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공룡 길들이기
변금옥 글 | 소금북 | 2023년 11월 10일
책소개
시인의 가슴 속에는 아이가 산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손주 또래 아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손주들과 동시라는 ‘시소 타기’ 놀이도 한다. ‘할머니 오늘도 동시랑 잘 놀았어?’ 유치원 다녀온 손주가 물으면 할머니 시인은 ‘옳다구나’ 하며 아기공룡 같은 손주들과 ‘동시 시소’를 탄다. 오르락내리락 깔깔대며 동시 시소를 탄다.
동시집의 52편의 동시는 손주들과 ‘동시 시소 타기’ 놀이를 한 결과물이다. 시인의 유전자를 가진 두 손주처럼 동시집에서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직나직 따뜻한 음성도 들린다. 시인의 가슴 속 철학도 보인다.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독법이 필요치 않다. 쉽고 단순하고 간결하다.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처럼. 시인의 시 소재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 텃밭의 채소들이 음식의 재료가 되듯, 손주와의 일상이, 가족의 매 순간이 시인의 시가 되었다.
변금옥 시인의 마음속에서 볶고 끓이고 조물조물 무쳐 태어난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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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가 변금옥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에서 태어나 강원도 5개 시·군에서 초등교원으로 40년간 근무했다. 2022년 [시와소금] 신인문학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은 책으로 『또박또박 1막 11장』과 공저인 동시집 『동동동 동시 안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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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빗 / 변금옥
엄마한테 야단맞던 날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무릎베개 만드시고
아무런 말씀 없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셨다
한 번, 두 번.......
쓸어내리시는 동안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셨다
한 번, 두 번......
쓸어내리시는 동안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다듬어지고
소올 솔 잠이 찾아왔다
무릎잠 푸욱 자고 나니
어느결에 슬펐던 내 마음마저
곱게 빗겨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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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풍경 / 변금옥
내가 아기였을 때
할머니가 내 손톱 발톱
또깍또깍
봄볕 따스한 창가에 마주 앉아
이제는 내가 할머니 손톱 발톱
또깍또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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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굴리는 엄마 / 변금옥
엄마가 아프면
아빠도 나도
엄마가 된다
엄마는 혼자서도
엄마였는데
아빠와 나는 둘인데도
엄마가 못 된다
엄마가 아프면
갑자기 지구가 멈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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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장 / 변금옥
어젯밤엔
"내가 졌다, 풀한테 졌어."
잠꼬대까지 하셨다
고깟 풀이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이겼을까?
내가 도전해볼까?
"얏! 덤벼라, 으라차차차!"
큰소리 지르며 밭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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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뭐길래 / 변금옥
우리 할머니
시인이 되더니 시만 쓰신다.
"할먼!
놀자.
나랑 놀자."
"준영아, 시 하나 다오.
그럼, 내가 놀아줄게."
시가 뭐길래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시만 찾으실까?
시는
나를 참 심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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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새알이 동동 / 변금옥
동짓날 아침
할머니가 나와 동생에게
새알을 주워오라고 깨운다
참새가 대추나무 밑에
알을 낳았다고?
졸린 눈 비비며 찾다가
손 호호 불며 그냥 왔더니
식탁 위에 팥죽 두 그릇
그속에 하얀 새알이 둥둥
뜨거운 팥죽 후후 불며
새알심 건져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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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공룡 길들이기 / 변금옥
겨우 맘마, 맘마 소리만 하고
세 걸음도 못 가 풀썩 넘어지는
첫 돌 막 지난 내 동생 준서
내 장난감을 뺏고는
얼굴 빨개지도록 놓지 않는다
과자 한 개 집어 먹었다고
쏜살같이 기어와
"크르릉, 크르릉!"
공룡 소리를 낸다
참다, 참다 주먹이 올라가려는데
"아기 공룡이 참 귀엽지?"
형은 역시 형이라며 할머니가 웃으신다
"으으으윽......"
아기 공룡 길들이기 검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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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절로 입이 벙글어지는 동시네요.
참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