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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언어
이 홍사
서방의 벽촌이라는 뜻이겠지.
서벽리.
서벽리 산 75번지
시골 버스는 태백산맥, 어느 골짜기를 더듬고 있었다.
초행이지만 이 정도로 깊은 산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산맥 아래로 고속도로가 있고 시원하게 뚫린 터널이 있지만, 시골 버스는 개천을 따라, 고불고불 이어진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 버스는 태어나고 고속도로 구경이라곤 한 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이런 산길만 달리는 군민 버스다. 태백산맥 중턱이었다. 이 산맥의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건 버스뿐이었다. 녹음이 짙은 산맥은 장례미사 중인지 경건하고 엄숙했다.
엄숙한 산 중턱으로 개울가로 난 길을 따라 버스는 더 깊은 골짜기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차에 탄 사람들은 장에 갔다고 오는 시골 노인들 뿐이다. 길이 험하고 차는 낡아서 엔진 소음 외에도 잡음이 심했다. 이렇게 낡은 차가 이런 오르막을 올라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버스 안에는, 머리숱이 적은 한 노인은 닭대가리만 내놓고 보자기에 싼 닭을 안고 뒷좌석에 앉아 바로 앞에 앉은 노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귀가 어두운가? 귀가 어두우면 저절로 목청이 커진다고 했다. 얼굴이 불콰한 게 노인은 장에서 낮술을 한잔 가뿐하게 걸친 모양이다. 앞에 앉은 왜소한 몸집의 노인이 술에 취했으면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했는지 뒤에 앉은 노인은 목청을 높였다.
아따! 술 마시고 술이 안 취하면 병원에 가야 해, 특히나 남이 사주는 공술을 먹고 취하지 않으면 그게 제일 나쁜 놈이야.
호탕한 목소리로 앞에 앉은 노인에게 말했다. 앞에 앉은 노인에게 일갈했지만, 버스에 앉은 사달들 다 들으라고 한 소리인 것 같았다. 뒷좌석에서 한 그 소리가 운전사에게 들렸는지, 사십 대 후반이거나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운전사가 맞장구를 쳤다.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술 마시고 안 취하면 병원 가셔야죠.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노인이 안고 있는 닭은 벼슬을 보니 수탉인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낯선 분위기인 버스 안을 살피고 있었다. 저 닭이 초행길로 서벽리를 찾아가는 내 꼴이었다. 서벽리가 버스 종점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며 운전사에게 서벽리는 어디에 내려야 하느냐고 묻자 그 동네가 바로 종점이라고 했다.
버스에는 노인 대여섯이 타고 있었다. 아마도 봉화에서 열리는 오일장에 갔다가 돌아가는 모양새다. 면 단위에는 더 이상 오일장이 서지 않는단다. 하긴 머지않아 인구가 제로화된다는 군이 바로 봉화다. 단위 면적당 가장 낮은 인구분포도를 형성하고 있는 군이 바로 봉화라고 했으니, 곧 인구 위기가 닥칠 행정구역이다. 언젠가 지방 신문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봉화의 인구 얘기였다. 버스가 돌아가는 골짜기마다 구석구석 사과밭이 있고, 가끔 석류를 대단위로 농사짓는 밭도 보였고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잡초가 웃자란 묵정밭도 차창 너머로 보였다. 석류를 저렇게 많이 재배해서 판로가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석류가 익고 있었다.
나는 불쑥 석류를 불렀다. 주마간산 버스를 타고 가며 본 석류가 아니라 나는 며칠 전에 본 옆집의 석류나무를 기억 속으로 소환했다.
옆집, 담 너머로 가지를 뻗은 석류나무, 석류알이 올해는, 참 실하게도 달렸다. 나무는 석류의 무게를 못 이기고 가지를 축 늘어트려 담장 위에 걸려있었다. 벌어진 껍질 사이로 촘촘히 박힌 석류 알이 활짝 웃는 소녀의 가지런한 치아처럼 깔끔하게 보였다. 탐스러웠다. 깨물고 싶은 이빨, 아니 석류알이었다.
그날 마트에 다녀오다가 옆집의 담장 밖, 석류나무 밑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들어갔다. 석류가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도 그 석류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석류는 허공의 햇살을 향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석류에 대한 비유치고는 동시적으로 유치하지만 달리 설명할 길을 나는 학습하지 못하고 있다.
