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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1환언특강(강석준집사님 정리)
고린도전서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복음중재로서의 성전
복음이 전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하기 위한 중심이 되는 교회가 필요하다.
교회가 있으니,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예배당이 필요하다.
성령도 길 가에서 임하지 않으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하셨다.
예전에는 성전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 계신 주님이 중심이다.
천주교에서는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중심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곳이라는 의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을 모신 곳이라는 의미에서 성전이라고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셨다.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의 성전으로 아버지를 모셨고, 그가 하늘로 가시고, 우리가 그의 몸이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 흘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들을 통해서 이루신 것이다.
오늘 성령을 보내신 것은 땅에서 예수의 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은 예수께서 완전히 저주받았지만, 부활은 오직 믿는 자에게만 보여주셨다.
복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에, 예수를 부활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듣고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본 자들은 열한제자, 승천하신 것을 본 자들은 오백여 사람이다.
그가 승천하시므로, 그는 저주스럽고, 불행한 이 세상을 떠나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셨다. 이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영광 받으시기 전에는 있지 않다.
여호와라는 하늘의 청지기의 임무는 끝나고, 주인이 보좌에 앉으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다.
본래 하늘을 지으신 것은 아들을 위하여 지으신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겸억하여, 하늘 보좌를 바로 상속하지 않으시고, 육신이 되어 죽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부활하사 영원히 아버지에게 복종하리라 하셨다.
우리도 이 땅에서 예수의 남은 고난을 가졌다.
교회가 세상에서 미움받는 것은 마귀로부터 미움받는 것이요, 율법으로부터 미움받는다.
예수의 고난이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는 것이다.
성령으로 인해서 우리 모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성령받으면 핍박도 없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육체는 성령을 받고 나서부터 고난이다.
성령받기 전에는 제자들이 순교당하지 않았지만, 성령받고나서 줄줄이 순교한다.
사람들이 예수는 욕했지만, 성도들은 핍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스데반 사건이 일어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
오늘 오해하는 것은 그저 성령충만하면 그저 평안하고 행복한 줄 안다.
육체가 평안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성령을 우리 영혼에 모신 이후에는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우리는 끌려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받기 전에는 핍박받지 않으셨다.
그런데, 예수께 성령이 임하신 후,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광야는 굶주림과 기온 차가 심한 곳이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신 것이다.
구름이 뜨거운 온도를 식혀 주고, 불기둥이 밤에 따뜻하게 해준다.
이스라엘은 구름이 머물면 그 자리에 머물고, 구름이 떠나면 따라서 갔다.
이 세상을 광야로 표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배고프고, 고독하고, 저주스러운 곳, 마귀가 기다리는 곳이다.
예수께서 금식하시니 금방 마귀가 시험한다.
이와 같이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께서 그 때부터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진리가 들어와야한다.
진리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진리는 예수를 해석해주고,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한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니까, 세상이 미워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이상히 여기지 말라, 너희를 미워하기 전에 나를 먼저 미워하고, 나를 미워하기 전에 아버지를 미워하였다 하셨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니까, 그 때부터 핍박이 온다.
우리가 복, 복하는데, 예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에게 복이 있고, 상이 있다고 하셨다.
상은 은혜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위하여 핍박받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은혜도 받고, 상도 있다.
성령이 오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우리가 예수 믿어서 구원은 받았다.
그런데, 우리에게 보상이 있다.
그 상을 바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시는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신다.
은혜는 인간의 공로없이 백프로 하나님의 공로로 얻는 것이다.
가인은 아주 악한 자의 모형이다.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믿음으로 자기의 예물을 상달하였고, 가인은 상달되지 않았다.
모두가 종교성은 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아담 이후부터는 전 인류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죽은 아벨은 그리스도인, 곧 핏소리를 내는 자들의 모형이다.
가인은 종교인, 신에게 정성 들이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의 모형이다.
전 인류가 무종교가 사실은 없다.
가정에서 위계가 있으면 그것이 종교가 되는 것이다.
다 종교심은 있는데,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과 받지 않으시는 것이 있다.
가인이 살인자라서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살인은 나중에 한 것이다.
가인이 열심히 농사 지어서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자기 딴에는 훌륭한 신앙인처럼 하지만, 하나님은 종교인에게 관심이 없으시다.
오늘날도 예배를 드릴 때, 가인의 예배를 드리는가, 아벨의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구별하신다.
종교를 하나님이 수용하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오해해서, 경건함과 모양이 거룩함이 상달되는 줄 아는데, 그것은 육체의 예법에 불과한다.
