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결코 ‘노는 날’이 아닙니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강론>
(2024. 9. 9. 월)(루카 6,6-11)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루카 6,6-11).”
1)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장애인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의도적으로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안식일이라고 해도 모두 고쳐 주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예상한 대로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고쳐 주시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고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생명이 위독한 응급환자가 아니면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뒤의 13장에 그들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루카 13,14-17).”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병의 치료’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사랑과 자비’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악의 억압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는
사랑과 자비는, 안식일 규정과는 상관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군중이 모두 기뻐하였다는 말은, 예수님 덕분에
율법의 억압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였다는 뜻입니다.
<사실 율법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되면, 그냥 ‘악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라는 말은, 그들의
‘악한 의도’에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맞서셨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11절의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라는 말은, “그들은 분노와 증오심에 가득 차서
예수님을 죽이는 방법을 서로 의논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죽이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고,
어떻게 죽일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3) 여기서 “합당하냐?”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냐?”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냐?” 라는 질문입니다.
‘좋은 일’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
즉 선행과 사랑 실천을 뜻합니다.
‘목숨을 구하는 것’은, 병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포함해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을 전부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는,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은,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았으면서도(알았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루카 10,31-32).
따라서 그 사제와 레위인은,
‘남을 해치는 일’과 ‘죽이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일’은 요일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늘 해야 하는 일이고, 안식일에는
특히 더 많이, 특히 더 잘해야 하는 일입니다.
<‘해치는 일’과 ‘죽이는 일’을 해도 되는 날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정리하면,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날이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하는 날이다.”입니다.
<‘해도 된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입니다.>
4) 오늘날의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일은 ‘노는 날’이 결코 아닙니다.
‘선행과 사랑, 목숨 구하는 일’을 실천해야 하는 날입니다.
물론 평소에도 그런 일들을 꾸준히 해야 하지만,
주일에는 특히 더 잘해야 합니다.
미사 참례를 한 것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미사 참례는 주일을 지키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입니다.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특히 주일에는 하루 전체를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좋은 일’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
즉 선행과 사랑 실천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