석류는 석류만의 가지런한 언어가 있다. 알알이 영근 터질듯한 새콤한 언어. 그 언어를 과육처럼 초가을 햇살이 키워가고 있다. 귀를 열어두지만, 그 언어는 어리석은 내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다. 검지로 귀를 후볐다. 하지만 석류의 언어가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의 귀는 그 언어의 음절을 확실히 들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바람이고 싶었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골짜기를 굽이쳐 돌지만, 한산한 버스에서 다리를 괴고 앉아서 옆집의 석류를 헤아렸다. 노인들은 뒷좌석에서 뭐라고 진한 사투리로 떠들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집을 두고 이웃 사람들은 한의원 집이라고 부른다. 그 집 마당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가 있다. 올해는 대추도 촘촘하게 달렸다. 그러나 대추를 딸 주인은 없다.
마당을 관리하던 한의원 집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이다. 한의원 집 아저씨라고 하니 한의사로 오해하겠지만 그 한의사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겐 아저씨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그의 부음을 듣지 못했다. 도시 생활이란 게 이웃 간의 정은 비정상적이라서 단독주택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지만,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몰랐다. 하긴 위독하면 병원으로 가고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으로 바로 가서 상을 치르니 이웃이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은 정도의 생각으로 지나치는 게 보통이다. 한의원 집이라 불리는 옆집은 한의사인 아들 내외가 이 층에 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 층에 살았다. 단독주택이지만 밥도 따로 해서 먹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한 지붕 아래 부자가 살았지만, 완전히 딴 살림이다. 집을 지을 적에 그렇게 지어서 이 층으로 올라가는 대문과 일 층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따로 있다. 마당에서는 서로 통할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두 집이다.
우리가 상가 건물을 짓고 나서 삼 년인가 있다가 그 집을 지었으니 이웃으로 산 지 거의 이십 년 저쪽이 되어 간다. 그러나 서로 잘 모른다. 잘 모르는 것이 나이라 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게 가슴이든, 대문이든. 이 층에 사는 새댁은 대문 밖에 나오면 서로 인사를 하고, 돌아가신 아저씨도 나오면 겨우 인사만 하는 정도다.
그 아저씨가 돌아가신 걸 몰랐다?
너무 소원하게 살았던 거 아닌가?
이웃이지만 한의원 집은 대문을 굳게 닫고 사는 형편이라 소식을 잘 듣지 못한다. 반면 바로 아래에 있는 계량공사는 늘 문을 열어두고 있어 한집처럼 수시로 들락거리며 산다. 한의원 집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도 계량공사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그것도 돌아가신 지 한참이나 지나서 들었다.
한의원 집은 아들이 시내 시장 골목에서 한의원을 한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대략 오십 줄에 들어섰으려나. 그 아버지는 한의원 바로 앞에서 한약재를 팔고 있었다. 직접 농사를 지은 것도 팔고, 어떤 한약재는 도매로 들여온 것도 판다. 최소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랬다.
얼마 전에, 이 층에 사는 새댁이 담장 밖에 주차한 자신의 승용차를 닦고 있길래 지나가는 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돌아가셨다면서요?
한참 되었어요. 지난 삼월에 돌아가셨으니.
너무 늦어서 명복을 빈다는 말을 전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감쪽같이 몰랐네.
그 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아주머니가 아저씨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는 노인이지만 오래전부터 아저씨 아주머니란 말이 입에 배어서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새집을 지어 이사를 오고 아주머니는 헬스가방을 들고 늘 운동을 다니시는 걸 보았다. 아저씨는 선기동에 밭이 있어서 약재 농사를 지었지만, 아주머니는 하늘색 비닐 가방을 들고 늘 헬스를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헬스장에서 허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어느 날 봉곡 네거리 모퉁이에서 만났는데 허리가 구십 도로 굽어서 지팡이를 짚고 땅을 물고 돌아오는 걸 보았다. 예전의 아주머니가 아니라, 완전히 노인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딸인지 간병인인지 부축을 받고 있었다. 헬스장에 간다고 하늘색 가방을 들고 대문을 가뿐하게 나서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도 아주머니는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간병인이 집에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간병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서 들으니 집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해 요양병원으로 갔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그때도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저씨는 혼자서 농사를 짓고 시장통에서 약재를 팔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저씨가 타고 다니시던 일 톤짜리 화물트럭이 보이지 않고 택시가 새벽마다 집 앞에 오는 것이었다. 화물트럭은 늘 대문 앞에 서 있었는데 보이질 않았다. 차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나이가 들고 보니 운동신경이 떨어졌는지 밭에 나갔다가 밭두렁에 두 번이나 구르고 차를 팔고 면허를 반납했다는 소리를 하셨다. 반납하니 지원금인지 위로금인지 십만 원을 주더라는 소리를 지나가는 투로 했다.
