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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때린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결로 종결된 노무현 죽이기 수사는 적반하장의 전형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기록물 유출 시비 이후, 도둑들의 근 1년여에 걸친 집요하고 야비한 몽둥이 찜질에 결국 주인이, 시대의 양심이, 차가운 이성이 자결로 항거했다. 한국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전직 대통령이 가장 지저분한 대통령, 검찰, 언론의 합동 몽둥이 찜질에 맞아 죽었다.
고문치사 사건이다.
사실 그 동안 정몽헌 현대아산회장, 남상국 대우건설사장 등 비리 혐의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유명 인사의 자살은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질 일은 있었지만, 법적 책임을 질 일은 없었다. 포괄적 뇌물죄 구성의 핵심 요건이 되는 ‘500만달러’, ’100만달러’, ‘40만달러’ 수수를 인지한 증거도 정황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의 인생 역정과 성품상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무현은 그에 대해 해명을 하였다. 검찰은 이를 뒤집는 증거를 찾으려고 정말 샅샅이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의 해명을 구두발로 짓이겼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사실 공표금지의 원칙?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 국가의 품격? 그런 것은 검찰과 독과점 언론의 사전에는 없었다. 그들은 노무현을 거짓말이나 일삼는 시정잡배로 낙인을 찍기 위해 검찰은 언론에 실시간 중계방송하듯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은 이것을 재료로 아예 소설을 써곤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깨끗한 대통령을 위선자, 거짓말쟁이, 마누라와 애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열한 인간처럼 비치게 하였다. 사실 노무현 수사의 의도와 본질은 이것이었다. 4월 30일 소환조사 후, 곧바로 결정한다던 기소 여부를 3주가 지나도록 결정하지 않고, ‘40만달러’ 추가 수수라는 새로운(?)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증거나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말종으로 낙인을 찍는 작업을 지속하려 했다. 사냥개와 하이에나들은 몇 달간 지속되는 노무현 가족, 지인들에 대한 고문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노무현의 몰골을, 사냥꾼의 심정으로 즐겼음이 분명하다. 그 쾌감을 연장해 보려고 (4월에는 더 이상 소환 계획이 없다던) 권여사를 5월 중에 재소환 한다고 천명하였다. 대통령과 가까운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환하고, 뒷조사하고, 기소 여부도, 시기도 결정하지 않고 피의사실을 하나 둘씩 내놓은 것은 명백히 고문 기법이다. 고문을 당장이라도 끝낼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무기한 연장하면 당하는 사람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고문 기술자 놈들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이근안과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단순한 고문 집행자인 이근안 보다도 훨씬 준엄하게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기획.연출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잊으면 고문치사 사건은 반복된다. 단적으로 수십년 전 고문 치사 사건과 이번 사건의 가해자 중에서 동일한 존재가 있다. 검찰과 독과점 언론이 그들이다. 이들은 법원,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과 달리 단 한번도 자신의 과거사를 반성해 보지 않은 집단이다. 고해성사를 하기에는 저지른 만행이 너무 크고 많기 때문일까?
노무현 자결 사건은 언듯보면 과거 폭압의 시대에 할복, 분신, 투신, 혀깨물기 등으로 가치를 발산하던 志士의 자살 사건과 닮았다.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과거 음습한 공안 분실에서 피의자인 자신이 아니라, 처자식과 지인들을 잡아두고 고문하는 극악한 만행을 견디다 못한 민주 투사의 자결 저항과 닮았다. 과거 민주투사들은 중앙정보부/안기부/검찰이 강요하는 대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 진술 하거나, 동지를 팔아먹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폐인이 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하곤 했다. 그 때 민주 투사는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가족, 지인,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해 고문의 주 대상이자 뭇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인 자신의 생명을 없애버리는 시도를 하곤 했다.
노무현으로서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온 가족, 지인, 측근, 후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자신은 법정에서 진실 공방을 벌리면서 비루하게 사는 길을 택할 것인가?(독과점 언론은 진실을 곧이 곧대로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악랄하게 왜곡, 편파, 거짓 보도를 해 댈 테니......) 아니면 죽음으로서 결백을 밝히고, 동시에 이 야만적인 고문에 항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목숨 걸고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을 지킬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물론 위대한 영혼 노무현은 당당히 살신성인의 길을 택했다. 유서는 이렇게 씌여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고문하는 방식, 의도와 노무현의 고결한 성품으로 보면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이 처한 상황을 복기해 보면, 가족과 이웃과 동지를 뜨겁게 사랑하고, 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왔던 대부분의 열혈 지사들은 노무현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확신컨대 나도 노무현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자결 사건은 쥐새끼, 사냥개, 하이에나의 합작에 의한 고문치사 사건이다.
