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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이야기
이서진
당신, 밖을 좀 봐요.
무르익는 봄이 가득해요. 햇살을 흩뿌리듯 온 천지가 눈부셔요. 갖가지 꽃들은 한껏 피어나고 나무들은 연두빛 여린 순을 조롱하게 매달고 환해요. 그 속으로 보드라운 바람결이 간간이 들어차고요. 마당 너머 개울 자락엔 물이 오른 초목들로 언저리가 푸른 긴 띠를 둘러놓은 듯해요. 말간 속살의 수심이 보이는 수면으로는 정오를 한참 넘긴 봄 햇살이 자홍빛으로 발그레 물들고, 물새들 몇 마리가 한가로이 떠 있다 먹이를 찾는지 수면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물결이 후르르 파랑을 지으며 번지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당신과 내 얼굴에도 햇살이 가득 얹혔어요. 눈이 약간 시지만 볼에 와 닿는 말랑한 노곤함이 좋네요. 문을 좀 더 열어 볼까요? 보드라운 바람결도 느껴볼 수 있게요. 아휴…… 이 문틀은 손 좀 봐야겠어요. 뻑뻑해서 어떤 땐 잘 안 열리니 말이에요. 하긴 좀 오랜 세월을 지냈어야 말이죠. 사람이 나이 들며 노화가 되듯 사물들도 그럴 텐데. 아, 됐네요. 어때요? 문을 더 여니까 한결 시야가 트였죠?
우리 노래 하나 들어볼까요. 당신도 잘 아는 노래예요. 요즘은 참 편한 세상이에요. 전화기로 검색만 하면 아무 때나 원하는 걸 보고 들을 수 있으니. 아, 나오네요. 전화기를 여기 놓으면 화면이 잘 보일 거예요. 당신도 이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잘 알지요? 하긴 내가 이 노래를 아는 것도 당신 때문이었으니 잘 아냐고 물어보는 게 우습네요, 호호.
이 가수도 이젠 얼굴에 주름이 많이 덮였어요. 그래도 보기 좋아요. 웃을 때면 주름 사이로 유백색 목련꽃이 함빡 피어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고요? 역시 당신도 나와 같네요.
요즘 이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주름 골골에 담겨 있을 이 사람만의 이야기는 어떤 걸까, 라고요. 누구나 살아가며 삶의 주름을 갖고 있을 테고, 살아왔던 자락들은 그 속에 고스란히 담길 테죠.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얼굴을 보며 지난 삶의 노정을 살펴보게 되고요. 당신과 내가 지나왔던 시간도 그처럼 덧입힌 주름 안에 애틋이 묻혀 있을지…….
연~부~운홍 치마가 봄바~람에……(*)
모든 걸 한껏 내려놓는 묵직하고 낮은 노래의 시작에 나는 언제나 그랬듯 가슴을 지그시 누르게 돼요. 그런 나는 어쩌면 믿지 못할 꿈을 꾸듯 붕 떠 있을지 몰라요. 왜냐면 저 노래에 오래전의 누군가를 떠올리기 때문에요. 이루어지지 못할 안타까운 바람을 안고 평생 살아왔던 그의 아린 마음이 휘감아서요.
내가 열두 살 때였죠. 사위는 환한 봄 속이었어요. 우리 집 뒤에는 야트막한 구릉이 있었는데 산벚나무가 온통 군락을 지고 있었어요. 봄이 되면 그곳에서 떨어져 날리는 무수한 꽃잎들이 마당으로 내려 쌓였는데 마치 꽃비에 둘러싸인 듯 황홀했어요. 어디 마당뿐인가요.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에도, 어머니가 자주 쓸고 닦아 반들거리는 마루에도, 마당 수돗가의 대야에 담긴 물 위에도, 연초록이 한창이던 화단에도 내려앉았죠.
그래서인가요. 내 성장 시기의 봄날을 떠올리면 흩날리는 산벚꽃으로 온통 채워질 만큼 그 풍경들은 선연한 기표가 되었어요. 거기엔 한 사람의 존재 의미가 깊게 담겨 들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예요.
어느 날 오후가 한참 이울어 갈 무렵이었어요. 나는 마당 화단 가에 앉아 봄바람에 흩날려 소복이 쌓인 연분홍 꽃잎들이 예뻐서 손으로 쓸어 모으던 중이었어요. 대문이 비긋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어요. 우리 집 소작을 부치는 장 서방과 뒤따른 앳된 청년이었어요. 청년은 장 서방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스물을 갓 넘겨 보였어요.
두 부자는 대청마루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어요. 장 서방은 농기구를 사기 위해 장에 나왔다가 들렀다면서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청년을 마루에 있으라 하고 사랑방으로 들어갔어요. 어머니가 사랑방으로 식혜를 들여가며 청년에게도 한 잔 주었어요. 그는 달게 마시곤 내가 있는 화단으로 왔어요.
