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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당
서당도는 단원의 풍속화 중에서도 씨름도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으로 조선 후기 서당에서 일어난 찰라의 순간을 코믹하게 표현하고 있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크게 표현된 훈장님과 양 편으로 나뉘어 앉은 학동들, 그리고 가운데 앉아서 훈장님에게 바로 몇 초 전에 혼이 난 듯한 울고있는 아이의 모습이 더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서당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훈장님과 학동 아홉명이다. 나누어 앉은 아이들은 서로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에 앉은 학동들은 양반 자제로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다. 다섯 명 중에서 네 명의 얼굴이 보이는데, 이들의 시선은 모두 가운데 혼난 학생을 쳐다보고 있으며, 상당히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동들은 재미있는 장면을 즐기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훈장님의 난처한 표정이 참으로 압권이다.
오른쪽 학생들 중에서 맨 위에 갓을 쓴 학생은 제법 어른티가 나며 도포에 갓을 정갈하게 쓰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을 해야 상투를 틀고 의관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림의 왼쪽 아이들은 오른쪽 아이들에 비해 복장이 조금 다르다. 이는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신분제의 변화와 달라진 사회 모습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교육의 기회는 양반 자제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서민들 중에서도 부를 축적하고 삶의 여유가 생긴 이들은 자식들을 서당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들의 경우 아무리 경제적 여건이 좋아 졌다고 하더라도 양반의 복장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를 맞은 듯한 아이는 아마도 서민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복장 부터가 그렇고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오른쪽 도포를 입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 장면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으나 왼쪽의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들을 보면 안쓰럽고, 이 상황을 함께 이겨내려는 듯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한 아이는 입을 살짝 가리고 답을 가르쳐 주려는 듯 보이고 다음 아이는 책장을 넘기며, 해당 구절을 찾는 듯하고 다음 아이는 손가락으로 해당 부분을 가리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같은 신분의 아이가 처한 현실을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2) 씨름
씨름은 전형적인 원형구도의 그림이나 원형구도에서 보이는 안정감이나 편안함과는 다른 긴박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씨름은 가운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두 명의 씨름꾼을 중심으로 씨름장 주변의 모든 장면을 생략한 채 긴박한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는 구경꾼들과 다음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선수의 모습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씨름 그림의 압권은 긴박함이나 긴장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태도와 눈빛으로 자기의 직분인 엿팔기에 열중하고 있는 엿장수 아이의 인생을 달관한 듯한 모습이다. 약 2초 정도면 씨름의 승패가 갈릴 것같은 긴박한 순간이다. 이 판의 승자는 등을 보이고 있는 씨름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앙발을 크게 벌려 모래판에 굳게 딛은채,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야무지게 움켜쥐고 바짝 들어올린 들배지기 기술로 마지막 젖먹던 힘을 쏟기 직전이다. 상대적으로 얼굴이 보이는 한 발이 들린 상대는 균형을 잃고 얼굴에는 양미간이 바짝 조여진 상태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구경꾼들의 시선 역시 바짝 긴장된 모습들이다. 결정의 순간을 놓치기 싫은 듯 시선은 모두 한 중앙의 씨름꾼에게 쏠려있다. 그 중에서도 입을 벌리고 환호하기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다섯 명이고, 댕기머리를 한 아이들은 이미 승패를 알았다는 듯한 엺은 미소를 띠고 있다.
이에 반해 그림 왼쪽 위에 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 비해 나이도 좀 들어보이고 행색도 양반 차림을 하고 있어 절박한 순간에도 체통을 지키려는 양반의 허세를 느끼게 한다. 특히 중앙에 갓을 점잖게 쓴 인물의 표정이 그러하다. 갓을 벗고 양손으로 무릎을 감싼 인물은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씨름꾼으로 보인다. 신발을 벗고 버선차림으로 자신이 상대해야할 승자의 기술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진지한 표정이 이를 말해준다. 씨름 그림에 등장하는 구경꾼들 중에서 네 명이 손에 부채를 들고 있다. 부채를 든 사람들을 통해 씨름판이 벌어진 날이 단오라는 사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씨름 그림의 백미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무심한 엿장수 소년이다. 승패가 갈리는 긴박한 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구경꾼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만의 넘치는 여유가 씨름 그림을 더욱 돗보이게 한다. 엿판 위에는 몇 안남은 엿가락과 동전 세 닙이 놓여져 있다. 엿은 거의 다 팔은 것같은데, 엿판 위에 동전은 세 닙만 보인다. 비어가는 엿판에서 오늘 하루 매출은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년의 얼굴에 살짝 비치는 미소가 오늘 장사에 만족을 한 것같다.
(3) 무동(舞童)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서도 특히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이 무동(舞童)이다. 무동은 여섯 명의 악사와 춤추는 소년, 즉 무동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원형 구도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한 눈에 춤추는 무동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은 한 순간의 모습을 표현하였으나, 이 그림을 보면 악사들의 흥겨운 연주 소리와 무동의 추임새가 들리는 듯하고 춤추는 무동의 다음 동작이 상상되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다.
춤추는 무동은 나이는 어린 것같으나 동작과 얼굴 표정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왼 발을 땅에 딛고 오른발은 살짝 들어 가벼운 몸동작을 보여주고 왼 손은 목 뒤로 살짝 젖히고 오른손은 살짝 구부린 상태로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춤의 절정에 달한 몸 동작과 자신감 넘치는 얼굴 표정이 참으로 잘 드러나 있다.
둥글게 둘러 앉은 악사는 모두 여섯 명으로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조선 시대 이들 악사의 신분은 미천하기 그지없는 천민이었다. 그러나 이들 악사 중에서 세 명은 도포에 갓을 쓴 양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 악사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이들이 양반들이었으니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표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갓과 도포로 치장한 악사들과는 달리 벙거지에 군인 복장을 한 이들도 세 명이나 눈에 띈다. 북, 대금, 피를 부는 이들의 모습은 갓을 쓴 악사들과는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악사들이 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군인들로 구성된 악사들과 민간 악사들이 급조되어 한 팀을 이루며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팀과 구성원의 신분은 다르더라도 얼굴이 보이는 악사들(장구잽이, 피리, 해금)의 얼굴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특히 장구잽이의 들어올려진 어깨선을 보면 한 껏 흥을 낸 모습이다. 이들의 얼굴 표정과 몸동작에서 노련함과 여유가 넘친다. 이들은 바로 연주의 달인들인 것이다.