노무현은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쥐새끼, 사냥개, 하이에나 이 세 짐승들이 노린 것은 노무현의 육체적 생명이 아니었다.
정치적 생명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신을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원칙, 상식, 도덕성을 중시하고, 이념.정책적 유연성과 진정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정치세력이었다.
고문질이 왜 그렇게 모질고 야비하고 길었던가? 그것은 이들로 하여금 국민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짐승들의 천년왕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민주당과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력 정치인이 더 위협적이었다면, 또 신자유주의를 빼놓으면 문장 구성이 안되는 자칭 진짜 진보와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유력 정치인이 더 위협적이었다면 돈도, 조직도 없이 봉하마을에서 자숙하는 노무현(세력) 죽이기에 그렇게까지는 광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짐승들이 내심 바란 것은 아내, 딸, 아들, 형에게 책임을 떠 넘기고 비열하게 살아남은 형편없는 놈같은 인상을 주는 노무현이었다. 교도소 아니면 봉하마을에 유폐된,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는, 위선자 노무현이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과 지지자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는 짐승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몽둥이 찜질을 해도 노무현은 거저 얻어 맞을 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홈피를 폐쇄하고, 두문불출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노무현을 보고 그들은 드디어 수구.보수의 천년왕국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또 자신들은 노무현 죽이기를 통해서 출세의 탄탄대로에 올라섰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들과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만큼 격이 다른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비루하게 살지 않고 살신성인을 한 것이다.
짐승들은 노무현의 자결 소식을 듣는 순간, 자신들의 목에 올가미가 걸리고, 상식의 총구 수백만정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자신들의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달아날 곳은 광장 한 가운데 놓인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자결로서 책임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끊임없이 배신을 당해왔다. 고결한 인간들이 그렇듯이 아래 사람을 너무 믿은 탓이다. 2007년 벽두부터 이어진 열린우리당 탈당, 노무현과 차별화쇼,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주요 대권 주자들은 노무현을 배신했다. 정확히는 원칙과 상식을 배신했다. 물론 이는 배신이랄것 까지 없는 작은 일탈이었다.
노무현은 검찰에게서도 배신당했다. 노무현은 검찰의 오랜 숙원인 정치적 중립화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제왕적 권능을 스스로 포기한 첫번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의 숙원을 들어준, 위대한 결단을 한 노무현을, 정권과 독과점 언론의 사냥개가 되어가지고 집요하게 그것도 야비하게 물어뜯었다. 이 때문에 노무현은 진짜 바보-이전의 바보 소리는 신뢰와 애정이 깃든 소리였다- 소리를 들었다. 나부터 앞장서서 제왕적 권력을 꼭 필요한 곳에 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은 박연차에게서도 배신을 당했다. 그러나 기업과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여당, 야당, 경찰, 검찰, 지자체, 청와대 등에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댔으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는 원래 노무현이 추구하는 대의에 깊이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
그러나 노건평 형, 정상문 비서관의 배신은 엄청나게 아픈 것이었다. 이들은 노무현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대의를 잘 알고, 노무현이라는 인간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부인과 아들.딸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역시 남편이자 아버지의 도덕적 결벽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배신이라는 말은 심한 말일수 있다. 사실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오랜 후원자이자, 집안의 아저씨 같은 박연차 회장이 내미는 돈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물론 나는 이것이 범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일반 국민들도 비슷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10월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비리를 용납하지 못하여 대통령 재신임을 거론하던 사람이다. 아무리 상대가 박연차라 하더라도 부인, 아들, 딸의 사려깊지 않은 행동을 노무현이 사전에 알았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정치보복이 몸에 배여있는 극악스러운 수구.보수 세력이 퇴임 이후에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예견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인, 아들, 딸의 금품 수수 행위는 노무현의 정치감각, 윤리 감각에 비우처 볼때 명백히 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검찰과 언론의 야비한 행태를 포함해서, 가족, 지인들의 그 모든 불찰에 대해 노무현은 책임을 졌다. 동시에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노무현을 지지하고 후원하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을 준데 대해서도 죽음으로서 책임을 졌다. 그래서 책임, 진정성에 관한 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역사의 수레 바퀴의 방향이 바뀌었다.
