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에서 산출되는 불석을 깎아 만들었다. 몸에는 가슴을 가로지는 조백(條帛)을 둘렀고, 양 어깨에 걸친 천의는 발목을 감싼 후 대좌까지 드리워져 있다. 천의 끝부분을 소용돌이처럼 장식적으로 묘사하였으나, 짧은 신체비례 등 전체적으로 사실성은 떨어진다. 부릅 뜬 큰 눈, 큼직한 코와 입의 표현에서 조선후기 불상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해학성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의 자료에 의해 이 상의 원래 봉안처가 외동에 있는 원원사지였음이 밝혀졌다. 이 정도 크기의 금강역사상은 조선 후기에 응진전이나 나한전 등 중소규모 전각의 입구 좌우에 묘셔진 경우가 많다. 만약 이 절의 명부전에 모셔졌던 것이라면 이 상의 존명은 금강역사와 도상이 거의 비슷한 장군일 가능성도 있다.
<2014. 8. 19>
첫댓글 일반적인 금강역사상의 강렬하고 사실적인 인체 해부학적 표현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 있는 조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험구(險口)와 분노의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단히 위압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해학적이고 친근한 인상을 풍긴다. 머리와 상체가 하체에 비해 크고(이등신~삼등신의 신체 비례), 전체적인 체구가 다부지면서도 통통한(Deformed) 비례를 보여주어 독특한 덩어리감(양감)을 자아낸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앞으로 강하게 내지르는 권법을 취하는 듯한 권인(拳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허리춤을 짚거나 무언가를 움켜쥐듯 굽히고 있어 금강역사 특유의 방어적·공격적 역동성을 표현했다.
두 발을 대지에 단단히 딛고 서서 몸을 살짝 비튼 자세를 통해 정적인 가운데서도 힘의 응축을 느끼게 한다.
발목과 허리 주변의 옷주름(천의)이 매우 두껍고 입체적이며, 마치 소용돌이나 구름 문양처럼 둥글게 말려 있는 도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선 위주의 날카로운 표현보다 볼륨감을 강조한 조형 방식이다.
상체를 완전히 탈의한 일반적인 역사상과 달리,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두툼한 의복의 형태가 덩어리째 강조되어 있다.
강한 근육질의 신체 표현보다는 선이 굵고 둥글둥글한 볼륨감(양감)과 과장된 이목구비, 그리고 도식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옷주름을 통해 호법신으로서의 위엄과 민담 속 장사 같은 친근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뛰어난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경주 및 영일(포항) 일대에서 산출되는 하얗고 부드러운 성질의 돌인 '불석(제올라이트계 암석)'으로 제작되었다. 이 돌은 가공이 비교적 쉬워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의 소형 불상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나한상 등을 만들 때 자주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