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81〉
■ 밀어 密語 (서정주, 1915~2000)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느린
채일을 두른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 1948년 시집 <귀촉도 歸蜀途> (선문사)
*요 며칠, 봄이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봄날을 예찬했더니 너무 성급하다는 듯 꽃샘추위가 닥치고, 어제 일요일 아침에는 흰 눈이 다시 아름답게 대지를 덮었더군요. 물론 점심 식사가 끝나기 전 모두 녹아 없어져 버렸습니다만.
요즘 시골에서는 냉이를 캐느라 바쁠 때이고, 정원에는 봄꽃들이 뾰족뾰족 꽃대를 열심히 올리고 있습니다. 근교 지인의 정원에서는 맨 먼저 꽃을 피우는 노란 복수초가 예쁘게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집 정원의 복수초들은 언제부턴지 3월 중순이 되어서야 뒤늦게 꽃을 피웁니다 그려. 올해도 그럴 것 같고요.
이 詩는 봄날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넘치는 생명의 세계를 찬탄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의 밀어(密語)란 상대방과의 비밀스런 이야기라는 본래의 의미보다, 어떤 사실을 친근한 이들과 은밀하고 나긋나긋 주고받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시인은 이른 봄날인 3월의 어느 햇빛 밝은 날, 꽃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힌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며 찬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꽃봉오리가 열린 듯 보이는 모습을 보고 신비하고도 놀라운 장면에 주변의 사랑스런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꽃이 핀 새봄의 소식을 순이, 영이 또 떠나간 남아 모두에게 ‘꽃봉오릴 보아라’라고 외치며 밀어를 전해주고 있군요.
이제 우리들도, 여기저기서 전해주는 아름다운 봄꽃 소식을 곧 듣게 되지 않을까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