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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4-7차 예언
민 24:10-25
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1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민 24:10-25 / 발락은 너무나 화가치밀어 두 주먹을 불끈쥐고는 발람에게 대들었다. `내가 그대를 이리로 모셔 온 것은 저기에 있는 원수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라는 것이었소. 그런데도 그대는 저주를 퍼붓기는커녕 세 번씩이나 복을 빌어 주었소. 11) 당장 물러가시오. 그대가 약속만 지켜 준다면 내가 그대를 극진히 대접하고 또 사람들의 존귀도 한 몸에 받게 할 작정이었소. 그런데 발람, 그대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소. 당신이 섬긴다는 여호와가 그것을 막아 버렸소.' / 12 그러자 발람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내게 보낸 심부름꾼들에 내가 분명히 일러두었소. 13) 그대가 아무리 내게 그대 궁궐에 가득한 은과 금을 준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다고 말이오. 나는 어떤 것 하나라도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소. 나는 다만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할 뿐이오. 14) [발람이 앞날을 내다보다] 당신 말대로 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러나 당신에게 말해 둘 것이 있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오' 하고는 15) 이렇게 노래를 읊었다. `브올의 아들 나 발람이 말하노라. 맑게 열린 눈으로 나 발람이 말하노라. 16) 하나님 하시는 말씀 들을 수 있는 나, 한없이 높으신 분의 뜻을 깨달아 알고 있는 나, 전능하신 분께서 보이시는 신비한 환상을 훤히 들여다보는 나, 그분 앞에 고꾸라져 눈을 뜨게 된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17) 뭔가 눈앞에 보이는구나. 하나 지금 일어날 일 아니고 앞으로 일어난 일이로구나. 아, 찬란히 빛나는 별이구나.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홀이 하나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을 후려치고 셋의 후손들을 모조리 내리치는구나. 18) 원수 에돔을 무찔러 차지해 버리고 원수 세일을 무찔러 차지해 버리는구나. 이스라엘이 그다지도 용감하구나.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활기 차구나. 19) 야곱에게서 나온 그 왕이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짓밟아버리는구나.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리는구나.' 20) 발람은 또 아말렉에 대한 환상을 보고 이렇게 노래를 읊조렸다. `아말렉, 온 세상에서 우뚝선 나라. 그다지 힘센 나라 또 있으랴만 그 끝은 흐지부지 끝장나고야 말리라.' 21) 발람은 또 가인 족속에 대해서도 환상을 보고 이렇게 노래를 읊조렸다. `네가 사는 곳 어찌 그리 튼튼한지. 바위틈에 자리잡고 있으니 어찌 든든하지 않으랴만 22) 가인의 꼴이 우습게 되리라. 끝내는 앗수르에게 사로잡혀 가리라.' 23) 발람은 또 이러한 노래도 지어 불렀다. `아, 슬프구나. 가슴아픈 일이로구나. 하나님이 이렇듯 움직이실 때 그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24) 깃딤 해변에서 쳐들어온 침략군들 배를 타고 쳐들어온 침략의 무리 앗수르를 짓누르리라. 에벨을 한없이 억압하리라. 그러나 저희도 결국은 고꾸라지리라. 영영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25) 발람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발락도 그곳을 떠나 제 갈길로 떠났다.
발람은 4-7차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의 승리를, 주변 나라들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발람에 대한 발락의 분노(10-13) 발락은 발람에게 분노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발람에게 많은 지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1차 때 저주에 실패했고, 2차 때 이스라엘을 축복했고, 3차 때 다시금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발락을 저주했습니다. 발락이 후원한 돈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복된 상태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에 발락은 약속한 재물을 발람에게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왔던 곳으로 달아나라고 말합니다. 결국 발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신 이유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4-7차 예언(14-24) 4차 예언부터는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인 모압, 에돔, 아말렉, 겐에 대한 저주입니다. 15-17절은 3-4절의 반복인데, 이는 발람이 미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발람은 장차 이스라엘 가운데서 한 별과 한 규가 일어나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을 멸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고대 유대의 해석자들은 ‘별과 규’를 메시야로 해석하였습니다. 멸망의 대상에 모압이 포함된 것은 적절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4:9; 창 12:3). 발람의 5차 예언은 아말렉 족속(20)에 메시야의 심판, 6차 예언은 겐 족속에 대한 메시야의 심판입니다. 본 단락에서 가인은 겐 족속의 수도를 말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 대한 메시아의 심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메시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대적들을 물리치시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7차 예언에서 발람은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23)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승리와 주변 나라들의 멸망을 주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이 질문의 의도가 불분명하지만 전체 문맥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메시야의 도우심으로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합 2:4).
