게 했습니다. 루스 핸들러는 나중에 "이 놀이 패턴을 3차원으로 구현할 수만 있다면 정말 특별한 무언가가 탄생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1956년, 핸들러 부부는 유럽으로 긴 여름 휴가를 떠났고, 루스는 꿈꿔왔던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독일 "빌트-릴리(Bild-Lilli)” 인형이었습니다. 1950년대 중부 유럽 전역에서 이 인형은 선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빌트-릴리는 빌트 –짜이퉁 신문(Bild-Zeitung newspaper)에 실린 촌스러운 만화에서 유래했는데, 총각 파티 같은 날 어른들에게 장난으로 주는 선물로 의도된 이 인형들은 어딘가 음흉하고 추잡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이런 불편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 인형들은 잘 만들어졌고 아름다운 옷과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이 인형들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루스는 인형 몇 개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녀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자 일본 공급업체들은 깜짝 놀라며 인형이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항의했습니다. 루스는 인형의 특징을 바꿔 더 건강해 보이는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3. 소녀들에게 장난감에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
루스의 딸 바바라의 이름을 딴 바비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인형은 미국 시장의 다른 어떤 인형과도 너무나 달랐기에 루스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히틀러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한 비엔나 출신의 심리 치료사이자 유대인 혁신가인 어니스트 디히터 박사(Dr. Ernest Dichter)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비엔나로 돌아왔을 때, 디히터 박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의 집 맞은편에 있는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진찰하곤 했습니다. 미국에서 그는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스스로 동기 심리학(motivational psychology)이라고 명명한, 오늘날 흔히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분야의 초기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디히터 박사의 천재성은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질문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회사 회장들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추측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디히터 박사는 루스 핸들러와 함께 바비 인형을 만들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아동 마케팅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였고, 루스가 판매하려던 어른처럼 생긴 인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소녀들에게 어른처럼 생긴 바비 인형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비를 사람 크기로 확대하면 작은 발로 일어서지 못하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제품들은 소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디히터 박사는 191명의 소녀와 45명의 어머니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들이 바비 인형 시제품을 리뷰해 보라고 준 것을 한결같이 싫어했지만, 소녀들은 그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어른처럼 생긴 인형을 받아들이고 놀이를 하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를 연기했습니다. 디히터 박사는 루스에게 바비를 인형으로 마케팅하지 말고, 소녀들의 자기표현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마케팅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바비는 TV에 광고된 최초의 장난감 중 하나가 되었고, "인형(doll)"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959년에 출시된 바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녀들은 새로운 장난감으로 화려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에 열광했습니다. 이 인형은 명백히 소녀 중심적이었습니다. 마텔은 1961년에 핸들러의 아들 이름을 딴 남성용 인형 켄(Ken)을 출시했지만, 그는 부차적인 존재로 전략했습니다. 바비 인형의 세계에서 여자아이들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어른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4. 유대교의 다양성 가치 활용
루스와 엘리엇 핸들러는 종종 유대계 이민자라는 배경이 자신들을 열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반유대주의를 경험한 그들은 해로운 고정관념의 프리즘 대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940년대 설립 초기부터 마텔은 다른 미국 공장들의 관행이었던 인종 차별에 저항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사회 관계 협의회는 1940년대에 마텔에 편지를 보내 "공장 견학은 마치 유엔을 거니는 것과 같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장애인, 노인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텔은 전 세계 사업가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68년, 마텔은 바비의 "절친"으로 홍보된 크리스티라는 흑인 인형을 출시했고, 이듬해에는 줄리아라는 또 다른 흑인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1980년에는 첫 흑인 바비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오늘날 마텔은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색을 가진 170종이 넘는 바비 인형을 판매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원하는 경우 자신과 매우 닮은 바비 인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5. 반유대주의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다
루스 핸들러는 2002년에 세상을 떠났고 엘리엇 핸들러는 2011년에 사망했습니다. 이들의 회사인 마텔은 1960년에 상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바비가 유대인 장난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쿠웨이트에서는 1995년부터 바비 인형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듬해 이란은 바비 인형 판매 금지를 시도했고, 이란 소녀들이 가지고 놀도록 장려하는 "이슬람"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이란 정부는 바비 인형 판매를 중단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했습니다. 바비는 200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금지되었는데, 당시 푸틴 대통령은 바비가 서양 인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200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고,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은 이 인형을 "유대인 바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판매가 금지된 곳에서도 암시장에서 바비 인형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스 핸들러의 작품은 놀이를 통해 주변 세계를 인식하는 소녀들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바비의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외모와 지나치게 마른 체격 등 비판할 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바비는 소녀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도와주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강한 동기를 제공합니다.
지속적인 판매량, 끊임없이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는 포용과 다양성, 유대인이었던 과거를 바탕으로 한 바비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By Dr. Yvette Alt Miller.
참고: The Story of the World’s Most Influential Doll and the Woman Who Created Her (2009), author Robin Ge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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