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黑風令 제1권 제8장 어떤 선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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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密室).
공기 한 점 스며들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철저하게 밀폐된 공간
이었다. 누구든 이곳에 들어서면 죽음(死)과 같은 침묵(沈默)에
절로 심장이 멈출 것이다.
밀실의 중앙에는 장막처럼 짙게 드리워진 어둠을 물리치며 커다란
백단목(白檀木)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굵은 황촉불이
소리없이 촛농을 쌓아가고 있었다.
촛대 위에는 삿갓 모양의 깔대기가 씌워져 빛의 확산을 막았고 대
부분이 먹물보다 짙은 어둠에 잠겨 있는 밀실은 대체 얼마나 넓고
어떤 형태의 실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나는 두 인물은 백단목 탁자를
사에에 두고 침중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놈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 챘을까요?"
나직한 음성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리 내린 흰 국화처럼 새하얀
백색능라의(白色陵羅衣)를 정갈하게 입고 있는 여인(女人)이었다.
문득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하의 그 누구라도 우리의 계획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다. 지난 일백년(一百年)간 극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우리의 영
세군림대계(永世君臨大計)는 바늘 끝만큼의 허점도 없이 완전무결
하니까."
중년인은 못을 박듯 확신에 찬 음성을 흘려냈다. 광명정대한 협의
군자(俠義君子) 풍모의 이목구비가 단아한 중년인의 얼굴은 측면
불빛을 받아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여인의 얼굴에는 기이하게도 백색 면사가 눈 밑에서부터 턱 밑까
지 수염처럼 길게 늘어져 있어 용모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름 전에 일어난 황궁 즙포사신대의 총수 천수태찰(天
手太察) 암살 미수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무림인들이 여태까지 황궁의 인물을 죽이려고 계획했던 것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과거를 돌이켜 짐작컨대 당금 무림의 핵심이
되는 몇명 안되는 인물 중에 누군가가 즙포사신대 총수인 천수태
찰이 우리 금철무련(金鐵武聯)의 백팔마종제(百八魔宗帝) 중에 한
명이라는 비밀을 알아냈기 때문에 천수태찰을 제거하려고 오 인의
특급 자객을 보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요."
일순 중년인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천수태찰을 황궁에 투입시킨 것은 벌써 이십 년 전이다. 그 장구
한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야 그의 정체가 노출됐다고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암살미수사건은……?"
"천수태찰이 삼개월 전에 백혈군마성의 대연회를 중단시키도록 황
제(皇帝)에게 상소문을 올린 사건이 있었다."
"상소문을……?"
"바로 그것 때문에 천수태찰을 죽이기 위해 황궁에 잠입했던 오
인의 자객을 백혈군마성 측에서 보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지."
문득 여인은 수긍이 간다는 듯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팔마종제들에게 각별히 조심하라는 적색지령(赤色指令)
을 내려야겠어요. 자칫 실수하는 날이면 지난 백 년 간 심혈을 기
울여 추진해 온 영세군림대계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요."
일순 중년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사매(師妹)는 공연한 근심을 하고 있군. 우리 금철무련은 똑같은
실수를 절대로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쇳덩어리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검(劍)이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방치해 두면 녹슬고 무뎌지는
법. 우리 금철무련은 이미 오 년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려
오기만 했어요."
"……"
"무인(武人)이란 쇠(鐵)와 같아서 싸우면 싸울 수록 더욱 강(强)
하게 단련되는 것입니다. 본녀는 우리 금철무련이 녹슨 칼처럼 무
뎌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이때였다. 중년인의 입에서 대기를 압도하는 묵직한 음성이 흘렀
다.
"무릇 천하제패(天下制覇)의 대업(大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
섯 가지 필수조건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
"절대최강의 세력(勢力)과 극강(極强)의 무학(武學), 최고(最高)
의 지략(智略)과 더불어 불(火) 같은 야망(野望), 그리고!"
그의 음성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없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을 개시하는 적절한 시기(時
期)가 성공(成功)의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과일을 딸 때 너무 일
찍 따게 되면 설익어서 못먹고, 추수의 시기를 지나쳐 늦게 딸 경
우 속이 썩어 일 년 노고가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던 우리 금철무련이 백 년 전에 천
하제패에 실패했던 원인도 바로 시기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었
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중년인의 눈빛이 깊숙이 침잠되고 있었다.
헌데,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황궁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천수태찰이 이들에게 지령(指令)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천하제패를 위해 백 년
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집요하게 추진해 온 영세군림대계란 또
무엇인가?