이별(25) 이 이야기는 발람과 발락의 이별로 끝납니다. 이 둘 모두 패자입니다. 발람은 그토록 원하던 재물을 얻지 못했고,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승리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셨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모압 왕을 저주하셨습니다.
적용: 승리는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 몇 사람이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존 번연은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져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했으며 새 사람이 되는 확실한 경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위대한 신앙의 문학은 바로 그 기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기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 설 교 >
야곱의 별
민 24:15-19 / 피영민 목사
서 론
민수기 22장부터 24장은 발람과 발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발람은 강변 브돌 출신의 선지자로서 당대 최고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도 거듭나지 못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동기보다 명예와 뇌물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뇌물과 높은 존귀를 약속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단호하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은 “저주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뇌물과 명예를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졸라서 소극적인 허용을 얻어내고 모압으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로 칼을 들어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타고 다니는 당나귀에게 꾸중 듣는 망신을 당하고도 불구하고 모압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압에서 발람은 발락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세 번이나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주는 바뀌어 축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네 가지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 네 가지 말씀은 발람이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넣어준 말씀이었기 때문에 신탁(oracle)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의 신탁은 저주가 도리어 축복으로 바뀐 신탁이었으며, 네 번째 신탁은 오늘 우리가 중점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야곱의 별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1. 세 가지 신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발람이 앞서 말한 세 가지 신탁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처음에 발람은 민수기 22장 41절의 말씀처럼 바알의 산당에 올라가서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마다 수송아지와 수양 한 마리씩을 번제로 태워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섰을 때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도리어 축복의 말씀을 넣어주셨습니다. 민수기 23장 8절에서 발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이 말씀은 택한 백성을 보호(protection)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에게는 아무나 저주를 할 수 없습니다. 점쟁이나 술사가 와서 아무리 우리에게 저주를 받으라고 해도 저주는 도리어 저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은 저주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은 하나님 왕국의 특별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신탁의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발람은 민수기 23장 14절 말씀처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발람의 노래는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민 23:20)”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어떤 복술자도 돌이킬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21절에는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허물과 패역도 보지 않으시고 천국에서 받아주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의 허물과 패역은 이미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모두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민 23:21, 23)” 이와 같이 발람이 받은 두 번째 신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셨다(presence of God)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 백성들은 허물과 패역이 있더라도 사함받은 백성이요, 어떤 사술과 복술도 해칠 수 없는 백성입니다.