(4) 자리짜기
자리짜기에는 일가족이 등장한다. 자리를 짜는 아버지, 물레를 돌리는 어머니, 자기 몸집 만한 책을 읽고 있는 아들이 전부다. 자리짜기는 이 세 명의 등장인물과 그들이 일하는 도구와 장비, 책말고는 없는 단순한 그림이다. 그림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몰락한 양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양반 행세를 하던 서민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양반 간에도 계층이 나누어지게 된다. 오랫동안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노론 계열의 벌열양반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고,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 계열의 학자들은 경제적 여유는 있어 자기 고향에서 나름 큰 소리를 치던 향반과 토반으로 전락되었고, 그나마도 없던 이른바 "쥐뿔도 없는 몰락양반"인 잔반들은 평민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몰락양반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책과 붓을 놓고 그들이 천시하던 도구를 들고 일을 해야만 했다. 농민들처럼 농사도 지어야 하고, 체면과 체통을 접고 자리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등장하는 딸각받이 선비 허생 역시 몰락양반으로 부인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그들이 말업으로 여겼던 장사꾼으로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왔다.
아버지는 외출할 때 입는 포를 입고 사방건을 쓴채로 돗자리를 짜고 있다. 짜고 있는 돗자리는 거의 완성 직전이다. 얼굴 표정이 마무리를 잘해야 겠다는 진지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험한 일은 많이 하지 않은 듯, 여린 손마디가 붓대신 자리를 짜는 몰락 양반의 비애가 느껴진다. 곱상한 얼굴에 긴 저고리, 풍성한 주름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물래를 돌려 실을 자아내고 있다. 가녀린 손마디가 역시 험한 고생을 많이 하지 않은 모습이다. 삶이 고통스러웠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 표정을 참으로 담담하다.
그나마 이 집에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지만 아들은 글을 읽고 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은 놓지 않은 것이다. 자기 몸집 만한 책을 펼치고 가느다란 막대로 짚어가며 소리를 내어 글을 읽고 있다. 비록 지금 삶이 거칠고 힘들어도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이 집의 형편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몰락양반 집안의 희망을 본다.
(5) 타작
타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며 가장 눈에 거슬리는 인물이 '일하지 않는 자'이다. 이 사람은 땅을 소유한 지주이거나 양반지주의 대리인인 '마름'일 것이다. 웃통을 벗어 제끼고 제각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농민들과 비교되는 모습으로 한 잔 술을 걸쳤는지 붉게 물들은 얼굴에 긴 담뱃대를 꼬나물고 왼다리를 들어 올려 꼬고 비스듬히 누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민족은 수 천년 동안 농경을 주업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농기구들이 제법 발달하여 용도와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농기구들이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나 특이하게도 탈곡기는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남의 땅을 경작하고 수확량의 절반을 소작료로 지불해야 하는 농민들 입장에서 탈곡 만큼은 철저하게 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야지만이 탈곡이 끝난 후에 남은 낟알들이 제법 쏠쏠했을 것이다.
비스듬히 누워 담뱃대를 꼬나문 자를 '마름'이라고 하자. 농민들을 감독하는 것이 이들 마름의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나 타작도에 등장하는 마름은 긴장이 풀어진 상태이다. 한 잔 술을 걸쳐 마음은 풀어졌고, 삐딱하게 쓴 양테 넓은 갓은 몸마저 흐트러져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름과 대비되는 농민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대체로 밝은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는 4명 중에서 머리 위로 볏단을 치켜든 젊은이만 무슨 심통이 났는지 찡그린 얼굴이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은 지극이 밝다. 가을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수확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이 계절을 풍요를 표현하는 적절한 말일 것이다. 이들 농민들 표정에서는 비록 다 내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고 넉넉하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6명의 농민 중에서 4명은 화면에 대각선으로 놓인 나무기둥, 곧 '개상'에 볏단을 내리쳐 알곡을 털어내고 있다. 그림 위쪽에 지게를 진 인물은 넉넉한 마음으로 볏단을 옮기고 있다. 맨 발에 지게 가득 볏단을 지었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밝고 발걸음은 가볍다. 지게는 우리 민족 고유의 운반 도구이다. 전세계에 사람의 힘을 이용한 운반도구가 많이 있지만, 사람의 힘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적은 힘으로 큰 짐을 옮길 수있는 운반 도구는 지게가 가장 낫다고 한다.
그림의 맨 아래 구석진 곳에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빗질을 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이 그림의 핵심이다. 젊은이들의 밝고 활기차거나 또는 잔뜩 찌뿌린 젊은이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무념무상의 모습이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삶의 지혜일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털어내는 알곡이 이미 너희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6) 기와이기
이 그림은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모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건물은 기둥 2개와 기와 끝부분만을 표현하였다. 배경을 없애 간결한 그림을 그리는 단원다운 모습이다. 기와이기에는 총 7명의 사람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이는 맨 오른쪽에 긴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다. 이 사람의 지팡이는 노인들의 걸음을 도와주는 지팡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길이가 길고 지팡이를 잡고 있는 폼새가 무언가를 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혹시 이 사람은 이 건물의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총책임자는 아닐까?
또 흥미를 끄는 인물은 긴 줄에 매달린 추를 가지고 기둥의 수직을 살피는 이다. 이 사람은 이 공사현장의 2인자 정도는 될 것같다. 건물은 수평과 수직이 맞아야 제대로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러한 막중한 책임을 진 이 사람은 참으로 진지한 모습이다. 한 쪽눈을 지그시 감고 추가 흔들리지 않도록 줄 중간 부분을 잡고 건물의 형태를 보고 있다.