그러나 더더욱 가공할 것은 천하 무림인들이 애써 뇌리 속에서 지
우려 했고, 두 번 다시 기억하기가 소름끼칠 정도로 두려운 죽음
(死)과 저주(詛呪)와 공포(恐怖)의 대명사!
금철무련(金鐵武聯)!
바로 그 이름을 입에 떠올렸음인데……
이때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사매, 금강신묘정을 이용하는 계획은 어느 정도로 추진되고 있
지?"
여인은 나직한 음성을 흘렸다.
"이미 한 달 전부터 금강신묘정에 고금제일의 절세신공(絶世神功)
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다는 소문(所聞)을 중원 전역에
퍼뜨려 놓았어요."
"……"
"그래서 현재 중원 무림의 대부분 인물들이 금강신묘정을 탈취하
기 위해 혈안(血眼)이 되어있는 상태죠."
중년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단순히 고금제일의 절세신공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면 너무 막연하
다."
여인의 눈가에 웃음이 스쳤다.
"호호호…… 독고(獨孤) 사형께서는 소매가 그렇게 허술하게 일처
리를 할 것 같은가요?"
"……"
"사형께서도 선무미녀상(扇舞美女像)의 전설을 알고 계시지요?"
돌연, 중년인의 무심하던 두 눈에 뇌전같은 신광(神光)이 번뜩 스
쳤다.
"선무미녀상이라면 무학의 경지가 소림(少林)의 시조인 달마(達
摩)나 도가(道家)의 정종(正宗) 장삼풍(張三豊)보다 뛰어난 입신
(入神)의 경지를 성취했다는 고금제일무신(古今第一武神) 무도천
제(武道天帝)의 신공이 잠들어 있다는 곳…… 즉, 환상비궁(幻想
秘宮)의 기연을 얻을 수 있다는 무림 최고의 기보(奇寶)가 아니더
냐?"
"그렇지요. 단지 전설로만 존재하는 선무미녀상……"
"……"
"바로 그 선무미녀상보다 적어도 두 단계 이상 뛰어난 신공절학
(神功絶學)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금강신묘정 속에 숨겨져 있다
면 아무리 불심(佛心)이 지극한 소림사의 땡추들이라 해도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지요."
음성은 부드러웠으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
는 걷잡을 수 없는 피바람(血風)을 몰고 올 엄청난 음모였다.
문득 중년인의 입에서 단아한 음성이 흘렀다.
"후후…… 우리는 이번에 금강신묘정을 이용해서 천하무림을 극도
의 혼란 속으로 몰아 넣어야 한다. 영세군림대계의 결행시기를 보
다 앞당기기 위해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준 대법왕 일행에게 감사해야겠군
요."
음성에 짙은 득의의 심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한 순간 중년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허나, 최후의 순간에 금강신묘정은 반드시 우리가 취해야 한다.
그 키 작은 노인네에게 금강신묘정을 음모로 이용하고 또 다시 자
신들이 취해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뭔가 금강신묘정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문득 여인의 입에서 처연한 음성이 흘렀다.
"독고사형, 정말 우리 금철무련이 천하를 제패하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요? 소매는 왠지 요즘들어 자꾸만 불안해지고 있어요."
바로 그때였다. 중년인은 천천히 여인의 뒤로 다가가 가녀린 어깨
를 힘주어 잡았다.
"사매, 마음을 굳게 가져라."
"……"
"승자(勝者)는 언제나 승자로 있지 않는다. 역사(歷史) 또한 태만
하고 무기력(無氣力)한 다수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승자에게 도전(挑戰)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강철같은 의
지(意志)를 지닌 소수자인 것이다."
"……"
"나 영세대마종(永世大魔宗)의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마. 적어도
오년(五年) 내에는 본 금철무련의 발아래 천하를 무릎 꿇리겠다."
불같이 뜨거우면서도 쇠뭉치처럼 단단하게 집념으로 뭉친 음성이
었다.
헌데, 한 순간 중년인의 눈동자가 서서히 핏빛 혈안(血眼)으로 변
하더니 악마(惡魔)의 고리눈처럼 섬뜩하게 눈꼬리가 쭉 찢어져 올
라가는 것이 아닌가?
눈빛!
부릅뜬 혈안(血眼)에서 뇌전처럼 줄기줄기 쏟아져 나오는 혈광(血
光)은 단숨에 천하(天下)를 송두리째 발기발기 찢어버릴 정도로
가공했다.
이글거리는 눈(眼)!
그것은 차라리 활활 타오르는 두 개의 불꽃이었다.
첫댓글 감사
즐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마인이군
저기에 환우령이 놀아나겠군
감사~~
즐감
감사
즐
잘보고있어요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