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그래야만 하나?
어떤 사람은 길을 걸을 때 보도블록의 금을 밟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시험 보는 날에는 머리를 감으면 안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속옷을 갈아입으면 시험을 망친다. 도서관의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날 보려던 책 중에서 한 권이라도 빠트리고 오면 다른 공부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문손잡이를 잡거나 남의 물건을 만진 후에는 꼭 손을 씻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고, 학교 오는 도중에 특정한 숫자의 차 번호판을 보아야만 안심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려고 했던 차를 놓치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런 일이 있으면 그날 하루를 망치는’ 어떤 일, 혹은 ‘꼭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일이 한두 가지쯤 있으며 그걸 ‘징크스’라 한다. 자신만 믿는 ‘개인 법규’이고 ‘자기 미신’이다. 운동선수와 도박꾼들이 특히 징크스가 많은 걸 보면 불안한 마음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의 성패가 노력보다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요인에 달려있으면 운수를 중요시하게 되고 그걸 미리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징크스는 자신을 얽어매는 새로운 속박이 될 뿐이다. 징크스가 많을수록 자유는 제한되고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상담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내담자의 불안도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자기 미신’이 몇 가지 있는지 먼저 알아보곤 한다. 대체로 징크스의 수는 문제의 심각도와 정비례한다. 불안이 심할수록, 자기 미신의 가짓수도 많고 내용도 별나다. 상담 중간중간에 내담자의 징크스가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내담자의 치유 정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그만큼 ‘자기 미신’은 정신 불건강의 확실한 징표인 것이다.
정신이 불건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집단적 ‘자기 미신’도 있다. 대부분의 정상인이 공유하는 것도 ‘자기 미신’이라 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그 내용이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더라도 ‘미신’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집단적 ‘자기 미신’의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요즈음 고등학교 3 학년들 사이에서는 대학교에 합격하려면 시험 100일 전에 ‘100일주’를 마셔야 한다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고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의심할 여지없는 집단적 ‘자기미신’이다. 그 내용과 방법은 해마다 달라져서 어떤 해는 남학생의 경우 여학생의 방석을 가져야만 하고, 여학생은 은반지를 해 껴야만 한다고 하고, 또 어떤 해는 원하는 대학교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남 몰래 묻어야 한다고도 한다. 수험생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이런 집단 미신까지 생긴다는 건 걱정되는 일이다. 그런 미신은 대개 시간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해괴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다가 혹시 정말 고약한 미신이 생겨서 공부 잘하는 학생까지 피해를 볼까 걱정된다.
이렇게 학생들이 신봉하는 집단 미신이 있는가 하면, 나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로 잡혀있는 집단적 ‘자기 미신’도 있다. ‘행복하려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아야만 한다.’는 생각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철저하게 유능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대표적인 예다. 언 듯 보기에는 옳고 당연하다고 여겨질지 모르겠으나, 그런 생각 역시 사실에 맞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허황된 기대일 뿐이므로 ‘미신’임이 분명하다. 그런 미신을 굳게 신봉할수록 마음은 더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당신에게는 어떤 미신이 있으며, 왜 꼭 그래야 하나?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