맨 오른쪽에 대패질을 하는 사람 역시 진지한 모습은 매한가지이다. 건물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려면 솜씨있는 목공의 손재주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대패질하고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대패는 끌어 당겨서 나무를 다듬는데 비해 이 대패는 밀면서 대패질을 하고 있다. 목수의 발 아래에는 큰 ㄱ자로 된 곱자와 큰 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는 탕개톱과 나무의 홈을 파내는 자귀가 놓여져 있다. 모두 목수가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이제 시선은 왼쪽에 기와를 이는 사람들에게 쏠린다. 맨 아래쪽에 한 눈을 팔며 진흙 더미를 올려주는 이는 웃통을 벗어 제켰다. 가장 허드레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이 공사장의 막내쯤으로 보인다. 하는 일도 가장 단순한 것으로 진흙을 뭉쳐서 지붕 위로 올려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줄에 매달린 진흙을 받고 있는 사람은 상당한 내공을 가진 기술자로 보인다.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지만 지붕의 처마끝에 발을 걸치고 줄을 당기려 하는 모습이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땅바닦으로 내동댕이칠 것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맨 왼쪽에 생생한 포즈로 기와를 던지는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생동감있다. 인물의 옆부분과 기와 부분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저 사람의 양 손에는 기와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1초 후면 지붕 위로 날리듯이 기와를 던질 것이다.
기와이기에서 가장 오래 눈길이 가는 인물이 왼 손에는 기와를 다듬는 도구를 들고 오른손으로 던져진 기와를 잡으려는 돼지코의 젊은이다. 상당히 숙달된 모습이다. 입을 앙 다문 모습이 야무져 보이는 젊은이는 둥근 얼굴에 가는 눈을 가지고 코는 저팔계의 코를 닮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기와이기의 달인으로 보인다. 역시 1초 후면 날렵하게 기와를 잡아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일상을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7) 대장간
조선시대의 대장간은 장터 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장간에는 별다른 기구나 구조물이 없다. 있다면 쇠를 달구기 위한 화로와 쇠를 두드리는 받침대인 모루가 다이다. 하지만 대장간은 옛사람들에게는 가장 요긴한 장소였을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 가장 필요한 농기구를 사거나 날이 무뎌진 농기구의 날을 갈고, 다듬는 대장간은 농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동네의 시설이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대장간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맨 아래 낫을 숫돌에 갈고 있는 소년을 빼고는 모두 대장간에서 일하는 일꾼들로 보인다. 모두 머리에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대장간의 중심 인물은 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진 쭈구리고 앉아 집게를 든 대장이다. 대장은 풀무질로 한 껏 달구어진 쇠덩어리를 모루 위에 올려 놓고 메질을 하는 메질꾼을 지휘 감독하고 있다. 큰 망치를 든 메질꾼은 대장의 지휘 감독하에 박자를 맞추어 달구어진 쇠를 두드린다. 쇠는 두드리면 두드릴 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밀도가 조밀해져 순도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들의 메질은 박자를 맞추어 두드린다. 한 명의 망치는 쇳덩어리에 닿아 있고, 또 다른 이는 내리치기 위해 망치를 한 껏 뒤로 제킨 상태이다.
뒤에 나이 어린 소년은 풀무질을 하고 있다. 풀무질은 화로에 공기를 불어 넣어 불을 더욱 활활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숯은 일반적으로 참나무숯을 많이 사용하는데 불어넣는 공기의 양도 쇠를 달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상체만 보이지만 이 소년은 발로 동작하는 풀무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에는 균형을 잡기 위해 줄을 잡고 있다.
화면의 맨 아래쪽에는 야무진 소년이 숫돌에 낫을 갈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이 야무지고 똑똑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소년의 뒤에는 지게가 보이는데, 아마도 산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무뎌진 낫을 갈기위해 대장간을 찾은 것같다. 요즘도 자전거포에 가면 두발로 바람 넣는 기계를 고정시키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소년 역시 대장간 직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 스스로 낫을 갈고 있다. 앉은 폼새나 손 동작이 많이 해본 솜씨라는 듯 여유가 있어 보인다.
(8) 주막
주막은 단원의 풍속화에서 보기드물게 배경이 포함된 그림이다. 주막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뚜막을 표현하였고, 기둥 두 개로 떠받치고 있는 초가 지붕의 한 부분을 표현하였다. 주막에 표현된 인물은 우리가 흔히 주모라고 하는 주막의 주인과 어린 아들, 막 요기를 하고 셈을 치르려는 젊은이와 무엇이 그리 바쁜지 허리를 숙이고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보인다.
주막은 김홍도의 다른 풍속화에서 보이는 여유와 느림의 미학보다는 바쁜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음식을 푸랴, 셈하는 젊은이의 돈을 받으랴 한 눈에도 바빠 보이는 주모의 모습과 주모를 더욱 바쁘게 하는 어린 아들의 보챔이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미 밥 한 그릇을 뚝닥 해치운 젊은이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담배 한 대 필 여유도 없이 셈을 치르기 위해 쌈지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특징인 "빨리 빨리"의 모습이 여기에 그대로 표현된 듯하다.
바삐 걸음을 재촉하려는 젊은이보다 더 바쁜 이가 있다.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허리도 앞으로 잔뜩 굽힌채로 수저를 밥그릇에 넣어 밥을 뜨고 있는 초립을 쓴 중년의 아저씨는 한 눈에도 바빠보인다. 빨리 요기를 하고 먼 길을 가야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중년 아저씨가 먹고 있는 밥그릇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우리가 요즘 먹는 밥그릇의 여섯 배 정도는 클 것같다. 저 많은 밥을 어떻게 다 먹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다.
김홍도의 다른 그림 새참에 등장하는 밥그릇들도 모두 저만하다. 조선 시대 후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여행한 서양의 여행가들이 기록한 글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을 무지하게 큰 그릇에 먹는다고 적혀있다. 저 정도는 먹어야지 트림을 하고 일어서서 "아! 잘 먹었다" 소리가 입에서 나올 것같다.
