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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7. 큐티
에스겔 40:20 ~ 27
북쪽을 향한 문과 남쪽을 향한 문
관찰 :
1) 새 성전 바깥플 북문과 부속 시설의 식양
- 20절. “그가 바깥뜰 북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와 너비를 측량하니”
a. 6절에 기록된 것처럼 동쪽을 향한 문을 통해 선전 바깥뜰로 들어왔던 에스겔은 바깥뜰을 박석이 깔린 땅을 중심으로 살펴본 뒤에 천사에 의해 계속 인도되어 성전 북쪽을 향한 문으로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b. 천사는 가장 먼저 북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와 너비를 측량했습니다.
- 21절. “길이는 쉰 척이요 너비는 스물다섯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쪽에도 셋이요 저쪽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측량한 문간과 같으며”
a. 북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는 오십 척으로 약 26.5m정도 였습니다. 이는 15절에 기록된 동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와 동일한 것으로 바깥 문 통로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를 잰 길이입니다.
b. 북쪽을 향한 문간의 너비는 스물 다섯 척, 약 13.3m정도였습니다. 이 역시 13절에 기록된 동쪽을 향한 문간의 너비와 동일합니다. 이는 이 방 지붕에서 저 방 지붕까지의 너비를 잰 길이입니다.
c. 문지기 방의 개수가 좌우로 세 개씩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10절에 기록된 것처럼 동쪽을 향한 문간의 문지기 방의 위치와 개수가 동일합니다.
d. 동쪽을 향한 문간의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측량한 문간과 동일합니다.
- 22절. “그 창과 현관의 길이와 너비와 종려나무가 다 동쪽을 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a. 창과 현관의 길이와 너비와 종려나무가 모두 동쪽을 향한 문간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앞선 16절과 관련된 표현들입니다. 북쪽을 향한 문간 내부에 있던 문지기 방은 그 구조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에 있어서도 동쪽을 향한 문간 내부에 있던 문지기 방과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북쪽을 향한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일곱 개였다는 사실은 동쪽으로 향한 문간과 관련해서는 나오지 않았던 설명입니다. 본 절에 북쪽으로 향하는 문간과 외부 세계로 연결되는 계단의 개수가 정확하게 제시된 것을 보면 에스겔은 이미 동쪽을 향한 문간을 지나 바깥뜰로 들어온 뒤에 동쪽을 향한 문간과 구조와 치수가 동일하게 북쪽을 향한 문간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대강 살피지 않고 문간의 바깥까지 나가 계단의 개수가 동쪽으로 향한 문간의 개수와 동일하진를 살폈던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새 성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전의 구조와 치수를 세밀하게 관찰했던 것입니다.
b. 외부에서 성전 바깥뜰로 들어가는 통로에는 성전 건물의 서쪽을 제외한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향한 문간이 있었습니다. 이 각 문간 앞에는 모두 일곱 개씩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개의 계단을 올라 문간을 통과하여 바깥뜰로 들어거면 여덟 개로 이루어진 성전 안뜰로 들어가는 계단이 또 있었습니다. 70인경의 49절에 의하면 성전 안뜰에서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곳에 열 개의 계단이 다시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계다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성소로 가까워질수록 많아졌고, 외부의 지면과 바깥뜰의 고저 차이보다 바깥뜰과 안뜰의 고저 차이가 더 높았습니다. 그리고 바깥뜰과 안뜰의 고저 차이보다 안뜰과 지성소의 고저 차이가 더 높았습니다.
c. 계단의 개수 차이로 인한 고저의 차이는 거룩의 등급을 상징하는 것이라 설명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나와 제물을 드릴 수 있었지만, 사람의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계시는 장소와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장소 사이에 높이의 차이를 두어 구별했던 것입니다.