뭘 하니?
청년은 쭈그려 앉은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 무릎을 세워 앉으며 물었어요. 마주 본 그는 홑꺼풀의 얄팍한 눈과 눈꼬리가 약간 쳐져 선해 보이는 눈매를 지니고 있었어요. 그에 비해 우뚝한 콧날과 약간 기름하다 싶은 하관은 다부지면서 단정했어요. 숱 많은 머리칼은 나른한 봄 햇살을 받아 흑단처럼 반들거렸고요.
꽃잎이 예쁘네. 몇 살이야?
청년은 소복한 꽃잎과 나를 번갈아 이윽히 보며 또 물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 나를 바라보던 눈에 어찌 그리도 맑은 훈기가 가득 찼었는지요. 봄날 저녁의 잔잔한 훈풍에 감싸인 듯 난 잠시 혼곤했어요. 그런데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남자라 어색해서 머뭇대며 말했어요.
…… 열두 살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구나. 많이 컸네. 이름이 연경이랬지?
청년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나는 기억에 전혀 없는 사람이 이름까지 안다는 게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청년은 그런 내 모습에 말갛게 웃었는데 드러나던 치열이 참 가지런히 희었어요. 순간이었지만 가만히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요.
그때 바람결이 휘잉, 뒤채는가 싶더니 산벚꽃이 화르르화르르 떨어졌어요. 청년과 내게도 온통 내려앉아 둘 사이에 마치 연분홍 얇은 막을 드리운 것 같았어요. 청년의 모습이 거기에 가려 잠깐잠깐 흐려졌고, 그 막을 뚫고 나오듯 그의 손이 내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꽃잎들을 가만가만 털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내 감각으로 알 수 없는 찌릿함이 퍼졌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지금에야 그 느낌이 무언지 알지만 열두 살의 어린 그땐 아주 묘한 감응이었어요.
그리고 청년을 또 본 건 그해 가을이었어요. 장 서방이 한 해 동안 농사지은 쌀을 가지고 왔을 때였어요. 두 부자가 광에 쌀가마니를 다 부리고 나자 해가 뉘엿해지며 어스름이 내렸어요. 집에선 장 서방의 한 해 동안의 수고를 치하할 겸 저녁식사를 대접했어요. 장 서방은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에서 식사했고, 청년은 과수원 일로 한 철 와있던 일꾼들과 행랑방에서 밥을 먹었지요.
나는 그때 안방으로 가려고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일꾼들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문이 열려 있어 무심코 안을 보게 됐어요. 대부분 나이 든 일꾼들 사이에서 청년이 노래 부르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구성지고 마음을 긁어 파는지 멈춰서 홀린 듯 들었지 뭐예요. 백열등 알전구 불빛 아래서 귀한 걸 조심히 부여안듯 한 소절 한 소절 부르는 모습이 어찌나 처연하던지요.
청년은 노래 소절의 의미에 따라 눈을 지그시 감거나 크게 뜨기도 했고 슬프거나 기뻐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표정에 담아냈어요. 한 손은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고 한 손은 소절 의미에 맞게 아련하고 설레며 기꺼워하는 다양한 기호를 만들어냈는데, 마치 무대에 오른 신명 난 가인 같았어요. 불빛 흐릿한 공간에 번지던 그 모습과 노래는 열두 살 어린 가슴에 아주 깊은 울림으로 자리했죠. 검푸른 일몰의 대기 속으로 반짝이는 별처럼 스며들면서 애틋하게 휘감았고요.
당신 기억나지요? 앳된 청년이 연분홍 꽃잎을 쓸어 모으는 나를 보았던 그 날을. 어린 내가 초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정성을 다해 애틋이 노래 부르는 청년을 보았던 그 날을. 열두 살의 내가 기척도 없이 내리는 안개비를 맞듯 스물한 살이었던 청년의 존재에 방점을 찍었던 그 날을. 그 사람, 바로 당신이었죠.
그날 할머니와 어머니가 안방에서 식사하며 나누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신과 당신 집안에 관한 말이었어요.
장 서방네 아들이 이젠 장정이 됐더구나.
그러게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아마 중학생이었을 거예요. 그때 연경이가 다섯 살인가 그랬는데 바빠서 마당에 혼자 두었더니 저 아이가 어찌나 잘 놀아 주던지요.
지금 스무 살쯤 됐더냐?
곧 군대에 간다고 하니 그런가 보네요. 입대하기 전에 장 서방을 돕고 있는데 농사일도 제법 한대요.
군대 갈 때 차비도 하고 밥이나 사 먹으라고 이따 용돈 좀 넉넉히 주거라.
