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불거리는 대관령 길을 넘는 아버지 차 안에서 김현주씨(당시 19세)의 가슴은 설렘으로 울렁거렸다. 트렁크가 가득 차고도 모자라 뒷좌석에 실은 짐가방을 그는 꼭 끌어안았다. 고향 강릉을 떠나 ‘대관령을 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목표는 강릉 밖으로 나가는 거였어요. 어쩌면 모두의 목표였겠지만요.”
흔한 이야기다. 비수도권의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에 자리 잡은 청년이 어디 현주씨 뿐인가. 5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청년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구불거리는 고개가 매끈한 터널로, 아버지의 자동차가 KTX로 바뀌었을 뿐이다.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고향을 떠나나’ ‘떠난 이들이 향하는 곳은 왜 수도권이며 왜 돌아가지 않나’ 강릉의 A여고 졸업생중 소재가 파악된 30명 중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은 현주씨 포함 16명(서울 13·경기 3)이다. 전업 주부인 1명을 제외하면 15명이 거주지인 수도권에서 일한다. 경기도 수원 소재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강릉을 떠났던 김현주씨도 현재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강릉은 요즘 ‘힙스터의 성지’로 떴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개성 있는 카페와 서핑샵이 전국에서 온 이들로 북적인다.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에 앞서 개통된 KTX 강릉선으로 수도권과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정동진 등 강릉의 주요 관광지를 찾은 방문객은 연간 1900만명에 달했다. 인구 유출도 둔화 추세다. 2015년 이후 전입이 전출을 역전, 2019년 말 기준 강릉시 인구(21만3442명)는 전년대비 485명이 증가했다. 빠르게 쪼그라드는 여느 지방 소도시들과 대조적이다.
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강릉 소녀들에게도 고향은 숨통 트이는 곳이다. 30대 초반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직장 생활을 한 이들은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실으며 강릉의 깨끗한 공기나 바다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 살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릉은 홈(Home)이에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홈.” 김현주씨 목소리에서 씁쓸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있다. 그는 “강릉에서는 내 일(영화 마케팅)을 할 수 없다. 이 일을 하는 내 자신이 좋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라며 “강릉에서의 현주라는 그 삶의 단계는 확실히 지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는 귀향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예로 강릉의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숙박이나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71.9%)이다. 전국 평균(59.8%)을 크게 웃돈다. ‘강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니면 공무원’이라는 자조가 우연이 아니다. 비수도권 거주자 중 일부는 “서울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업 상황에서도 불균형은 드러난다. 비수도권 거주자들의 경우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6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 수도권 거주자 16명 중 3명 만이 공무원·공기업 직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비율이다. 수도권 거주자 16명의 일은 영화 마케터, 배우,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자산운용사 직원, IT 서비스 기획자, 미디어 콘텐츠 운영자, 간호사, 교사 등 다채롭다. 대부분 강릉에 내려가면 같은 일을 지속할 수 없거나 임금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나는 이방인, 합법적 이방인이죠, 스팅, ‘잉글리시 맨 인 뉴욕’). 강릉 소녀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가사다. 서울에 얼마나 머물렀건, 서울살이에 얼마나 익숙해졌건 그들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낀다. 강릉 소녀들은 서울이 뭐냐는 물음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 ‘애증’, ‘기회의 땅’, ‘나를 성장시킨 곳’, ‘미래’라고 했다. 서울에 대한 양가감정이 읽혔다. 놓쳐선 안될 메시지가 한 가지 더 있다. 서울이 제공하는 성장, 미래, 기회와 기꺼이 맞바꿀 무언가가 지방에 없는 한 이들의 귀향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