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주의 나라에서 그 좌우편에 않는 것은 구주 예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3장 32~33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사도행전 1장 6~7절에서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이 세상의 끝 날이 언제인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시는 것이고, 모든 때와 시기를 정하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누가복음 22장 44절에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원 사역을 앞두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어느 정도로까지 기도하셨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고, 그 전에 누가복음 6장 12~13절에서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열 두 제자를 세우실 때는 밤을 세우시기 까지 하신 것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모든 말씀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 특히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면서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을 아주 잘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진행 등에 관한 모든 일들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구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 비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있어서 가치나 역량이나 수준이 낮은 분이시라거나 높낮이나 우위나 상하의 차이가 있다거나 하는 차원일 수는 없는 것이고, 진정 삼위일체라는 그 개념과 존재 자체가 애초에 그럴 수가 없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구주 예수님께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비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있어 다른 부분과 영역이신 것이지 그 존재와 역할적 가치나 역량이나 수준이 낮다거나 부족하다거나 지위나 우위나 정도의 차이이실 수는 없다는 것이며,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에 있어서 각 위격들은 각각의 역할과 조화에 있어 모양이나 영역이 다르신 것이지 역량과 비중은 철저히 동일하심이 처음부터, 시작부터, 존재 자체에서부터 포함되어 있고 전제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말 그대로 삼위일체라는 의미와 개념과 존재와 차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와 진행 등에 관한 모든 일들을 전적으로 주관하시고, 특히 그 속에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그런데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마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구주 예수님이 아니시고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직결되지 않고서는 완전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서의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와 진행 등과 같은 부분과 영역에서의 전적으로 행하시는 위치와 역할과 권한 등과 비교할 때 구주 예수님께서도 다른 부분과 영역이긴 하지만 동일한 비중과 가치와 역량에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라는 것인데..
곧 모든 대속과 대신들, 그로 인한 사함과 나음들 등에 있어서,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이기에 그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하늘의 모든 은혜와 능력과 복들, 땅에서의 모든 연약과 문제와 한계들 사이 한가운데에서 구원과 중보와 길과 통로와 접점 등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께서는 독보적인 분이시자 그러한 부분과 영역들은 오직 구주 예수님께만 절대적으로 속한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에 비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모양이나 영역이 다르신 것이나 그 비중과 가치와 역량 등은 완전히 똑같으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이치와 원리는 성령님께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 있어서도..
실상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에 비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모양은 다르신 것이지만 그 속에서의 비중과 가치와 역량은 조금도 차이가 날 수는 없는 것인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성령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계획과 약속, 섭리와 진행들마다, 그리고 그와 직결되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십자가 목숨값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마다 결코 단 하나라도, 단 한 번이라도 실제와 누림들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정말 생생하게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되며 강렬하게 누리고 경험하게 됨과 관련된 모든 부분과 영역은 전적으로는 성령님께 속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사람의 얼굴이 한 얼굴이 됨에 있어 눈, 코, 입이 각각 그 위치와 역할이 다른 것이지 그 가치나 우위의 차이를 찾기는 힘든 것과 어떤 면에서는 많이 유사한 것으로 어쨌든 그렇기에 말 그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인데 바로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인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 땅에 구주 예수님과 함께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도, 또한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히 누리게 될 영원한 천국도, 그 속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도 본질적으로는 모두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인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태초에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우리 인생들의 모든 문제의 시작도 말씀을 어긴 것이었고,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해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도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뀜인 것이고, 더 나아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이야 말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이자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로 강렬하게 되는 기준과 관건인 것이며, 실상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사실은 생각 이상의 전제와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20:20~2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30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