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겨울비 내리는 결혼기념일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甲辰年 음력 정월 초엿샛날
사흘째 영상의 기온으로 시작되는 아침이다.
쌓이고 쌓였던 눈이 언제 녹을지 모르겠더니
눈에 띄게 많이 녹아 흙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쏟아놓을 땐 짖궂은 하늘이라고 투덜거렸는데
소리소문도 없이 녹여 데리고 가는 하늘인가?
이른 아침 영상 3도의 기온, 소리없이 겨울비가
부슬거리는 하루가 시작된다.
43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81년 2월 15일은 아내와 부부의
연을 이어가려는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은
날이다. 그날 이후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하며 지내온 세월이 어언 강산이 네 번을 변하고
해가 세 번 더 지나갔다. 아내 말 그대로 "참 오래
함께 살았네!"라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 버렸을꼬?"
라는 말로 얼버무린 촌부의 대답이 너무 어이없다.
우리가 함께하는 소풍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함께하는 동안은 서로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나온 43년
세월을 되돌아보면 호강을 시켜주었던 기억보다는
고생을 시켰던 세월이 더 많아 미안하고 죄스럽다.
수많은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點綴)된 삶이었지만
그렇다고 힘든 세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희망을
품고서 함께 열심히 노력을 하여 기쁨과 즐거움도
있었다. 남들처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없었지만 우리 둘은 스스로 자립을 하여 남부럽지
않은 삶을 개척했다. 물질적으로 커다란 부를 일군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고 살았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
그대로 살아온 43년의 세월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라고 여겨 떳떳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지아비로서 아내에게는 참 많이 미안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일찌감치 큰 선물이 주어졌다.
바로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다. 동생들을 낳아주지
않아 외톨이로 자란 아들에게는 못할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 가끔씩 미안하기도 했다.
당시엔 그랬다. 형제자매가 많고 북적거리는 식구,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이 너무 싫었던 우리였었기에
아들에게는 우리의 전철(前轍)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 결혼기념으로 아들 하나만 낳아 길렀다. 형제
없이 외톨이로 자랐지만 우리의 바람 그대로 참 잘
성장했다. 우리에겐 더 없는 일생일대의 큰 선물인
것이다. 이 녀석이 이번에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겼다. 바로 얼마전 고속도로에서 퍼진 자동차를
폐차시키기로 하고 새로 예약한 새차 구입자금을
모두 다 부담하겠다고 한 것이다. 살다보니 이렇게
자식 키운 보람을 크게 느끼게 된다. 너무 고맙다.
몇 해를 아내에게 주는 선물도 없이 결혼기념일을
맞이한다. 올해는 아들의 자동차 선물에 편승하여
얼렁뚱땅 슬그머니 또 넘어간다. 아들 선물에 묻어
가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죄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별다른 소득없이 백수로
살아가는 연금생활자인 것을... 그렇긴 해도 아내가
너무 고맙다. 투정을 부리거나 소위 말하는 바가지
긁는 일이 없는 아내다. 아내는 별 탈 없이, 별다른
걱정없이 살아가는 지금이 참 좋다는 말로 오히려
촌부를 위로한다. 그러고보면 촌부는 이래저래 복
받은 사람이다. 지난 설에 다녀간 아들이 주고 간
용돈으로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겨울비도 내리고
예약한 자동차도 아직 나오지않아 밖에 나갈 수도
없으니 마음이 영 그렇다. 그냥 말로 떼워야 하니...
여보, 순악질 여사님!
지금껏 43년 세월 순하디 순한 고운 마음씨로
못난 지아비 이 사람과 함께 살아주어 고맙소!
여태껏 그래왔듯이 우리의 소풍이 마무리되는
그날까지 서로 아끼며 서로 챙기며 멋지게 삽시다.
사랑합니다.♡♡♡
♧카페지기 박종선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 ♧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즐겁고 기쁜 하루 만드세요
감사합니다.^^
축하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