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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본문에서의 유월절 어린 양은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성전, 지성소 등과 함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이자 약속과 계시와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외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회막, 깨어진 반석, 모세의 지팡이, 멜기세덱, 제사장들, 선지자들,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을 통해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시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게 하신 것이고, 오늘날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된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조금만 통찰해 봐도 구약 시대에서든 신약 시대에서든,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야 말로 당연히 오직 한 분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거듭남의 구원은 물론 그 어떤 모양의 구원의 일들도 가능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무엇보다 아래 본문에 있어서와 같이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해 애굽의 모든 장자들과 처음 난 것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도 그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말씀대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그 누구도 해를 당하지 않게 됨에 있어서 잠시만 따지고 봐도 그러한 어린 양의 피 자체에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일 수는 없는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상관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그 정도로 강력하고 초월적인 것인데 곧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구약과 신약 시대, 심지어는 천지창조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에 있어서의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과 단 하나, 단 한 번일지라도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은 그 정도로 놀랍고 강력하며 실질적이고 초월적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시대와 나라들을 넘는 그 어떤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결코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고,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며,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이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이치와 원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마찬가지이고 완전히 동일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특히 오늘 이 시간 이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이야 말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뀐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이 신앙이 되어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들 등을 생생하고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정말 세상 끝 날에는 말씀대로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임이 확실한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구약 시대 때에 구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 모양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시대와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후의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때에 있어서는 선명함과 명료함과 견고함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성령님의 불길 같은 역사 등과 같이 그러한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역사들의 모양과 방법과 정도 등에 있어서 또한 구약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더 충만하고 강렬하며 내재적이며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찬가지로 결코 다른 이치와 원리일 수 없는 아래 본문 이후에 증거되어 있는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됨에 있어서도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 있는 사건인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과 별개일 수가 없는 것이며,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크고 작은 모든 사안들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응답을 누리고 생생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때의 모세 또한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이치와 원리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이기에 그 어떤 시대에서건, 그 누구건, 그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진정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실상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된 사건에 있어서도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교통했던 모세, 곧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로서의 모세 그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약 시대에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와 상징들 중 하나로 쓰이고 역할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구약 시대 때의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그림자와 계시와 상징 등으로 쓰인 것들이 심히 많고 다양했음을 고려해 볼 때, 또한 그 누구라도, 그 어떤 경우에라도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이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로 빠져 있는 상태인 것이기에, 뿐만 아니라 구원에 참예케 된 상태라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한 유혹과 시험들 등이 넘침으로 인해 단 한 순간이라도 내 힘과 세상적 능력이 아닌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고,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만나며 역사를 경험케 될 때 어떻게든 예수님과 연계되지 않고서는 원론적으로 불가능임 것임을 통찰할 때 그때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 당시에는 조금 더 실질적으로 살피고 구체적으로 통찰해 보면 그와 같은 역할이 보다 더 확실하게 되었음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세에게 홍해 바다를 향해 내밀라고 하신 지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모세를 통한 출애굽 때의 10가지 이적들에 있어서도 그 지팡이가 곳곳에서 쓰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아말렉과의 전쟁에 있어 산꼭대기의 기도에 있어서도 그의 좌우에 아론과 훌이 있었지만 그 손에는 지팡이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붙잡으면서 믿음으로 간구하고 부르짖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출애굽기12:5~1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29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