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없는 종교는 폭력일 뿐입니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강론>
(2024. 9. 7. 토)(루카 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1-5)”
1)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12,1).
예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한 일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변호해 주신 것도,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심심해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의 기준으로는, 배가 고파서 그랬더라도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탈출기와 신명기의 ‘십계명’을 보면,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탈출 20,10; 신명 5,14).
밀 이삭 몇 개를 뜯어 먹은 것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리사이들은 그것도 곡식을 추수하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는데,
“밀 이삭 몇 개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가
바리사이들의 엄격하고 철저한 율법 준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엄격하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2) 바리사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좋은 예가 마카베오기 상권에 있습니다.
“...... 그들은 대항하지 않았다. 돌을 던지지도 않고
자기들의 피신처를 봉쇄하지도 않고, ‘우리는 모두
깨끗한 채로 죽겠다. 너희가 우리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증언해 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안식일에 공격을 받아 아내와 자녀와 가축과 더불어
죽어 갔다. 죽은 이는 천 명이나 되었다(1마카 2,36-38).”
천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군이 공격하는데도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었습니다.
<최소한의 방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안식일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사이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타티아스와 그의 벗들이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 형제들이
한 것처럼 한다면, 우리가 모두 목숨과 규정을 지키기
위하여 이민족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이제 곧 그들은
이 땅에서 우리를 몰살시킬 것이다.’
그날에 그들은 이렇게 결의하였다. ‘안식일에 우리를 공격해
오는 자가 있으면, 그가 누구든 맞서 싸우자. 그래야
피신처에서 죽어 간 형제들처럼 우리가 모두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1마카 2,39-41)”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그냥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까?
안식일이라고 해도 전투를 해서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3) 마르코복음을 보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마르 2,27).
안식일 계명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들은 전부 다
사람들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해서 내려 주신 것이지,
억압하고 죽이려고 내려 주신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항상 ‘법’보다 ‘사람’이 위에 있습니다.>
사실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명령의
본래 취지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종들을
쉬게 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4-15).”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아도 굶을 걱정이 없는 사람도 있고,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양쪽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는 말씀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과 뜻이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 즉 메시아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구원 활동이 안식일 규정 적용의 기준이라는 것,
즉 안식일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마태오복음을 보면,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마태 12,7).
자비 없는 법, 자비 없는 종교는 폭력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언제나 항상 ‘법’보다 ‘사람’이 위에 있습니다.>
자비 없는 법,
자비 없는 종교는 폭력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