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좋은 詩 읽기 스크랩 달의 씨앗 / 김명린
동산 추천 0 조회 26 18.06.29 21: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달의 씨앗 / 김명린

 

 

  파도 소리가 밀려와 몇 그루 나무들이 밤하늘 별들을

쓸고 있는 해안가

  밀려왔다 미처 돌아가지 못한 것들이 개펄에 든다

  낱낱의 물들도 방향을 알고 흐름을 알아

  홀로 들고 나는 물때를 본다

  어떤 파동이 이곳까지 찰박거리는 물의 시간을 몰고

오게 했을까

 

  민박집처럼 모여 있는 미루나무들

  푸른 소리가 밀물처럼 든다

  수백 개의 물질을 가지로 열어 두고

  만조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작은 잎사귀들

  뱃길 끊기는 시간인 양 바람의 조바심이 수선스럽다

  보고 배운 것이 들고 나는 물때뿐이어서

  봄날엔 초록의 수문을 열어 두

  가을엔 갈색의 건기를 열어 놓는다

  섬의 문들은 불빛을 방 안에 가두고

  나뭇잎 제 몸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자정

  잎끝에는 서서히 썰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밤은 개펄 물웅덩이마다 달을 심어 놓고

  달의 씨앗같은 조개들이 으적으적 모래 소리로 자란다

 

  - 김명린 시집 <달의 씨앗> 2012

 





***************************************************


김명린은 마음에서 일어난 서정적 충동을 안정된 호흡과

아름다운 비유로 형상하는 능력을 가진 시인이다.


그의 표제시 <달의 씨앗>을 읽는 독자라면 “몇 그루

나무들이 밤하늘 별들을 쓸고 있는 해안가”의 아름답고

선연한 심상을 맛보는 즐거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미루나무를 민박집으로, 그리고 “수 백 개의 물길을

가지로 열어두고/ 만조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작은

잎사귀들”이라고 상상한다.

예를 들어 밤이 “개펄 물웅덩이에 달을 심어 놓고/ 달의

씨앗 같은 조개들이 으적으적 모래소리로 자란다”는

신화적 발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른 시 <봄바람이 수면의 표정에 들 때>는 제목도

신선하지만, “몽글거리는 저녁연기들이/ 간간한 간수 물과

만나 두부처럼 응고되는 마을”이 보여주는 심상과 함께

“유리파편 같은 봄날이 떨어져 반짝거린다.”는 직관도

빛을 발한다.

또 다른 시 <무릎>에서 보여주는 “한 번도 접힌 적 없는

무릎 뼈를 딛고/ 신갈나무 여름을 오른다”와 “무릎 없는

어린 나무들이 그림자로 숲을 뛰어 다닌다”는 동적 심상도

신선하다.

<나무는 지금 검색 중>에서 손바닥 모양의 잎들이

“밤이면 별들을 클릭한다”거나 “새들의 블러그가 만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집>에서 “마루 위에

관절 앓는 소리”와 <그늘을 밝히는 것들>에서 삿갓버섯의

무리를 “무소유의 법회”를 열고 있는 스님들로 발상하는

것도 참신하다.


이렇듯 김명린은 서정시의 본연이 무엇인가를 깊이

각고하면서 한 편의 시를 직조하는 아름다운 직공이다.


/ 공광규 시인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