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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 예배
성경: 계20:11~21:8절(신419)
제목: 백 보좌의 심판과 신천지(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구약에서 ‘여호와(주)의 날(종말)’은 하나님이 이 악한 세상의 심판을 통하여 그의 의인들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예언(약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날’은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인데, ‘여호와의 날(종말)’은 양적 시간 측면과 질적 시간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날(종말)’은 이 세상(옛 시대)은 끝나고 질적으로 새 시대(신천지)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종말론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구약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예언된 ‘여호와의 날(종말)’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즉 두 단계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그의 초림, 즉 그의 죽음(최후심판)과 부활을 통하여 질적(영적)으로 새 시대(천년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옛 시대(이 세상)가 그의 재림의 때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종말)에 주의 재림으로 최후심판을 통하여 옛 시대(이 세상)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며, 주의 죽음과 부활(복음)로 이미 영적으로 시작된 새 시대(천년왕국)가 완전히 완성되어 영원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의 종말론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최후심판으로 이 세상의 종말과 이미 영적으로 시작된 새 시대(천년왕국)의 영원한 완성을 통해서 이 세상의 썩을 양식보다 새 시대의 영생하는 양식을 더 중히 여기는 복음적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1. 백 보좌(하나님)의 최후심판으로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11-15).
여기 사용된 모든 동사가 미래에 너무 확실하기에 예언적 부정과거입니다.
첫째로 땅과 하늘의 종말입니다(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여기서 ‘또 내가 ... 보니’(11, 12)는 1절과 4절과 같이 연대적 순서가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주의 날(종말)의 최후심판의 환상을 보았다는 의미이며, ‘크고 흰 보좌’는 ‘그 위에 앉으신 이(하나님)’의 심판의 권세가 엄청나게 놀라울 정도로 크며, 의롭다, 즉 그의 최후심판은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땅과 하늘’의 최후심판은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입니다. 여기서 ‘피하여’는 ‘도망하였다’이며, ‘간데 없더라’는 이미 도망친 하늘과 땅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입니다. 왜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을까요? 우리가 의지하고 서 있는 땅과 하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되기에 그 앞에서 순식간에 깨져버릴 얇은 유리같이 약하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마도 이것을 상기하기 위해 지진이나 화산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보다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너무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죽은 자(불신자)들의 최후심판입니다(12-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하나님 앞에 최후심판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죽은 자들’(12)은 누구일까요? 먼저 ‘죽은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로서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져질 자들입니다(15). 여기서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을 전제합니다. 첫째 사망은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 사망(하나님과 분리)을 의미합니다(엡2:1).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 가운데 첫째 부활(살아서)하지 못한(4), 즉 ‘죽은 자들의 그 나머지들(모든 불신자)’(5)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큰 자(중요한 사람들)나 작은 자(하찮은 사람들)나 영적으로 죽은 모든 불신자는 이 최후심판, 즉 둘째 사망(불못)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즉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첫째 부활을 한 자들은 그의 십자가에서 이미 백 보좌의 최후심판을 받았는데, 이 심판을 다시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롬8: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자(불신자)들은 반드시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2b).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처럼 전지하신 하나님이 펴있는 책들을 보시고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그들을 심판하시며,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 즉 심판받는 ‘그들의 이름’이 혹시 그 생명책에 들어있는가를 일일이 확인하신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그의 최후심판이 절대 완전하시며 공정하시다’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또한, 영적으로 죽은 자(불신자)들 가운데 첫째 부활을 하지 못한 자들은 육체적 부활(둘째 부활)을 하여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것은 최후심판 받을 그들이 두 짐승과 같이 산 채로(19:20) 불못에 던져지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로 사망과 음부의 최후심판입니다(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음부나 무저갱은 불신으로 죽은 자들의 처소이고, 불못은 불신자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여 최후심판을 받아 산채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처소(지옥)입니다.
2. 영적으로 이미 시작된 새 시대(천년왕국)의 영원한 완성입니다(21:1-8).
첫째, 신천지입니다(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왜냐하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새(카이넨)’는 질적인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65:17절의 성취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은 천지의 재창조로서 이 세상의 변화와 시작된 천년왕국의 완전하고 영원한 완성입니다(벧후3:12-13). 이것의 다음 단계는 없습니다. 이것이 천년만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여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신부(21:9)인 성도들의 공동체이기에 완성된 천년왕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새 땅’(1)과 100%로 일치합니다. 이는 땅끝까지 복음 전파(선교)와 하나님의 최후심판으로 ‘새 땅’에는 거룩한 성도들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창조적 선교 사명(창1:28)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완성되어 에덴이 새 땅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고’입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은 인간이 스스로 건설하고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Missio Dei)’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우리 스스로 예비하고 단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엡2: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천지가 아무리 흔들려도 복음의 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고후6:1).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그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롬15:18-19). 이를 위하여 그의 복음과 성령님을 받은 우리는 세상에 강력하게 흘러가는 생수(성령)의 강들입니다(요7:37-39).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요6:28-29절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충성스럽게 동역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신천지, 즉 새 예루살렘의 내용을 설명하는 보좌에서 큰 음성입니다(3-4).