세 번째는 발람은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도 역시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수양 일곱 마리씩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민 24:8)”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power)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에게도 원죄가 있고, 갖가지 자범죄로 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무궁토록 사랑하셔서 보호(protection)와 임재(presence)와 능력(power)의 세 가지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성도 여러분들은 비록 패역과 허물이 많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호와 임재와 능력의 축복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네 번째 신탁
이처럼 세 번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가 실패한 모압왕 발락은 포기를 합니다. 발람도 약속받은 명예와 재물을 포기하고 돌아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 네 번째 신탁의 말씀을 주십니다. 네 번째 신탁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4장 15절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16절에서 발람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하기를” 발람의 자기 소개는 자화자찬격인 교만한 소개입니다. 그러나 이 교만한 거짓 선지자의 입술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복음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 24:17” 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위대한 복음을 교만한 거짓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십니까? 이는 복음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증거되기만 한다면 참된 선지자든 거짓선지자든 상관없이 그 입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입으로 말했으나 자기 영으로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대언한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발람이 선포한 복음은 자기 시대의 일이 아니라 먼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임을 알려줍니다. 먼 장래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날 것입니다. 홀(scepter)은 왕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왕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왕권을 가진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이 모압과 에돔과 아말렉과 겐 족속을 모두 정복하고 이길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역사적으로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다윗왕을 가리킵니다. 다윗왕은 발람이 예언한 대로 이방인들을 모두 쳐서 점령했습니다. 모압과 에돔, 아말렉과 겐족속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영토를 남방, 북방으로 가장 크게 확장한 왕이 다윗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별은 예언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다윗은 그림자요, 예표일 뿐이며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계 22:16)”
3.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의 의미
19세기에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탐정추리 소설가 코난 도일의 소설에는 그 유명한 명탐정인 셜록 홈즈와 그의 조수이자 의사 친구인 왓슨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느 날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범죄를 수사하던 중, 날이 저물어 밖에서 야영을 하게 됐습니다. 텐트를 치고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셜록 홈즈가 왓슨을 깨웁니다. “왓슨, 하늘을 봐. 뭐가 보이나?” 그러자 왓슨이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보이는군.” 다시 셜록 홈즈가 묻습니다. “별들이 우리 눈에 보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지?” 그러자 왓슨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
을 했습니다. “별들의 의미라. 천문학적으로 토성이 사자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고, 시계학상(horology)으로는 밤 3시 15분가량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지. 또기상학적으로는 내일 날씨가 맑다는 것을 의미하고,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인간은 작고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장황하게 대답한 왓슨은 이제 홈즈에게 되묻습니다. “그런데 홈즈.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러자 셜록 홈즈는 어이없다는 듯이 왓슨을 바라보면서 “이런 멍청이야. 지금 우리 눈에 별이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자고 있던 텐트를 누군가가 도적질 해갔다는 그런 의미라고.” 이처럼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 별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로 별은 왕권을 의미합니다. 별과 홀은 같은 본문에서 동어반복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19절을 보면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별은 왕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별은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를 의미합니다. 통치권자가 등극했다는 의미로 별이 떴다, 혹은 통치권자가 죽거나 물러났다는 의미로 별이 졌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야곱에게서 나온 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권자이며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정치적인 대통령은 노무현씨이지만 우리의 영적인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며 복 줄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벌 줄 사람에게 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시편 2편 11-12절이 그 대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왕에게 입 맞추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지혜와 처세술에 관한 책이 수백만 권 있을지라도 왕에게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처세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별은 광명을 의미합니다. 빛이 없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도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9-10)”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학문과 철학과 정치와 예술과 교육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한 때 사람들은 이러한 학문, 철학 등이 세상에 빛을 비춰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대기의 계몽사상(enlighten movement)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철학과 학문,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내세를 알 수도 없고, 인류 역사의 진행방향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홀로 비추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 역사에 대한 참 지식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광명한 천국에 갈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거절하는 사람은 영원히 벌 받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대학의 교수라도, 박사 학위를 수십 개 가진 사람이라도 빛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어두운 소리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영혼이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별은 인도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밤중에 나가서 어두컴컴한 하늘을 봐도 북쪽과 남쪽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도 별의 인도를 받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살다보면 그 곳에서 자유와 생명과 평안과 영생과 부활을 발견하게 됩니다.
