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2-17 응답을 부르는 수준 높은 모세의 기도
시내 산에서 모세는 분노하며 이스라엘이 만든 우상을 부수고 불태워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 마시게 했고, 돌아설 자들을 가린 후 아직도 돌아서지 않는 3,000명을 죽여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쳤으며, 죄 용서를 하나님께 구함으로써 우상숭배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던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거주민들을 쫓아낼 테니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1,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1)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여전히 거리를 두셨고,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3)며 결별을 선언하셨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목이 곧은 백성인즉 하나님이 길에서 그들을 진멸할까 염려하셨기 때문(3)이다. 하나님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한 화가 누그러지지 않으셨다.
준엄한 소식에 이스라엘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슬픔에 빠져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살얼음판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와해(瓦解)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여지를 남기셨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순간(瞬間)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5) 장신구는 우상을 만들 때 사용했던 재료이다. 이는 우상을 만들 거리들을 아예 없애라는 것이다. 3,000명 희생으론 아니라는 것이다. 죄를 지을 모든 빌미를 확실히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태도를 보고 하나님이 함께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냈다(6).
하나님은 10개 재앙과 각종 이적을 통해 출애굽 시킬 정도로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끼고 이끌어 주셨지만, 죄를 범하면 바로 거리를 두고 함께하기를 거부하셨다. 그만큼 죄를 매우 혐오하신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장신구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미적거렸다면, 하나님은 그들과 영원히 이별하셨을 것이고, 그런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리셨을 것이다.
야곱은 20년 만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과거 20년보다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야곱의 집안에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연거푸 찾아왔다. 딸 디나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당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자녀들이 칼을 들고 세겜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제야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앙/불행의 시초였던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모두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의복을 바꿔 입은 후 20년 전 언약을 지키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다(창 35:1-4).
우리의 인생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가 하나님을 거스르게 하는 죄였기 때문이다. 이기심을 충족하는 죄를 사랑하여 붙들다 보니 늘 인생이 좌충우돌 어둠이었다. 여러분을 죄짓게 만드는 원인을 샅샅이 찾아라. 값비싼 귀중품[돈], 둘도 없는 자녀, 감정, 음식, 술, 담배, 게임, 도박, 심지어 자기 자신 등. 이런 것들이 죄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면 과감하게 제거하라. 경건의 모양만 바꾸지 말고 죄가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회개함으로써 없애라. 이기심을 채워주는 죄를 버리는 것은 눈물 날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래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태도를 보고 여러분에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신다.
이스라엘이 장신구를 제거하자 모세는 하나님의 의중[결정]을 듣기 위해 진영 밖에 설치된 회막으로 갔다. 모세가 회막으로 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까지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선처하셔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다시 함께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심정과 모세를 향한 응원의 표현이었다. 모세가 회막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구름 기둥이 내려와 회막 문에 섰다. 하나님의 임재를 본 이스라엘은 자동으로 각기 장막 문에 서서 몸을 구부려 절하며 예배했다(8-10).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송구스러운 마음과 하나님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잘 부탁한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최대한 몸을 낮춰 경배한 것이다.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11).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의문스러운 점을 꼬치꼬치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않았어요”(12) 그 사자[천사]가 누구인지, 어떤 방법으로 함께 할 것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과 같은 말씀에 근거하여 친밀감을 바탕으로 기도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어요”(12) 이름엔 그 사람의 인품, 성격 등 살아온 과정이 다 들어 있다. 하나님은 일전에 모세의 이름만 들어도 모세의 모든 것을 알 정도로 모세와 친밀했다. 모세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은총[호의]를 입었다. 은총/호의를 주고 싶을 정도로 매사에 모세는 하나님께 묻고, 명령할 때마다 토를 하나도 달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마음에 흡족하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모세는 이런 친밀감과 하나님의 은총을 앞세워 기도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다면 원하건대 ❶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❷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❸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12,13) 기도 내용을 보면, 내 뜻[계획]을 정하고 하나님은 도움이나 주는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교만한 기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내 경험과 힘으로 인도해 볼 테니 하나님은 그저 도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가 아니었다. 약속의 땅으로 어떻게 인도할지 주의 길/뜻/방법을 보여주고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요 심부름꾼으로서 무조건 하나님의 길/방법/뜻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생각을 바꾸셨다. “천사가 아니라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14)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생략[배제]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 단호하게 기도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5,16)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이스라엘에겐 아무런 유익이 없고, 이스라엘의 노력과 수고가 헛됨을 호소했다. 우리는 이때 어떻게 기도하는가?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 주시옵소서!” 그러나 모세는 달랐다. 하나님이 주인공이고, 하나님이 함께해야 이스라엘이 구별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스라엘이 가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을 높였다.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한 아부가 아니다. 모세는 출애굽하는 과정과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 도착하기까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올 수 없었음을 체험했다. 먹고 마시는 문제와 적으로부터의 보호가 100%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앞으로 약속의 땅까지 갈 때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모세는 과거의 성공으로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과거보다 더욱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님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았다. 모세의 기도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기도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높이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진심 어린 기도였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무능한 짓이라고 조롱할 수 있지만, 모세의 기도는 인간의 무능함을 정확히 깨닫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깊고 놀라운 통착력이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믿음이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없어서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17) 마침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화가 풀리셨다. 모세는 이번 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고, 모세라는 이름이 하나님께 한 번 더 각인되었다. 히스기야 왕도 곧 죽을병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기도했다.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사 38:3)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죽을병을 바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다. 평소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지 그 관계가 기도 응답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평소 하나님 뜻대로 살아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은가? 평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쌓아라. 어떻게 쌓아야 하는가? ❶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순종하고, 반항하거나 회피하여 불순종했다면 즉각 회개하고 순종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게 되고, 하나님의 기억 속에 여러분의 이름이 각인될 것이다.
❷기도할 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기보다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의만 드러내고,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격합니다. 즐겁습니다. 하나님이 가주셔야 나도 갑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졸졸 따라다니며 시킨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않으시면 나도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마실 수도 없고, 대적할 수도 없고, 반면 하나님이 있어야, 하나님이 행하셔야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마음 편히 잘 수 있고,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라. 철저히 하나님을 앞세우자. 이런 긍정 포인트가 쌓이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올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일치된 기도라면 그땐 “주시옵소서”를 하라. 기도 제목을 정해놓고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 된다. 그저 내 기도[욕구] 들어달라고 떼쓴다. 내가 뚫어야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런 기도는 이제 그만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