(9) 우물가
우물가는 사선 구도의 그림이다. 정상적으로 우리 그림을 보는 방식으로 본다면 오른쪽 위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우리들의 시선은 웃통을 벗어제낀채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있는 배불뚝이 사내에게로 먼저 간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염치없는 한량이다. 이 한량의 모습은 가히 가관이다. 무과에 합격한 한량들이 입는 철릭을 입었으나 앞섬을 풀어 헤쳤다. 게다가 갓도 벗어 철릭에 매달은 불량스러운 모습 그대로이다. 염치도 체통도 벗어제낀 한량은 체신머리 없는 수염에 음흉한 미소가 두레박에 물을 건넨 여인에게 한 번 수작이라도 걸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두레박을 건넨 수줍은 미소의 여인은 아름답다. 단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미모를 지녔다. 혜원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 못지않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애써 사내의 음흉한 눈빛을 외면하는 듯 고개를 외로 틀고 눈을 내리 깔았다. 그따위 수작에는 관심도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물 위에 올라서서 물을 긷는 여인은 담담하다. 이 그림에서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못하는 말 그대로 조연의 역할이다. 사내의 수작에도 관심이 없고, 사내와 여인의 무언의 대화에도 끼어들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나이 탓인가? 또 반복하지만 단원의 그림에는 주제와는 관심없는 세상을 달관한 듯한 인물이 꼭 등장한다. 이 여인이 우물가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물가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맨 오른쪽 위에 오른손에 두레박을 움켜쥐고 물동이를 인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는 중년 여인이다. 물 길러 오는 도중인지, 집으로 가다가 눈에 담지 못할 장면을 봐서인지 우물가에서 염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사내를 보고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눈초리와 입술 모양에 그대로 담고 있다.
(10) 빨래터 (훔쳐보기)
빨래터를 보면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떠오른다. 그러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혜원의 단오 그림이 그네를 타려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이 주인공이고, 바위 뒤에서 희희낙락하면서 머리만 내밀고 여인들을 훔쳐보는 어린 동자승들은 그야말로 조연의 역할이다.
단원의 그림에서 주인공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은밀한 눈빛으로 여인들을 훔쳐보는 사내가 주인공이다. 바위 뒤에 몸을 한 껏 숨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내의 몸은 거의 다 드러나 있다. 그저 얼굴만 부채로 가렸을 뿐이다.
빨래를 방망이로 내려치려는 동작을 하고 있는 여인들은 허벅지를 드러낸 채 수다를 떨고 있는 것같다. 두 여인 모두 방망이를 치켜든 모습이다. 둘 중에 한 명은 방망이로 빨래를 내려치고 있어야 구색이 맞을 것같은데, 두 여인의 방망이는 하늘로 한 껏 치켜 올라가 있다. 방망이 끝은 공교롭게도 훔쳐보는 사내를 가리키고 있다. 네 놈이 훔쳐보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은 아닐까?
위쪽 왼손으로 방망이를 치켜 든 여인은 바로 옆에 있는 후덕해 보이는 여인에게 뭔가 말을 걸려는 얼굴로 보인다. 예전 개울가의 빨래터는 여인들만의 정보 공유의 장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귀찮은 시아버지, 잔소리 하는 시어머니, 속 썩이는 신랑에게 가졌던 서운함을 힘찬 방망이질로 풀지는 않았을까?
물에 발을 담그고 빨래는 짜는 여인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하다. 그러나 빨래를 움켜진 이 여인의 손은 야무져 보인다. 단원의 풍속화에는 이렇듯 세상을 달관한 듯한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항상 화면의 왼쪽 끝에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너럭 바위에 앉아 머리를 다듬는 여인은 이미 빨래를 끝냈나 보다. 훔쳐보는 사내 아래 바위에 널린 빨래가 그것이다. 빨래를 마치고 머리도 이미 감았나보다. 아랫도리를 홀랑 드러내고 칭얼거리는 아이도 무시한 채 여인은 아랑곳 없이 머리를 매만지는데 열중하고 있다. 단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엄마에게 매달려 칭얼대는 모습이나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며 보채는 모습이다. 혹시 단원은 어머니의 정에 굶주렸던 것은 아닐까?
(11) 새참 (점심)
새참은 단원의 그림 중에서 가장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이다. 새참 그림에는 배경이 없으나 아마도 나무 그늘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들의 옷차림을 보면 모내기가 한창인 초여름 임을 알 수 있다. 땡볕에 앉아 식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열 명이다. 이들은 세 패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가슴을 당당하게 풀어 헤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와 아이들이다. 주변에 남자들이 일곱 명이나 있는데도 여인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가슴을 열었다. 여인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더 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젖을 물고 있는 아기는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엄마 젖을 물고 있다. 그 옆에 더벅머리 형은 자기 몸집만한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고 있다. 아직 들일을 할 나이는 아니니까 어디서 친구들과 정신 없이 놀다가 새참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엄마를 발견하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와서 어른들의 만찬에 낀 것같다.
화면의 오른쪽 위 두 명의 젊은이는 나이가 어린 탓으로 어른들의 식사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있다. 아직 어른들의 식사 자리에 낄 나이는 아닌 것같다. 술병을 들고 있는 아이는 아마도 삼형제 중의 큰 아들일 수 있다. 옷차림으로 보아 들일을 하지 않은 것같다. 집에 있다가 새참을 들고 가는 엄마를 따라 심부름을 온 것으로 보인다. 술병을 들고 있는 폼새가 누군가 청하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술을 따를 자세를 하고 있다. 준비된 심부름꾼이다.
새참의 중요 인물들인 중년의 사내들은 이제 거의 식사를 마치는 중이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 밥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한 술을 뜨려는 사람, 이미 식사를 마치고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도 허리를 숙여 막걸리를 마시는 젊은이는 본래 젊은이들 자리에서 식사를 마친것 같다. 막걸리를 마시는 자세가 영 어색하다. 그래도 상당한 멋쟁이다. 막걸리잔을 든 손가락 하나가 삐죽 튀어 나왔다. 한 껏 멋을 부렸다. 조금 당돌한 젊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젊은이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단원의 그림에는 무심한 사람이 꼭 있다. '새참'에서도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바른 자세로 앉아 무표정한 모습으로 여유있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이 남자, 항상 화면의 왼쪽 끝에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단원 그림의 또 다른 볼거리다. 이 무심한 사람은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자세와 표정이 너무 다르다. 점잖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이 인물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제 눈길은 사람이 아닌 검둥이에게로 간다. '새참'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검둥이, 무심한 부처님과 함께 '새참'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놈이다. 검둥이는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기를 그래야 검둥이에게도 먹을 것이 생긴다. 애처롭고 안쓰러운 모습과 표정을 하고 있으나 이 놈은 현실적이고, 현명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자기 분수를 아는 검둥이다.
(12) 밭갈이
소가 웃고 있다. 힘들텐데, 소 두마리 모두 웃고있다. 이제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첫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을 헤집어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작업이 바로 쟁기질이다. 쟁기질은 바로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이다. 어찌 흥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소가 웃고 있는 것이리라.