그런데 왜? 매일 새벽 택시가 와서 골목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웬 택시인가? 의아해했다. 택시는 기다리는데 아저씨는 굼뜨게 옷을 입으며 현관을 나와 택시를 타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걸음이 부실해서 내가 택시 문을 열어주고 타는데 부축한 일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나가시면 시장에서 한약재를 팔고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계량공사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들었다. 일 층에서 아저씨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이 층에 있는 며느리는 내려오지 않는다, 완전히 딴살림이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한의사인 아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에 오는 것을 도통 보지 못했다. 동네 소식통인 옆집, 계량공사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이미 딴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굼벵이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그 꼴에.
계량공사 아주머니는 그런 말을 하며 말꼬리를 사렸다.
한의사가 아니라면 외관상으로는 정말 볼품이 없는 인간이다. 작달막한 키에 약간 대머리이며, 지나치게 넓적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지극히 조화롭지 못하고, 거만하게 보이는 팔자걸음에, 최소한 외관상으로는 남자로서 낙제점이라는 말이다.
한의원에 데리고 있던 나이 어린 간호사와 눈이 맞아 딴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말인데, 옆집 아주머니의 말이라면 의심을 하지 않고 믿어도 된다. 이미 옆집 이 층에 사는 새댁과는 서류상 이혼을 했고 집은 위자료를 대신해 새댁 앞으로 명의를 이전해주었다고 했다. 옆집 새댁이 발설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계량공사 아주머니는 그런 걸 어떻게 상세하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래층의 시아버지가 아프든 말든, 남의 일이니 내려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저씨가 촌수가 무효가 된 전 며느리, 새댁의 집에 무료로 얹혀사는 꼴이다. 아저씨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 층에 산다고 새댁과 합의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았다. 한의사인 남편이 딴 살림을 차리자 마음을 줄 데가 없는 새댁은 요즘은 골프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골프 가방을 메고 이 층에서 내려오는 걸 나는 마당에서 자주 보았다.
공이 잘 맞습니까?
눈길을 돌리기가 무안해서 나는 담장 너머로 그렇게 물었다.
지금 배우는 중이에요.
새댁은 인사를 하며 변명조로 말했다.
이웃이라도 그런 사이다.
아저씨가 돌아가셔도 석류는 탐스럽게 익고 있었다. 그 석류를 누가 관리를 하느냐? 그게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 층에 사는 새댁은 석류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이십 년이 다 되도록 대문을 열지 않고 산다면 아웃을 잘못 만난 것이다, 옛말에 천금을 주고 논밭을 사고 만금을 주고 이웃을 산다고 했다. 이웃이 살아가는 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인데 나는 아무래도 이웃을 잘못 만난 것 같다.
내가 왜 그 집을 골똘히 생각했지?
아, 석류!
옆집 담장을 넘어온, 석류를 생각하다가 그 집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 사설이 길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장 너머로 보니 산은 깎아지른 듯이 경사가 급했다. 녹음이 우거진 산은 담백한 맛이 났다. 아무리 보아도 기름지거나 느끼하지 않아서 좋았다. 며칠간 산을 본다고 싫증이 나거나 포만감은 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버스는 중간중간에 마을이 있는 곳마다, 서서 한두 사람씩 내려주고 서벽리 종점까지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 타고 들어왔다.
누구네 집을 찾아가시우?
태백산맥의 자궁이라 불리는 서벽리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려 방향을 익히느라 두리번거리니 닭을 안고 있던 노인이 물었다. 노인의 팔뚝뿐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어있었다. 티베트로 떠난 그는 서벽리를 두고 태백산맥의 자궁이라고 했다.
태백산맥 자궁, 아니 산 75번지를 찾아가는데요.
