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깨어나다 / 최미숙
책 표지도 정했으니 출판사로 넘기면 끝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 고지가 눈앞이다. 수필집이 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올(2022년) 초 전남문화재단에 지역 문화 예술 육성 보조금을 신청했다.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발넓은 양 교장이 같이하자고 해 얼떨결에 최 교장님과 셋이 참여했는데 보기 좋게 나만 떨어졌다. 일찍부터 글을 썼던 사람과 같은 선에서 출발하려고 하다니 꿈도 야무지다.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별 욕심 없었는데 오기가 생긴다. 마침 순천시립 도서관에서도 보조금을 준다고 해 전화하니 신청자가 많았는지, 100명이 다 차고 후보 일곱 번째라고 했다. 가능성은 있냐고 물었더니 9월쯤 포기하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며 기다려 보란다. 11월 말까지 100명이 넘는다고? 1년도 안된 그 짧은 기간에 책을 낼 만큼 글을 많이 쓴다니 놀랄 일이다. 대단한 능력자가 많기는 하다. 책 쓰기 열풍이 불긴 한 모양이다.
문화재단에 전화해 떨어진 까닭을 물었다. 담당자가 출장 갔으니 돌아오면 연락준다고 한다. 다음날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다시 했다. 서류는 이상이 없는데 실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작가나 기존에 활동한 사람 말고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안되는 거냐며 한마디 했더니 그런 의견이 많아 고민한다고 말한다. 영혼 없는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싶어 끊었다. 원고도 부족하고 아직은 한참을 더 갈고 닦아야 하는데 무슨 욕심인지 창피했다. 그래도 일단 목표는 정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외장 하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동안 모았던 원고와 강의하려고 애쓰고 만든 자료를 다 잃었다. 그나마 '일상의 글쓰기' 카페에 글이 있어 다행이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4학기 동안 올렸던 글을 내려받았다. 처음에 썼던 것을 다시 읽으니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하나하나 다시 고치고 여러 편을 새로 썼다. 260페이지가 넘는 수필집을 내려면 50편이 넘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다. 방학 내내 원고 정리와 글쓰기에 매달렸다. 또 관련 책 여러 권을 사서 읽었다. 세련된 글은 아니지만 한 편 한 편 쌓여가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처음에는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또 떨어지면 상처받아 그만둘까 두려워 마음먹은 김에 꼭 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포기자가 생겨 내 차례가 됐단다. 다행이다. 일단 보조금을 받는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가야 했다. 원고를 4부로 정리해 실을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최 교장님과 김 원장님이 만든 책을 보니 희망이 생기고 힘도 났다. 출판사에 전화했다. 추석이 지나고 9월 19일 다듬은 원고를 넘겼다. 수필집 제목은 ‘누구나 한때는 있었는데’로 정했다. 엄마가 암과 싸우며 생사를 넘나들 때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젊은 한때는 다들 꿈도 많았을 텐데 힘없이 스러져 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슬퍼 일찍부터 생각해 두었다.
10월 초 가본이 왔다. 내 글이 활자화돼 나오니 신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어색하고 틀린 곳을 고쳐 다시 보냈다. 두 번째로 원고 뭉치가 왔다. 눈에 보이는 것만 고쳐 양 교장님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빨리 책으로 보고 싶었다. 주말 지나 원고를 받아 보니 사방이 녹색 줄이다. 자기 것은 틀린 곳이 안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이렇게 많았다니. 다시 손봐 출판사로 보냈다. 우편으로 왔다 갔다하니 시간을 많이 낭비해 내 원고 편집 담당 직원과 직접 카톡으로 이야기했다.
완성본이라며 피디에프(pdf) 파일이 왔다.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문단 구분이 안 된 곳, 띄어쓰기, 어색한 문장이 또 있다. 다시 표시해 이번에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친절하게도 편집부 직원은 바로바로 고쳐주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말에 한 번 더 점검하라는 문자까지 보내왔다. 잠자기 전 다시 원고를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눈에 띈 것이 있다. 월요일 출근해 마지막 수정을 부탁했다.
드디어 일주일 후면 결과물이 나온다. 남들이 낸 책을 보며 그냥 쉽게 만들어졌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표지 그림은 물론 글씨체까지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느라 자꾸 미뤄졌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표지도 정하고, 사진까지 새로 찍었으니 다 왔다. 올해 세운 목표는 이룬 셈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배운 게 아까워 4월부터 학생 아홉 명에게도 글쓰기를 지도했다. 8개월 동안 쓴 글을 정리해 그것까지 출판사에 넘겼다. 애들 책도 곧 나온다. 100부를 찍어 6학년 학생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계획서 낸 것과 혁신 학교 예산에서 200만 원을 미리 확보해 두었다. 그 돈을 쓰려고 한다. 친구 글이 책으로 나온 것을 보고 자극받아 도전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좋은 일이다. 내년에도 계속할 생각이다.
올 한해는 무척 바빴다. 수업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나와 애들 글에 매달렸다. 그래서 더 뿌듯하고 보람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먼 세상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렸더니 드디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오늘따라 가을 하늘이 참 곱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지만 어느새 낙엽이 내려 앉아 길을 덮었다. 그 위로 나와 아이들 책이 춤을 추며 펼쳐진다.
첫댓글 <날아라 종현아>도 실렸겠지요? 정말 좋은 글이어서 지금도 제목이 생각나요. 작가 대열에 합류하신 거 축하드려요. 모임 때 책 볼 수 있겠네요.
축하드려요. 선생님, 그리고 너무 훌륭하세요.
전남문화재단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던것을 선생님의 재치로 글 한편을 만들어 내셨네요.
실적을 빙자해서 떨어뜨리고, 저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출판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모임에서 재미있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 수고로운 과정을 다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멋진 작가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교수님이 인정한 글씨기 반 우등생이시니 좋은 책 기대합니다.
항상 격려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미숙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책 내는 과정을 선생님 글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됩니다.
대단하십니다. 정말 바쁘게 지내는 일상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책이 기대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큰일 하셨네요. 부럽고 기대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글 보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글쓰기반의 모든 분을 알게 된 것도 저에게는올해의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
하하!
제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군요.
기분 좋아요.
글쓰기 반의 동료로 오래도록 함께 하시게요.
책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