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집 가까운 곳에 성당이 있어서 밥해먹고 학교가기 바쁜 그 와중에도 나는 새벽미사 저녁미사를 자주 참석했다
토요일엔 친한 짝꿍 친구랑 성당 교리실에서 공부하길 좋아했고 날씨 좋은날은 혼자 성당 잔디밭에 이젤을 펼치고 풍경화나 장미꽃 피는 계절에는 화폭에 장미꽃을 그리길 좋아했다
짝꿍 친구는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나보다 잘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성당 오빠들도 잘 따르고 언니 오빠 동생 이 다 있는 친구가 나에겐 선망이 되기도 했다
나를 잘 챙겨주고 식당일을 하는 엄마를 도와 식당일이며 집앗일도 참 잘하는 착한 친구 였다
성당의 선배 오빠들중 유난히 혼자 슬그머니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흔히 주말과 주일에 학생들이 모이는 시간에도 거의 보이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그 한해 선배 남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 읍내보다 더 촌구석에 살아서 잘 모르지만 내 친구는 읍내에서 오래동안 성당에 다녀서 그 오빠 집안에 대해서도 잘알고 있었으며 내 친구는 진심으로 그 선배 오빠를 짝사랑 했다
어느날 성당에서 스치기라도 하면 금방 좋아 죽을듯이 나에게 자랑했고 그 선배 얼굴이 조금만 어두워 보여도 친구는 세상 무너지듯 가슴아파 했으며 어느날은 선물인가를 사서 그 오빠 가방에 넣어두었다고도 했다
나는 마치 그 남자 선배는 미래의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의 남편감이라도 되는듯 멀찌감치 바라보앗다
한해 선배였던 그 오빠가 예비고사 시험을 치뤘고 내친구는 간절히 그 오빠를 위해 기도했다 선배는 대구시내 국립대학인k 대학에 합격했다고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그 대학은 비록 지방대학이나 서울대 연.고대 다음으로 알아주는 대학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고3을 준비하던 2월이었든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오는데 그 선배오빠가 골목입구에 서 있다가 머뭇 머뭇 하는 나에게 포장된 책을 하나 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하고 갔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아무말도 못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와서 풀어보니 수학 정석 참고서 였다 참고서를 단원별로 나눠서 하나 하나 분리된 별책으로 제본을 다시 해놔서 공부하기좋게 정리되었고 분단마다 중요한 곳은 빨강펜으로 더욱 강조하게 체크해 두어서 내가 고3때 수학공부하기에 참 좋았으며 이후 2년 아래 동생도 그책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암튼 그렇게 책을 받은뒤 그 선배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책 받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을 못하고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친구는 언니 오빠 동생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엄마 일손 돕기로 하였는데도 늘 성적은 좋았다
내가 대구로 이사를 가게되어 친구는 더이상 만나기 힘들었고 선배 소식도 물론 모른다
그런데 대구에서 가톨릭학생회 총 연합회 단체에서 그 선배를 한번 보았다
대학 입학 축하해 라고 한마디 해 주었는데
나는 친구대신 내가 책을 받았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그 선배를 못본거 같다 학교가 달랐으나 찾으려 하면 찾을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럴생각을 못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이후에야 나는 어렴푸시 내 감정을 알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성당에서 그 선배를 보면 가슴이 콩닥거렸음을...
그런데 워낙 친구가 선배에게 빠져있어서 나는 감히 내감정을 내 자신도 몰랐다는 것을...
왜 그때 좀더 적극적으로 그 오빠를 찾거나 씩씩하게 대답조차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했을까 후회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더이상 만나지도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사춘기에는 다 바보가 되눈 거예요,,,ㅎㅎ~~~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베스트 셀로가 홍성대 님의 수학 정석입니다. 학기마다 거의 200만 부씩 팔리니... 홍성대 님은 그렇게 번 돈으로 모교(서울대)에 기숙사까지 지어주었지요. 자식들에게는 회사 주식 고르게 나누어 주고... 고령임에도 지금도 정성 늘 교열하면서 새롭게 다듭는답니다.
이젠 아련한 추억 거리 당시 영어는 A.W메들리 삼위일체 시절 같아요 저는 스페인서 인도양으로 노예 생활보담 힘던참치잡이외화벌이갈시 가져갔는데 귀국시 일본선박으로 싱가폴 올시 말라카 해협을 뒤쪽에 그려는데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시절 유교권 문화라 쉽게 말걸기도 어려운 시대라 누구나 갖은 추억이 있는것 같아요
첫댓글 화백님의
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노랫말처럼 옛 추억이 절절합니다
엄동설한에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소망합니다.
귀한댓글 감사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네요
시골 생활 자주 들려주시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여간 제가 지적성숙님 앞에서는 언제나 두손 듭니다
밑줄친 수학정석 공부만 했으면 k 대 가서 cc했을텐데
정답이 나왔네요 ㅋㅋ
그러게나요
수학정석만 풀었지 그걸 주는 그마음의 정석은 수학풀이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지적성숙
제 옆에 지적성숙님 같은 친구만 있었어도 화끈하게 해답얻고 그옵빠야를 잡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아까비 ~~
그나이니까 그랬죠~
그때니까 더 싱그러웠던거죠.
하하
용감하게 살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죠?
이후에는 저의 용감한 이야기도 들려드릴께요
사춘기에는 다 바보가 되눈 거예요,,,ㅎㅎ~~~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베스트 셀로가
홍성대 님의 수학 정석입니다.
