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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아빠, 살쩌서 와야 해 1978년7월25-26일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64 10.09.08 10: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있는 제3국인의 가족을 찾아주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족을 떠나봐야 가족이 소중한 줄을 안다.

우리가 남의 나라에 가서 구박을 받아 서럽다하면서 우리는 남을 너무 서럽게 하는 잔인한 성정을 스스로 반성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면서 결혼 1년, 신혼의 달콤함이야 일러 무엇 하랴. 눈에 잡히는 아들놈은 또 어떻고.

 

아내와 헤어지던 날, 비가 왔음 하는 날이었지만 쾌청하였다.

그 날의 일기는 이랬다.

 

아내와 헤어지면서.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면서 비행기를 타고는 장거리는 초행이라서 나는 마치 다시 못 올 길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야 다들 지긋지긋하도록 아는 일이지만 내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내 메모는 만약의 경우, 내 흔적이 남기를 바라는 맹랑한 욕심이었다.

길고 따분하여도 읽어주시라.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하듯 느끼는 감회니 여러분의 초행과 비교를 해보시면 어쩔지.

 

1978년7월25일(화) 맑음

아내, 숙은 아파트의 문안에서 나를 떠나보내며 발을 구르며 울었다. 눈물은 홍수처럼 숙의 눈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아기를 낳고 삼칠일이 겨우 지난 아내에게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너무 힘들어 무슨 탈이 날까 걱정 때문이었다.

“병 나지마. 살쪄. 아빠.”

말도 채 잇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내와 부엌 바닥에서 아내를 안고 나도 눈물을 흘린다.

 

힘을 내고 잘 다녀와라 하시던 부모님의 모습.

집의 일은 걱정을 말라 하시던 장모님.

공항까지 나와 주신 숙의 외숙모와 막내 이모님.

 

그런 분들을 뒤로하여 19:15발 KAL 905편은 조국을 뒤로 하고 날랐다.

돈을 벌러 간다는 들뜬 마음도 새로운 땅을 밟는다는 동경 따위도 없다.

마음은 몸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떠 있다.

마음을 부추기기 위하여 힘을 내라.

너는 홀몸이 아냐. 가족이 있잖아.

 

김포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메모지에 메모를 시작한다.

 

19:15 KAL905기내

산소마스크 교육, 구명대 교육, 스튜어디스는 기내 방송에 따라 춤추듯 시범을 보여준다.

이륙, 활주로를 달린다. 김포 공항 관제탑이 비행기 창 너머로 흘러간다.

 

19:20 비행기 달리다가 일단 대기

 

19:25 다시 활주로 주행

 

19: 28 기수를 하늘로

은빛 날개 아래로 구름이 흐른다. 김포평야가 푸르다.

창가에 부서지듯 들어오는 햇살이며 비행기의 기수는 하늘로 치솟는다.

 

이 비행기 KAL905는 홍콩-마닐라- 태국을 경유하여 바레인이 최종 목적지. 구름이 피어오른다.

섬인가 하면 산이 되어 치솟아 있는 검푸른 산야가 뒤로 밀려간다.

극동, 삼환이나 다른 건설업체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두고 온 식구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돌이켜 볼 시간은 이제는 언제냐.

 

19:30 얼마나 울었을 숙인가. 아들을 보내면서 용기를 주신 부모님, 집 걱정은 말라던 장모님, 비행기 창에 구름 흐르듯 눈앞에 서계신 듯, 시간은 간다. 현실의 시간은 가고 있어도 내 마음의 시계는 집에 있던 시간에서 멈춰있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밤으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비행기 창밖은 어둠으로 가득이다.

알 바틴 현장으로 가는 윤복남씨와 함께 스튜어디스에게 위스키를 청했다.

스튜어디스는 한복을 입고서 음료수를 공급한다. 한 잔의 술로 졸립다. 차라리 콜라를 먹을 것을 그랬다. 기내는 담배 연기가 가득하다. 마음과 마음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흐른다.

 

1987년 7월 26일

 

08:30 먹을 것이 나온다.

흰 식판에 감색 받침 종이에 깔린 청결한 식탁

메뉴로는 빵, 셀라드(오이, 배추, 토마토), 밥은 쌀밥에다가 마늘장아찌, 따끈따끈한 달걀 무침, 버터, 소금, 소수

마실 것은 커피이니 나로서는 화려한 식단이었다.

 

10:20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 공항 면세점을 보았다. 면세점에는 조잡한 물건들이 있다.

홍콩 아가씨들에게 중국말로

"니 하우 마? "

하고 다른 몇 마디를 했더니 까르르 한다.

면세점에 들어 갈 때는 몸수색을 한다.

중국 꾸냥은 비닐 봉지를 나누어주며

" 시계, 담배. "

하며 혀 꼬부라지게 외친다.

홍콩 바다가 보인다. 쟝크선이 불빛에 흔들리고 네온사인으로 가득하다.

11:00 비행기 안으로 돌아왔다. 이래서 홍콩을 껍데기만 보고 지나치는 것으로 끝났다.

 

비행기는 이륙을 하며 기수는 방콕으로 잡았다.

음료수가 나왔다. 주스, 사이다, 콜라 중에서 하나를 청할 수 있다.

식사가 나온다.

쌀밥과 찬으로는 오이지, 당근, 다진 고기, 단무지와 커피

눈가리개를 나누어주었다. 잠을 편하게 자라고 주는 것이다.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졸립다. 선잠으로 눈이 뻣뻣하다.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것도 고통이다.