넷째로 별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흔히 점성술가들은 별의 움직임이 인간의 운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별점을 쳤습니다. 그릇된 점성술은 성경의 말씀과 위배되지만, 별이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기 때문에 별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의 때에 변화와 영향이 온다는 것을 성경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 38장 31-32절을 보면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고 기록되었습니다. 묘성(Pleiades)을 눈으로 보면 별이 일곱 개쯤 모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사용하면 별이 백 개 이상이 모여서 집합체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되게 하겠느냐?” 떨기(cluster) 란 그룹이죠. 별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인데, 눈으로 확인하면 대여섯 개로만 보이는 이 묘성이 그룹별임을 욥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또한 그리스 신화에 보면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라고 하는 신에게 아름다운 일곱 딸들이 있었는데, 이 딸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되었고 그 이름을 묘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리온이라고 하는 사냥꾼이 아틀라스의 일곱 딸을 연모한 나머지 자신도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오리온 좌는 사냥꾼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오리온 좌의 허리에 세 개의 빛나는 별이 바로 삼성입니다. 삼성은 오리온 좌의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욥은 이를 보며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욥이 그 시대에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한편 묘성은 봄에 발견할 수 있는 별로서 사람들은 묘성이 뜨면 만물이 소생하는 영향력을 갖게 되고, 삼성이 뜨면 겨울이 오기 때문에 만물의 휴식기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별이 인간만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상이 성경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별과 같이 인간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시는 분입니다. 예수
님께서 인간 사회에 들어오시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류 문명의 기
초이며, 인류 문화의 기초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어떤 사회라도, 어떤 가정이
라도 반드시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된 것도 예수님을 모
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있거나 민족성이 좋아서 이처럼 잘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세우며 아침
마다 새벽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선한 영향력을 주신 것입
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심령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모든 것이 선해
집니다. 술주정뱅이가 술을 끊게 되고, 바람피우던 사람이 정결한 삶을 살게 되며, 엉
망으로 살던 사람의 삶에 질서가 잡히고 악하게 살던 사람이 선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반드시 선한 영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결 론
발람은 입으로 복음을 증거했으나 영으로는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영으로 믿지 않는 말을 입으로만 선포했기 때문에 결국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으로 먼저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예수님은 내 죄 갚을 갚아주신 구주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러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야곱에게서 나오신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 분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축복과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나,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멸망과 영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뮤지컬의 제목처럼 예수님을 슈퍼스타로 모시고 예수님을 평생토록 따라다니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까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되, 미래까지 축복하신다
민 14:10-25
◈ 주해
1. 모압 왕 발락은 발람으로 하여금 3번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다.
1) 그러나 발람은 세 번에 걸쳐 모두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2) 발락은 발람에게 분노하여 손뼉을 친다(문자적으로 ‘주먹을 쳤다’는 것으로 불만의 표시).
- 발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약속한 보상을 철회한다.
2. 발람도 처음부터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고 하지 않았으냐”며 물러서지 않는다.
1)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이후의 발람의 모습은 온전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하는 신실함을 보인다.
2) 발람은 발락이 많은 은금과 존귀를 약속하면서 3번이나 저주하라고 부탁하고, 화를 내면서 돌아가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다시 확언한다.
3. 발람은 발락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고, 성경을 읽는 우리도 속인다.
1) 매일성경의 주해에서도, 발람이 처음에는 돈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은금보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하나님도 발람을 예언자로 인정하시고 예언의 말씀을 담아 주셨다고 해석한다.
2) 민수기 22-24장만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4. 그러나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발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다.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수 13: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벧후 2: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유 1:11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계 2:14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5.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3번이나 축복하게 하신 하나님은 발람에게 네 번째 예언(노래)의 말씀을 주신다. 후일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할 것을 예언한다.
1) 시작은 세 번째
민 24: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2) 성경이 증거하는 발람의 실체와 발람이 스스로 말하는 발람은 격차가 너무 크다.
3) 즉 하나님이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내가 너무나 격차가 큰 자가 바로 발람이다.
4) 하나님이 나를 아는 지식과 내가 나를 아는 지식이 같아야, 생명 안에 거하게 된다.
5)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지만, 아들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보신다.
6. 발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발람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발람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은 나귀를 통하여서도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발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선하심을 말씀하신다.
2) 다만, 발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버림받는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은 아니다. 성령체험, 기적체험, 은사자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7. 발람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만 생명이 없다.
1)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곧 생명의 교제다.
2) 발람처럼 쓰임을 받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8. 발람이 하나님께 받아 예언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야곱에게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게서 한 규가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 사람들의 관자놀이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에돔도 그의 속국이 되고 세일은 그의 차지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힘이 뻗치고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와서 성읍의 남은 자들을 멸절하리라.
1) 하나님은 모압만이 아니라 에돔과 아말렉과 겐 족속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신다.
아말렉은 민족들 가운데 첫째라더니, 결국은 아주 망하고 말겠구나.
또 그는 겐 족속을 바라보며 노래를 읊었다.