노무현은 한국 역사상 퇴임 이후를 가장 철저히 준비했고, 가장 떳떳했고, 가장 학습능력이 뛰어났고, 할 일을 너무나 많이 계획한 전직 대통령이었다. 퇴임 대통령의 모범이 될 자격과 능력과 의욕이 넘치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매력남이었다. 또한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생산한 글들을 눈여겨 보고, 후한 평가를 내린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엄청난 경륜을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홀연히 가버렸다. 재임시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국가적 보배를 우리는 잃었다. 유연한 진보 내지 새로운 진보 이념과 정책을 만드는 대장정을 단 한번도 지도해 주지 않고 가버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연구소는 미래의 동지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차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불쑥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한다. 동시에 분노와 증오가 불쑥불쑥 치솟는 경험을 몇번이고 한다. 태어나서 이런 적은 없었다.
어쨌든 노무현은 향후 수 십년 동안 태울 에너지를 단 몇 초만에 태우고 산화해 버렸다. 부엉이 바위와 거인의 대충돌로 인해 생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든 진도 9.0의 대지진이 한국 정치.사회적 지각을 흔들고 있다. 분노와 투지의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다. 동시에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반대로 돌던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멈추었다. 그런 점에서 실로 엄청난 대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노무현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이는 작은 일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노무현의 자결은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초현대식 건물,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생산국, 세계 1위의 휴대폰, 반도체, 선박 생산국 등에 눈이 팔려서 미처 보지 못한 후진성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정치와 사법과 주류 언론이 얼마나 후진적인 리더십과 문화(마인드)와 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사상 가장 깨끗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포기한 유일한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주변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극악한 보수가 검찰과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후진적인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처 갚지 못한 민주주의의 외상값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주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정의, 상식, 원칙을 말하고, 주류 기득권 세력과 맞짱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자신을 버리므로서 모든 것을 얻었다.
노무현은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돈과 권력과 매체를 동원한 수구보수세력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대의를 쫓아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탄핵도 당시 한나라당과 구민주당의 쪽수를 앞세운 몰상식한 요구에 굴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는 거대한 분노의 쓰나미가 일어났다. 이번 부엉이 바위를 진앙으로 한 대지진도 그와 유사하다. 짐승들이 노무현에게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도록 내몰았고, 노무현은 최고위급 정치지도자로서는 상식적인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났다. 하지만 슬픈 일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므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 이룬’ 예수처럼, 노무현도 자결로 항거하므로서 너무나 크고 고귀한 것을 이루었다. 노무현은 향후 10~20년간 수구보수 방향으로 거침없이 돌아 갈것 같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예수는 열두제자와 바울을 통해서 다 이루었다. 노무현은 누구를 통해서 그 크고 고귀한 뜻을 이룰 것인가? 그것은 노무현의 서거에 땅과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판결을 하고, 채찍질을 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고, 옷을 벗기고, 창검으로 찌른 존재들; 당시 유대교 지도자(바리새인)들, 빌라도 총독,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사명을 이루는 소품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치 검찰, 독과점 언론도 노무현의 사명을 이루는 소품처럼 되어 버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원망이 생기지 않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므로서 모든 것이 종료된 것이 아니듯이 노무현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날리면서 모든 것이 종료된 것이 아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과 검찰을 잡을 수 있고, 산 노무현은 산 송장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와 씨름한 사람은 산송장이 되지는 않는다. 유언은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하이에나들의 호도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하이에나들은 노무현 자결사건을 대통령 권능이 너무 커서 문제라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대통령 권능이 커 보이는 것은 한국은 기본적으로 국가(행정부처, 검찰, 법원 등)의 권능(재정, 촉진권, 처벌권 등)이 너무 크고, 이 통제력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능단체 등 이익집단들이 너무 강하고 몰염치한데 반해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대통령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통령 권능이 너무 크다고 문제 삼는 노림수는 자신들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무력화시켜 하이에나들과 사냥개들과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다. 대통령 권능은 축소되어야 한다. 대통령제 자체도 언젠가는 의회책임제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하늘이 두쪽 나도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하이에나들과 사냥개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쪼개고, 민주적 통제 안에서 집어 넣는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통령에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은 이젠 5년짜리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세습 영주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문제다. 한마디로 검찰공화국과 조중동 공화국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1. 검찰개혁 운동에 나서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찰은 이명박의 지시대로만 노는 사냥개가 아니다. 그들은 독자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이다. 향후 있을지 모르는 검찰 권력 약화 시도-검경 수사권 분리, 공수처 신설, 검찰 인사제도 개선 등-에 대비하여 유력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카드)를 주도면밀하게 만드는 집단이다. 이명박 퇴임 이후에는 새로운 권력의 신임을 받기 위해 사전 준비까지 하는 한국 최강의 이익집단이다.