아, 화가 양반이 사는 움막 말이군. 저쪽 개울을 건너서 산으로 올라가면 된다우.
노인은 그를 알고 있었다.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그따위 그림만 그려서 우째 먹고 사누?
노인은 큼큼거리며, 혼잣소리를 뱉고 마을 안길로 사라졌다. 안고 있는 수탉이 고개를 빼고 나를 돌아보았다. 서벽리 마을 앞에는 큰 동제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로터리를 만들어서 버스는 거기서 돌렸다. 지금은 동제를 지내는지 모르지만, 나무둥치에 새끼줄이 감긴 걸 보니 아직도 나무를 믿거나 숭배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나무를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시멘트로 만든 벤치가 있어서 배낭을 벗어놓고 거기에 엉덩이를 걸쳤다. 버스를 세운 기사가 내려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처음 보는 분이신데, 이 골짜기에는 어쩐 일로?
산 75번지에 화가의 움막을 찾아왔어요.
아! 그 양반, 그 양반 어제 아침 버스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버스 기사는 이 노선만 다니는지 골짜기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알고 왔어요. 그 화가를 찾아서 온 게 아니라 그 움막을 찾아왔어요.
그 움막? 볼품없을 터인데?
며칠 쉬다 가려고요.
움막 주인인 그는 움막에서는 종일 발가벗고 생활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문제가 없긴 한데 본인의 눈이 문제라고 했다. 아랫도리를 종일 내려다보면 그게 보기에 여간 흉하지 않아서 아랫도리에 뭐라도 걸치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만큼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버스 기사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생긴 로터리에서 돌린 버스는 이십 분을 서 있다가 출발한다고 했다. 서벽리로 오는 차는 이게 막차란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다시 한번,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데 요즘은 이런 오지에도 농사에 쓰는 화물트럭이 있어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장에 나가는 노인들이 고작이라 했다. 군민 버스라 군에서 지원이 없으면 받는 차비로는 기름값에도 못 미친다는 말까지 하고 한참을 쉬다가 기사는 버스를 돌려 빈 차로 출발했다.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 그건 그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한 곳에 느긋하게 오래 있지 못한다. 역마살이 엉덩이를 채근한다. 이번에는 역마살을 잠재우고 이 골짜기에서 푸근하게 견뎌보려고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골짜기를 나갈 때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야지. 버스를 보내고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가을이 오려는지 하늘이 좀 높아졌고 뭉게구름이 참하게 떠 있었다. 저 뭉게구름을 보자기에 싸서 그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었다. 서산에 기운 흰 낮달도 함께 싸서 보내면 좋으련만 이 골짜기에서 전해줄 인편이 없다. 저 낮달과 구름의 주인은 분명히 그였다.
그는 시어를 찾아 티베트로 떠났다. 그림의 소재를 찾아간 게 아니다. 그는 화가이면서 시인이다. 화가와 시인, 좀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을지 모르나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이곳 사람들은 화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이미 시집을 두 권을 출간한 중견작가다. 그 시집은 시단에서 알아주는 출판사로 낸 것이다. 확실히 화가이지만, 미학을 더듬었기에 언어의 감각도 미학적으로 지녔다. 그는 늘 티베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가난한 화가에 시인으로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늘 문제였다.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산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 경비를 조달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티베트로 떠났고 나는 그 틈에 그의 움막을 찾은 것이다, 물론 나도 시어를 찾아왔다. 아니다 찾아온 게 아니라 뱉으려고 왔다. 게릴라식으로 찾아오는 창작 욕구를 탕감하지 못해 뒷생각은 하지 않고 구두에 발등을 꽂았다.
뭔가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았다.
내부 어디에선가 울컥, 솟구쳐 울대에 걸리는 시어. 피를 토하듯 뱉어내지 못하고 목구멍 밑에서 간질거리는 언어는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뱉어 종이에 싸서 나갈 작정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항상 나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의심이 아니라, 어쩌면 규탄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불후의 명작을 낸 소설가도 아니오, 돈을 왕창 버는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인도 아니지만, 울컥 솟구치는 시어를 다스릴 수가 없었다. 시는 내 꿈이었다. 시어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 욕심을 골고루 채우기에는 살아 있을 날이 부족할 것 같다. 항상 무엇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 인생의 유한성. 인간의 존재는 유한하다. 이건 누구도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가 없는 명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은 목구멍이 견딜 수 없이 간질거리니 그건 다음에 생각하고 일단 뱉는 방법부터 터득해야 할 일이다. 울대 밑에는 많은 언어가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뱉어서 체계적으로 시로 옮기는 방법을 모른다.