영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없다.
아벨은 가인에게 죽었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핏소리를 들으셨다.
가인은 자기 아우를 죽인 살인자다.
그가 저주받아 쫓겨날 때, 자기가 여기에서 쫓겨나면 다시는 주를 뵙지 못한다고 하였다.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다.
가인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온다.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이 꽉 차 있는 가인에게 표를 주사, 가인을 해하는 자는 가인의 벌의 칠배를 얻는다고 하셨다.
우리가 주기도문할 때,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한다.
우리가 가장 큰 은혜 받은 것은 죄사함 받은 것이다.
다들 자기들은 가인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미워하면 살인하는 자라 하셨다.
우리가 가인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오늘 용서받지 못한 자들은 가인의 후예다.
살인자라도 그가 두려워하고, 살고자 하니, 구원의 표를 주어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하신다.
오늘 예수를 믿으면, 그 이름이 우리 영혼에 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 이름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
마음에 그 이름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리가 있다.
예수란 이름은 구원의 표다.
가인에게 준 표가 똑같은 구원의 표다.
우리는 가인보다 못한 악한 죄인이지만, 내게 구원의 표를 주사, 나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호받게 하셨다.
구원의 표를 가진 자를 정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
누가 감히 하나님이 의롭다 한 자를 정죄하리요.
창1-11장은 성경을 그림으로 볼 때, 바탕그림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태초부터 영원히 똑같은 것이다.
가인보다 더 악한 나같은 자에게 구원의 표를 주사, 나로 하여금 담력이 있게 하시고,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호하여 주신다.
마귀가 양심의 율법으로 사람을 좌절시키려 하지만, 그것들이 감히 해할 수 없게 지켜주신다.
그래서 평강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다 구원의 표를 가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살려주소서. 하나님 아버지는 어디 계시나이까 한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 타락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성품도, 말씀도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똑같다.
그가 하신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하신 말씀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보이는 하나님을 보내주셨다.
예수, 하나님의 이름이 내 안에 있다.
그는 역사속에 오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없다할 수 없다.
예수께서 하늘로 가셔서, 눈에 보던, 만질 수 있던 그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 성령이시다.
성령을 모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것을 반복적으로 하면 자기 신앙이 견고해지고, 허튼 짓 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이 얼마나 완벽한가.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을 근심케하거나, 소멸하지 않으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는 없으나, 그대로 그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신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은 예수가 그대로 들어오신 것이요, 예수가 들어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와 계신 것이다.
성령은 더 충만하고, 충만해야 한다.
밥을 매끼니 먹듯이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
내가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숨쉬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은 성령으로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믿어도 별 것 아니요, 성령받아도 별 것 아니야 이러면 회복이 안된다.
단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령이 떠나지는 않으신다. 은혜로 예수의 피와 부활에 대한 은혜를 공짜로 얻었으므로, 우리가 혹시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소멸되지 않는다.
고린도후서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우리는 성령으로 보증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보증서는 인간의 행위나 공로로 주신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다.
우리가 가인보다 악한 죄인일 때,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죽으셔서, 우리 죄가 예수께 옮겨갔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 죄를 옮겨가셨다.
내 죄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옮겨갔기 때문에 죽으신 것이다.
의인을 누가 죽일 수 있는가.
죄가 없으신 분이 죽으신 것은 내 죄를 그가 옮겨가신 증거가 된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누가 죽일 수 있는가. 그가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담당하신 증거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힘쓰는 것도 아니고, 애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믿는 것이다.
예수의 죽으심은 그가 딱하신 것이 아니라, 내 죄가 그에게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이 은혜라는 것이다. 오직 감사뿐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내가 소유한 것이다.
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예수 믿고 나서 사기치고 별짓다해도 그 은혜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은혜베푸신 것에 대해, 저 사람 안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은혜는 영원히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면 상을 받을 수 없다.
상은 우리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
경주자가 상 받기 위해서 달음박질 한다고 했다.
자기 스스로 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복과 상은 완전히 구분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복은 은혜로 받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수고해서 복 받은 것이 아니다.
목사가 축복할 때도, 아멘 하고 받지만, 자기가 수고한 것은 없다.
목사가 축복한 것을 진짜로 받아들이라.
목사가 축복할 때,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것을 대언하는 것이다.
모세를 이스라엘 앞에 신이 되게 하신 것처럼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축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대언하는 것이다.
설교 때, 여러분 축복받기 바랍니다 하는 것은 목사가 하는 것이지만, 축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령, 곧 계시를 내리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진지 잡쉈냐고 하지 않는다. 명령한다.
