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합성, 혹은 틈새, 전이가 공감각이다. 언어 디자이너는 공감각을 통해서 언어의 다채로움을 만든다. 또한 언어 디자이너는 언어가 얼마나 자유롭게 서로 결합하고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서로 어울리는가를 안다. 시인은 감각의 자유로운 섞임을 통해서 미적 신비로움을 낳을 수 있다. 어머니의 가슴을 피아노 건반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가 보면 어떨까? 혹은 구름의 맛을 느껴보고, 시간으로 꽉 찬 수프를 먹어보면 어떨까? 어떤 시인이 필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따가 목소리를 보여주세요!” 감각이 자유로워지면 삶은 그만큼 풍성해진다. 코로 음악을 듣고 귀가 먼 여행을 떠나며, 목소리의 맛에 취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충만하겠는가.
■ 다음 구절들이 어떻게 공감각이 되는지를 지적해보자.
① 파도 소리 위를 걷다 보면 달빛의 파동이 나를 만진다 ② 소나무에 악보를 붙여주었더니 대롱대롱 열린 여름 냄새 ③ 비의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철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④ 그녀의 표정에서 오늘의 날씨가 뛰논다 ⑤ 얼룩진 목소리가 바람으로 뒹구는 오후 ⑥ 종로를 걷다 보면 길에 엎드린 목소리가 나를 쳐다본다
①에서 ‘파도 소리’라는 청각은 ‘달빛’이라는 시각과 ‘만지다’라는 촉각을 만나 새로운 느낌을 주며, ②에서 시각적인 ‘소나무’는 ‘대롱대롱’이라는 시각과 함께 ‘여름 냄새’라는 후각을 만나 감각이 다중화된다. ③에서는 ‘편지’와 ‘울음소리’, ④에서는 ‘표정’과 ‘날씨’가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⑤, ⑥도 감각에 합성된 예이다.
[연습 12] 다음 단어들을 수식이나 서술어를 넣어 공감각이 되도록 해보시오.
① (죽은 엄마의 목소리로 꽉 찬) 얼굴 ② 구불구불한 길에서 ( ) ③ 고양이 ( ) ④ 엄마가 만든 소시지에서는 ( ) ⑤ ( ) 더위 ⑥ ( ) 프리지아 ⑦ 병원에는 ( ) ⑧ 냄새가 ( )
■ 다음 시에서 공감각의 예를 찾아보도록 하자.
조계사의 안마당에서 뜨개질을 하는 바람. 묵언기도하는 가로수는 나를 세상에 방생해주지만 도심의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어이, 놀다가!” 손짓도 하고 비둘기들이 눈을 부라리며 “꺼져!” 하고 뒤뚱뒤뚱 지나가요. 바람의 부적을 주렁주렁 달고 의지할 곳을 찾는데 나도 모르게 영가 천도법회에 와 있어요.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인가!’ 거리의 철학자에게 관상을 보려 하니 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어요.
화염경 독송하는 촛불이 바람에 나부끼고 참새 울음은 향불로 피어나 종이꽃에 불을 켜고 탑돌이해요. 부처님 가피를 입는 추사의 소나무가 위패를 모시고 있어요. 빗방울이 보시하고 가는 조계사 경내 회화나무 풍경 속으로 아버지와 가족들의 얼굴이 고추 먹고 맴맴 하고 있어요.
―이현재, 「바라밀다」 부분
위 시에서 감각은 자유롭게 섞인다. 바람이 뜨개질을 하고, 가로수는 묵언기도를 하며, 주체는 바람의 부적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촛불이 화엄경을 독송하고 참새 울음이 향불로 돋아나기도 한다. 감각이 꽤 자유롭다. 그 자유로운 감각을 통해서 정서를 발현한다.
[연습 13] 다음에서 사물이나 자연이 느끼는 감각을 섞어서 표현해보시오.
① 종달새 (울음에서는 피카소의 여인이 눈을 뜬다) ② 백지 위에는 ( ) ③ 신발이 ( )
■ ‘새 울음소리/ 촛불’을 여러 감각을 섞어 통일된 삶이 보이도록 짧은 시를 써 본다.
① 어치가 운다 어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달도 뜨지 않았다. 멀리 시간을 갉아먹는 개가 짖는다.
② 그날 밤 동생이 떠났다. 작은 방엣 우는 촛불은 굵은 눈물인 양 창가에 붙어 서서 금세라도 무슨 말인가 뱉을 듯
위 시는 1연에서 어치의 울음과 달, 그리고 시간이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섞이며 하나의 연을 구성하고 있고, 2연에서는 촛불과 창가, 눈물이 동생의 떠남을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개 짖는 소리는 시간을 갉아 먹고, 촛불은 눈물을 흘리며 창가에서 동생을 기다린다.
[연습 14] 다음의 빈같을 채워 다른 감각과 섞이도록 표현해보시오.
① 파란 하늘에서는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뛰논다.) ② 어머니의 말소리는 (납빛이었다.) ③ (뚱뚱한) 가격 ④ 피아노가 ( ) ⑤ 종이가 달을 ( ) ⑥ 한강이 (끈적한 감촉으로 나를 만진다.) ⑦ 도스토옙스키의 얼굴에서는 도박장의 다툼소리가 났다. ⑧ (얼굴 붉힌) 방 ⑨ 분필이 칠판 위 (로 걸어 다니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연습 15] 다음 (1)의 예를 참고 삼아 공감각으로 재구성하시오. 삶이 풍성하게 느껴지게 3행 이상으로 쓰시오.
(1) 눈(雪/眼)이라는 소재를 몇 개의 감각으로 합성한 예
밤은 눈들의 세상이다 발자국 소리도 죽여 가며 집 주위를 걷다가 불 꺼진 창문에서 죽은 사람처럼 가만가만 하얀 목소리로 들여다보는
(2)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에서 냄새를 맡아보시오.
(3) 쇠사슬에 묶인 자전거에서 느껴지는 표정은?
(4) 바람의 속살에서 나오는 웃음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시오.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1.20.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