예, 그래야겠어요. 장 서방네가 형편이 잘 피지 않는지……. 저 아이는 공부도 곧잘 했는데 대학은 못 갔다고 지난번 장에서 만난 장 서방 댁이 그러더라고요.
없는 살림에 애들이 주르륵 어린데 대학까지 보내는 건 힘들었을 게다. 그나저나 아까 노랫소리가 들리던데 누가 불렀더냐?
저 아이가요.
그래? 저놈이 노래 잘 부르는 재주가 있었구나. 얼마나 짠하게 불러대던지 가슴이 우련해져서 콩나물 다듬던 걸 멈추고 한참을 들었니라.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눈 얘기로, 지난번 마당에서 당신이 나를 재회한 듯이 말한 걸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내가 기억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이미 만났던 거니까요.
당신, 자리를 옮겨 볼래요? 거기보단 여기가 볕이 한층 잘 들고 바람도 포시러워요. 어때요? 한결 좋죠?
어머, 저것 좀 봐요. 동구 초입에 있는 벚나무 꽃잎이 눈처럼 날려요. 예쁘기도 해라. 벚꽃 날리는 건 매해 보건만 어째 매해 새로이 보는 것처럼 경이로운지 모르겠어요.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봐요. 살아가는 것도 저처럼 꽃잎 휘황하게 날리는 꿈결 같은 행복이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니…….
내가 중학교 3학년 봄이었어요.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 당신을 또 보게 됐어요. 군대 갈 무렵 보곤 4년 만이었어요. 당신은 당신 아버지 심부름으로 읍내에 나왔다가 우리 집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잠깐 들렀었죠. 몇 년 만이라 나는 당신을 금방 알아보지 못했어요. 마루로 오르려고 막 신발을 벗던 당신도 나를 보곤 잠깐 누군가 하더니 곧 알아봤는지 슬쩍 웃음을 띠었어요.
당신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나에게 말했어요.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어?
당신의 목소리는 앳된 청년이었던 몇 년 전보다 훨씬 듣기 좋도록 묵직했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당신 말에 몸 어딘가에 극세사의 아주 부드러운 털이 닿듯 괜히 왜 간질거렸는지요. 얼굴도 화끈거리는 것 같고요. 한창 사춘기여서 그랬을까요? 호호호.
이젠 키도 많이 커서 금방 알아보지 못하겠구나. 만나서 반가워!
당신은 그 말을 하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어요. 그런데 걸음이 어딘지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두 다리가 엇박자가 나듯 삐끗거렸는데, 한쪽 다리가 땅에 착 붙지 않고 막대기처럼 뻐쩡대는 거예요. 나는 당신이 그런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 대문을 나갈 때까지 의아해서 한참 바라보았어요.
그날 저녁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는 얘기를 또 들었어요.
장 서방네 아들이 딱하게 됐다며?
제대 말년에 훈련받다가 지뢰를 밟아 다리 한쪽을 절단했대요. 지금 다리는 의족이래요.
저런, 저런! 어쩌누, 앞길이 구만리인데……. 쯧쯧!
그 때문에 장 서방 내외 속 썩은 게 말이 아니었대요. 그 아이도 낙심에 한동안 집 밖에도 안 나오다 이젠 마음을 좀 추슬렀나 봐요. 아까 보니 영 짠하더라고요.
왜 안 그렇겠니. 사지 멀쩡하던 자식이 졸지에 병신이 됐는데. 그 심정이 오죽할까. 장 서방 내외가 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근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저런 횡액을 당했으니. 당사자는 어떻고 휴우…….
그래도 아이가 속상한 표 안 내고 그 몸으로도 제 아버지 일을 같이 거들고 있다네요. 어렸을 때도 몇 번 심부름을 와서 하는 걸 보면 심지가 무던하겠더라고요.
아무리 무던한들 이제 막 세상 살아갈 걸음발 옮기려는 청춘인데 참 기막히겠구나. 그나저나 그 몸으로 직장은 어찌 구할 거며 장가는 어찌 갈꼬. 딸 가진 집에서 그런 사위 맞아들이고 싶지 않을 텐데, 딱하구나.
당신의 한쪽 다리가 잘리고 의족이 끼워져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믿기지 않았어요. 낮에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땅을 견고히 밟지 못하고 엇박자가 나며 들리던 걸음이요.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사고 당시의 지뢰 폭발음이 귀에 들리듯 했고, 한순간에 사라진 다리를 보며 나락으로 떨어졌을 당신의 처참한 상실이 어쩐지 짐작됐어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날 밤 잠들기 전 오랜 기도를 했어요. 앞으로 당신의 모든 일상에 환한 충만함이 함께 있기를.
