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里程標)없는 거리에서
어느듯 10월달도 하순(下旬)으로 접어드니 큰 도로가의
은행(銀杏)나무도 누렇게 서서히 퇴색(退色)이 되어간다
계절(季節)에 따라 자연(自然)도 순응(順應)하고 마는데
나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노라니
조물주가 고생(苦生)만 하라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나 심란(心亂)해서 전철역(電鐵驛)에
간 것이다
공짜표를 들고 개찰(改札)을 빨리하고는
수원(水原)으로 갈까요
서울로 갈까요
잠시 고민(苦悶)을 하다가 서울 쪽으로 엉덩이를 틀었다
휘파람을 신나게 불며 전철(電鐵)에 오르니 표정(表情)을
매우 어둡게 만든 다
승객(乘客)이 매우 많아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그래도 노약자 보호석(老弱者 保護席)으로 틈새를 이용해
비집고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영등포(永登浦)에 도착하니 좌석이 생겨서 앉으니 앞쪽에
노인(老人)들이 자꾸만 쳐다본다
내가 젊은 나이로 보이는지 아니면 얼굴이 하도 못생겼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뚜렷한 행선지(行先地)도 없이 가다 보니까 전철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종착역인 광운대라고 하면서 모두 내리라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전의 성북역(城北驛)이었다
예전의 성북역 대합실(待合室)을 빠져나오면서 사방을 보니
이곳은 처음이라 생소한 기분(氣分)이 든다
구석진 골목길 이곳저곳 걸어보니 시간은 2시가 지나니까
점심 생각이 난다
예로부터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했듯이
때마침 곱창구이라는 간판(看板)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후 시간인데도 주말이라 보니 점심으로 소주 한잔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나도 소 곱창구이를 시키고는 먹으며 소주 한잔도 하니까
주말이 좋긴 좋은 것이다
점심을 먹고 전철을 타고 오다가 신도림역에서 내려서
안양천(安養川)으로 나왔다
깊어 가는 전형적인 가을답게 너무나 곱게 물들어가는
자연(自然)을 벗삼아 걷다 보니 좋기도 하다
그 덕분인지 2만 5천보 걸었으니 내 몸도 매우 홀가분한
기분(氣分)이 든다
흔히들 하루란 것이 힘든 삶의 연속(連續)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녘에 해지는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답고 하는 것처럼
내 자신(自身)이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어 보니까
너무나 좋기도 하다 ..... 飛龍 / 南 周 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