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우리가 간 술집이 연신내였지요?
비 오는 늦은 밤까지 친구 되어 술 시중까지 들고
언제 지나간 매력인데 남은 찌꺼기 같은 가루가
아무리 털어내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지요.
술을 마셔도 답답해 내가 주정까지 한 것 같은데
그 빗소리 눅눅하고 인심 좋은 술집이 연신내였지요?
거기는 내가 처음 가본 동네란 말을 했던가, 몰라.
수십 년 허공을 헤매며 살아온 게 유난히 무거웠던지.
젊어서는 실수 연발에 걷잡지 못할 골목길 천지였고,
연신내라는 이름은 큼직한 그 냇가 때문에 얻은 것인지,
다리 건너 시장 근처에서는 왁자한 소리도 들은 것 같은데
운 좋게 돌아온다면 여기 살아도 되겠냐고 물었지요, 아마
젊은 당신은 너무 늦었다고 경고의 표정을 지었던 것인지.
그래도 취하니까 고개 끄덕이던 술집의 눈을 언뜻 보았지요.
2번 출구로 나와 길 건너면 된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던지.
석 달 동안의 귀국으로는 모국어 쓰는 것만도 송구스런 일,
연신내 다시 가기 전에 간단히 편지를 끝내기로 결심했지요.
2. 연신내 근처
연신내가 불광동 옆에 산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 동네는 내게 논밭의 개구리잡이로 입력되어 있는 곳.
예과 때 비교해부학 숙제로 열 마리 삶아서 뼈를 추리고
자잘한 것들 탈색해 매니큐어로 조심해 관절을 붙였다.
친구들 피해 달아나던 개구리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망명이 끝나면 이 근처 사방으로 흩어진 그 뼈와 매듭 들,
수통에 등산용 바지라도 입고 꼭 찾으러 길 떠나야겠다.
하지만 시인은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
가슴 짓누르는 방랑의 날을 견뎌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나 살던 때 없었던 은평구의 연신내에 비가 내리고
밤비 되어 밑으로 스미기만 하는 조용한 비의 처세술,
그랬으면 덜 아팠을 것이다. 훨씬 천천히 늙었을 것이다.
전철은 3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데 어느새 문이 다 닫히고
고양, 파주, 의정부 방면의 버스도 막차가 떠나고 말았다.
3. 피 토하는 밤
평생 얼굴 들기가 힘이 들었어.
피 토하며 시를 쓰지 못해 미안해.
고집도 줏대도 없이 글을 쓴다며
눈치 보며 비켜 다니며 살았지.
나도 그런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책임지지 않고 노래만 하고 싶었어.
피 토하는 시인이 부러운 적은 많았지.
꽃은 곧 져버리니 얼굴이 될 수 없고
진단해보니 피의 시는 모두 결핵이었어.
우리는 결핵에 걸리기 힘든 시대에 살았고
그래도 피 토하듯 시를 써야 한다는 장광설이
나는 무서웠어. 나는 겁쟁이였나 봐.
연신내에 와서야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
인간은 다 시인이라는 말 누가 했었지?
쓰고 싶은 글, 허름한 목청만 좋아하는
구수한 맛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평범한 것은 대개 친절하고 따뜻해,
무리수 없이 감칠맛 나는 정성일 뿐이야.
잘 있어.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
고마워, 이 말밖에는 또 할 말이 없네.
그러나 이 말은 언제나 다시 본다는 말,
젊은 날 못 박힌 허전함으로 당신을 찾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