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초의 사랑이여
별처럼 / 아름다운 사랑이여 / 꿈처럼 행복했던 /
사랑이여./
머물고 간 바람처럼 / 기약 없이 멀어져간 /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이하 생략)
예전에 유심초라는 가수(歌手)가 불렀던 “사랑이여”라는
노래 일부이다
“사랑이여”
그 슬픔이 숨겨져 있는 사연(事緣)을 소개해 본다
부잣집 외동아들이 있었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몸 일부를 다쳐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K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런데 매일 학교 가는 버스에서 여차장(안내양)과
낯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며 서로 정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여차장은 자리도 잡아주고
가끔 부축도 해주며 봉사 정신까지 더해 친절을 베풀었다.
둘은 어느덧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청년은
행복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인이 생겼으니 행복했다.
배움이 부족한 자신에게 대학생 애인이 생겼으니
여차장(안내양)도 행복했다.
둘은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키워 갔다.
아, 그런데 청년 집에서 이를 알고 난리가 났다.
아무리 장애가 있지만 큰 부잣집 외동아들을 감히 넘본다고
부모가 버스회사 찾아가서 난리 치고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한 모욕을 줬다.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고."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와 고된 차장 일을 하면서 가난하지만
보랏빛 장래를 꿈꿔 왔는데, 그런 수모를 겪다니.
그날 이후로 그녀는 차장 일을 그만두고 종적을 감췄다.
청년은 거의 한 달간 집에 갇혔다.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하고
겨우 집 밖으로 나온 첫날, 한달음에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갔다.
거기서 사정사정해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내서
달려갔다.
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오빠 집에 얹혀살았다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는 그녀의 무덤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일주일을 몸져누웠던 그녀는 농약을 마셨다.
가난하고 부모 없이 고생하며 배움도 짧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랑이 수모로 끝나자
더 이상 세상을 버틸 기력이 없었다.
청년은 절규했다.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도 그녀의 무덤가에서 약을 먹고
그녀 뒤를 따랐다.
그의 점퍼 주머니에는
그녀를 그리는,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달프고 구구절절한 유시(遺詩)가 있었다.
국문학과 출신인 그 총각이 남긴 유시(遺詩)에 곡을
붙여서 80년대에 대 히트를 한 노래가,
유심초가 부른 ‘사랑이여’란 노래이다.
내가 조금 더 보태고 싶다면
그, 노랫말이 “사랑”이라는 자체(自體)를 보게되면
누구나 좋아하는 과정으로 보게된다
그 노래의 숨은 사연(事緣)이란 그야말로 실화(實話)라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도 노래를 전혀 못 부르는 음치(音癡)인데도 “사랑이여”
이 노래는 자주 듣는다 .... 飛龍 / 南 周 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