그 후 당신과 나는 가끔 만날 수 있었어요. 심부름으로 당신이 우리 집에 오거나 어머니와 함께 갔던 시장 거리에서나, 참고서를 사러 들렀던 서점이나 친구들과 만나려던 제과점 앞에서나, 오빠와 언니를 따라 간 레코드 가게나 어디를 가려던 시외버스 정류장에서도요.
그럴 때면 당신은 나에게 늘 환한 웃음을 지었어요. 다리를 잃은 아픔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죠. 하지만 그 웃음은 화사한 햇살 뒤의 그늘처럼 아린 서늘함으로 전해졌는데, 당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실의 파편이었을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은 내게 가까운 친척 오빠같이 편하고 익숙한 존재가 되었어요. 나는 당신을 무람없이 잘 따랐어요. 당신은 거리에서 만나면 마주쳤던 서점에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빵집에선 빵을, 레코드 가게에선 한창 유행하는 외국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사주었어요.
지금도 내 미각은 그때의 고소하고 달콤했던 버터크림이나 슈크림과 팥앙금이 들었던 빵의 식감을 생생히 기억해요.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와 미세한 감각을 건드리던 음률과 책 속의 수많은 은유와 비유가 담긴 문장들도 선명히 기억해요.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아, 노래의 절정 부분이네요. 절창이죠. 앞선 노랫가락은 남실대는 잔잔한 물결인데 저 대목에선 낙차가 큰 폭포의 포말이 거세게 내리꽂히듯 강렬해요. 특히 이 가수가 부르는 저 대목은 가슴 한가득 안고 있던 어떤 덩어리를 왈칵왈칵 토해내는 절규 같아요. 한 음절 한 음절은 또 어찌나 정성스럽게 부르는지요. 그래서 이 가수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에 와 박혀요.
당신도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랬어요. 한 소절, 한 음절을 깊이 어루만지며 허투루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만의 독특한 발성이 있었어요. 동굴 속에서 듣고 있듯 머릿속까지 스며들어 가만히 울렸는데, 감기를 앓느라 코가 막혔을 때 나는 비음 같았어요. 특히 혀끝이 윗니의 안쪽 상부에 달라붙는 니은 발음과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약간 기름한 형태로 벌려졌다가 동그랗게 맞물리는 미음 발음일 때, 그 특색은 더욱 도드라졌어요. 그 발화는 말간 바람이 머무는 울창한 숲속의 이끼 냄새거나 그 속을 편편이 비쳐 드는 햇살의 기척이었어요.
그런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인 듯 눈앞으로 연분홍 갑사 저고리와 치마가 봄날 바람처럼 팔랑댔어요. 오래된 가지 드리운 나무 아래서 마음을 건네는 누군가와 마주 보며 기꺼워하는 모습도 보였고요. 그 사이를 검은 바탕에 청록의 밝은 금색이 섞인 선두리의 산제비가 하늘하늘 날고 있었어요. 주변에 피어나는 어여쁜 꽃을 함께 보며 환히 웃기도, 그 꽃이 후르르 지면 같이 아쉬워하던 노래 속 봄날이 선연했어요.
당신, 그날 기억나지요? 우리가 우연히 만나 함께 했던 그 시간 말이에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의 어느 날, 집에서 1시간쯤 가야 하는 S시를 가려고 시외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요. 그곳에 고모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보내는 물건을 전해주러 가야 했어요. 그날 당신도 당신 아버지 심부름으로 S시에 가려고 했었죠. 그곳에서 나를 우연히 만난 당신의 표정은 뜻밖의 귀한 선물을 받은 듯 환희에 차는 걸 숨기지 못했어요.
우리는 차에 올라 같은 자리에 앉았어요. 오래전 우리가 살던 곳은 외곽도로 일부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기도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구간에선 노면 상태가 고르지 못해 차체가 덜컹대며 거칠게 흔들렸죠. 당신과 내 몸은 자주 밀착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그게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는데도 꺼리듯 괜히 새침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어요. 당신은 그런 나를 배려해서 의자 손잡이를 꽉 부여잡으며 내게 닿지 않으려고 중심을 세우느라 애썼죠. 의족을 낀 다리 한쪽을 구부리기 힘들면서도 힘을 주어 버텼고요. 그러노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당신은 S시에 도착해서 내게 물었어요. 볼일이 끝나면 몇 시가 되는지를요. 나는 대략 언제쯤일 거라 말했어요. 당신 눈길이 추위에 발개진 내 손에 계속 머물렀어요. 차 시간에 맞춰 급히 나오느라 장갑을 두고 와서 맨 손이었거든요. 당신은 끼고 있던 장갑을 내게 벗어주었어요. 커서 헐거워 모양이 예쁘지는 않겠지만 손이 시리지는 않을 거라면서 꼭 끼고 가라고 당부했어요. 그래도 추울세라 하고 있던 머플러마저 벗어 둘러주었고요.