- 23절. “안뜰에도 북쪽 문간과 동쪽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쪽 문간까지 측량하니 백 척이더라”
a. 본 절은 어떤 사람이 동쪽을 향한 바깥뜰의 문을 통해 안뜰로 들어온 뒤에 계속 직진할 경우에 안뜰로 들어가는 동쪽을 향한 문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b. 북쪽을 향한 바깥뜰의 문을 통해 들어가서 직진할 경우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안뜰의 문과 바깥뜰의 문은 일직선 상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c. 북쪽을 향한 바깥뜰의 문과 북쪽을 향한 안뜰의 문 사이의 거리가 백 척 즉 53m정도 였습니다. 동쪽응 향한 문간의 경우도 바깥뜰의 문과 안뜰의 문 사이의 거리도 동일하게 백 척이었습니다.
2) 새 성전 바깥플 남문과 부속 시설의 삭양
- 24절.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측량하니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a. 에스겔은 동쪽을 향한 문으로 들어온 뒤 바깥뜰을 살펴보았고, 북쪽으 향한 문을 살핀 뒤에 마지막으로 남쪽을 향한 문을 살펴보았습니다.
b. 에스겔의 이러한 이동 경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고 모두 천사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c. 천사가 앞장 서서 북쪽을 향한 문에서 남쪽을 향한 문으로 가면 에스겔도 그 뒤를 따라서 걸은 것입니다. 그런데 북쪽을 향한 문과 남쪽을 향한 문 사이에는 성전의 본체 건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천사와 에스겔은 북쪽을 향한 문에서 남쪽을 향한 문으로 가기 위해서 본체 건물을 끼고 둥글게 돌아서 걸어가야 했을 것입니다.
d. 남쪽을 향한 문으로 간 에스겔은 천사가 문간의 벽과 현관을 측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측량의 결과는 먼저 측량한 것과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21절에 기록된 대로 북쪽을 향한 문간의 벽과 현관이 남쪽을 향한 문간의 벽과 현관과 동일한 치수임을 가리킵니다. 이는 동쪽응 향한 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7절에서 각방 사이 벽이 다섯 척이며 안쪽 문통로의 길이는 한 장대 즉 여섯 척이었으며 8절을 보면 안 문의 현관의 길이도 한 장대 즉 여섯 척이었습니다. 새 성전의 바깥뜰은 남문 역시 동일했습니다.
- 25절.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길이는 쉰 척이요 너비는 스물다섯 척이며”
a.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이란 16, 22절에서 말한 문지기 방과 현관에 있는 각각 닫힌 창 즉 격자 모양의 창살로 막아진 창을 가리킵니다.
b. 남쪽을 향한 문간에 있는 이 창들은 동쪽을 향한 문간에 난 문이나 북쪽을 향한 문간에 난 문과 동일했습니다.
c. 남쪽으로 향한 문간의 길이는 오십 척이었고 문간의 너비는 스물 다섯 척으로서 동쪽과 북쪽으로 난 문간의 길이와 너비가 동일했습니다.
d. 에스겔은 자신이 본 남쪽을 향한 창문의 모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쪽을 향한 문간이 북쪽을 향한 문간의 구조와 모양과 치수까지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동쪽을 향한 문간과도 동일했던 것입니다.
e. 동쪽, 북쪽, 남쪽의 문간들이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는 한쪽 문간만 측량하지 않고 모두 측량했습니다. 천사와 동행했던 에스겔도 당연이 그 천사를 따라 모든 문간들을 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의 각 구조물들의 모양과 구조와 치수를 직접 관찰하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f. 에스겔서의 1차 독자들은 나라가 패망하여 포로로 끌려와 있었고 그들의 본향은 철저히 파괴된 상황이었습니다. 곧 성전은 파괴당했고 성읍은 초토화되었으며 성벽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바벨론에서 해방하시어 새로운 성전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는 허황된 몽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새 성전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성전의 모든 곳을 두 발로 밟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치수를 재며 동일한 곳과 다른 곳을 일일이 파악하고 기록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베푸심은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더욱 힘있고 확신있게 하나님의 축복된 계획을 바벨론 포로로 있는 1차 독자들에게 증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에스겔로 하여금 추측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요, 체험에 근거한 확실한 내용을 전달하는 산 증인으로 든든히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 26절.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쪽 저쪽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a. 에스겔은 성전 바깥뜰에서 남쪽을 향한 문간으로 들어간 뒤에 스물다섯 척의 긴 통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본 절에서 문간의 끝으로 나가서 외부로 내려가는 층계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층계의 끝부분부터 시작하여 층계 바로 앞에 있는 현관을 지나 다시 통로를 따라 바깥뜰 쪽으로 들어오며 내부를 관찰했습니다.