소는 우리 조상들에게 가족만큼이나 끔찍히 여기던 동물이다. 소가 책임지는 농사의 양이 사람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의 노동력을 제공한다. 어찌 귀히 여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단원의 밭갈이에 등장하는 소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소가 수평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 소 두마리는 위로 치솟고 있다. 화면의 구도상으로 이 모습이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쟁기질을 하는 사내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다.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었으나 별로 쓸모는 없었을 것이다. 워낙 말 잘듣는 소들이니까 소의 얼굴과 움직임에서 지나친 자신감을 볼 수 있다. 어깨가 바짝 올라간 모습이 막 쟁기를 땅 속 깊이 박기위한 순간으로 보인다. 긴장감이 절로 느껴진다.
쇠스랑을 들고 땅을 고르는 두 사내 역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웃는 소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발목까지 흙이 덮힌 것으로 보아 쟁기질이 끝난 땅으로 보인다. 소가 땅을 뒤집어 놓았으니 고르게 하는 작업은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13) 행상
말 그대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파는 것을 행상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는 우리네 남자와 여자의 운반 도구가 모두 표현되어 있다.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인다. 조선 시대에 장터를 떠돌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했다. 등짐장수, 봇짐장수를 일컫는 말이다.
이 그림은 무겁다. 등장 인물의 얼굴 표정도 그렇고 등에지고, 머리에 인 이들의 짐도 무거워 보인다. 삶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패랭이를 쓴 남자는 젓갈장사로 보인다. 아마도 새우젓 장사일 것이다. 꼭꼭 싸맨 덮개가 국물이 흘러서는 안되는 물건이 들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남자의 눈빛은 참으로 부드럽다. 여인을 바라보는 눈이 사랑스럽다. 주고 받는 눈빛만 보면 이들은 부부로 보인다. 여인의 눈매 역시 수줍다. 살짝 내린 눈꼬리가 순정적으로 보인다.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들쳐없은 여인은 광주리의 무게만큼, 아이의 무게만큼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래도 눈빛은 선하다. 치마를 걷어 올려 허리에 질끈 동여 매었다. 걸음을 쉽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인의 눈빛과 복장에서 삶의 무게를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14) 길쌈
조선의 며느리는 고달프다. 아니 조선의 여인들의 삶은 힘들었다. 밥 짓고 빨래하는 집안일, 농사일 그리고 들일이 끝나면 또 길쌈일을 해야 하는 것이 그네들의 숙명이었다. 길쌈의 주인공 역시 얼굴 표정이 밝지 않다.
여인들의 숙명인 길쌈은 참으로 고단한 작업이다. 여인네가 짜는 것은 무명이다. 무명 길쌈의 과정은 우선 목화를 따서 잘 말린 다음 '씨아'에 넣고 씨를 분리한다. 씨를 뺀 목화는 평평한 나무 도마에 올려 놓고 수수깡으로 밀어 고치를 만다. 화면 아래쪽 바구니에 고치가 그려져 있다. 고치솜은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단원의 다른 그림 '자리짜기'에 방안에서 물레질 하는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단원의 풍속화에는 길쌈의 중요 과정이 다 그려져 있는 것이다.
물레를 통해 뽑은 실은 베틀에 올려 실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풀을 먹이는 베메기 과정을 거친다. 그림 뒤에 등을 보이고 오른손에 든 솔로 풀을 먹이는 여인이 하는 일이 바로 베메기 과정이다.
베메기 과정을 거친 실로 이제 무명을 짠다. 이 그림의 하일라이트가 바로 길쌈의 마지막 과정인 베짜기이다. 베짜는 과정은 실을 베 한폭에 들어가도록 올의 수대로 도투마리에 감아 베틀에 올려놓고 오른발 발가락에 매달린 줄을 당겼다 폈다 하면서 베를 짜게 된다. 여인의 왼손은 바디를 잡고 있고, 오른손에는 북을 들고 있다. 북실을 바디 사이로 왔다갔다하고 바디를 앞으로 당겨서 베를 짜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게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은 할머니의 몫이다. 일하는 며느리를 위해 어린 손자는 등에 업고, 큰 손자는 할머니 허리끈을 놓칠세라 꽉 잡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못마땅한 표정이다. 며느리 일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지, 아니면 손자를 봐야하는 일이 고된 것인지? 할머니가 방금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한 것같다. 할머니의 마땅찮은 입모양이 이를 말해주고 며느리의 굳은 얼굴 표정으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있다.
(15) 고누놀이
고누놀이는 여유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여유로움이다. 이미 오늘 할 일은 끝냈다. 지게에 한 짐 가득 나뭇단이 쌓여있다. 같이 올라온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산을 내려 가는 일만 남았다. 하기사 일찍 내려가봐야 주인의 잔소리와 또 다른 일이 주어질 것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림을 보자. 일행 중에 제일 손이 늦은 친구는 이제 막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약속장소로 오고 있다. 이 젊은이는 천성이 여유로운 것같다. 제일 늦었는데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고누 판에는 네 명이 둘러 앉아 있다. 중앙에 가슴을 풀어 헤친 아이는 얼굴 표정과 앉은 자세에서 자심감이 넘친다. 또래 아이들 중에서 요즘 말로 "짱"의 분위기가 난다. 마주한 체구가 작은 아이는 오른손에 돌을 집어 들었다. 이 아이의 차례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 자신이 없다. "짱"의 표정과 대비된다. 옆에 웃옷을 벗어 허리춤에 두른 아이는 돌을 집은 아이의 형은 아닐까? 그런데 역시 얼굴 표정에 자신이 없고, 훈수는 두고 싶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것같다. 그에 비해 조금 멀찍이 앉은 무릎을 감싼 아이는 빙그레 웃고 있다. 아마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놀이에 끼어들 생각은 없는듯 하다.