화가가 티베트로 간다고 하기에 그동안 그 움막을 내가 좀 쓰자고 연락을 했다. 그는 그래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여기에 오면 시가 잘 나오는 명당, 태백산맥의 자궁이라고 했다. 마음껏 쓰라고 했다. 처음에는 몰라서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항상 열린 공간이라고 하며 자신이 없을 적에 언제든지 와서 머물면 된다고 했다. 둘이서 생활하기에는 비좁은 면이 있다고 했다.
태백산맥의 자궁이라는 이곳에서 매일 시를 수태하고 출산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벤치 옆에 벗어둔 배낭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 배낭 속에는 옷가지는 별로 없고 꼭 읽어야 할 몇 가지 책과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종일 벗고 살아도 무방하다는 말에 옷가지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이곳으로 들어온 지 십 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산비탈에 있는 이백 평 남짓한 묵정밭을 샀는데 전망은 몇만 평을 덤으로 얻었다고 들은 지가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여기 와보지 못했다. 그동안 그를 한 번도 못 만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나는 건 그가 어쩌다 내가 사는 도시로 오면 늘 같이 칼국수를 먹었다. 혼자 움막생활을 하니 제일 아쉽고 곤란한 점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마음껏 못 먹는다는 점이라 했다.
오늘은 내가 왜 이리 석류에 집착할까? 배낭을 메고 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석류알이 발에 밟히는 듯했다. 이렇게 밟히는 석류가 시가 될 수 있을까? 개울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서 전답이 있는 농로가 끝나고 산길로 들어서서 이백 미터쯤 오솔길로 올라가자 그의 움막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한눈에 보아도 그의 움막임을 알 수가 있었다. 혼자서 서너 달에 걸쳐서 지었다는 움막은 조립식 패널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었다. 컨테이너 하우스를 들여놓고 싶었지만 옮길 길이 없었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혼자서 자재를 나르고 혼자서 지은 모양인데 전문가가 지은 움막이 아니라는 표시가 단박에 났다.
움막 지붕에는 칡넝쿨이 무성하게 타고 올라 폐가처럼 보이지만 움막 앞에 체전은 잡초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가 났다. 배낭을 벗지도 않고 체전부터 살폈다. 가지, 오이, 고추 몇 포기, 그다음은 한창 자라는 배추가 잘 정리되어 있어 그는 반찬을 자급자족한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잘 정리된 체전은 확실히 어지간한 화단보다 보기가 좋았다. 움막 앞에는 작은 평상이 있었다. 목수가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앵글을 사다가 직접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합판 한 장을 얹어둔 것이다. 그 평상에 배낭을 벗어 놓았다.
움막 앞에 큰 고무통에는 맑은 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 수도를 잠그지 않고 간 모양이라 생각하고 플라스틱 호스를 따라가니 호스는 산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수도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이런 골짜기에 수도가 들어올 리 만무다. 호스를 따라 칡넝쿨을 헤치고 들어가니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을 조금 막고 호스 주둥이는 거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골이 깊은 개울물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모양이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일급수다. 그 물을 그대로 마시고,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 위로는 인가가 없어 물은 오염되지 않은 것이다. 개울의 맑은 물을 손으로 떠서 나는 텁텁한 입을 헹구었다.
다시 숲을 빠져나와 움막을 들어갔다.
움막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 갇혀 있던 고요가 나를 덮쳤다. 나는 고요를 뒤집어쓰고 안을 살폈다. 한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습한 고요가 가득 차 있었다. 원룸. 안을 둘러보니 원룸이 연상되었다. 안에는 작업실이고 주방이었다. 이젤에 그리다 만 유화가 있고 직접 만든 듯한 책상이 있었으며,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주방도 한쪽 귀퉁이 같이 있었다. 한쪽에는 기다란 커튼이 천정부터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커튼을 들추니, 어디서 구했는지 군용 야전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렇지 잠도 자야지. 그게 침실인 셈이다.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했다.