고모에게 물건을 전하고 터미널에 왔을 때 당신이 먼저 와있었어요. 추위 속을 걸어올 내가 걱정되어 안에 있지 못하고 밖에 있던 당신 귀와 손이 발갛게 얼어있었어요. 발이 시려 종종 구르고 손을 호호 불어대면서도 나를 보곤 금세 귀밑까지 올라간 웃음이 어찌나 따뜻하던지요. 얼었던 내 몸이 속까지 다 데워지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돌아갈 차 시간을 확인했어요. 출발시간까진 40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당신은 나를 근처 선물 가게로 데려갔어요. 그곳에서 분홍빛 앙고라 털이 보송한 장갑을 사주었어요. 새 장갑에 손을 집어넣자 부드럽고 따신 털의 촉감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감겨들었어요. 나는 막연하지만 새삼 무언가를 짐작했어요. 장갑의 따신 온기처럼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서랍에 당신이 사 준 털장갑을 고이 넣어두었어요. 아끼고 싶었어요. 열아홉이라는 시기의 감성이 그렇듯 예쁜 새 물건에 대한 것도 있었을 테고, 단순히 익숙하다고 여겼던 감정과는 다른 이성으로 여겨지는 설렘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느 순간 다가든 한 사람의 마음에 풋내 나는 내 청춘이 피워내고 싶은 설익은 연정이었을 테고요.
그랬어도 당신과 내 관계는 달라질 건 없었어요. 함께 S시로 다녀온 후 당신에 대한 내 감정에 예전과는 다른 변화가 잠깐 들었지만 이내 지나쳤어요. 학교생활과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었고, 또래 친구들과의 세계 속에서 다가들 미래에 대해 해맑은 기대를 꿈꾸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주 잠시 스친 당신을 향했던 단순한 호기심 어린 설렘은 그런 시간 속에 묻혀버렸고 잘 알고 있는 친밀한 사람이라는 무게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어요. 털장갑은 그해 겨울을 지나며 어디에서 흘렸는지 한쪽이 없어져 버렸어요.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 남은 한쪽도 방치됐다가 어느결에 사라졌고요.
나는 대학 입시엔 실패했어요. 대학 생활에 대한 낭만으로 재수할까 싶은 마음도 잠시 들었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학구열을 펼칠 뜻도 없었어요. 다시 또 일 년이라는 빡센 수험생 시기를 보내야 한다는 것도 자신 없었고요.
거기에 집안의 모든 걸 관장하는 할아버지는 여자가 고등학교만 나와도 아무 지장이 없는데, 재수해서까지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며 몇 년 얌전히 살림을 배우다 결혼하라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라 넉넉한 형편임에도 딸자식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걸 마땅치 않아 했거든요. 할아버지의 말은 집안에선 곧 법이었으므로 내 부모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삼 년 후에 어른들 주선으로 맞선을 보게 됐어요. 상대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전문대학교를 졸업했더군요. 그의 집안은 내가 사는 곳의 멀지 않은 지역에서 몇 대째 규모가 있는 한약방을 운영했어요. 그는 가업인 한약방을 물려받기 위해 아버지를 돕고 있었고요.
중매를 선 친척은 신망이 있었던지라 소개하는 혼처 자리에 내 조부모나 부모는 이의를 둘 이유가 없었죠. 먹고살 만한 경제력 기반이 있는 두 집안 수준이 비슷했고 사위가 될 대상이 하자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사자의 의견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어요. 나 또한 어른들의 결정에 별 불만 없었고요.
맞선을 보던 날 그 사람이나 나 둘 다 서로에 대해 뛸 듯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았어요. 어른들이 정해준 대로 만났고 그런 자리에서의 틀에 박힌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어요. 커피숍을 나와 경양식집에서 밥을 먹었고 근교 유원지를 얼마간 산책하고 헤어졌어요. 그리고 3개월쯤의 연애 기간을 거친 후 결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사람과 만날 때면 문득문득 마음이 편치 않은 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스치는 바람처럼 당신이 휙 확대되곤 해서요. 그런 감정이 들면 난 당황했어요. 왜 당신이라는 존재를 그리 여겨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딱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요. 이유도 명확하지 않게 괜히 하면 안 되는 뭔가를 할 때 같은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나도 모르게 계속 받아왔던 호의에 대한 부채감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당연히 갚아야 할 것 같은 거라면 이해될까요.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차에 탈 때였어요. 빡빡한 의례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한숨 돌리며 눈길을 들었어요. 저만치 예식장 정문 옆 기둥 뒤에 누군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어요. 당신이었어요. 순간 명치에 뭔가 콱 걸렸어요. 그때 언니가 다가와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다며 어서 차에 타라고 등을 밀었어요. 얼결에 떠밀려 차 안으로 들어왔지만 내 눈길은 당신을 떠나지 못했어요.
