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본질은 고통이다. 고통에 대한 기록이 시이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시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것이다.”
순간 속에서 꿈꾸는 영원
2017년, 중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챗봇 ‘샤오빙’이 쓴 시집이 출간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AI도 시를 쓰고, 문학의 장르 간 경계는 희미해졌다. 다양한 문학적 실험으로 회화처럼 ‘이해’에서 ‘감각’의 차원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시의 본질, 시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박경한 시인의 시는 정직하다. 도전적인 ‘젊은 시’라기보다 고전적이라 표현할 만하다. 하지만 그만큼 직관적으로 위안과 재미를 전한다. 삶과 죽음 사이 펼쳐진 온갖 사건들을 건져 올려 시적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김수상 시인은 이에 대해 “시가 안 읽히는 시대에 술술 잘 읽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산밭에서의 일상, 어머니,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긴 50여 편의 시는 시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시의 본질은 고통이다. 고통에 대한 기록이 시이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시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것이다.”
대원사 앞마당에
부처의 입술 같은 매화가 지고 있다
그러게, 모든 게 잠깐이네
떨어진 꽃잎들이 부처를 닮았는지
흙에게 엎드려 공양한다
- 16쪽, ‘공양’ 중에서
시인은 세 번째 시집으로 유한성에 대해 증언한다. 온 힘을 다해 대상을 낚아채 시 속에 담음으로써 유한함, 결핍에서 오는 생존의 고통은 영원의 영역으로 향한다. “아끼는 당신은 너무 일찍 길을 떠났”을지라도 시로 남아 곧 삶을 대하는 자세가 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 끝에 시인은 손바닥에 풀물 드는 삶을 선택한다.
죽음이 있기에 진실한 삶을 갈망할 수 있다는 시인의 시는 삶에 죽음을 불러들인다. 영원을 꾀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시집 『풀물 들었네』는 시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우리의 저녁은 항상 최후의 만찬”이나 다름없으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지금도 죽어가고 있”으나 진실된 시는 삶의 닻이 되어 영원을 꿈꾼다.
박경한
《오늘의 문학》 신인상 등단
시집 『살구꽃 편지』(전망), 『목련탑』(만인기획) 출간
제1회 ‘칠곡문학상’ 수상
2022년 대구문화재단 개인창작지원금 수혜
왜관 순심고등학교 국어교사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