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견해
兮空
百人百色
죽음에 대한 見解나 생각 또한
九九各各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각 개인 혹은 집단의 숨겨진 내면의
정신적 내공 상태의 깊이와 너비가
밖으로 표출된다고 여겨진다
죽음에 대해서 세상에
잘 알려진 명언 몇몇을 살펴보면…
Mark Twain -
The fear of death follows
From the fear of life
A man who lives fully is prepared
To die at any time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Mitch Albom -
Death ends a life,
Not a relationship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지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
Napoleon Bknaoarte -
Death is nothing,
But to live defeated
And inglorious is to die daily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패배하고 불명예스럽게 사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이다
David Gerrold -
Life is hard. Then you die.
Then they throw dirt in your face.
Then the worms eat you.
Be grateful it happens in that order.
인생은 힘들어요. 그리고는 죽죠.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얼굴에 흙을 뿌립니다.
그리고 구더기들이 당신을 먹습니다.
그 순서대로 일어난다면 야…
다행이지요 감사하세요.
Emily Dickinson –
Unable are the loved to die
For love is immortality
사랑하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
사랑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James O Barr –
Life is like a dream
on the way to death
인생은 꿈과 같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Queen Elizabeth & Rob Liano –
The sorrow we feel
when lose a loved one is
The price we pay
To have had them in our lives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우리가 치르는 대가입니다
우리 삶에 그들을 만났었다는 것에 대한
Unknown -
Everybody wants to go to haven,
But nobody wants to die
모두가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Unknown -
Nothing in life is promised
Except death
인생에서 약속된 것은 없다
죽음을 제외하고
Unknown -
We never truly “Get over” a loss,
But we can move forward
And evolve from it
우리는 결코 손실을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진화할 수 있습니다
George Eliott –
Our dead are never dead to us,
Until we have forgotten them
우리의 죽은 자들은 우리에게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잊을 때까지
Sir Walter -
Death – The last sleep?
No it is the final awakening
죽음 - 마지막 잠?
아니, 마지막 깨어남이에요
죽음 앞에서 인간은 대체로
‘태양은 가득히 알랭드롱 별이되다’
이와같은 환상적 허구를 되뇌이면서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고저 미사여구로
실체를 받아들이기를 회피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 이글은 동창회
부고 알림 아래 되풀이 쓰이는 판박이
댓글 형식이다. 고인을 위한 글이라기 보다
허망스러운 자신를 위한 체면과 안도의
헛발질같은 허구의 표현이다. 허세다!
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대면하며 일시적
환상으로 육감을 가리고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못할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처럼…
위에 열거한 소위 죽움에대한 명언 중
‘David’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려 안간 힘을 다하는
하나마나한 자위적 회피성 피안의
겉치레 글이다
겉치레에 관한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眞金不鍍(진금부도): 진짜 황금은 도금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內虛外飾(내허외식): 속은 비고 겉치레만 함을 뜻한다.
虛禮虛飾(허례허식):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밈의 뜻으로,
그런 예절이나 법식. 인간은 유일한 겉치레의 동물이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철저하게 위선적이다. 왜?
솔로몬 왕의 [전도서1장]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또한 반복된 회피성 헛치레 경인 듯 들린다.
솔로몬도 인간이기에…
David은 죽음을 정면으로 있는 실체 그대로
받아드릴 뿐 아니라, 자연의 질서에 따른 순차적
운행을 따르면서 감사할 것을 암시한다…
서양인으로서는 아주 드문 慧眼이라 하겠다.
저자불명의 다른 한 글은, 인조물 중 하나인 종교의
유치성과 모순성을 비웃는다: 모두가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평생을 ‘믿으라, 믿는다’ 울부짖고도 믿기 힘들어 한다
믿음의 부재?란 말인가? 믿음의 강요는 사기꾼의
협박임!을 알고 예배당으로 몰려 다니다가 종국에는
시인 ‘David’의 예언된 길로 사라지는가?
중동 모래사막 무속미신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불륜과 폐륜을 신화로 유일신을 조작한
종교의 경전에 기술된 죽음에 관한 몇몇
경을 열거하자면,
Romans 14:8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우리가 살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고,
우리가 죽으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 죽든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Corinthians 5:8
We are confident, I say,
and would prefer to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몸에서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온하기를 더 선호합니다.
John 14:2-3
My father’s house has many rooms;
If that were not so, would I have told you
That I am going there to prepare a place for you?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to be with me
That you also may be where I am
내 아버지 집에는 방이 많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너희에게 말했겠는가?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러 간다고?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면
돌아와서 너희를 내게로 데려가서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John 11:23
Jesus said to her,
Your brother will rise again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네 동생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John 11: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s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
웃긴다,
지극히 독선적이며 유아스럽다. 황당하다. 사기를 당하는 이 느낌!
그들의 경전에 나타나는 유일한 주체 대명사는 바로
The lord (장사꾼 무리의 주인이라는 뜻의 주님) 이다
간증도, 기도도, 십일조도, 사랑도, 마지막 죽음도 그
주인님으로 일방통행하여 관장된다. 북한의 김정은이
아주 쉽고 직설적인 독재자의 리더십 교본으로 최고
최상작이라 여겨 몰래 자주 읽는다는 뉴스가
헛소문이 아닌 가 보다
지난 3천여년 동안 단 한번도 그 ’주’가 과연 무엇인지
실체를 증명하지 않은체, 못한체 지들만이 쓰는 용어다.
우주 어디에도 듣도보도 못한 가상의 유령이 아니라면
중동 모래사막판 사기단 두목 일 가능성도 있다는 가설이
(유대계 미국인 한 신학 전공 친구의 논문 중) 생각난다
그의 논문중 하나 더 인용하면,
그 ‘주’를 ‘대자연’으로 대치하면 그들의 바이블은 그나마
그런대로 좋은 동화집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기에서 집고 넘어 가야할 것은,
그 ‘주’가 무엇이든,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방민족의 이질적 조작된 신화이라는 점과
불륜에서 시작해서 폐륜으로 끝장나는 한편의 드라마!
지난 만여년을 전수해온 한민족의 유일한 대경전
天符經에 삶과 죽음에 관한 사상을 축소 요약하면:
兮一始 無始一空也 兮一終 無終一空也
우주의 참 그림이 명백히 보인다. (나의 사견이다)
그래서, AI 아바타 UNIISS 에게 그림으로 그려 보라했다…
兮空의 詩와 인공지능 아바타의 畵釋 (G240829569)
*[참조사항]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人性 과 人工] [詩性 과 그림]
https://cafe.daum.net/kb39cyber/Qrcx/3974
UNiiSS
UNIISS: 죽음 또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