차가 천천히 예식장 정문으로 향하며 당신 모습이 가까이 다가들었는데…… 눈가에 지독한 쓸쓸함이 어린 걸 보고 말았어요. 그러자 어떤 안타까움이 치밀었고 할 수만 있다면 차에서 내려 당신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차는 이내 정문을 휙 벗어났어요. 뒤돌아보는 내 가슴에 고개를 푹 숙인 당신 모습이 그대로 엉겨버렸어요.
신혼여행 동안 난 계속 체기로 불편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어요.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아 신혼여행이 즐겁거나 행복하지 못했어요.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그날의 당신이 떠오르면 심장이 무언가에 툭 건드려지듯 찌르르했고요.
내 결혼생활에서 부부간의 밀도는 끈끈한 애정은 아니었어요. 아침에 떠 저녁에 지는 해처럼 덤덤한 시간을 그저 지나는 거였어요. 왜냐면 나는 뱃속에 품었던 첫 아이를 4개월 만에 유산하고 말았어요. 그 후 두 번의 임신을 했으나 매번 6개월을 넘기지 못했어요. 병원에선 아기집이 힘이 없어 제대로 품지 못하며 앞으로도 임신은 불가능할 거라 했어요. 그 때문에 나는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는 처지가 되어 늘 위축되어 있었어요.
결혼한 지 4년이 되었을 때 나는 결국 이혼했어요. 어차피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게 맞다고…… 어느 날 시어머니가 나를 불러 은밀히 말했어요. 그리고 덧붙였어요. 친정으로 가기 뭐하다면 거처할 집과 당분간 먹고 살 기반은 마련해 주겠다고 했어요. 대신 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서 스스로 물러나는 걸로 하라고도 했어요. 옆에 있던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곧 시부모의 처사에 동의한다는 거였어요.
나는 여자로서 생산기능이 없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속하지 못하고 폐기되었죠. 그런 처지에 스스로나 부모도 남 보기 부끄럽다고 여겼으므로 나는 이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고향 집을 왕래하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이혼이 흉이 아니지만, 그 시절의 여자에게 이혼 이력은 한 삶이 쾅쾅 묻히는 걸 수도 있었어요. 더구나 나처럼 아이를 갖지 못해 당한 이혼은요.
어느 해에 아버지가 아파서 집에 다니러 갔다가 전 남편이었던 그 사람 소식을 듣게 됐어요. 나와 헤어지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재혼했는데 상대 여자는 이미 만삭이었다고 해요. 그 아이가 지금은 유치원에 다닌다고도 했고요. 그 말을 전해주는 작은어머니의 얼굴이 분해서 씰룩댔고 부모에게선 참담함이 배어 나왔어요.
그 사람은 나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외도했고 그 사람의 부모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서둘러 이혼을 종용한 거였죠.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함이 들었지만 이내 쓸어내렸어요. 이미 오래전에 후려치고 간 횡포였으니까요. 한걸음에 달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따진들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 사람이나 나나 서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평생을 만날 이유가 없는 타인일 뿐인데요.
나는 이혼한 뒤 타지에서 쭉 혼자 지냈어요. 위자료 받은 것과 부모가 보태준 돈으로 가게를 하나 마련해서 그 수입으로 혼자 생활을 유지했어요. 그렇게 몇십 년을 지내다 나이도 들고 가게를 끌고 가는 게 지루해서 그만 접고 쉬게 되었어요.
그리고 5년 전이던가요. 어느 봄날 당신이 찾아왔어요. 거짓말처럼요. 꿈인 줄 알았어요. 오래전 봄날에 흩날리며 내려앉던 연분홍 얇은 막 같던 산벚꽃 무리를 볼 때 같이요. 그런데다 문 앞에 서 있던 당신 등 뒤로 늦은 오후 햇살이 가뭇하게 번져서 금방 알아보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기억 속의 당신은 스무 살, 서른 살 무렵의 청년으로만 존재했는데, 머리를 물들인 잿빛과 얼굴의 주름에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내려앉은 게 아주 낯설어서요.
그 만남 후 우리는 자주 연락했고 당신은 가끔 나를 찾아와서 반나절이나 한나절쯤 지내다 돌아갔어요. 마주 앉아 소박한 한 끼의 밥을 나눠 먹고 이런저런 소소한 말들을 나누거나 가끔 동네 길을 산책하는 게 다였지만요. 그럴 때면 당신은 많은 세월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죠.