단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무심한 인물이 여기 또 있다. 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는 이 아저씨는 아이들의 놀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담뱃대를 입에 물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16) 고기잡이
단원의 풍속화 중에서 유일하게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상단에 있는 어살은 주로 조수간만의 차가 많이 나타나는 서해안에서 행해졌던 물고기 잡는 방법이었다. 밀물 때 밀려왔던 바닷물이 썰물 때 빠져나가면서 물고기들이 쳐놓은 어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구조로 물이 어느정도 빠진 후에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줍기만 하면 되는 가장 손쉬운 고기잡이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어살은 주로 권력있는 자들의 몫이었다고 한다. 한 번 어살을 만들어 놓으면 재정적 부담이나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하루에 두 번씩 고기를 건져내기만 하는 노다지같은 돈줄을 힘있고, 권력있는 자들이 그냥 두고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기잡이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다른 그림과 다른 것은 넓은 지역을 표현하다보니 인물의 크기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다른 그림 나룻배에서도 배에 탄 인물들이 작게 표현된 것과 같은 것이다. 발목까지 바닷물이 빠진 어살 안에 있는 두 명의 인물은 고기를 건져 거룻배를 탄 이들에게 넘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살에 갇힌 물고기는 건져내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바다 위에는 세 척의 배가 있다. 가운데 있는 배는 이미 고기를 항아리에 모두 담은 것같다.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식사를 하려는 지 거룻배에 있는 아궁이에는 작은 가마솥이 있고, 오른쪽에 있는 젊은이는 아궁이에 손을 넣고 불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맞은 편에 있는 젊은이는 군침을 삼키며 밥이 익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에 선 이는 손에 물고기를 들고 있는데, 물고기의 생김으로 보아 조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건네받고 있는 배에는 역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물고기를 건네받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이 배의 주인으로 보이는 인물은 여유롭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 배에서 가장 힘을 쓰고 있는 인물은 배가 밀려나지 않도록 삿대를 바다에 깊이 박고 버티고 있다.
맨 아래에 초가로 지붕까지 있는 배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큼지막한 상투를 튼 사람은 무심히 삿대를 갯벌에 박고 서있다. 단원의 그림에는 항상 무심한 사람이 등장한다. 고기잡이에 등장하는 배들은 모두 거룻배로 크기가 작고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다. 크기나 형태로 보아 먼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배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기잡이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 갈매기들이다. 이미 빠른 놈들은 어살에 올라 앉아있고, 뒤늦게 합류하는 놈들의 날개짓이 바쁘다. 갈매기들은 기다린다. 아직은 자신들의 만찬 시간이 아니다. 어살 안의 인부가 돌아가면 이놈들은 어살 안에 남은 작은 물고기들로 배를 채울 것이다. 그래서 기다린다.
(17) 나룻배
참으로 무심한 그림이다. 전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강을 가로지르는 두 척의 나룻배에 꽤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조선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모든 이들이 모였다. 양반도 있고, 평민도. 심지어 승려들까지 등장했다. 여자와 어린 아이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은 모두 심각하다.
두 척의 나룻배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배의 크기도 비슷하고 배에 탄 사람들의 숫자도 엇비슷하다. 윗배에는 10명의 승객과 사공 두 명, 그리고 소가 나뭇짐을 잔뜩 싣고 있다. 그에 비해 아랫배에는 더 많은 사람과 동물들이 있다. 12명의 승객과 소 한마리, 말 두마리에 사공이 한 명이다. 윗배가 사공이 두 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앞서 나가고 있다.
나룻배는 앞쪽 그러니까 이물쪽이 상석인 것으로 보인다. 등장 인물 중에서 도포에 갓을 쓰고 사방건을 쓴 양반들이 두 배 모두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룻배에도 신분질서는 있었나보다.
그런데 배에 탄 인물들 모두 표정이 없다. 그나마 윗배의 사공 앞에 젊은 두 명의 표정이 그래도 좀 밝은 편이다. 지금의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모두 화 난 사람들 같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특성인가? 그래도 무리 중에 친한 사람이 있으면 상황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앞에 거론한 담뱃대를 문 두 젊은이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어 대화를 하며 즐겁게 배를 타고 있다.
등장 인물 중에서 반 수 이상이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다. 예전 역사스페셜을 보니 모대학교의 여교수님은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장과 모자를 연구하시는 분이 계셨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모자는 모두 16가지라고 한다. 이 나룻배에도 갓을 쓴 양반들, 초립을 쓴 사람들, 삿갓을 쓴 사람들, 수건에 머리에 두른 여인들이 등장한다. 우리네 선조들은 참으로 다양한 모자를 쓴 것같다.
(18) 노상파안(路上破顔:길 위에서 삐닥한 눈으로 쳐다보다)
이 그림 역시 잘 차려입은 선비의 훔쳐보기가 주제인 것같다. 그림은 나귀를 탄 선비와 구종이 있고, 소를 탄 일가족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선비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순간적으로 여인네를 흘깃 훔쳐보고 있다. 점잖치 못한 모습이다.
선비는 구종이 고삐를 잡은 나귀를 타고 있다. 그런데 나귀의 몸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 크기 만한 작은 암나귀이다. 그나마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선비의 구차한 나들이길에 새끼 나귀도 어미젖을 물고 따라 나섰다. 선비는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양테 큰 갓에, 치렁치렁한 도포에, 붉은 안장에, 말 안장에는 생황까지 갖추었다.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모양이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나귀를 타고 외출하는 것을 즐겼다. 우선 나귀는 말보다 싸고, 체구는 작지만 말보다 강인한 동물이다. 병에도 강하고 먹는 것도 말의 절반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귀는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풍류와 여유를 즐긴 선비들 입장에서 속도가 빠른 말보다는 느리지만 실속있는 나귀가 더 입맛에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 등장하는 선비의 고삐를 잡은 구종은 초라한 맨 발이다. 새끼 달린 왜소한 나귀와 맨발의 구종은 선비의 체모를 손상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선비는 여인네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체통은 이미 버린지 오래이다.
반면 소를 타고 가는 여인의 가족들은 의연하고 활기차다. 쓰개치마로 선비의 음흉한 눈길을 피하는 여인의 여유가 그렇고, 엄마 품에 앉아 소를 타는 아이의 표정은 참으로 의젓하다. 어디를 가는 걸까? 아이를 업고 개나리 봇짐에 닭을 매단 여인의 남편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다.
(19) 담배썰기
담배썰기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으로 보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으로 보인다. 제목과 일치하는 일을 하는 사내는 왼팔이 지나치게 굵게 표현되어 강조되고 있다. 아마도 힘을 쓰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팔이 너무 크게 표현되어 있다.