학기마다 거의 200만 부씩 팔리니...
홍성대 님은 그렇게 번 돈으로 모교(서울대)에 기숙사까지 지어주었지요.
자식들에게는 회사 주식 고르게 나누어 주고...
고령임에도 지금도 정성 늘 교열하면서 새롭게 다듭는답니다.
아
지금도 생존하시는 분 이시군요
그때는 그 수학정석 성문영어 들고 다니는게 멋있게 보였죠?
노을님 쓰신 책 중에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있으면 추천좀 바랍니다
지금은 이지성의 리닝을 리드라라 를 읽는중입니다
두번째 정독중
@이젤 <패턴으로 세상의 흐름을 읽다> 정도? 넘 많아서리~~~
@노을이야기 일단 이책을 구입해서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목만 들어도 급관심 입니다
이젠 아련한 추억 거리 당시 영어는 A.W메들리 삼위일체 시절 같아요 저는 스페인서 인도양으로 노예 생활보담 힘던참치잡이외화벌이갈시 가져갔는데
귀국시 일본선박으로 싱가폴 올시 말라카 해협을 뒤쪽에 그려는데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시절 유교권 문화라 쉽게 말걸기도 어려운 시대라 누구나 갖은 추억이 있는것 같아요
요즘 값자기
그 어릴적 소녀적 일들이 새록새록 떠 오르네요
수십년간 잊고 있었던 귀한 보석같이 와 닿습니다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만합니다...ㅜㅜ
돌아올수없는 그시절이기에, 마음한켠에 간직된 추억를 회상하는 이젤님의 빛바랜 고은~연정(?)의 회고록이군여~~~!
늘~평안하시기를~~~!
그 당시에는 연정인줄도 몰랐지요
한참 시간이 흐른뒤에야
그 선배도
제 마음도 어쩌면 연정이 아니였을까
생각되었지요
아름다운 한 순간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분도
어느가정의 가장이 되었을테고
성당 정원에서 그림그리던 작은 여고생을 기억하겠죠?
서로가 서툴어서 아름다웠던
수학 이라면 까막눈인 까미유는
그 수학 때문에 예능계열로 진학 할수 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 입니다
그 참고서 기억에도 없습니다
예비고사 때 수학을 순전히 갠또로 ㅜㅜ
이젤님 기억 속 성당 오빠
저는 셀수도 없답니다 한밤의
자뻑 였음다 ㅋ
나처럼 못난이에게도 그러했는데 미스코리아 배출하는 송0미용실에 다니던 까미방장 님이야
성당오빠 교회오빠 셀수가 없어서
딱히 기억나는게 없는것은 아닐까요?
ㅋ
@이젤 아 ‥
글고보니 김옥* 원장님도
많이 늙으셨겠다요 세월이 ‥
샤프롱만 하시더니 기여이
자기 딸도 미코로 만들드라고요
대구를 빛낸 여인 중 한 분 입니다
우리 이젤님 글에.여러가지 상념이 스쳐......
딸이 중학생때,매일 새벽마다 미사를 나가기에
추울까 다칠까 하여 못나가게 말리다가 나중엔 폭력까지 ㅜㅜ
지금도, 아빠가 잘못했다 말하고 삽니다
(근데 서른이 되어도 아는오빠 하나 없는건지 ~~)
ps ; 예비고사 시절의 대구 국립K대 는 서울의 국립S대 다음 이었음
항도 부산의 B대 와 함께 ^^
혹시 그 학생의 아빠신가요?
그때 못가게 해서 오빠를 놓친거는 아닐까요?
쫌만 기다려보셔요 성당오빠 모시고 오실겁니다
@이젤 앗 자정 너머까지 글을 주시고..
네 이제는 네식구 다 교중미사.
그데 이 딸, 반주단 성가대 다 하는데도 감감 무소식 ㅜㅜ
ps : 님께 예전에 문의드린 기억이 나는데요..
6촌누님이 인사동에서 그림 개인전 을 했는데,
제가 한 점도 안샀습니다. 이거, 큰 실례 죠 ?
@향적 저는 4촌 형제들도 아무도 안사시더군요
제가 한점씩 드리긴ㅇ했습니다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드시면 한점 사시면되고 그게 아니면 약간의 축의금 정도면 좋겠죠
마음에도 안드는데 촌수관계라고 사시게 되면 작가도 부담돼요
하하하. . . .
사랑은 용기 있는 자가 차지하는 건데. . . .
꾸벅!
그러게요
성장과정 이겠지요
그런 작은 아쉬움이로 인해 용기를 배우는. .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누구든 그때?는 몰라요 ㅎ 늘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되죠~
사람이 살다보면 다 때가있죠..
때.. 그 때를 잘 알아차리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ㅎ
인간의 어리석음에 그 때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게 문제죠^^
글 잘 보고 공감햇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시간과 공간이 일치해야 인연이 만들어지는게
우주원리인데 말이죠
좋은 휴일 되세요
이젤님 고향이 대구인가 봐요. 저도 대구에 정착하며 살고 있답니다.
저도 첫사랑이 있지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첫사랑이요. 기회되면 글을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한때는 송중기 같은 미남이었답니다.
대구에서 학교다니고 지금은 대전에서 살지요
지금도 송중기가 보면 울고 갈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