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것이 뚝 떨어져 나가버린 영혼체 그것이 진짜 나(我)
이제 여러분하고 비교해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자, 선불교(禪佛敎)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진아를 마음자리라고 합니다.
마음자리, 조금 어렵게 ‘자리’를 붙여 ‘마음자리’라고 그래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현상계를 낳은 무엇이죠?
본체니까 ‘공(空)’을 말합니다.
공을 진아라고 봅니다.
여러분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아니오!’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쪽에서 상당히 깊이 간 거예요.
공을 나의 본래면목으로 보니까 상당히 갔지요.
그러나 100점 대답은 아니어요.
공이 진아일 수 있습니까?
거기는 공을 주인공(主人公)이라고 합니다.
주(主) 자, 사람 인(人)자 하고, 거기는 공사(公私)가
엄연히 다르다할 때의 공(公) 자, 공평할 공, 어쨌든 사사롭다의 뜻이 아니고
공적(公的)으로 할 때의 공자입니다.
빌 공(空)이 아니어요.
주인공(主人公), 그리고 작위(爵位)에서 제일 높은 작위가 공작(公爵)이지요.
그 공(公) 자를 써줘요.
우주 본체를 가리켜서 주인공(主人公)이라고 해요. 알았습니까?
그래서 화두에도 ‘이놈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뭐꼬?’ 이런 것이 심화두인데
시심마(是甚麽)도 그거예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놈, 이게 뭐꼬?
네가 말하고 웃고 하는 바로 그 근원자리 그놈이 뭐꼬?’
이것을 시심마라고 합니다.
시심마 화두라든지, 부모미생전 화두라든지, 우리가 많은 부모를 거쳐 왔잖아요?
그래서 부모 이전, 부모를 통해서 거쳐 왔는데 그러기 전, 그 말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한 그 자리’라는 말이어요.
상대가 끊어진 자리가 절대 아닙니까?
절대 그 자리. 그게 공(空)입니다.
이 공을 주인공(主人公)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그것은 잘못 안거예요. 큰일 날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나의 주인공이나 땡삐의 주인공이나 같아야 되겠네? 그렇잖습니까?
여러분 개개인의 얼굴이 다르고 운명이 다르잖습니까?
인격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귀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내 주인공이 있고 네 주인공이 있고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우주의 본체, 상대를 초월한 그 자리, 의식이전을
내 주인공이라고 해버리면 그것은 말이 안 돼요.
틀린 말인지 맞는 말인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주를 낳은 자리인 공은 비인격입니다.
공은 비인격이어요. 그렇지요?
인격이라고 봐버린 것은 기독교입니다. 그렇잖습니까?
‘I AM’이라고 하지요? 자존자를 인격으로 보지요?
힌두교도 나중에 인격으로 해석한다고요. 그런데 그건 아니어요.
그렇게 보면 많은 모순이 생겨요. 해석 못합니다. 이건 아니어요.
비인격인 거예요. 하나님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했다.’ 이건 아닌 거예요.
그 시간이 아니지만, 그것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내 주인공’ 그러면 ‘진짜 나는 누구냐? 진짜 나는 뭐냐?’
사실 대답이 거의 나와 버렸습니다. 그렇지요?
내 영혼의 실체, 비본질적인 것이 전부 떨어져 나가버린 내 영혼의 실체입니다.
주인공(主人空),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공’자를 ‘빌 공(空)’자를 씁니다.
힌두교에서도 주인공이라고 할 때 ‘빌 공’자를 써요.
아트만을, ‘빌 공(空)’자라고 해요.
그 영혼의 실체, 본질적인 것이 뚝 떨어져 나가버린 영혼체,
내 영혼체가 주인공입니다.
그것이 진짜 나(我)입니다.
출처:2014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