담뱃잎을 가지런히 모아서 한 20장 정도 되는 잎을 가늘게 썰고 있다. 담뱃잎을 써는 도구는 작두로 볼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두와는 조금 다른 것같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작두는 나무받침에 고정된 아랫날이 있고, 아랫날과 연결된 윗날을 움직여 작업을 하게 되는데, 단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작두는 아랫날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냥 바닥에 대고 작두질을 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에 웃통을 벗어제낀 사내는 담뱃잎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썰기 직전의 마무리 작업으로 보인다. 담뱃잎을 정리하는 사내 앞에 있는 중년은 부채질을 하면서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입모양을 보면 크게 웃고 있다. 아마도 머리 복잡한 유교 경전이 아니라 소설책인 것같다. 조선 후기에는 평민도 볼 수 있는 한글 소설이 유행한 사실이 이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담배를 썰고 있는 사내의 맞은 편 젊은이는 또 담담하면서도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가 있다.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지켜보고 있는 폼새가 보고 배우려는 의지가 보인다.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같은데.... 하는 미소말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전해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담배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17세기가 되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바가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왔던 서양인에 눈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까지 아무 스스럼없이 담배를 태운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원의 풍속화에도 유달리 담배피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양반들과 기생들은 모두 긴 담뱃대를 손에 쥐거나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많다. 담배가 음식을 먹은 후에 소화작용을 돕는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담배가 일상적으로 즐기던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 그림감상
유건(유생들이 평상시나 향교, 서원 혹은 과거시험장에 나갈 때 쓰거나 제사에 참석할 때 쓰던 건)을 쓴 일곱 명의 선비들이 그림인지 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종이를 펴놓고 감상을 하고 있다. 얼굴이 보이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할 때 참석한 인물들의 연령대가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그림을 잡고 있는 이는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인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선비와 담뱃대를 든 선비도 있고, 담뱃대를 든 선비 옆에 있는 선비는 제일 나이가 어린 것으로 보인다. 장소가 어딘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단원 정도의 수준있는 화원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같다.
참석한 선비들의 표정이 진지하면서도 유쾌하다. 기록에 의하면 단원의 그림을 본 선비들이 박수를 치면서 "진귀하다"를 외쳤다고 한다. 이들이 보는 그림 역시 상당한 수준의 그림으로 보인다.
(21) 신행
예전에는 장가를 갔다. 조선 중기만 하더라도 처가살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후 성리학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남존여비 사상이 짙게 영향을 끼치면서 처가살이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후에도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이 '신행' 역시 조선 후기 결혼 풍습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인 것이다.
'신행'은 앞 뒤로 많은 부분이 생략된 그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공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병풍그림인 평생도를 보면 신행 장면은 꼭 등장하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청사초롱을 든 등롱잡이 2명, 기러기아범 1명, 말고삐를 쥔 마부 2명과 신랑, 신랑의 남자 몸종 1명, 신랑의 유모 1명 등 모두 8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맨 앞에 청사초롱을 든 등롱잡이는 본래 4명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명은 생략하고 두 명만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 오른쪽에 보이는 젊은 친구는 잔뜩 화가 나있다. 무엇이 그리 불만일까? 얼굴 표정이 썩 밝지가 않다. 그에 비해 벙거지를 쓴 젊은이는 화난 젊은 친구를 야단치는 모습이다. "너 왜 화가 난거야? 오늘 같이 좋은날"
기러기를 소중하게 감싼 기러기아범은 신랑 집안의 명망있는 인물일 것이다. 의관을 바르게 정제하고 얼굴에도 위엄과 기품이 흐른다. 특히 잘 손질된 수염은 멋스럽기까지 하다. 기러기는 예전 결혼식에 있어 필수 품목이다. 혼인 과정 중에 '전안례'가 있는데, 전안례는 신부집에 도착한 신랑이 신부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을 말한다.
기러기는 살아 있는 것을 쓰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인형을 쓰기도 한다. 살아있는 기러기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나무 기러기를 사용하였다. 나무 기러기의 코를 뚫어 청홍의 색실을 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러기는 일부일처의 새로 유명하다. 한 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고 한다. 기러기는 백년해로의 상징인 것이다. 그래서 혼례에 기러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기러기아범 뒤에 있는 마부는 얼굴 표정과 몸짓이 사못 흥분된 모습이다. 신라의 말을 끄는 마부인데도 말보다 다섯 걸음정도 앞에 섰다. 마음이 바쁜 탓일 것이다. 신랑 옆에 선 마부는 유모가 탄 말의 말고삐를 잡고 있다. 조금 노련한 모습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뒤를 따르는 신랑의 몸종 역시 빙그레 웃고 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백마를 탄 신랑은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 의젓하다. 갸름한 얼굴에 곱게 자란 젊은 선비임이 틀림없다. 나이에 비해 의젓함이 느껴진다. 복장은 '사모관대'를 하고 있는데, 손에는 홀도 틀고 있다.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나이인 것으로 보이는데, 사모관대를 착용하고 있다. 결혼식만의 특권이다. 혼례를 올리는 여자들도 옹주옷을 입고 혼례를 치른다. 감히 옹주옷이라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혼식이니까 특별히 봐주는 것이다.
마지막 유모의 표정도 밝지 않다. 왜일까? 지체있는 집안의 귀한 아들이 태어나면 유모를 붙인다. 혹시라도 마님의 젖이 모자랄까를 염려해서이다. 유모는 귀한 도련님을 양육하는 일만 신경쓴다. 다른 노비들과는 다르게 집안일도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젖먹이고 업어키운 도련님이 장가가는 좋은 날 왜 유모는 인상을 쓰고 있을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22) 장터길
단원의 풍속화첩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두 장의 그림을 이어 붙인 것으로 갈지자 형태의 구도이다. 이미 앞선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이 그림에는 총 아홉 명의 사람과 아홉마리의 말과 소 한 마리가 등장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장터길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이 장사꾼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짐도 없고, 너무 여유만만한 모습들이다. 짐을 실으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물건을 다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그림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혹 어떤 이들은 '역'에 소속된 역졸들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마지막 양반 복장을 한 인물들도 그렇고 등장하는 이들이 너무 젊다.