네가 사는 곳은 견고하건만, 바위 틈에 보금자리를 틀어 올렸건만, 그러나 곧 황폐해지고 말리라. 언제까지냐? 너희 곧 앗수르에게 털리고 말리라.
2) 노래를 마친 발람은 길을 떠나 자기 고장으로 갔다. 발락도 자기 길을 갔다.
9. 이스라엘에게서 나와 모압을 무찌르는 별과 주권자는 역사적으로 다윗 왕이다.
1) 모압뿐 아니라 에돔과 세일 역시 다윗에 의해 정복된다.
2) 발락의 저주 요구는 3번이었으나 하나님은 4번이나 이스라엘을 축복하신다. 그 축복은 현재 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포함된다.
3)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은 연약하다. 불신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은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상태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신다. 현재는 사자처럼 일으키시고, 미래에는 모압을 정복하게 하신다. 미래에 야곱에게서 한 별, 한 규가 나온다.
5) 미래까지 축복하시고, 그 축복을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시다.
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락에게 쇠기를 박으신다.
1) 하나님이 지금은 모압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지 않았지만, 차후에 이스라엘은 모압과 에돔을 정복한다.
2) 하나님은 강대국 앗수르를 주관하시며, 헬라제국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발락이 생각하는 민족의 신, 지역의 신이 아니라, 세상의 주관자며 시간의 주관자다.
11. 민 22-24장에서는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만 하고, 발락과 발람은 헤어진다.
1) 그러나 발람은 자신의 꾀로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하여 염병으로 심판받게 한다.
2) 그리고 자신도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12. 그 사람의 어떠함은 그 사람의 마음의 어떠함과 같다.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막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1) 마음에 쌓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의 말은 중요하다.
2) 그러나 우리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이 하나님께 가깝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3) 그러면, 비록 이스라엘처럼 연약해도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시고 지켜 주신다.
◈ 나의 묵상
회개: 말씀의 검이 드러낸 비참한 존재
발람은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나를 알까? 내가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이 보는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모른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가 삐거덕 거림으로 나를 잘 모름을 안다. 하나님이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의 괴리가 크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어둠과 나의 생명을 드러내지 않고는 결코 나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다.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만이 자신을 알게 한다. 아무리 애쓰고 힘쓰고, 탐구하고, 관찰해도 알 수 없는 나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나를 알지 못하기에 중심으로 회개하지 못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나에 대한 지식을 구한다.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이 환하게 나타나다.
발락의 저주 요구는 3번이었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 축복은 4번이다. 불신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축복하심과 역사하심은 분명하다. 소망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소망이 되신다. 이스라엘에게서 통치자가 나오며 모압을 정복한다.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은 나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소망이 되신다. 현재의 나를 축복하실 뿐 아니라, 미래의 나를 아시고 축복하신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실 일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모든 것을 모르고 모압평지의 텐트에 있다. 나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과 일하심을 알지 못하고 광야에 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고백한다.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내 소망이 있고, 십자가 그늘 아래에 내 생명이 있다. 말씀하신 바를 후회하지 아니하시고 성취하시는 주님께 “생명으로 섬기는 자로 부르신 말씀”을 기억한다. 창세전의 약속을 복음으로 성취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내 영혼과 삶과 미래도 맡겨 드린다.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나를 세우시는 주님, 그 사랑안에서 직분을 선물로 주시고, 복음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안에 머문다. 나를 영접하여 주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한다. 은혜로 영접하시고, 은혜로 안아주시니, 이 광야는 그리스도 안이 된다. 아들안에서 비참한 나를 존귀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 주시는 복음을 믿는다.
◈ 묵상 기도
주님, 모압 광야의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전능하시나, 나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부르심이 성취될지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은 이스라엘의 불신과 연약함까지도 기꺼이 담당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세상과 옛사람과 마귀와 사망을 멸하시고 생명 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주님이 내 안에 있고, 나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이미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명으로 행하는 하루, 한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연약한 몸을 강건하게 하시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예수 생명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의 만남을 축복하시고, 연약한 성도들을 찾아가 주셔서 만나주시고,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주의 자녀 삼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