이와같이 위의 본문은 복을 명한다.
우리가 싸가지가 없어도, 은혜로 복을 주신다.
우리가 완전 죄인이었을 때, 죄사함받았다고 명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기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상은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공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이 성적표를 나누어주고, 도장받아오라 하니까, 자기가 성적표를 위조했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보니까, 도장은 찍긴 찍었는데, 이상하고, 글씨도 선생님 글씨와 달라서 실컷 두드려 맞고, 선생님께도 두드려 맞았다.
상은 은혜로 주는 것이 아니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이다.
상을 바라지 않는 것은 신앙 자체가 기형적인 것이다.
아기가 나면서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 아이가 열댓살 살다가 죽지만, 그 아이를 부모가 극진히 사랑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상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순종하여 상을 받자.
상 받을 일이 크건만,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상은 자기가 죽을 힘을 다해서 땀을 흘려야 한다.
예수를 믿고 은혜받고, 성령이 오셔서 보증하시고, 일하게 하신다.
성령이 우리가 예수의 피와 살을 가진 것을 보증하시고, 보증만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것은 날로 새로워져야지, 후퇴하면 안된다.
우리 모든 육체는 연약한줄 안다.
그러나, 계속 올라가야 한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일하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니, 하늘로 올리우는 날까지 오직 성령으로 수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받기 위해서 부단한 힘을 써야 한다.
우리의 그런 수고를 이 땅에서 하면서 건물도 짓는다.
여기서 오병이어의 영감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교회 역사를 잠깐 말하겠다.
정말 돈이 없었다. 어떤 분이 금가락지를 주고, 내가 부흥회를 다니면서 얻은 돈으로 월세로 계약을 했다.
그 때, 교인들이 너무 가난해서 헌금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교회 한달 헌금으로 전기세 내면 끝내지, 월세를 낼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다시 옮겼는데, 거기서 교인이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이 집도 셋방인데, 교회도 셋방 가느냐고 기왕이면 큰 교회, 축복받은 교회 오라고 하니 그리로 갔다.
그러다가, 신길동에 땅을 샀다.
논이고, 수렁이었고, 신길본당 뒤는 강이었다. 십자강이라고 불렀다.
신길본당 자리 근처는 700평이었는데, 하나는 할아버지가 갖고 있고, 하나는 교수가 갖고 있었다.
여기는 매립을 해서 땅값도 비싸고, 대지로 되어있었다.
이 땅에 배추를 심어놨는데, 여기에 예배당 지었으면 좋겠다고 흥분했다.
몇몇 교인을 데리고 이 땅을 보면서 땅아 돌아오라 외쳤다.
땅주인이 그 소문을 듣고 왔다.
그 사람은 굿하는 줄 알았다.
남의 땅에서 뭐하느냐고 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팔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다른데는 평당 4천원이었는데, 할아버지는 평당 만칠천삼백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돈도 없었기 때문에 깎지도 않았다.
가지고 있던 돈 전부로 계약했다.
계약금은 땅값의 십분의 일을 주어야 하는데, 내가 준돈은 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은 계약한다는 계약금으로 하자고 했다.
이것을 한주간 이내에 사지 않으면 그 돈은 그냥 가지라고 하고 각서를 썼다.
부흥회해 가서 사례를 더 많이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사례를 많이 받아서, 딱 계약금이 치루어졌다.
만이개월만에 잔금을 치루어야 했다.
계약은 했는데, 아무리해도 잔금을 치를 방법이 없었다.
이제 중도금 날짜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사정했다.
어차피 이 땅을 사려면 은행에게 빌려서 사야하니,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서 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펄떡 뛴다.
어차피 등기부등본 이름이 할아버지 이름으로 되어있으니, 못갚으면 그냥 할아버지의 것으로 하면된다고 했다.
월이자가 3부5리였다. 이자를 달라는 대로 주기로 하고 빌렸다.
거기에 커미션도 상당히 붙였다. 달라는 대로 다 주고 깎지 않았다.
한달내에 다 갚아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일년을 부흥회에 다녀도 갚기 어려운 돈이었다.
맘먹고, 강단에서 새벽4시부터 10시까지 기도했다.
버스타고 가다가 조흥은행 본점이 보여서, 마음이 후끈 달아올라 내렸다.
거기서 높은 사람 하나 붙들고 매달려야겠다고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도 누르지 않고 올라갔다.
8층에 딱 서니, 감사실이라고 써있었다.
은행에서 세번째로 높은 사람이었다.
