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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과 한국에 얽힌 역사적 까르마(業)
지난 토요일에 축구 한ㆍ일 친선 경기가 있었다. 이 경기에서 우리 한국 팀이
승리하자, 스포츠 신문들은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 특히 그 중에 어느 모.신문
은 ≪도쿄 대첩≫이란 표현을 썼다...
『대첩』이란 전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왜 이런 전투적인 용어를 그 딴
친선 축구경기에 사용하는가? 정말 친선 경기가 맞는가? 아니면 두 국가간의
자존심을 건 민족적 대립의 상징인가?
이런 것을 말하기에 앞서, 아마도 우리의 의식 저 아래, 어딘가에는 『일본(日本)』
이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 맹목적인 저항심,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
다. 니케타나 홈페이지에서 나의 닉네임(Satta)을 카다가나 『サッタ一』로 쓰자,
일부 몇몇이 『나는 일본 문화ㆍ일본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 이름을 되도록
이면 영어 아니면 한글로 써주었으면 한다.』라는 비평을 한 적도 있다.
영어는 허용될 수 있다. 독일어나 불어도 괜찮을 것이다. 심지어 중국 한자로 써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는 보기 싫은 것이다. 일본어로 쓴 이름은 왠지 사람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며 그 사람을 매국노처럼 보게 만든다.
과거에 우리가 일본에게 국가적으로 당한 그런 아픈 기억들……. 아직 불과 100년
도 지나지 않았기에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서는 언제나 적대감과 함께 극일(克日)
이란 이슈와 함께 대중적 관념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식민 지배…….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흔히 『왜(倭)』란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여 해적질을
해댔던 그들……. 그들과 우리는 어떤 까르마가 서로 얽혀 있길래 이처럼 오늘날까지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야사(野史)를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하여... 제대로 정립된 역사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적(靈的)인 차원에서 볼 때, 야사란 분명히
일어났던 일이며, 단지 그것이 구전되어 온 과정에서 상징화되고 변형된 것으로
되었을 뿐이다...
1970년대 이후로 재야사학계와 민족사학을 주로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일본서기
의 문헌과 한반도에서 일찌기 사라진 백제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한 때, 이들이 낸 서적은 일본 역사학계에까지 전달되어, 그들 일본 재야사학계에서
도 비슷한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비류백제(沸流百濟)와 일본(日本)의 국가기원≫ㆍ ≪韓日交流二千年(한일교류2천년)≫
ㆍ ≪百濟의 大和倭와 日本化過程(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과정)≫ㆍ≪日本の中の朝鮮
文化≫ㆍ≪한국상고사≫ㆍ≪환단고기≫ 등.
이중에서 특히 ≪환단고기≫는 오늘날까지 역사학계에서 완전히 근거없는 졸작(?)으로
취급받고 있다. *^^* 그러나 과연 아무런 근거도 없는 졸작일 뿐일까?
졸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뭔가 사건이 있었기에 쓰여진 내용이 아닐까?
그리고 또 오래 전 일이었다. 동아출판사에 출판하고 만화가 김산호가 그려낸 ≪대쥬신
제국(大朝鮮帝國史)≫를 읽어 본 적이 있었다. 이 책 또한 대부분의 사학계에서는 졸작
(?)으로 취급받고 있다. *^^* 위의 야사(野史) 기록들을 모두 이리저리 앞뒤 끼여 맞추어
그림(만화)과 함께 편찬해 낸 서적이다. 그러나 과연 졸작에 지나지 않을 뿐일까? 그럴까?
이 책은 시리지로 오늘날에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시인이었던 고 은, 초대문교부장관 안호상, 문화일보신문사 이규행 등,
사회 주요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제작하기 까지 작가 김산호는 11년 이상의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11년
이상의 제작기간이란, 단순히 흥미 위주의 소설같은 작품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어떤 미친(?) 작가가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 11년 동안 준비를 하겠는가?
내가 볼 때, 위에서 열거한 야사 자료들을 토대로 나름대로 객관적인 연구에 연구를 거듭
하느라 그만한 기간이 걸렸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주로 눈낄을 끄는 대목중 하나가 제 2권인 ≪한반도와 왜열도≫ 편이다...
그 안에는 한국과 일본의 까막득히 잊혀진 과거사가 그대로 나열되어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2천년 전의 일본 열도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ㆍ가야의 담로국
(식민지)이자 이민자들이 몰려든 신천지였으며, 동시에 그 후에 일어난 영토쟁탈전의
피해를 입은 슬픈 땅이기도 하다. 특히 그 중에서 백제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띈다.
우리가 역사 책에서 배운 백제국(百濟國)은 하나가 아니라 모두 3개의 제국(帝國)으로 나누
어져 있었다... 비류백제, 온조백제, 그리고 외백제이다.