식사도, 잠도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작업에 몰두했음이 단박에 표시가 났다. 그런데 화장실은 어디지? 안에는 화장실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살피니 화장실은 텃밭 귀퉁이에 있었는데, 가서 살펴보니, 수세식이다. 일반 수세식이 아니라 개울이 굽이치는 곳에 높게 기둥을 박아 나무로 설치해서 고온다습한 똥을 누면 그대로 개울에 떨어져 물살에 쓸려 가는 천연 수세식이었다. 그런데 둘레만 조립식으로 설치했지, 지붕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볼일을 보아야 하는 구조였다.
아주 머리를 잘 썼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화장실의 구조였다. 조금 위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아래에는 오염을 시킨다? 낙동강을 녹조로 오염시키는 주범이 여기 있었군. 다시 안으로 들어가 뭔가 불편한 점이 없을까를 살폈다.
이젤에 얹힌 그림을 살펴보았다. 노란색으로 추상화를 그리다 만 것이었다. 이젤에는 미완성작이지만, 완성작은 벽에 여러 장이 붙어 있었다. 전부가 추상화인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살펴보니 수채화도 있고 더러는 유화도 있었다. 그림 속으로 불쑥, 들어가서 한동안 출구를 찾아 헤맸다. 출구가 쉬 보이지 않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시의 문맥을 찾고 시를 쓰면서 그림을 구상하는 모양이다. 벽에 기대선, 직접 만든 듯한 책꽂이에는 쓰다만 물감과 붓 등의 미술 재료가 얹혀 있었고, 신지 않는 신발이 두 켤레. 졸리는지 하품을 슬쩍 삼키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책상 앞에는 어울리지 않게, 푹신한 소파가 하나 놓여 있었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는 이 소파에 앉아 무엇을 구상했을까?
그곳에 앉으니 창작욕이 솟구쳤다.
일단 담배를 한 대 물고. 여기서는 담배를 아무리 피워도 잔소리할 거룩하거나 고상한, 주둥이가 없다. 그게 일단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이나 글을 구상하거나 쓰러 남의 카페에 가지 못하는 인간이 바로 나다. 담배를 물지 않으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하는 생각이라곤 어디 가서 담배를 피울까, 그 생각뿐이다. 성경에 손을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맹세하건대, 나는 담배를 계속 피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언어가 목젖 아래서 들끓는다. 이 시어를 뱉어내는 게 급선무다.
일단 티베트로 간 시인에 대해서 한 편을 쓸까? 이 움막도 시의 소재로는 그만인데? 일단 오늘 생각했던 석류알을 바탕으로 한 편을 뱉어보아야 하겠다.
석류는 나름대로 언어가 있다. 석류의 언어라고 제목을 붙이면 어떨까?
석류 속에는 강이 흐른다?
석류는 강을 품고 있다?
뭐 이렇게 시작해서 문장을 끌고 나가도 무방할 것이다.
티베트로 떠난 시인은 과묵한 데가 있다. 그의 침묵은 아마도 이 산맥에서 배운 걸이 테지. 산맥은 과묵하다.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는다. 산맥에 대해서 시상을 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산맥이 던져주는 격언을 읽는 눈이 없는 나는 그 시인에게서 과묵함을 배워야 할 일이다
목구멍 아래서 시어가 들끓고 있다.
무엇부터 뱉어야 하나?
왜 이리 급하지? 급하면 체하는 법인데, 나는 언제나 준비가 너무 빨라. 그게 항상 탈이야. 아니다. 그게 꼭 탈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게 급한 것이 내 최대의 장점이고 최악의 약점일 수도 있다. 느긋하게. 이런 골짜기에서는 느긋해도 좋을 일이다. 그때까지 내 배낭은 밖의 평상에 뒹굴고 있었다. 배낭을 가지러 나가니 만조의 해변처럼 녹음이 뜰 앞까지 차올라 있었다. 덤으로 몇만 평을 얻었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산을 등지고 보니 노을의 장삼을 갈아입은 산, 탁 트인 시야가 장관이었다. 배낭을 여니 어느 틈에 들어왔을까? 산그늘 한 줌. 노트북에 묻은 산그늘을 털어내며 나의 마음의 태엽을 감는다.
시어가 목젖 아래서 우글거린다.
아, 석류의 언어.
석류 속에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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