등장인물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맨 앞에 말을 타고 있는 젊은이를 비롯하여 더벅머리 총각들도 있고, 삿갓을 쓴 이도 두 명이다.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겨울인 것으로 보인다. 중간에 삿갓을 쓴 이는 삿갓 안에 풍차를 쓰고 있고, 맨 뒤 갓 쓴이 앞에 선 젊은 친구 역시 풍차를 쓰고 있다. 풍차는 겨울용 모자로 귀부분까지 보온이 가능한 모자이다.
말을 타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세 번째 말을 탄 젊은이는 아예 돌아앉았다. 뒤에 담뱃대를 입에 문 젊은이 역시 모로 앉았다. 이들은 말 타는 것에 상당히 익숙한 인물들로 보인다. 도대체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일까?
맨 뒤에 양반 복장을 한 중년의 사내가 이 일행의 리더인 것같다. 담뱃대를 점잖게 물고 한 껏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두 젊은이 역시 담뱃대를 물고 있다. 하기사 이 당시만 하더라도 노소를 불문하고 담배를 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인데, 요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싸가지 없는 젊은이로 보인다.
(23) 시주
배경이 없더라도 길거리임을 알 수 있다. 승려 두 명과 주인공인 여자와 어린 여종이 등장하고 있다. 두 명의 승려는 아니 조선시대에는 중이다. 두 명의 중들은 고깔과 송낙을 쓰고 긴 가사장삼을 입고 있다. 고깔을 쓴 중은 광쇠를 들고 있고, 송낙을 쓴 왼손잡이 중은 자루가 긴 목탁을 한 껏 두드리고 있다. 손 동작과 입 모양에서 불경을 외며 두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명의 중은 표정이 참으로 애틋하다. 시선은 여인네의 쌈지로 가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쌈지에서 엽전이 몇냥이나 나오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불경을 외고, 목탁을 두드리지만 시선을 그래서 여인네의 쌈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들의 앞에 놓인 것은 모연판이라고 한다. 모연을 중들이 재물을 기증받기 위해 펴놓은 것이다. 모연판 앞에 보란듯이 옆전 몇 닙이 뒹굴고 있다. 이미 이들은 오늘 일당을 했을 지 모른다. 그런데 운좋게도 지나가던 여인네가 쌈지를 열고 있으니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을까?
여인네는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이 여인의 신분은 아마도 기생이리라 치마를 훌쩍 걷어올린 폼새가 일반 어염집 아낙네로 보이지는 않는다. 심성은 착한 것같다. 길을 가다 중들에게 시주 몇 푼 놓고 가려는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다. 여인의 여종으로 보이는 어린 종은 아주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그래도 할 일은 다 하는 야무진 아이로 보인다. 머리에 인 광주리가 야무지게 올려져 있고, 오른손에는 부채를 왼손에는 장죽을 들고 있다. 이 부채와 장죽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여인네일 것이다.
(24) 편자박기(말 징박기)
무엇을 하는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단순한 그림이다. 말의 징을 갈아주고 있는 것이다. 말굽은 사람으로 치면 발톱에 해당한다. 험하고 먼 길을 달려야 하는 말의 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쇠로 U자형의 징을 만들어 쇠못으로 박아 주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의 발굽에는 신경이 없어 쇠못을 박아 넣더라도 말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김홍도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 두 명이 있다. 바로 강세황과 조영석이다. 특히 조영석은 선비 화가로 풍속화를 잘 그렸다. 조영석의 풍속화 중에서도 단원의 말 징박기와 너무도 흡사한 그림이 있다. 말을 뒤집어 놓고 네 다리를 묶은 다음 나무에 걸어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말의 징에 못을 박고 있는 그림이다. 단원의 말 징박기 그림에서도 말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나무 작대기까지 고여 놓았다.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말은 꼼짝할 수 없는 신세이다. 서양의 경우에는 말을 세워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다리를 들어 징을 박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징 박기는 서양의 그것과는 방법 상에 차이가 있다.
징박는 장면 아래에는 말굽에서 떼어낸 닳은 징과 도구들이 보인다. 방금 떼어낸 듯 아무렇게나 팽겨쳐진 모습이다. 그런데 화면 위쪽으로는 작은 상 위에 밥그릇만 덜렁 놓여 있다. 인부들의 새참인지, 화면이 단조로워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저고리를 입은 힘깨나 쓰게 생긴 사내가 나무 작대기를 거친 힘으로 움켜잡고 있다. 말의 힘이 좀 센가, 이 사내도 지금 용을 쓰고 있다. 말이 움직이면 작업이 힘들어진다. 그에 비해 몸집이 작은 사내는 야무지게 생겼다. 머리에 쓴 모자는 대장간에 나오는 인물들이 쓰고 있는 불꽃 모양의 모자다. 아마도 대장간에서 일하는 노련한 달인으로 보면 될 것같다. 작은 눈매에 앙다문 입이 제법 야무진 모습이다. 그리고 동작에 여유가 있다. 팔에 근육이 불끈 솟았다. 이제 힘을 다해 못을 박으려는 찰나인 것이다.
(25) 활쏘기
제목은 활쏘기이나 실제로는 활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들은 무과 시험을 준비하는 예비 장군들이거나 아니면 무료함을 달래는 선비들일지도 모른다. 글을 읽는 선비들도 활쏘기는 교양과목처럼 선비로써 갖추어야할 덕목이었다. 송경습사(誦經習射)라고 했던가?
이들의 차림새를 봐서는 이들의 직업이나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양테 넓은 갓을 쓴 노련한 인물이 젊은이에게 활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활을 쏘는 젊은이는 왼손잡이이다. 왼팔로 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으나 표정은 "왜 이렇게 안되지"이다. 뒤쪽 바위에 앉아 화살을 쳐다보고 있는 젊은이는 참으로 여유롭다. 한 눈을 지그시 감고 화살의 수평이 제대로 맞았는지 살펴보는 자세에 여유가 느껴진다. 왼발을 오른발 무릎위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 여유로움을 더한다. 활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중년의 사내는 진지하다. 활은 균형이 잘 맞아야 바르게 나간다. 지금 양무릎에 활을 걸치고 있는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
첫댓글 단원풍속화첩!
해설이 있는 작품이 있기에 업어다가 조금 정리를 했습니다.
자상한 해설과 함께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해학이 넘치는 단원의 그림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