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11일 또 하나의 메모리얼 데이.
쌍둥이 빌딩 없어진날...
그리고 미현이 영국땅 밟게 된 날...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것도 없이
시간이 날 그렇게 만들어준다는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영국의 9월은 그야말로 lovely 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museum,gallery,park 를 얼마나 종횡무진하게 누비고
다녔던가?
센트럴 한복판에 있는 드넓은 하이드 파크에 가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지친 몸을 눕혀본다.
맑은 하늘과 따갑지 않은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스르르
잠을 청해본다.
그리고 하나,둘씩 떠오르는 앞으로 그리워질 얼굴들....
무엇이 날 12시간씩이나 걸려서 와야만 하는 이국땅으로
가게 만들었을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또다시 밀려오는
반갑지 않은 생각들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그래,틀림없어....
넌 인생에 실패한거야.
목적없는 너의 외유가 앞으로의 영국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감정 콘트롤을 잘 하도록 해.
결론없는 다짐으로 마무리 해본다.
10월.
식민지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봐야만 한다는건
또다른 고통을 수반한다.
알량한 미국식 발음을 할라치면 다소 간지러워하는듯한 반응의 선생님들....
바벨탑 부서진후 각종 언어로 떠들고 있는 성경속의 모습이
학생 라운지에서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난 일본과 중국에 가려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는 동쪽 끝 작은 나라
코리아 출신의 한 여학생....
11월.
날씨가 슬슬 terrible 하고 horrible 해지기 시작했다.
비가 왼종일 내린다..
준비해간 우산이 쓸모없다.
나도 점점 영국인처럼 왠만한 비에는 끄떡없이 맞고 다니기
시작했다.
바바리가 정말 필요한 나라.
한국,일본은 정말로 바바리가 필요치 않는 나라란걸 날씨로
느낄수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영어가 다 귀에 들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할수있게 되었냐고?
당근 멀었지.
새로운 능력이란 외국애가 영어를 하면 그 애의 nationality를 척하고
꿰뚫어볼수있는 능력이다.
바꿔 말하면 나의 영어는 콩글리쉬고 일본애가 영어하면 일본말처럼 들리고
스위스애가 하면 독일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12월.
이 넘의 나라,날씨 한번 패 죽이고 싶다.
기가 약한 사람 우울증 걸리기 딱 쉽상이다.
학교가 끝나는 오후 4시면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5시면 완전 어두워지고 6시되면 길바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없어진다.
아..나도 영국사람 정서를 닮아가나보다.
이 나라 사람들 주요 화제거리가 날씨라는걸 말이다.
크리스마스 파티에가서 잠시 머리를 식혀봤다.
선생님들이 해리포터 분장을 하고 연극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악기까지 연주해서 외국애들을 즐겁게 해준다.
마지막 미친듯이 다들 dance에 몰입을 하고 나또한 가볍게
stage를 누벼본다.
1월.
최상급 문장을 배우며 숙제를 내줬길래.
너네 나라 교통수단(기차,지하철...) 은 내가 아는 나라중에서
최악이야.
라고 써갔더니만 선생님들 한결같이 그런다.
나도 알아....
하도 오래전에 가설이 되서 그렇다는건 알겠지만 왜 참고 살야야하는지
모르겠다.
delay,cancel 이 얼마나 반복되는지 매일 아침 학교가는길이
두렵기까지 하다.
조금만 비가 와도 침수가 되서 튜브가 다닐수가 없다.
그리고 홍수라고 떠들어댄다.
한국의 칠,팔월 굵은 장대비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못내밀 그런
적은 양의 비에도 말이다.
5년만의 눈이요,10년만의 폭설이 런던을 강타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하루종일 버스도 안다닌 지역도 있고.....마치 우리나라 산간 벽지
고립되듯이....
공부는 못하지만 열심히 출석하고 있는 나의 성실도에 크나큰 damage를
입혔다
튜브가 운행이 안되서 버스타고 갔더니만 지각을 하고 만것이다.
