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무단청에 지나온 세월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사찰 대곡사(大谷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혜근(惠勤)이 창건. 창건 당시에는 태행산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원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범종각·요사채 등을 새로 지었다.
1687년(숙종 13) 태전(太顚)이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현재의 비봉산 대곡사로 바꾸었으며,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90년 법의(法義)가 주지로 부임해 나한전과 산신각·일주문을 세우는 등 불사를 꾸준히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대곡사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다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인도 승려 지공의 생존 연대, 대곡사 경내에 있는 다층 석탑의 양식, 등을 들고 있다.1960년 앞 텃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후기 조성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고려 초기의 다층석탑 그리고 등의 자료로 미루어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세월이 오래되고 유구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한다.
대곡사 경내에는 보물 제1831호 의성 대곡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39호 대곡사 명부전(大谷寺 冥府殿),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5호 대곡사 다층 석탑(大谷寺 多層 石塔) 고려 말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13층 청석탑(靑石塔)과 석등 대석,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61호 대곡사 범종각이 있다. 또한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26호 「의성 대곡사 지장보살도」,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26호 「의성 대곡사 삼화상 · 조사 진영」이 있다.1960년 출토된 금동불상 등의 유물이 전한다.
대곡사 일주문 측면에서 보는 일주문의 기둥은 굵기와 배흘림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일주문과 대곡사의 사이에는 폭이 5~6m정도의 계곡이 있으며 "엄희섭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선심교 일주문에서 대곡사로 건너오는 다리가 먼저 눈에 띈다.
종각 앞쪽에 오래된 부도와 최근에 만든 석등이 함께 부도전을 이루고 있다.
대곡사 현판이 달린 범종루(보물2121호). 200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 곳에 커다란 법고가 달려있었는데, 그 해 새로 지은 종각에 옮겨졌고 지금은 누각으로 사용되고 있는듯 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의 중층누각으로 종루로는 엄청 크다고 할 수 있다. 절 영역에서 일직선축의 대웅전보다 한 단 아래 위치한 범종루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창건,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1605년(선조 38) 대웅전과 함께 중창되었고, 1687년(숙종 13) 태전선사(太顚禪師)가 다시 중창 하였다고 전해진다.
종각 2009년 새로지은 종각으로 법고는 앞건물 범종루에서 그대로 옮겨왔지만 범종은 작은 규모로 새로 만든것으로 보인다.이 건물 또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나중에 지은 건물이지만 단청이 없다.
경내의 석탑은 왠지 기단부의 형식과 색상이 맞지 않는것으로 중수과정에서 조립한듯 싶다.
대웅전은 보물 제1831호.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1687년(숙종 13)에 태전선사(太顚禪師)가 중건. 자연석을 막돌쌓기로 기단을 세운뒤 동향으로 건물을 세웠으며, 내부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고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금동 석가여래 삼존상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소조(塑造)로 된 13위의 소형 여래 좌상이 놓여 있으며, 석가여래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보살상이 놓인 단의 문양에도 단청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지금은 색바랜 기단으로 고즈넉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다포계 형식의 포작은 내외 3출목이며 건물의 전후 좌우면 기둥간격을 동일하게 하고, 주간에 두구씩의 공포를 배치하여 지붕하중을 안정되게 받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건축공간계획과 구조계획이 함께 설계된 세심하고 능숙한 기법을 볼 수 있다. 기둥이나 보 등의 구조부재는 섬세한 가공이나 미적 의장성은 최소화하고, 가구의 구조형식은 간결하면서 명확하게 결구되어 있다.
청석탑(靑石塔), 대곡사 다층석탑 대곡사의 대웅전 앞에 있으며, 탑몸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이다.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절을 창건, 대국사라 이름하였다가 다시 대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대곡사 다층석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보물 제518호) 보다 조금 늦은 고려 초기 11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 각층의 몸돌이 남아 있지 않고 지붕돌도 약간의 손상을 입었지만 12층까지의 지붕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고려 초기의 청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 준다.
전체 높이가 173㎝로서,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된 탑신부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남아 있다. 땅에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기단부의 바닥돌은 사각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함께 기단부를 형성하는 하대석이나 중대석, 연화대좌, 상대석이 차례로 놓여져 있다.
탑신부는 현재 12층이 남아 있는데 각층은 몸돌은 없고 지붕돌(옥개석)만 쌓여 있는 상태이다. 각층 지붕돌은 위로 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어 있는데 6층과 7층은 체감비율이 급격히 줄어 들어 그 사이 한층의 지붕돌이 없어진 것 같아 원래는 13층을 이루었으리라 짐작된다.
청석탑(靑石塔) 탑신이 없는 다층 석탑. 탑 중심으로 뒷면에 대웅전, 전면에 범종각이 있고, 명부전과 요사채가 좌우에 있는 ‘口’형(形)의 가람 배치(伽藍配置)이다. 그 밖에 나한전, 산신각, 종무소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 적조암, 진영각 등이 있다
명부전은 대곡사의 부속 전각으로, 사후 세계를 담당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경에 중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39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경내의 다른 전각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 이후 여러 번 중수를 하였고, 창호 구성 수법과 치목 방법 등 건축 수법에서 17~18세기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산신각 대웅전 뒷편에 위치, 양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대곡사에서 일주문과 산신각만이 단청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사채 앞쪽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 수령이 꽤 되어 보인다.
나한전(羅漢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전각이며, 산신각(山神閣)은 정면과 측면 각 1칸씩의 맞배지붕 전각이다.
1647년(인조 25)에 건립된 적조암은 원래는 지공 선사, 나옹 선사, 무학 대사를 함께 그린 영정 1점과 청허 서산 대사, 유정 사명 대사, 연화당의 영정 등 4점의 영정을 보관한 영정각이었으나 지금은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극락전과 산신각을 새로 조성하였다.
진영각에는 지공과 혜근·자초(自超)·휴정(休靜)과 유정(惟政) 등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