 

방콕 면세 지역에 들어갔다. 태국인의 모습은 다르다. 다른 세계에 왔구나 하는 기분을 실감한다.

면세 지역은 민속물이 많이 있었다. 춤추는 여인, 아오자이 여인, 의상점, 양품점이 있으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단지 구경뿐이다.

 

MAN은 남자 화장실이다.

비행기 안 화장실에서 태국인이 용변을 보고는 그냥 잠들었다.

승무원이 두드리고 깨우고서야 나왔다. 그는 방콕에서 내려야 했는데 내리지 못했다고 소리소리 지른다. 아직 비행기는 방콕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태국 말로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콕 면세 지역을 나왔다. 여기서는 면세 지역을 나올 때 몸수색을 한다.

하이재킹의 공포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한국인 승무원들이 외국인 승무원으로 바뀐다고 했다.

우리말을 아는 승무원들이 없다니 허전하다.

 

03:25 다행스럽게도 비행기를 타니 승무원들이 교체되었지만 우리 기장, 우리 승무원들이었다. 마음이 놓인다.

 

03:32 이륙 준비를 하면서 기체는 활주로로 진입을 했다.

 

03:39 비행기가 떴다. 방콕 공항이 사각으로 보였다.

이제 밖을 내다보는 일도 시들해지고 못 다한 잠이나 잘까 하는 궁리부터 한다.

 

03:50 눈가리개를 하고서 잠이라고 청할 참에 스튜어디스가 물수건을 나누어준다.

무엇인가 먹을 것을 주겠다는 조짐이다.

 

04:00 영락없지. 주스가 나온다.

기내 방송은 다음 경유지를 인도의 폼페이라고 한다.

비행 고도 10,000km, 시속 900km

 

04:15 맙소사, 또 먹을 것이 또 나온다. 밥을 도대체 몇 끼니를 먹일 셈인지.

이제 악으로 먹어야 하나.

큰 도시락에는 파란 콩, 아기 토마토, 양념 범벅의 고기, 꽃무늬 빵, 유선형의 아기 양파) 다른 그릇에는 계란, 샐러드, 또 다른 그릇에는 양 케이크, 또 다른 그릇에는 대형 바나나, 컵에는 물, 다른 컵에는 커피.

내가 씨름 선수냐.

사람들도 먹는 일에는 지치고 만다. 반을 먹다가 만다. 나도 그 축에 낀다.

왜 이리 먹인대.

앞으로 또 먹을 것이 나오려나.

 

07: 20 인도 폼페이에 도착했다. 기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창으로만 비행장 건물과 외곽 지대를 본다. 먼 곳의 불빛이 정답다.

먹고 재우고 하니 사람들은 마치 우리에 갇힌 돼지 꼴이다. 소화도 안 되고 있다.

소화제를 먹고 싶다.

 

08:27 폼페이 공항을 떠났다. 이제는 바레인으로 향했다.

 

08:45 아침이 나왔다.

도시락에는 김밥 2개, 유부 밥3개, 연근 등이 나왔다. 새벽에 먹은 밥이 아직 소화가 안 되어 뜨는 둥 마는 둥 물렸다.

 

09:20 화장실에 다녀와서야 겨우 속이 후련하다. 입국 신고서를 쓰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09:55 창문 아래로 바다가 어둠 속에서 윤곽이 보였다.

바다 위에 하늘, 더 진한 하늘 그리고 더 진한 어둠이 첩첩 이다.

태양이 기체 오른쪽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시뻘겋고 무서운 더위를 예감하게 하는 태양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태양과 달라 보였다.

 

10:03 하늘이 환하게 열렸다. 하늘은 그 하늘인데 왜 이다지 달라 보일까. 두 개의 화장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통로를 막고 있다.

 

10:25 하늘은 맹렬하게 햇빛을 비행기 안으로 쏟아냈다.

사람들은 창문으로 몰려든다.

새로운 땅을 본다는 호기심이다. 미지란 늘 새롭고 궁금하다.

 

11: 05 곧 바레인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안전벨트를 매고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11:08 기체, 하강을 시작했다.

 

11; 26 덜컹, 드디어 왔구나. 왔어. 여기 날씨는 흐림.

아직 어둠을 느낀다. 착각인가.

 

12: 05 바레인 공항에 도착했다. KAL 사무실은 본사로부터 업무 연결이 안 되어 바레인에서 다란까지 가는 비행기 편이 연결이 안 되고 있다.

시간을 바꾸자.

위의 시간은 내 시계가 가리키는 우리나라 시간이다.

 

여기가 중동이냐?

사방에서 중동 냄새이다. 우리가 우리나라 사람 냄새를 풍기듯 여기에 오니 노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만큼 낯선 땅이다.

자, 사방을 잘 살펴보자.

 

옛친구

새로운 출발! 그 장도에 용기를...

너무도 세세한 묘사와 그 가닥가닥 정이 흐르니 감동입니다.

건필을... 11-01 *

소정희

선생님 글을 읽으니, 이 우주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요.

내 나라땅을 한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제게 선생님의 젊은 날의 고뇌와 이별과 한 세월 겪으셨을 역정들이 신선한 감동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아득한 공중에 떠 있어 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일테지요~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되겠군요, 삶의 전투!! 건투를 빕니다!! 선생님!! 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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