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김선향
새벽
변두리 공중목욕탕
어스름
한가운데
플라스틱 바가지를 베고
바닥에 모로 드러누운
누에 한 마리
굽은 마디들
듬성한 백발
노역에 닳은 몸은
자루 같은 가죽만 남아
마지막 뽕잎을 갉아 먹고
영원히 잠들었네
환기통으로 날아오르는
새하얀 나방
***평생의 고된 노역 끝에 맞이한 노동자의 숭고하고 아련한 죽음과 소멸,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의 승화
새벽녘 변두리 목욕탕이라는 지극히 미천하고 스산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시는,
고된 노동으로 일평생을 소진한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관조한다.
"굽은 마디들"과 "자루 같은 가죽"으로 묘사된 생의 흔적은 누에가 뽕잎을 다 갉아 먹듯
몸을 던져 노동을 견뎌낸 삶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비극적 죽음을
한탄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누에의 죽음은 환기통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하얀 나방"으로 반전되며,
고단했던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얻게 되는 영혼의 자유와 숭고한 해방감을
극적으로 완성한다.禹
김선향
충남 논산 (1966년 출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여자의 정면』, 『F등급 영화』 등
소외된 이웃,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삶과 현실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는
시적 탐구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