특권 집단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비주류, 변방 출신들, 반칙.특권 타파 세력을 생래적으로 싫어한다. 2003년 초에 검사와의 대화 사태를 만든 검사들의 망동은 그냥 터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냥 조용한 것이 아니다. 무수불위의 검찰 권력을 그대로 두고 분권과 자율을 얘기하고, 대통령 권력을 문제 삼는 것은 바보 짓이거나 사기다.
2. 언론 개혁 운동에 나서자. 너무나 진보한 주제지만, 100년이 걸려도 해야 하는 일이다. 물방울이 댓돌을 뚫는 법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 하이에나들이 방송사를 소유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신문이라는 흉기를 가지고도 죄없는 노무현을 살해했는데 방송이라는 흉기까지 집어들면 어떤 흉포한 짓을 할 지 모른다.
3. 정치자금법과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보수를 합리화(대폭 인상) 해야 한다. 이들 계약직 (정무직) 공무원이 20~30년간 직업 공무원 생활한, 연금도 좋고, 퇴임후 갈 자리도 많은 사람들과 보수가 비슷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은 박연차 같은 재계 서열이 가늠이 안되는 작은 부자가 수많은 정치인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사태를 초래한다.
4.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고 노무현의 약점을 뛰어넘는 시대가 요구하는 정당과 정치세력을 만들자. 2010, 2012년 진보개혁의 대약진 운동을 펼치자. 노무현의 살신성인은 2012년 대회전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하고 있다. 그럴려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는 양아치들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2004년 총선은 노무현의 살신성인으로 인해 진보개혁 세력이 엄청난 기회를 잡은 선거였다. 하지만 그 이후 몇 년간 진보개혁 세력은 한국 사회와 한국 민주주의가 갚아야 할 엄청난 외상값을 망각하고, 섣부른 이념투쟁을 벌이고, 과제와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 못잡고, 무엇보다도 (진보 우위의 역사적 변곡점을 지났다고 착각하고) 소모적인 당권투쟁에 몰입하면서 그 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를 사리사욕을 위해 탕진한다면 노무현을 두 번 죽이는 짓이 될 것이다.
5. 반역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정치 일선에 나서자. 출마만이 정치가 아니다. 반역의 역사와 씨름하려면 목숨을 걸자. 정의와 상식를 지키려는 자 목숨을 걸자.
정치를 하려거든 노무현처럼 하자. -끝-
첫댓글 이사람말대로라면 검찰이 엄한 사람을 잡았다는데,ㅡ 난 절대 동의 할 수 없음 , 서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추잡하다는 생각뿐임,이런 글을 올린다는 것도 , 글쎄 올시다
난 위의 댓글에 동의하지 않음 위에 글은 대부분 사실적인 내용이 많으며 가장 깨끗했던 사람을 가장 더러운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라는 생각임. 대부분 노무현을 욕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욕하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됨.. 결국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한사람이 살아왔던 쇄뇌된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다만 말하지 않을뿐 역사가 흐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다수의 사람들이 공론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임... 그리고 댓글은 실명으로 했으면 좋겠음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아니면 특정지역에 수십년동안 세습되어온 부모들의 반복교육등..노무현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을 모른상태에서 언론에 떠도는 정보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왜냐면 언론은 노무현의 적이고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것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난 서울사람인데 우리 집안은 다 노무현을 찍었던 경우였음 , 그러나 이사람의 5년동안 행적을 보면서 큰 실망을 느껴서 우리 집안 전체다 너무나 실망해서 이제는 노무현을 지워버렸음
그래서 이번엔 누구찍으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