오래전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인 당신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다섯 살인 내가 낯도 가리지 않고 담뿍 안겼다고. 혀짤배기소리로 오빠는 누구야? 라며 머루 같은 까만 눈으로 보던 모습이 선했다고. 몇 년 후 산벚꽃을 쓸어 모으던 열두 살의 나를 다시 보며, 가슴으로 가을날 청명한 바람결이 들어찼다고. 그 바람결에 차랑! 흔들리며 울리는 청아한 풍경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고. 그때만 해도 그저 잘 아는 집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어린아이였다고. 하지만 한 해 한 해 성장하는 나를 보며 세밀한 마음 갈래가 지어졌다고. 그랬어도 소작을 부쳐 먹는 집 딸이었고 한참 어린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거라 여겼다고. 더구나 한쪽 다리를 잃은 불구의 몸으로 감히 마음에 두지 못할 처지라는 걸 절절히 느껴야만 했다고. 그리고…… 내가 결혼했을 때 당신이 향했던 우주는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고. 예식장 정문에서 신혼여행 가는 나를 보며 이 세상에 대한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그 때문에 다리 하나를 잃었던 것보다 더한 상실에 고향을 내내 떠나있었다고. 후에 내가 여러 번의 유산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척 안타까웠다고. 내가 지닌 아픔이 자신이 겪듯 아파 가슴에 시퍼런 멍울이 진 것 같았다고. 이혼하고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에 한걸음에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고.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숨어 살지 않아도 돼, 라고. 그러면서도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고. 안타깝게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어떤 것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고. 오래전 나를 잃었다는 크나큰 상실에 매일의 허허롭던 일상에 봄날 연둣빛 새순의 파릇함이 감쌌으나 초라한 처지로 나를 향한 마음만 묻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더 이상 그 마음을 묻어둘 수 없어 마음 굳게 먹었노라고. 내가 사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왔고, 가까이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고.
이혼하고 난 직후였어요. 언니나 오빠를 통해 고향 얘기를 가끔 들었어요. 당신과 당신 집안에 관한 말도 있었어요. 당신은 서른 살 무렵 훌쩍 고향을 떠났다더군요. 몇 년 후에 당신 어머니가 병에 걸려 앓다 돌아가셨고 얼마 지나 당신 아버지도 그리되었을 때, 당신은 장례를 마치고 다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어요. 마흔이 넘고 예순이 되어도 혼자 타지로 떠돌며 살아간다고 했어요.
그런 경로를 통해 당신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아렸어요. 살다 보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중요한 걸 허투루 버려둘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문득 생각나서 다시 찾지만 이미 그건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옥죄던 낙망이라면 비유가 적절할까요. 그때의 내겐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랬거든요.
참 이상한 건요. 짧은 결혼생활 동안이나 이혼 후 힘들 때면 가족이 아니라 뜬금없이 당신이 생각났다는 거예요. 어느 순간 햇빛 속에 길게 드리운 내 그림자를 발견하곤 나라는 존재의 또 다른 형태를 새삼 인식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당신이 생각나면 오래전처럼 차분하고 깊은 목소리로 별거 아니야, 라고 나를 보듬으며 다독거려 줄 것 같았어요. 당신만이 지을 수 있는 환하고 따뜻한 웃음을 건네줄 것 같았어요.
어느 땐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허튼 갈망을 갖기도 했어요. 당신이 어느 때 내 앞에 나타나서 내 손을 부여잡고 나랑 가자! 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주저 없이 모든 걸 버리고 따라갈 수 있겠노라고. 당신을 바라보며 한 생을 그저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발현될 수 없는 갈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다시는 만날 일 없는 타인이 된 전 남편처럼 그런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어느 날 저녁밥을 먹으려고 상을 차려 식탁에 앉았어요. 몇 숟가락 먹다 보니 문득 혼자 있는 집안이 아주 고요했어요. 밥을 먹을 때면 습관으로 텔레비전을 틀어놓는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더라고요. 생각난 김에 리모컨을 눌렀더니 마침 이 가수의 노래가 나오는 걸 보면서 당신이 뭉클 생각났어요.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간절한 집중으로 화면만 보았어요. 드러낼 수 없었던 당신의 한 시절이 가없이 흘러가 버렸다는 사실이 체기로 걸려서요.
당신, 저길 좀 봐요. 저기 산자락에 분홍빛 작은 구름 같은 게 군데군데 있지요. 산벚꽃이잖아요. 잘 안 보인다고요? 좀 더 앞으로 당겨 앉아 볼까요. 이젠 어때요? 잘 보이죠? 예전 우리 집 뒤의 구릉에 있던 산벚나무 군락이 생각나네요. 우린 그때도 지금처럼 함께 그 풍경을 보았었죠. 아, 그때 당신도 설레고 좋았다고요? 그럼요, 당연히 그랬을 테죠.