개척하느라고 새까맣고, 비쩍 마른 사람이 감사를 뵙겠다고 하고 들어갔다.
감사에게 나는 침례교회를 개척하는데, 땅을 사려고 하니 돈이 없다. 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식으로 하라고 했다.
몇가지 조건을 말하는데, 아무 자격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다섯시간을 기도하고 갔다.
그 사람이 회의가 끝날 시간을 맞춰서 갔다.
어제 설명했는데, 안된다고 했다.
그 다음날도 기도하고 찾아갔다.
안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알아들어야지 하면서 실컷 챙피를 당했다.
나중에 5-6번 가다가 편지를 썼다.
예수께 열매를 드리지 못한 무화과 나무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하루 건너서 갔더니, 감사가 자기가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화가 나고 고민한줄 모른다고 말했다.
자기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침례교를 다녔는데, 이것은 협박이라고 경찰에 알릴까 별고민을 다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기도했다. 그 사람은 기도해도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는 경비에게 끌려나갔다.
밑에서 경비 피해서 들어가고, 경비에게 끌려나갔다.
그렇게 21번을 찾아갔다.
21번째 찾아간 날은 할아버지에게 돈 줄 마감날이었다.
그냥 서류 다 가지고 오시라고 조흥은행 본점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입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8층에서 열렸다.
내내 핀잔만 주던 비서가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감사도 허허 웃으면서 대접해주었다.
누가 나를 찾아오면 되냐고 했느냐고 물었다. 우물우물거리니까, 그 사람을 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남대문지점으로 가라고 했다.
거기에 쌓여있는 서류에 이후락, 이후락 써 있었다.
내 서류는 제일 밑에 있었다.
남대문 지점장이 한참을 보더니, 이 감사와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짜증내면서 점심먹으러 갔다.
나는 할아버지랑 그냥 한참 기다렸다.
커미션을 기대했는데 받지 못하니 짜증냈다.
마감 5분전에 돈이 딱 나와서 땅임자에게 주었다.
그들도 놀랬다.
무조건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갚을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집회를 다니면서 사례받는 것을 한푼도 쓰지 않고, 그것으로 매월 이자를 다 갚았다.
십년을 계획했는데 6년만에 나혼자 다 갚았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자기가 이자를 2-3개월을 적어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프로 망한다.
나는 그 때 1류 부흥사였기 때문에, 많이 받았다.
그 땅부터 줄곳 빚을 얻어서 땅을 사고, 교회짓고 했다.
이 지역이 다들 조각조각난 논이었다.
내가 삼십여가지 땅을 샀지만, 다섯평, 열평되는 것을 나오면 사고 나오면 샀다.
알 하나를 그냥 혼자 까먹는 사람하고, 그 알을 병아리로 만들고 키워서 닭을 만들 사람중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겠는가.
유대인들은 일단은 미국에서 음식장사를 먼저 한다고 한다.
음식장사는 손님이 먹고남긴 것을 자기들이 먹을 수 있다.
또,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정보를 얻는다. 그렇게 훈련이 되어야 다른 것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실패가 별로 없다.
나는 언제나 이자를 갚을 수 있느냐를 따졌다.
이자만 갚을 수 있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니까, 이 땅을 살 때 당시보다 지금은 2천배 넘게 올랐다.
5년내지 십년전에 사람들이 관심없는 땅을 나는 샀다.
그러니까, 땅값도 쌌다.
큰 땅을 사려니까, 교인이 부흥되어야 한다.
이자를 갚기 위해 교회가 부흥되어야 하니, 죽을 힘을 다해서 9부까지 예배를 드렸다.
이자를 갚을 능력이 있어도,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으면 그 다음을 할 수 없다.
영감은 가만히 요령만 가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이자만 갚으면 되는데, 그 다음은 원금을 갚기 위해 교회가 부흥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믿음과 신령함과 실천이 필요하다.
깊은 물에는 본래 고기가 없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얻는 것이 없지만, 예수께서 던지라 하시니, 말씀에 순종하여 던집니다 하니 그물이 가득찼다.
믿음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안되 하면 원래 할 수 없다.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하든 해야한다고 하면 된다.
조흥은행 감사가 우리 교회 대출해 준 다음에 한달 뒤에 직위가 올라갔다.
그리고, 평직원으로 도와주던 사람도 계장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믿고, 할 준비를 해야한다.
가만히 앉아서 믿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한다.
믿음의 기도와 어떻게 해야할 지혜를 구하라.
주여, 내가 믿으니, 성령으로 지혜를 주옵소서.
성령의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