b. 본 절은 외부에서 남쪽을 향한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도 북쪽과 동쪽을 향한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들처럼 일곱 개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절의 문 벽에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다는 표현에서 “문 벽”은 현관의 기둥을 의미합니다.
c. 남쪽을 향한 문간의 이런 구조와 모양들도 동쪽과 북쪽을 향한 문간과 관련해 묘사된 것들과 동일했습니다.
- 27절. “안뜰에도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쪽을 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쪽 문간까지 측량하니 백 척이더라”
a. 에스겔은 남쪽을 향한 문간을 끝부분까지 다 살펴본 뒤에 다시 바깥뜰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남쪽을 향한 문간의 끝부분과 바깥뜰이 만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성전의 안뜰로 들어갈 수 있는 남쪽을 향한 다른 문간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b. 바라다보이는 문간은 여덟 개의 계단을 오른 뒤애 들어갈 수 있는 안뜰의 문으로서 바깥뜰의 문간과 일직선 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이 서 있는 바깥뜰의 안문에서 안뜰의 바깥문까지의 거리는 백 척 즉 약 53m였습니다. 29절을 보면 에스겔이 이 남문을 통해 성전 안뜰로 들어갑니다.
c. 에스겔은 바깥뜰과 바깥뜰에 딸린 동남북쪽의 모든 문간들을 직접 살피고 천사가 측량하는 모습과 그 결과는 보고 듣는 일을 마쳤습니다.
가르침 :
1) 성전은 정 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동, 서, 남, 북의 길이가 같고 너미가 대체로 같았습니다. 그럼 한 면만 재고 ‘나머지는 같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천사와 함꼐 성전 모든 곳을 빠짐없이 걸어다니며 측량했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성전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에스겔은 참으로 지극정성을 다했고, 그것은 천사를 통해서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사항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메신져로서 에스겔은 철저하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제거할 것을 요구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대한 묘사도 가보지 않은 곳을 당연히 한쪽 면이 같으니까 다른 면면에 대한 수치를 점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천사와 더불어 일일이 꼼꼼하게 길이와 너비를 재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에게 있어 이 새 성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너무나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반복해도 지루해 하지 않고 그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그대로 마음에 새기고 기록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기록하고 대언하는 역할을 성실히 감당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고자 자신의 일상의 삶이라 할지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새 성전에 대한 너무나 확실한 환상을 보았기에 더욱 담대히 자신의 생각은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만 증거하고자 했습니다.
적용 :
1) 에스겔은 천사를 따라 간 곳을 또 가서 치수를 재고 또 재고, 뻔한 것도 다시 가서 길이를 재어 확인하고 하는 지루한 과정에서 한 순간도 불평의 마음이나 의심을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천사를 따라 그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여 따라갔으며 천사가 재고 있는 길이와 너비에 대해서, 그리고 새 성전의 식양에 대해서 꼼꼼하게 기억하고 글로 남겼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에스겔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2) 새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에서 진짜가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이 세 성전을 환상 가운데 보았듯이, 나 역시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의 완전한 성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은혜로 이 땅에서 먼저 경험하는 삶을 살아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하실 일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예수님께서 다 행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수록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