어느덧 노래도 거의 끝나가네요.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늘 저 노래 속의 봄날에 있었어요. 내가 입고 있는 연분홍 치마가 하늘거리는 봄바람에 나풀나풀 휘날렸고요. 꽃이 핀 걸 당신과 함께 보며 어여쁘게 웃었고 지는 꽃에 함께 슬펐어요. 새파란 풀잎 같은 선연했던 청춘이 화사한 꽃편지 건네며 청노새 짤랑대는 길을 지나갔어요. 검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함께 보며 기꺼워했고 사그라지면 아쉬워도 했어요. 이제 그 푸름은 덧없이 지나가 버렸고 그때의 시절은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에 앙가슴 두드림으로 남아 황혼 속에 슬퍼졌지만요.(*)
당신은 3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았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 살겠다고 했고 당신은 싫다고 했어요. 알아요. 왜 그랬는지. 평생을 절절하게 함께 있고 싶었으면서도 병든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아서였겠죠.
그래도 나는 당신 의견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 길로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 집을 구해 당신을 데려왔어요. 처음 집을 보던 날 당신은 볕이 가득 들어차던 마당과 큰 개울이 참 좋다고 했어요. 마루에서도 빤히 보이는 동네 초입에 줄지어 있는 벚나무 군락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고 했고요. 마루에 흔들의자를 놓고 함께 앉아 환한 햇살을 받으며 그 풍경을 보면 좋겠다고도 했어요.
이제 당신과 내 부모들도 명을 다 했고 늙어가는 형제들도 생을 달리했거나 제각기 사느라 일 년에 몇 번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지난 내 유년과 소년, 결혼하기 전의 시절이 머물렀던,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던 내 집의 그 시공간도 이젠 흘러가는 세월에 잠겨버렸고요.
그랬어도 우리는 몇십 년 전 묻어두었던 그때를 다시 피워 올리며 비로소 함께 살게 되었어요. 온 생을 다해 갈망했던 당신의 바람대로 벚꽃이 피고 날리는 봄 속에서 매일매일 함께 하고 있어요.
투병하는 동안 당신이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힘겨움이 있었지만 늦게나마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난 정말 감사했어요. 지난날 언저리에서만 머물던 당신의 아픈 마음이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보상받을 순 없어도, 남은 내 인생의 모든 걸 그에 더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오래도록 순정한 마음으로 나를 향해 있었듯 이젠 내가 당신을 향한 순정을 이렇게라도 건네고 있어요.
……그 노~래에 봄~날은 가아~안다……(*)
아쉽지만 노래는 끝났네요. 우리 그만 방으로 들어가요. 해가 지고 있어요. 아까보다 햇발도 많이 스러졌고 바람결이 차요. 노을이 연분홍에서 다홍으로 층층이 겹 지고 있어요. 저 기척은 검푸른 빛으로 저녁 대기에 점점이 물들 테고 곧 어둠으로 깊게 내려앉겠죠.
방으로 들어오니 따뜻하네요. 당신은 여기에 둘게요. 나를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어때요? 잘 보이죠? 당신이 투병하는 동안 누워있던 이 자리에서, 당신은 눈길이 가장 가까운 곳 저 자리에 5년 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을 걸어 두었어요. 주름 골골에 담아두었던 오랜 세월의 마음이 찍힌 둘의 모습을.
그곳에 나는 지난겨울 생을 다하고 떠난 당신을 두었어요. 나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누웠던 자리에서 사진 속의 당신을 쓸쓸하고 애틋한 미소를 담아 늘 바라보고 있어요.
서향으로 난 창에 사위어가는 일몰 기척이 비쳐 들어요. 사진 속 당신 얼굴에도 점점 덮이고요. 앞으로의 나날 중 오늘 하루도 또 지나간 어느 때가 되겠지요. 우리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할 날도 많지 않을 거고요. 그러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사위어가는 저 풍경 속 가뭇함이 될 테죠. 어느 한 시절 찰나 같은 봄날의 흩날리던 꽃잎으로 또 흘러가는 물처럼 가없어지겠지요.
당신과 나의 지난 시간처럼.
■ 본문 (*)는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 참고
이서진
강원 고성 거진 출생
강원대학교대학원 국문학과 수료
<수상>
계간 문학마당 신인상 수상 등단
진주신문가을문예 당선
김만중문학상 수상
원주문학상 수상
<저서>
소설집 <달의 뒤편에 드리운 시간들>/<낯선 틈>/<당신의 허공>
장편소설 <밤의 그늘>
-강원문협 이사/원주문협 소설분과장/한국소설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