그리고 난 지금 슬슬 인내심을 키워가며 무던해지고 있다.
또 딜레이 되는구나,기다리지 뭐...오늘안에는 오겠지 하고 말이다.
2월.
writing 숙제를 꽤 내주는데 제대로 스킬을 배운바 없어서리
울며 겨자먹기로 한국말로 쫙 쓰고 번역을 해서 냈다.
말은 많은데 쓸말이 적은게 내 흠이지만 훌륭하다고 다소 립서비스적인
칭찬을 듣고 있다.
물론 문법 다 틀리고 관사,전치사 다 빼먹고 빨간펜 체크가 나의 숙제를
뒤덮었지만 excellent story라며 읽어준다.
오늘은 complain 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가 떨어졌다.
나를 포함한 아시아권 애들이 얼마나 열심히 문법을 공부했는지는
영어시간에 담박 나타난다.
문법,단어의 대마왕 이것이 나의 별명이다.
그러나 스피킹이 worst 라는건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우리집 알란(그는 영국인이다,내가 특별히 이 젊은 친구를 총애하는건
한국음식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내가 해주는건 그 어떤 요리보다도
맛있단다.믿거나 말거나.김치와 된장찌개가 fantastic 하다는데 뭐...)
하고 가끔 대화를 하지만 내 머릿속은 유창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데
이 입이 따라주질 않아서 게거품 물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 알란은 내 입이 트일때까지 멀뚱멀뚱 하릴없이 기다려야하는
나름의 고통의 시간을 가지면서.....
3월 half
나의 favorite flower가 바뀌었다.
바로 수선화로....
그 청초롬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내게 한껏 선사하고 있는
수선화...
요즘 나의 등하교길에 집집마다 가든에 심어져있는 수선화를
음미하는것은 내게 또다른 기쁨을 안겨준다.
노란꽃잎과 초록잎사귀의 흔한 색깔 배합에
또 정말로 특이한 모양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꽃처럼 생겼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게 꽃이상의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너는 알겠니?
영국의 계관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노래했던 그 수선화를
나도 이렇게 찬미하며 영국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카페 게시글
영 국 일 기
구닥다리의 나라에서....
백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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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96
03.09.05 20:39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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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심히 사세요^^언제나 힘내시구요^^영국 나쁜점두 있지만 장점도 많잖아요^^영국의 장점을 생각하시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세요^^용기를 갖고^^전 영국 가고싶어도..아직 형편이 안돼고..중학생이라 힘들답니다..ㅠ-ㅠ고2쯤 돼야....
감사합니다.저는 사실 영국을 사랑해요... 이번 내용은 다소 부정적인 면이 많이 실렸지만 다음에는 저력의 구닥다리 나라에서 제가 느낀 아름다운 점을 얘기할께요... 그래서 결국 영국을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게 됬죠...^^
글 너무 너무 잘 읽었어요.. 재미도 있고 한국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 그곳 생활을 너무 잘 설명해 주신것 같아요.. 감사.. ^^
멋진 글이군요^^
멋져여~~~진짜 영국엔 좋은점도 많지만 나쁜점도 헤아릴수가없져..한동안 저두 한국에 가고싶었는데, 요즘은 다시 이곳이 좋아지는거있죠 사람 맘먹기 따라 달린것같아요 님은 잘사시는것 같아 보기좋네요 ^*^
멋지게 사시네요..27일에 런던가믄...저도 나름대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부정적인것이 아니라..님의 생활과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네요...멋지게 사시네요...단..금연을 권장함매다....^6;;
글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으신데요?? ^^ 님 글 읽으면서 몇번 웃었어요..어찌나 공감이 가든지..^^ 내일이면 님이 오신지 딱 1년되는 날이네요? 참, 내일은 사람많은곳은 피해다닙시다 !! 혹시..혹시 있을지 모르는 봉변을 위해서요~ ^^ 요즘 날씨 정말 짖궂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