우리가 역사속에서 흔히 알고 있는 백제는 온조백제로서 다른 말로 흔히 사학계에서는
『남부여』라고도 부른다.━훗날 십제(十濟)가 됨.━ 외백제는 서해에 있는 오늘날의 중국
산둥반도 일대의 영토이며, 일본 열도에 있는 것이 비류백제이다.
이 중에서 비류백제는, 온조백제의 응신천황이 서기 390년에 감나루(지금의 공주지역)에서
고구려의 담덕대왕(광개토왕)에게 패하면서, 왜열도(일본)로 옮겨 오면서 그 기원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백제는 바다 건너 신천지로 향하게 되는데… 백제땅, 지금의 전라도 지역에 남아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남부여국을 세우고 십제를 건설…훗날 나당연합국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까지,
수많은 귀족들과 유민들이 배를 타고 비류백제(일본)로 건너 갔다고 기록 되어있다.
이렇게 해서 일본땅의 대부분이 백제의 신천지이자, 새로 개척한 주 활동무대가 되었다.
한편 지금의 경남지역, 가야(加倻) 연합국의 9명의 왕자가 왜열도의 서쪽 지역으로 건너갔는
데, 9명의 왕자가 건너 갔다고 하여 아홉개의 주, 즉 『규슈(九州)』라는 지역이 되었다고 한
다. 왜열도로 건너간 가야 세력과 백제계는 처음에는 각각 서로 대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세라불(신라)도 개입되고, 왜열도는 그야말로 19세기 유럽 제국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며
서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꼴과 비슷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히 왜열도(일본)에 백제의 담로국(식민지)을 세우기 위해 백제에서 파견된
장군, 신무(神武)는 그곳의 원주 토인들인 즈치구모(土蟲知蛛)와 히가비토(侏偉) 종족을
아이ㆍ어른ㆍ여자ㆍ노인 할것 없이 모두다 멸족(滅族)시켜 버리는 잘못을 저지른다고
기록되어 나온다. 그래서 그 책 내용에 따르자면, 지금의 일본인들은 거의 90%이상은,
배타고 물건너간 한반도의 사람들이다. 즉 ≪오늘날의 일본민족 = 2천년 전 바다를 건너간
백제와 가야의 후손들≫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계속해서 그 책은 말한다...
백제와 가야, 그리고 세라불(신라)이 ━특히 백제━ 왜열도에서 이토록 그곳 원주민들을 학살
해가며 영토쟁탈전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원주민은, 오늘날 일본의 최북단
훗가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족이었다. 이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고구려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구려는 백제ㆍ가야ㆍ세라불(신라)와 달리, 조공만 잘 갖다바치면
자치권을 부여해 주는 상당히 관대한 식민지배 정책을 폈다고 기록되어 나온다. 더욱이 고구려
는 그 당시, 중국 수ㆍ당 제국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대제국이었으므로, 백제와 세라불(신라)
이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는 그들 역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다행스럽
게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원주민이 되었다. 1998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서도 이러한 혼란의 고대 시대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삼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학자들의 지대한 눈낄을 끌었다.
참고로 이와 비슷한 역사가 영국이다. 영국도 알고보면, 로마제국 시대에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네델란드, 북유럽 등 지역에서 자주 바닷가로 나가던 해적들이 그곳을 침략하여 개척한
땅이다. 그곳의 원주민은 켈트(Celt)족으로, 이들은 그 옆의 섬인 아일랜드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지금도 북아일랜드와 영국인들 사이에는 많은 문화적인 차이가 있고, 서로 그리 썩
좋지 않은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다.━영화 『브레이브 하트 (1995)』와 『크라잉 게임 (1993)』
을 보면 잘 알수 있음. ^^━
일본에 대한 이런 견해들은, 물론 아직까지 객관적으로 증명될 만한 사료나 근거자료는 없다.
대부분 야사(野史)의 기록을 앞뒤로 끼여 맞추어 추론해낸 것일 뿐이다. 따라서 매우 왜람된
견해들이며, 광복회같은 애국론자들이 듣기엔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
은, 일제 식민지 35년, 그리고 임진왜란 등, 근대사를 보면서 우리 한국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자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일본과 한반도의 고대사에 얽힌 여러 많은 서적들,
비록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들 야사들을 읽어보면.... 결국 불교의 윤회
론처럼 ≪뿌린대로 거둔다.≫란 진리가 새삼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본의 고대문화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세라불(신라)
도 아니요, 고구려도 아니요, 백제이다. 지금도 일본의 그 유명한 법륜사━법룡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에는 몇몇 백제 미술품들이 그대로 있으며, 백제 귀족들과 왕호에 대해 언급한
시(詩) 구절들이 적힌 골동품들도 있다. 아직 장담할 수 없으나, 이런 기록들이 사실이라면, 과거
우리가 일본의 원주민들에게 가했던 잘못들 역시 사실일 수도 있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조심스례
주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