첫째로 설명하는 음성입니다(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그)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서 ‘장막(스케네)’이란 명사와 ‘계시리니(스케노세이), 즉 장막을 치시리니’라는 동사는 ‘하나님이 살 집’을 가리키기 위해 함께 사용된 용어들이며(7:15, 레26:11-12), ‘그 사람들’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2), 즉 성도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과 함께 계실 것이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의 영원한 성취, 즉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영원한 언약(사55:3)입니다.
이것은 옛 언약에서는 조건적인 약속이었지만(출19:5-6), 그 조건이 주의 날(종말)에 주의 십자가로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이것이 주의 날(종말)의 재림으로 영원히 성취되는 거룩한 성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설명하는 음성입니다(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기 ‘그 눈’은 ‘새 예루살렘의 눈’입니다.
모든 눈물, 즉 사망,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결과인데, 주의 날(종말)에 주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의인인 성도들도 주의 날(종말)에 주의 재림으로 세상의 최후심판 때까지 이 세상에서 고난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의인들의 거룩한 고난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는 처음 것들이 주의 날(종말)의 재림을 통하여 그의 최후심판으로 다 지나갔기 때문에 어떤 눈물도 영원히 없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신천지(새 예루살렘)를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일곱 말씀입니다(5-8)
첫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5a).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여기서 ‘새롭게’는 질적인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천지, 즉 새 예루살렘이 도래하는 방법입니다. 신천지는 인간의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에서 ‘새롭게 한다(만든다)’는 현재 시제로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 즉 옛것을 새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옛것 안에서 계속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고난의 역설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고3:18). 그래서 바울은 환난은 인내와 인격과 소망을 이룬다(롬5:3-5)고 한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5b). “또 이르시되, (왜냐하면) 이 말들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기록하라’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록하여 기억하여 계속 믿으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그의 말씀들은 신실하고(아멘) 참되니(아멘), 즉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됩니다.
셋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6a).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여기서 ‘이루었도다’가 예언적 완료이기에,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신천지, 새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설명(복들)이 이미 성취되어 완료된 것으로 요한에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참되신 말씀들(5a)대로 신천지, 즉 새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말씀들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넷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6b).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이것이 그의 말씀들이 신실하고 참되신 이유이며, 하나님이 요한에게 완료시제를 사용하여 ‘이루었다’(6a)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는 그가 우주 역사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모든 역사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하여야 할 두 가지 길을 설명하십니다(6c-8).
다섯째와 여섯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6c-7).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목마른 자’(6c)와 ‘이기는 자’(7)은 같은 선택을 한 자, 즉 하나님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한 자입니다. 여기서 ‘목마름’은 죄와 허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자들의 영적 목마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근원적인 영적 목마름은 알지 못하고 육체적 목마름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영적 목마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생명수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요4:13), 육체적인 목마름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마6:33). 특히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수 샘물(복의 통로)’이 될 것입니다(요4:14).
그리고 ‘이기는 자’(7)는 그리스도인의 다른 칭호입니다. 요일5:4-5절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이기는 자(정복자)’이며, ‘하나님 유업(영생)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한 자들에 대하여 일곱째로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들은 신천지, 즉 새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심판(20:11-15)을 받아 불못(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죽은 자(불신자)들입니다.
먼저, 그들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것’,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과 그의 복음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랑이 없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폭력과 살인과 도둑질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점술가들은 마술, 점, 미신 등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로 당시에 중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행19:19).
마지막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도 복음의 진리를 부인하는 불신자들이며 적그리스도들입니다(3:9, 요일2:22). 우리 사회는 거짓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거짓의 아비는 마귀이며, 계속 거짓말하는 자는 불신자이며 적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것이니, 거짓말을 심각한 죄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주의 날의 초림으로 천년왕국(하나님의 나라)이 영적으로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계속 존재하는 이 세상이 주의 날의 재림으로 최후심판을 통하여 영원히 멸망하고, 이미 시작된 천년왕국이 완전하고 영원한 신천지와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될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날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새 언약대로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의 새 언약에 따라 속히 그날이 오기를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며, 그날까지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483장을 부르신 후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